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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해인 Sep 28. 2022

여름 갈피

바야흐로 청춘

‘외로워 죽을 것 같아.’


 엊저녁 헤어졌다는 친한 형의 연락을 받고 도착한 곳은 형의 자취방이었다. 공장지대에 인접한 그곳은 도심과 격리되어 있어 역에서 내린 후에도 한참을 더 들어가야 했다. 2년 전 처음 집들이를 왔을 때, 역세권에 보금자리를 얻었다며 어깨 뽕 깨나 들어갔던 형의 표정이 떠올라 쉬이 웃음이 지어졌다. 형은 한동안 세상엔 모름지기 사기꾼 천지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을 테다.

 번화가의 초입에 다다르자 강한 향신료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지역 특성상 외국인이 많다 보니 이례적인 식당이 행렬을 지어 저마다의 향을 풍기고 있었다. 그것은 타향의 기미이자 회상의 흔적이었다. 그들과 같은 추억을 공유한 적이 없는 나는 이색간판 사이에 위치한 프랜차이즈 편의점에서 바나나맛 우유와 숙취해소제를 챙겼다.

 가게 뒷문으로 거리를 빠져나오니 소음이 점진적으로 작아졌다. 나는 재생목록에 넣어놨던 혁오의 '위잉위잉'을 멈추고 이어폰을 귀에서 빼어 주머니에 도로 넣었다. 오피스텔 단지와 상가를 잇는 일 차선 도로에는 인도나 갓길이 존재하지 않아 행여 차량이 다가오기라도 하면 가장자리에서 아슬아슬한 보행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똑똑. 현관문을 열자 더럽게 쓴 진토닉 냄새가 코를 훅 찔렀다. 크지도 그렇다고 작지도 않은 원룸은 무척 더워 작열감마저 들었다. 방바닥엔 옷 뭉터기와 쓰레기 더미가 아무렇게나 쌓여 있었다. 형은 아랑곳하지 않다는 듯 속옷 차림을 한 채 싱글 침대에 엎드려 있었다. 나는 형이 쓰레기 바다를 표류하는 로빈슨 크루소와도 같다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형 자요?"


 이불을 들추자 포장이 뜯기지 않은 콘돔과 화장품 샘플이 우수수 쏟아졌다. 나는 형의 손에 차가운 바나나 우유를 선뜻 쥐여줬다. 형은 비몽사몽 한 얼굴로 우유를 벌컥벌컥 마시다가 갓 태어난 강아지처럼 끄응 댔다. 그리고는 다시 이불을 돌돌 말아 잠을 청했다. 나는 불을 끄고 침대에 등을 대어 앉았다. 평소라면 이불을 뺏어 장난을 쳤겠지만 오늘 만큼은 그렇지 않기로 하였다. 협탁 위에는 싸구려 재떨이와 술잔이 가로수의 불빛을 사방으로 반사했다. 나는 그 컵에 남은 술을 한 모금 들이켰다. 그때 형의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해인아, 나이는 속력이야.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지? 모르는 게 당연해. 아니지.. 아직은 몰라야만 해.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점점 빨라지거든. 그런데 좆나 무서운 게 뭔지 알아? 정작 지금 내가 어딜 향해 달리는 지조차 모르겠다는 거야. 그래도 틈틈이 사랑은 해야 했지. 그리고 그 시간들이 너무 좋았어. 그런데 갑자기 그 애가 사라지니까 그동안 미뤄뒀던 현실이 보여. 아주 오랫동안 머무른 꿈에서 깨어난 기분이야. 내가 젊다는 이유로 미뤄둔 현실이 한꺼번에 몰려와. 있잖아, 나 그게 너무 무서워.”


 이전에 우리는 무작정 어른이 되고 싶어 했다. 교복차림으로 남몰래 술을 마셔보고 새벽에 피시방을 다니기도 했다. 모든 일탈의 근원엔 동경이 있었다. 다가오지 않은 미래는 갈피를 잡을 수 없이 아득하여 우리는 그것이 대동하는 무언가를 가늠하지 못하였다. 나는 4년 먼저 어른이 된 형이 부러웠다. 그의 SNS에는 늘 웃는 모습과 친구들, 전 애인의 흔적과 여행일지가 있었다. 하지만 형은 늘 공허하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나는 그 역시 과거에 대한 동경이라고 생각했다. 흘러가는 시간 역시 갈피를 잡을 수 없을 만큼 아득해지기 마련이니.


