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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해인 May 28. 2022

그리고, 다시 마침표.

쉼표로 얼버무린, 우리의 관계.

 시작과 끝은 통한다고 했나. 우린 애매한 남으로 시작해 어느새 철저한 남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다투기도 많이 다퉜지. 하지만 우리가 멀어진 이유는 서로 달랐던 영화 취향도 아니고, 챙기지 못했던 기념일 또한 아니고, 갈수록 늦어졌던 연락 주기 또한 아니였으며, 마지막까지 굽히지 않았던 자존심 때문도 아녔으리라. 서로 툭툭 뱉었던 말들 끝에 찍힌 마침표. 그것이 우리의 간격을 한없이 넓혀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만들었다.


 하루는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우리의 이야기가 소설이 된다면, 되게 인기 없을 거라고. 첫눈에 좋아하게 된다는 설정은 아무런 서사를 내포하고 있지 않을뿐더러 그렇다고 사랑과 전쟁 같은 카타르시스를 찾을 수도 없다며. 가장 무엇보다 정돈되지 않은 각본은 항상 체기를 불러일으키는 법이다. 우리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는 오만에 취해 정돈되지 않은 문장만을 뱉었다. 조금 더 능숙하게 마음을 표할 줄 알았다면 좋았을 터인데, 너와 나는 끝맺음을 맺는 데에는 소질이 없었던 것이다.


 내 해독은 어떤 때는 널 기쁨으로 울렸고, 또 어떤 때는 미소 없이 울게 만들었다. 아마 그것도 우리가 멀어지는 데에 한몫했겠지. 하지만 나는 지금도 마침표를 찍는 것이 두려워 한 문장을 질질 끌며 붙잡고 있는데, 네가 느꼈던 슬픔이 나의 이런 성격 때문이라면 그것은 우리가 처음부터 맞지 않았거나 점점 서로를 이탈했던 탓이지, 어느 누구의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랑이라는 단어에 누군가를 끼워 맞추려면, 생각보다 많은 것을 감수해야 한다. 그 이의 잠버릇이나 말버릇. 술버릇과 마음에 꼭꼭 숨겨왔던 속내들. 서로를 알아갈수록 서로를 점점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도 사랑하겠는가?라고 묻는다면 대부분은 그렇다. 그것도 한평생을!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치명적인 원인과 결탁하면 차곡차곡 쌓았던 소설의 복선처럼 후르르 터지는데, 그 말로는 이별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는, 사랑의 종착역으로 단박에 뛰게 하는 것이다. 이때 찍는 마침표는 아주 위험하다. 참았던 감정들이 가속도를 붙여 서로를 점점 멀어지게 한다.


이를 테면.

이렇게..

말이다.


 나는 여전히 마침표가 두렵다. 마침표가 이야기의 끝을 의미하는 건 아니지만, 모든 이야기의 끝엔 마침표가 붙어있다. 끝맺음은 또 다른 시작점이라지만, 그 시작에 이전과 같은 마음가짐은 없겠다. 하지만 그렇기에 먼 훗날 너와의 시간이 떠올라도 망설이지 않고 잊고 말 테다. 삶이라는 책엽은 시간을 따라 이야기를 쉴 틈 없이 집필해낸다. 너와 나는 그중 몇 쪽을 함께 했을 뿐이지, 지금의 우리는… 아무런 사이도… 아닌 것이다.


 그런데 나의 문장 속엔 네가 꾸준히 담겨있다. 잊으면 편한 것을, 스스로 보풀을 일으켜 아픔을 만끽하고 있다. 이전에 너와의 시간들을 지우려 한 적이 있다. 하지만 모든 시간을 하나씩 비우다 보니 오히려 지워지는 것은 나였다. 그때 깨달았지. 그 시간들은 나를 지탱하고 있던 것이다. 마지막 문장의 마침표를 능숙하게 찍었던 너와 우리의 첫 문장을 시작했던 너. 그 단락의 뒤꽁무니를 열심히 따라갔다가, 문장이 보이지 않았던 때부터 난 그간 거쳐온 마침표를 역행하며 왕복했다. 끝난다는 것이 두려워 항상 쉼표로 얼버무렸을 뿐, 안타깝게도 새로운 문장을 찍을 수 없다는 건 오래전에 이미 알고 있었다. 너의 문장을 되풀이할수록 나는 서서히 무너졌다. 그 마침표는 지우려 할 수록 번져 자꾸만 없던 일로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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