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콩 때문에 웃었고, 지금은 그리워 웃는다.
미처 마치지 못한 회사 업무를 처리하느라
뙤약볕에 얼음이 녹듯 순식간에 지나가버린 주말이 아쉬워 오후 4시쯤 시장으로 향했다.
5월,
다슬기와 주꾸미가 어물전 좌판을 가득 메우고, 노오란 참외는 달큰한 향기를 뿜어냈다.
시장길을 따라 걷다 보니 저마다 제 색을 자랑하듯 채소들이 가지런히 늘어선 채소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옥구슬 같은 완두콩,
껍질째로 쌓여 있는 껍질콩,
망태기 가득 담긴 콩깍지.
콩 타령을 하다 보니 문득 떠오르는 일이 하나 있어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어린 시절, 내가 살던 시골 마을엔 어른들을 골탕 먹이고,
도깨비조차 줄행랑치게 만들었다는 "지.구.최.강.장.난.꾸.러.기 오빠들"이 있었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원 씨’ 성을 가졌다는 건 어렴풋이 떠오른다.
그래서 여기선 ‘원 씨 오빠’라 부르기로 한다.
서리태를 수확하면 콩깍지를 바싹 말린 뒤 마당 가득 멍석을 펴고 도리깨질을 해 콩을 털어냈다.
힘 조절을 잘못하면 엉뚱한 곳을 치게 되어 콩이 멍석 밖으로 튀어나가기도 했다.
근처에 숨어 있던 원 씨 오빠는 쏜살같이 달려들어 튀어나간 콩을 주머니에 쏙쏙 담고는 헤헤 웃으며 도망쳤다.
그에겐 그 콩들이 보물처럼 느껴졌나 보다.
오빠는 그렇게 주운 콩들을 새총에 넣어 쏘기도 하고, 콩주머니에 담아 던지며 놀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원 씨 오빠의 할머니가 헐레벌떡 우리 집으로 뛰어오셨다.
성난 멧돼지라도 본 듯 두려움이 가득한 얼굴로 우리 아빠를 급히 불러 오토바이를 타고는 쏜살같이 사라지셨다.
(우리 동네에선 아빠의 오토바이가 거의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
너무 갑작스러운 상황에 그토록 허겁지겁인 할머니 모습은 처음이라
놀란 내 가슴은 쿵쾅거렸고 딸꾹질이 연신 터져 나왔다.
서너 시간쯤 지나 멀리서 오토바이 소리가 들렸다.
곧 아빠가 집에 들어오셨는데 그 얼굴엔 어이없는 표정이 가득했다.
사연은 이랬다.
유난히 작고 동그란 콩알 하나가 원 씨 오빠의 호기심을 건드린 것이다.
“내 콧구멍이 더 클까, 콩알이 더 클까?”
짧은 고민 끝에 콧속에 콩을 넣었고, 생각보다 쑥 들어가자 깜짝 놀란 오빠는 그 콩을 꺼내려 손가락을 넣었다.
하지만 콩은 점점 더 깊이 밀려 들어갔고, 크게 당황해 숨이 가빠질수록 콩은 들숨을 타고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오빠는 꺼내지지 않는 콧속의 콩보다 할머니에게 혼날까 봐 더 무서워 그 사실을 비밀로 하기로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콩은 콧속에서 점점 불어나 숨을 쉬기조차 어려워졌고, 콧등은 벌에 쏘인 듯 붓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할머니는 혼비백산해 우리 집까지 내달려온 것이었다.
우리 동네 보건소는 감기나 예방접종 정도만 보는 곳이라 1시간 거리의 큰 병원으로 가야 했다.
다행히 콩은 무사히 빼냈지만, 원 씨 오빠는 얼굴이 빨개져 고개를 들지 못했고입을 꾹 다문 채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할머니는 “이놈 자식! 이놈 자식!” 수십 번을 외쳐댔고, 그 소리에 의사와 간호사는 배를 잡고 웃었고
아빠도 덩달아 웃다가 힘이 풀려 주저앉은 할머니를 부축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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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얘길 듣는데 어찌나 웃음이 나던지. 우리 오빠랑 동생이랑 셋이 마주 앉아 깔깔댔다.
그러던 중 갑자기 등허리가 얼얼해졌고, 곧 엄마의 사자후가 울려 퍼졌다.
“웃지 마! 너희들도 그러면 혼날 줄 알아!”
왜 내가 혼이 나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더 웃었다간 정말 큰일 나겠단 생각에 얼른 방으로 달려 들어가
이불속에 숨은 채 몰래 숨죽이며 큭큭댔다.
그 이후로는 콩을 볼 때마다 한 번씩 원 씨 오빠가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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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 오전, 이야기가 열립니다.
다음 주 수요일엔, 또 한 번 큰일(?)이 터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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