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여름날의 막걸리 원데이 클래스
이제부터 막걸리를 빚으며 살겠다고 호기롭게 얘기하긴 했지만, 막상 막걸리를 한 번도 만들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저 맛있게 마실 줄만 알았죠.
수십 만 원의 비용이 드는 전통주 전문 과정에 등록하려고 보니 덜컥 겁이 났습니다. '이 길이 내 예상과 다르면 어쩌지?' 하는 흔한 걱정이 앞섰어요. 그래서 진지하게 배우기 전에 가볍게 막걸리 빚기를 체험할 수 있는 곳을 찾게 되었습니다.
왠지 옹기가 늘어선 깊은 산속 양조장에 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상상과는 다르게, 서울 도심에서도 막걸리 빚기를 쉽게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험 예약이 쉽지 않았다는 점 또한 예상과 다른 점이었습니다. 특정 요일에만 체험이 가능하거나, 프로그램이 아직 준비 중이라 당분간 진행을 하지 않는 곳도 있었죠. 제가 원하는 일정과 장소, 가격대와 플랫폼을 맞추기가 생각보다 어려웠어요.
그래도 한 공방과 일정을 조율할 수 있었고, 인생 첫 막걸리 만들기에 도전할 수 있었습니다. 공방은 한옥 마을 근처에 있어서, 막걸리 수업도 아담한 한옥에서 진행되었어요. 다른 수강생 분이 조금 늦으셔서 그동안 선생님과 이런저런 수다를 떨었습니다. 수업이 진행되는 마당과 마루를 제외하면 모든 한옥의 방이 누룩을 띄우고 있는 중이라는 것, 한국에 올 때면 꼭 공방에 들러 막걸리를 빚어 가는 외국인 수강생이 있다는 것, 선생님의 이전 직업은 영어 교사 셨다는 것 등등. 수업 바깥에 존재하는 이야기가 또 다른 재미가 되었습니다.
그날은 단오를 막 지난날이라, 창포주를 담갔어요. (단옷날 창포물에 머리를 감는 풍습은 많이 들어보셨을 거예요. 이날 창포로 머리만 감는 것이 아니라 창포로 만든 술을 마시며 건강을 빌었다고 해요.) 난생처음 고두밥과 누룩을 처음 섞어 보았죠. 선생님은 왼손으로는 그릇을 돌리고 오른손으로는 밥을 살살 주무르는 방식을 알려주셨는데, 이때 가르쳐 주신 밑술 버무리기가 이제는 제 습관이 되었답니다.
밑술에 생수 대신 창포를 우린 물을 사용하면 간단하게 창포주를 완성할 수 있었어요. 발효통에 고이 담고는 한옥을 배경으로 인증 사진을 여럿 찍었죠. 수강료는 재료비까지 포함해서 7만 원으로, 조금 부담되는 가격이긴 했지만 한옥에서 막걸리를 담가보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어 뿌듯했습니다.
얼마 후에는 한국전통음식연구소에서 청감주 빚기 클래스가 열린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어요. 국비 지원이 되어서 만 오천 원만 내면 수업 참여가 가능했죠. 냉큼 신청했습니다.
더운 여름에는 술이 쉽게 상하지 않도록 청감주를 빚는데요, 시판되는 생막걸리를 밑술에 섞어 내면 되는 간편한 방식이랍니다. 친절한 설명과 더불어서 숙성된 청감주와 꿀이 들어간 막걸리인 대대포 블루를 두부 김치와 함께 맛볼 수 있어서 매우 만족스러웠습니다. 항아리로 장식된 연구소 옥상도 어찌나 예뻤던지요!
즐거웠던 수업만큼이나 집에 와서 짜낸 청감주도 맛이 좋았습니다. 날이 더워 원주는 조금 시큼했지만, 설탕과 함께 오래 냉장 숙성을 하니 기분 좋은 달콤함이 잔뜩 녹아 나왔어요.
여러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아 막걸리 빚기를 체험하고 나니, 겁은 사르르 녹아내리고 도전하고 싶은 용기가 스멀스멀 생겨났습니다. 저만의 특별한 막걸리를 완성할 때까지 이제는 막걸리 만들기를, 그리고 실패하기를 무서워하지 않으려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