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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해광 Feb 16. 2022

정신을 풍요롭게 유지(維持, sustain)하기

취미의 연구

취미를 한자로 趣味, 라고 쓴다. 미(味)라는 글자는 상대적으로 쉬운데, 자주 쓰는 단어이며, 흔한 상황에 쓰이는 글자라도, 취(趣)라는 글자는 상대적으로 더 어렵고, 옥편에서 찾아보면, 낯선 느낌을 받게 될 것처럼 생겼다.

영어로, 취미는 Hobby, 라고도 하지만, 좀 더 평명하고 일상적이고 편안한 감정과 느낌을 담고 싶다면, what you do for fun, 이렇게 풀어 쓰는 게 더 일반적이다. Hobby는 좀 더 딱딱한 느낌이 든다.

우리말로 풀이 하자면, hobby가 취미, 라면, what you do for fun, 은 심심풀이, 정도이려나. 좀 더 정감이 묻어나도록 풀어 쓴 것이다.

취미는 정신을 풍요롭게 유지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호모 루덴스, 라는 라틴어로 된 말이 있다. 노는 인간, 이란 뜻이다. 호모 사피엔스, 가 슬기 인간인 것처럼 노는 인간, 이란 단어는 인간의 본질을 가리킨다.

놀이는 인간의 전유물은 아니다. 오히려 놀이는 생물의 본성에 더 가깝다. 고양이는 먹을 것이 아니더라도 사냥 놀이를 즐기고, 강아지도 그러하며, 특히 어린 새끼일수록 놀이의 성향은 더 강하다. 그러나, 새끼의 시기를 지나서도 이러한 놀이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중국어 간체자로는 本质, 일본 한자로는 本実, 이렇게 본질, 이란 말을 쓰는데, 질이란 글자가 다 다르다. 그러나 본, 이란 글자는 동양 삼국이 다 똑같이 통용된다.

본질을 국어 사전에서 찾아보면, "본디부터"라든지 "근본적으로"라든지 이런 단어를 정의 속에 포함하고 있어서, 사실 이 본 자에 대한 정의는 카드 연체 빚을 돌려막기, 하듯이 영원히 도돌이표 안에서 쳇바퀴를 돌게 된다. 그래서 본 자에 대해서는 논리적 정의가 아닌 직관적이고 감정, 혹은 감성의 정의를 요구하게 된다.

본 자는 식물의 뿌리를 나타낸 글자다. 뿌리를 캐먹는 일은 인류에게 있어서 말그대로 '본질'적인 생존 수단이었을 것이다. 혹은 '본능'적인.

나의 어머니는 이런 말을 했다. 자기 먹을 거는 다 갖고 태어나는 거라고. 그러나, 이런 말이 어디 논리적으로 정연하게 논증해서 나온 말이겠는가? 그래서 이런 내용은 국어사전적 정의에서 빠져 있는 내용들이다.

인간, 혹은 인간이기 전에 인류로서 살아가는 일 자체가 보이지 않지만, 식물의 뿌리에 대해서는 그런 식으로 삶의 희망이나, 소망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었다. 최소한의 '비유'였다.


취미를 연구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감옥, 혹은 교도소에서는 나무를 볼 수 없다. 취미, 란 권리이면서 의무이다.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향기를 갖고 있다.

물론, 그래서 악취미, 라는 말도 있다. 취미에는 그런 측면이 존재한다.


취미에 대해 좀 더 비유적으로 접근하자면, 취라는 한자는 원하는 것을 성취하기 위해 달려간다, 는 상형적 의미가 있다. 그런데, 이 원하는 것이라는 해석은 본래는, 전쟁터에서 포상을 받기 위한 목적 등으로 죽인 자의 귀를 도려내는 행위였다. 그러나, 이런 무시무시한 어원적 부분은 이제 세월에 덮히고, 지금은 원하는 것에 대한 '비유'로만 남았다.


이렇게 최소한의 '비유'는 지금의 언어를 지탱sustain하고 있는 근간적인 것이다. 우리는 먹고 살기 위해, 라든지 그런 선명하고, 확연한, 이성적인 듯한 목적으로 직업에 대해 생각하는 만큼 그 근간인 취미에 대해서도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 둘은 본래 하나였음으로 인해서.


이렇게 생각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메타meta, 라는 단어로도 부르고, 동양적인 지혜로는 색수상행식의 오온 중 마지막인 식識이라고도 부른다.


이미 우리는 취미나 최소한의 유희, 비유로서의 언어 안에서 살고 있다. 하이데거가 언어를 존재의 집이라고 한 말은 언어가 그만큼 일상적인 재미와 흥미의 원천으로서도 존재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집에서든, 야외에서든, 우리는 취미 안에 있다. 나는 정신 건강에 관심을 두면서 새로운 취미를 갖게 되었다. 중국어를 공부하게 되었고, 시를 창작하게 되었다. 그 둘이 명확한 연관을 갖고 있는가? 대답은 그렇지 않다, "No", 일 것이다.


다만, 열심히 하면, 마음을 기울이면, 마음을 쏟으면, 무언가에 정성을 다하면, 요즘 용어로 말하자면, '자기계발'을 하면, 취미도 따라온다. 어쩌면 부수입이나 주수입 같은 돈도 따라올 수도 있다. 꼬리가 머리가 되듯이.


취미는 어려운 게 아니다. 정신은 본래부터 정성을 쏟기 위해 프로그램되어 있다. 다만, 그것을 알아차리기만 하면,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되돌아보면, 할 수 있다. 고양이나 개나 토끼나 새가 그렇듯이. 마치 불성을 깨닫는 것과 같지만, 불성을 깨닫는 것에 비하면 훨씬 더 쉬운 난이도의 놀이이다. 우리는 이러한 놀이를 통해서 우리의 정신을 더욱 풍요롭게 유지(維持, sustain)할 수 있다.


유지, 라는 말은 순간을 포함하면서, 순간이 아닌 시간을 동시에 포함하고 있어서 참 좋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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