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롱이다!!!!!!!!
그 시절의 나는 세상 아래쪽 어딘가에 갇혀 있었다. 자존감은 바닥을 뚫고 떨어졌고, 그 아래로 더 내려갈 곳조차 없었다. 아침마다 눈을 뜨는 일은 하루의 시작이 아니라, 또 하나의 형벌을 받는 일에 가까웠다.
회사에서는 매일같이 상사에게 혼났고, 사소한 실수에도 무능하다는 말을 들었다. 집으로 돌아가면 가족의 한숨이 기다리고 있었다.
신용점수는 끝없이 추락했고, 휴대폰에는 독촉 문자가 쌓였다. 화면을 켤 때마다 새로운 경고창이 떠올랐다. 마치 누군가가 내 삶의 상태를 대신 읽어주는 것 같았다.
"당신은 지금 실패했습니다."
그때 나는 살아남기 위해 일했다. 주말마다 햄버거 가게 주방에 들어갔다. 기름 냄새로 가득한 밀폐된 공간, 쉴 틈 없이 튀김기가 돌아가고 손에는 새 상처가 겹겹이 덧입혀졌다.
서른이 넘어 처음 하는 아르바이트는 낯설고, 젊은 아이들 사이에서 나는 유난히 둔하고 더디게 느껴졌다. 기름에 튀겨지는 닭 냄새가 머리카락과 옷깃, 심지어 잠옷에도 스며들었다. 퇴근 후 씻어도, 향수로 덮어도, 그 냄새는 몸 안쪽까지 배어 있었다. 그건 내 처지의 냄새 같았다.
일이 서툴러 실수하면 사장님의 목소리는 번개처럼 날아왔다.
"이런 것도 몰라요?"
그 한마디에 심장이 움츠러들었다. 기름보다 뜨거운 부끄러움이 얼굴을 덮었다. 그럼에도 그만둘 수 없었다.
나에게 허락된 선택은 "일하거나, 무너지는 것"뿐이었다.
하루가 끝날 때마다 다리는 퉁퉁 부었다. 하지정맥류가 도드라졌고, 무릎은 밤마다 욱신거렸다. 몸이 부서지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 와중에도 일을 멈출 수는 없었다. 오늘 일을 그만두면 내일은 더 깊은 밑바닥이 기다릴 테니까.
그렇게 버텼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노동의 나날,
기름으로 번들거리는 바닥 위에서 미끄러지지 않으려 다리에 힘을 주며 버텼다. 하루가 끝나면 온몸이 젖어 있었다. 땀과 기름, 피와 피로가 한데 섞여 있었다. 몸에서는 뜨거운 냄새가 났고, 마음에서는 냉기가 흘렀다.
쉬는 시간마다 나는 비상계단으로 나왔다. 좁고 먼지 쌓인 콘크리트 계단에 쪼그려 앉아 다리를 주무르며 지친 몸을 달랬다. 그곳은 내게 유일한 피난처였다. 가끔은 울다가 그대로 잠들어 버리기도 했다. 어떤 날은 그냥 허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게 사는 건가."
말의 공백 사이엔 한숨이 새어 나왔고, 그 한숨이 계단을 따라 흘러내렸다.
그러던 어느 날, 너무 답답해서 세상에 대고 메롱을 외쳤다. 아무도 없었다. 누가 들을 리도 없었다. 그럼에도 그 말이 내 안에 메아리쳤다.
"메롱!"
한 번 더
"메롱!!!"
그건 비웃음이 아니라, 생존신호였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울지 않기 위해 그 한마디를 내던졌다.
그날 나는 아주 작게 웃었다.
밤 11시가 넘어 매장 문을 나서면 먼저 열기가 빠져나갔다. 뜨거운 기름 냄새가 문틈으로 밀려나가고, 그 자리를 바람이 채웠다. 얼굴을 스치는 공기는 생각보다 차가웠다. 온종일 달라붙어 있던 피로가 한 겹씩 벗겨지는 느낌이었다. 눈을 감으면 방금 전까지 서 있던 주방의 열기와 환풍기의 소음이 멀어지고, 골목 끝에서 불어오는 밤공기만 남았다. 그 바람 속에서야 비로소 내가 오늘을 끝까지 버텼다는 사실이 실감 났다. 그제야 울음이 나왔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골목길, 눈물인지 땀인지 모를 것들이 섞여 흘렀다. 나는 그 바람을 잊지 못한다. 세상이 나를 밀어내도, 그 바람만은 나를 끌어안았다.
지금도 나는 완벽히 괜찮지 않다. 여전히 흔들리고, 여전히 가난하며, 여전히 버티는 중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 그때를 기억하고 있다. 피가 다 말라버린 땅에서도 무엇이든 자랄 수 있다는 사실과 비상계단에서 외쳤던 그 메롱이 내 안의 생명을 되살린 첫울음이었다는 사실까지도.
나는 가끔 그때의 비상계단을 떠올린다. 기름 냄새가 빠지지 않던 앞치마, 퉁퉁 부은 다리, 그리고 문틈으로 스며들던 밤의 냄새. 그 기억이 아직도 내 안의 온도를 결정한다.
삶이란 어쩌면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끝없이 부서지고도, 또다시 바람을 맞으러 나오는 일. 그리고 그 바람 앞에서, 아주 작게 웃으며 속삭이는 일.
"메롱."
살아 있다는 뜻으로.
한 번 더 용기 내어
"메롱!"
"메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