“형이 오늘 한 말 글로 써도 돼요?”

“이런 푸념 어디에 쓰게.”

“청춘에 관해서 쓰죠, 뭐.”

“안돼. 그러지 마.”

“왜요?”

“청춘이라는 시기를 의식하면 네가 불행해져.”


 나는 다시 한번 청춘이라는 단어를 곱씹어보았다. 나 역시 처음 스무 살이 되었을 때 주위가 어렴풋하여 종종 편두통이 찾아오고는 했다. 사람들이 그토록 동경하고 그리워하는 곳에 와있구나. 그곳이 어딘지는 몰랐으나 그 이유만으로 취기가 올라 밤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으레 그래야 하는 규율이라도 존재하듯 기성의 어리석음을 표절하며 청춘을 구사했다. 한아름 젊음 품은 무리에선 지구종말과 히피 같은 허무맹랑한 소리만 가득했다.

 청춘은 모순 그 자체였다. 꿈이 존재한다면 존재하는 대로, 아직 찾지 못했다면 그대로 대가를 혹독히 치러야 했다. 이뤄낸 것이 없어 불안정했으나 우리는 불안정이 제공한 불완전을 사랑했다. 방황에서 기인한 청춘의 자유로움이 소중했으나 한편으로는 평온한 안착을 원했다. 그 속에서 이뤄졌던 만남 역시 한 치 앞을 알 수 없었다. 이름조차 몰랐던 이가 어느새 내 가정사를 모두 알고 있다거나. 영원을 약속했던 이들에게 영원한 작별을 고한다거나. 비울수록 채워지는 시간들. 지우려 할수록 지저분해지거나 뭉툭해지는 낙서들. 사람이 붐비는 곳에서 되려 증폭되는 외로움. 반복되는 청춘의 패러독스는 무엇 하나 이렇다 할 만한 것이 없어 자주 혼란을 야기했다. 하지만 이 고민마저 아름다울 시기라며 모두 입을 모았다. 주체할 수 없는 고통에도 성장통이란 별명을 붙여 꿋꿋이 일어나야 한다고 말이다.

 나는 고개를 돌려 형의 얼굴을 보았다. 술 때문인지 과부하된 생각 때문인지 뜨거운 무언가 폐부로 들어와 가슴속을 맴돌았다. 뱉으려던 문장들이 하나씩 녹아버리고는 미약하게 빠져나온 단어들만이 목구멍을 간신히 통과했다.


"형 취해있지 마요.”

 

 이전에 형이랑 순댓국을 먹으며 그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언젠가 유행하던 영화 대사처럼 돈이 없어도 가오가 없지는 말자고. 삶이 힘들어도 절대 비겁해지지 말자고. 그때까지만 해도 형은 자신이 어린 나이에 가정을 책임지게 될 거라는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 푸를 청에 봄 춘. 너절한 우리의 젊음이 그런 색채를 지녔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혹 누군가 청춘이 무어냐 묻는다면 나는 대답할 것이다. 내 젊음엔 허허벌판 공장지대. 1600원 바나나우유. 에세 체인지 업과 엘더플라워 진토닉. 버건디색 홑이불. 고장 난 벽걸이 에어컨. 혁오와 검정치마가 있었다고,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청춘의 한 페이지라고 말이다.


 청춘은 슬픔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허용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 속에서 한참을 앓아야 비로소 꽃을 피울 수 있다고 하였다. 그 사실이 설레면서도 여전히 두렵다. 감정의 둘레를 넓혀나갈수록 우리는 순수와 작별을 고해야 하니. 내 욕심을 받아들일 수 있을 때에는 한참 철이 들어 청춘이 아닌 다른 계절에 위치해 있을지도 모른다. 그곳에서 바라본 지금은 푸르른 봄일까. 사실 잘 모르겠다. 이 멍청한 고민들이 다 무슨 소용인 지도, 깜빡이는 커서 뒤에 무슨 문장을 덧붙여야 할지도, 예술을 한다는 건 무엇인지도, 정말 하나도 빠짐없이 모르겠다. 어떻든 젊음은 나에게 여러 착상을 제공했고 익숙지 않은 감정이 몰려오면 자주 아팠다. 그럼에도 언젠가 상처는 아물었고 그 흉터는 하나의 자랑거리가 되었기에. 지나온 여름 속의 인연들이 내 글에 무던히 존재하기에. 멋들어진 개화를 다짐하며 이번 여름에도 감히 청춘이라는 이름을 붙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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