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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해인 Mar 19. 2022

혼자가 아닌

무너지지만 말아줘요.

웃어도 된다는 너의 위로 앞에서조차 흠뻑 눈물을 보여서 미안해

고개를 푹 숙여 누추한 낯짝을 꽁꽁 가리다가도

인기척이 느껴지면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실은 누군가 나의 슬픔을 세밀히 알아주기를 바랐어

이토록 그지없이 이기적인 마음일지 언정

사랑은 죽지 않을 만큼 적당히 필요하였고

의구심을 다 버리지도 못했으면서

네 눈길을 한 줌조차 놓치기 싫어

그 품에서 울부짖었던 사실도 모두 사과할게

네가 미안하다는 말을 싫어하는 걸 아는데

할 수 있는 말이 미안하다는 말밖에 없어

그래서 난 또 너한테 아주 미안함을 느껴


나는 늘 최악을 피해 차악을 택했어

우스꽝스럽지?

다만 그것이 당시의 내가 설계한 최선이었다고 하면

비겁한 변명으로 밖에 들리지 않을까?

이해해 달라는 무리한 요구는 하지 않을게

이전에 내가 뱉었던 미안하다는 말속에는

무분별한 비난에 상처받을 나와

그로 인해 또 상처받을 너에 대한 사과도

미리 넣어두었거든


어제는 오랜만에 산책을 다녀왔어

잔잔한 밤 속엔 짙은 금속성의 냄새가 서려 있어 

섣불리 거리를 누비기 두려웠고

섬광이 들쑤시는 거리의 불빛이 아주 표독스러워 

두 눈이 여과 없이 따끔거렸지

소음이 만연한 주말의 밤거리는

달팽이관이 핑그르르 달아날 만치 소란하여

문득 슬픔이라는 감정은 몽땅 허구가 아닐까 싶다가도

소멸을 마주하기 전까지 자전하는 지구 위에서

숙명처럼 달라붙는 아픔은 미소 앞에 단순히 생략되어 있음을


나는 이제 알아

앓은 만큼 흠집의 깊이를 이해하고

행복이라는 아리따운 단어 맡에

감히 이름 석 자를 나열할 무렵

낙서와도 같아 보이는 두 단어가

채도를 더디게 맞추어 가며 하나의 문장으로 완성될 수 있도록

그 문단이 함부로 너의 성질이 될 수 있게

언젠가는 심정의 원점이 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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