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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머리때문에 울고, 우렁이 덕에 웃었다.

진짜 모험은 맨발로 시작된다.

by 해이



가로수들이 초록의 옷을 입고,

저마다 꽃을 틔워 주변이 알록달록 해지는 그때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시골집

넓은 논 옆 물이 졸졸 흐르는 도랑에는

미꾸라지, 메기, 고둥, 우렁이가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 요리조리 흙탕물을 만들며 돌아다녔다.


아빠에게는 세 명의 동생들이 있었다.

나는 그중 아빠의 바로 아래 동생인, 큰삼촌을 가장 좋아했었다.


큰삼촌은 서울에 살았다.

주말이 되면 아이들과 함께 형이 살고 있는 우리 집에 놀러 오시곤 했다.


유난히 낯을 가렸던 나는 삼촌이 반가웠지만

곁에 다가가지는 못하고 애꿎은 머리카락만 연신 꼬아댔다.


그런 나를 알아챘는지 삼촌은 얼른 짐을 풀고,

“광”이라 부르던 창고에서 족대와 주전자를 꺼내 오셨다.

"가자, 삼촌이 물고기 다 잡아줄게" 하며 우리를 데리고 논으로 향했다.



ChatGPT Image 2025년 6월 4일 오후 04_13_16.png



주전자에 도랑물을 채워 넣는 것으로 그날의 ‘모험’은 시작됐다.


도랑은 꽤 폭이 넓었고,

그때의 물은 투명하게 맑아서 물고기들이 오가는 모습이 정말 잘 보였지만,

고사리손의 우리에게 쉽게 잡히는 녀석은 드물었다.


기껏해야 느려터진 우렁이나 고둥 몇 마리쯤?


미꾸라지를 잡겠다고

첨벙첨벙 흙탕물을 만들며 논을 헤집고 뛰어다니는 우리를,

물 위에서 유유히 떠다니던 소금쟁이마저 비웃었을지도 모른다.


삼촌은 그런 우리를 다독이며 족대로 메기를 잡아 주전자를 채워주었고,

우렁이가 많은 곳을 알려주기도 했다.

(남의 논 망칠까 봐 그랬던 건 아닐까 싶다.)


우렁이의 등껍질에는 초록 물이끼가 끼어 있었고,

논흙이 덮여 있어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흙인지 우렁이인지 분간이 안 됐다.


그러니 금방 흥미가 식어 “이제 집에 가자~” 하고 졸라댔는데,

삼촌은 “우렁이는 길을 만들고 간다”며 ‘우렁길’을 보는 법을 알려주었다.


그날로 나는 우렁 잡기의 신이 되었다.


주전자가 우렁이 무게에 묵직해질 무렵, 따끔한 느낌에 고개를 들어 종아리를 봤더니

오동통하게 살이 오른 거머리가 내 피를 빨고 있었다.

피를 빨 때마다 몸이 오르락내리락하는 모습이 얼마나 무섭던지 논이 떠나가라 울어댔다.


놀란 삼촌이 얼른 뛰어와 거머리를 떼어주었다.

거머리에 놀라 “집에 갈래!” 하고 생떼를 쓰는 나를 이기지 못한 삼촌은 “어이구...” 하고 웃으며,

한 손에 족대, 또 다른 손에 신발을 들고 맨발로 시골길을 걸었다.


다음 날 밥상에는 우렁된장과 미꾸라지튀김이 올랐지만,

괜스레 챙피한 마음에 나는 한 입도 먹지 못했다.


한참 시간이 흘러, 내가 열여덟이 되어서야 알았다.

삼촌은 어릴 적 뱀에 물린 뒤로 수풀이 자라난 물가를 무서워했다는 걸.

그런데도 맨발로 시골길을 걸었다는 걸.






이걸로 두 번째 글을 마무리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잊고 있던 글쓰기에 대한 애정을 다시 꺼내어 놓는 요즘,

이보다 행복할 수가 없네요.


"여러분도 우렁이나 붕어, 족대와 함께 한 추억,

하나씩은 가지고 있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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