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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해인 Mar 28. 2022

하얀 밤의 기억

너무 새하얘서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담배냄새를 맡으면 여전히 네가 선명히 떠오른다. 매캐함이 목을 달궈 켁켁 헛기침이 나오다가도 그 뒤는 웃음소리로 무마해버리고는 했던 그 시절의 우리. 뿌연 연기가 모퉁이를 겉돌던 탓에 서로의 표정을 자세히 읽을 수는 없었지만 너의 목소리엔 진한 고독의 향이 새겨져 있었다. 퀴퀴했던 웃음과 매연 틈 사이로 새어 나왔던 그 미소가 어찌나 처량했는지 모른다.


 또 악몽을 꾸었댄다. 잠에서 깨어난 너는 있는 힘껏 숨을 들이마시며 이제는 익숙하다는 듯 헛구역질을 삼켰다. 난 눈치 없이 꿈의 내용을 물었고 너는 그 질문에 답하느라 골머리를 앓았다. 귀신이 나왔어? 아니. 그러면 괴물이 나왔어? 그것도 아니. 뭐야 그러면 대체 뭐가 널 괴롭히는 건데. 나는 정말 궁금했다. 무엇이 너를 그토록 힘들게 하는지, 그렇다면 왜 그걸 해결하지 않는지 말이다. 있어 그런 게. 너의 대답은 항상 무신경했다. 나는 그게 참 답답했고 우리의 대화는 늘 겉돌기를 반복했다.


 툭. 타이머를 맞춰놓은 선풍기가 꺼지자 생각의 굴레가 동력을 잃었다. 너는 조금 고민하는 듯싶더니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아니니 다를까, 너의 손엔 역시 담배가 쥐어져 있다. 그리고는 선풍기 타이머를 맞춘 채 다시 침대로 돌아와 담배를 뻐끔거렸지. 우리의 새벽은 기호품 투성이었다. 더위가 한풀 꺾인 가을임에도 여전히 미풍의 바람이 필요했고 별다른 고민거리가 없음에도 담배에 불을 붙여야만 했다. 그것 외에 삶이라 지칭할 만한 것이 없으니 우리 또한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영화나 보자"


 너는 지브리 영화를 좋아했다. 닿을 듯 말 듯 하면서도 결코 닿을 수 없는 세계가 뭐가 그리 좋은지, 그것도 다 큰 어른이 말이야. 리모컨의 소유주를 두고 우리는 한참을 다퉜지만 그러는 와중에도 티비에는 포뇨가 사스케를 찾기 위해 파도를 뛰어다녔다. 너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이해하려고 부단히 노력한 적도 없었지만 그랬다 하더라도 이해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일본어를 배워본 적도 없으면서 다음 대사를 잘도 예측해서 말하는 것도, 대사의 의미를 아냐는 질문에 그저 아기자기한 단어가 이뻐서 자연스레 외워졌다며 방긋 웃어 보였던 것도, 그 입술 사이로는 지브리의 일본어와 미국의 말보로 레드가 동시에 오갔던 것도, 나로서는 당최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난 네 행동의 의미를 품지 않으려 애썼다. 내 이해 속에 함유된 작은 오해가 우리를 비집어놓을까 봐, 그게 너무 두려웠다. 그래서 너의 말에 줄곧 침묵으로 대답하고는 했다. 네가 손목에 수차례 새겨진 줄무늬를 보여주면서 세 번이나 삶을 져버리려 했다는 말을 할 때도 말이다.


 시간이 제법 흘렀지만, 나의 머릿속에는 네가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지브리 영화를  때마다, 허공에 흩날리는 담배 연기를  때마다, 우울증에 걸려 속앓이를 하는 사람들을  때마다, 혼자 남겨진 새벽이 찾아올 때마다, 네가 스윽 찾아오고는 다시 가버린다.  사라지려는  기억을 간신히 붙잡으려 하지만  그걸 허락해주지 않는다.  생각은 여운이 짙어서, 떠올리려 하면 한 발짝 멀어지다가도 잊으려 뒤돌 때면 다시 날 부르더라.


영락없는 악몽이었다. 나는 그 꿈에 중독되어 서서히 잠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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