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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해인 Aug 02. 2022

감정예보

비가 올지도 몰라요.

 비가 내리는 새벽입니다. 꿈을 마중 가려던 도중, 코끝이 시큰거려 창밖을 내다보니 어느덧 소낙비가 세상을 뒤덮어 창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저는 찌뿌듯한 몸을 일으켜 베란다에 널어둔 빨래를 걷고 실내에 들였던 화초를 제자리에 내놓으며 살랑이는 빗소리를 감상했습니다. 적적함을 달래고자 틀어둔 라디오에서는 이름 모를 사연자의 고민이 연달아 흘러나왔는데, 그들이 앓은 사랑의 열병에 공감하여 아주 조금은 울어보기도 하였습니다.

 비가 내리는 날에는 잡념을 뿌리치기가 유난히 어렵습니다. 소란스럽던 티브이 라디오들이 퓨즈 내린 기계인 양 고요함을 방출하는 어둑새벽엔 더더욱. 때로는 열심히 추락하는 구슬픈 빗소리에 덩달아 슬퍼지기도 합니다. 생각해 보면 참 이상한 일입니다. 물방울이 지면을 때리는 소리에 무수히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에 슬퍼한다는 것이. 저는 나약하고도 모진 인간의 상상력에 아주 감탄하였고, 문득 저 역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오후에는 강화에 다녀왔습니다. 퇴근길 버스에서 그만 잠이 들어 종점 터미널까지 가고 만 것입니다. 이런 적은 난생처음이었습니다. 비슷한 상황을 소설의 소재로 종종 사용하고는 하였으나 제가 그러리라고는 예상치 못했습니다. 낯설다. 당황스럽다. 거창한 줄로만 알고 기재했던 어휘들과는 달리 현실은 무척 시시했습니다.

 잠이 달아나자 조금 걷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저는 축 늘어트린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는 어슬렁어슬렁 거리를 배회했습니다. 널찍한 대로변을 따라 쭈욱 걷다 보니 여덟 시를 훌쩍 넘겨 하늘에는 벌써 어둠이 찾아와 있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툭두둑. 하늘에서 빗방울이 하나둘 떨어져 금시에 세상의 적막을 찢었습니다. 저는 두 손을 치켜들어 정수리를 가리고는 간판도 보지 않은 채 무작정 실내로 향했습니다. 띠링-. 어서 오세요. 유리문을 열자 고소한 커피콩 냄새가 물비린내를 확 몰아내었습니다. 그곳은 변방에 위치한 어느 작은 카페였습니다.  


 저는 버터 프레첼과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하고는 창가 쪽에 다리를 꼬고 앉았습니다. 거울에 비친 제 얼굴은 무척 심드렁한 표정을 짓고 있었으나 속으로는 내심 비가 그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비가 그치게 된다면 또 어딘가로 향해야 할 테니, 아주 가끔은 이렇게 쉬어가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에는 자연스럽게 책을 꺼내 읽었습니다. 가방 안에는 카프카의 변신이 담겨있었고, 카페 안으로는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이 흘러나왔습니다. 평소라면 어울리지 않았을 조합이 장마라는 교점으로 뒤섞이자 가슴속에 단맛이 감돌았습니다. 저는 이런 감정을 은근히 좋아합니다. 비가 올 무렵에만 느낄 수 있는 달갑지 않은 아련함. 그건 뭐랄까, 마치 쓴 커피와도 같습니다. 뒤죽박죽이 되어 텁텁해진 입안을 단숨에 정리해주는. 구태여 떠올려봤자 서글프기만 한 마음의 잔재를 줄줄이 엮어 빗물에 던지기만 하면 모두 수증기가 된 양 증발하여 망각(忘却)에 종착하는.

 이것은 제가 어릴 적부터 갖고 있던 버릇인데, 저는 감정의 잔향을 차곡차곡 뭉쳐 비가 올 적에만 울고는 하였습니다. 비구름이 마음에 물을 주어 감정의 생기를 불어넣으면… 흠뻑 울고 웃을 수 있는 내 마음이 아직은 시들지 않았음을 몸소 체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밑바탕엔 여전히 당신이 있습니다. 저는 그 자락을 놓지 못한 채 빗소리와 이따금 꺼내어보고는 합니다.


 복층 단독 주택이었던 당신의 집 꼭대기에는 사다리로만 갈 수 있는 작은 방이 하나 있었습니다. 우리가 나란히 누워 좁고 뿌연 창으로 하늘을 바라보았던 그 다락방. 제법 독서가였던 당신의 손엔 늘 책이 들려있어 그곳은 항상 새로운 이야기로 넘실거렸습니다. 당신은 책의 줄거리를 우리의 대화에 종종 버무리기도 하였는데, 저는 당신만이 할 수 있는 섬세한 표현이 좋았습니다. 하루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아주 가끔은 내리는 비를 맞고 싶어. 난 아가미가 달렸나 봐. 어쩌면 우리는 거대한 어항 속에 갇혀있는 두 물고기일지도 몰라. 당신은 그렇다면 장마는 더 이상 철이 아닌 우리를 위한 하나의 계절로 분류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런 류의 대화를 나누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저는 당신의 마음에 들고자, 당신과 더 오랜 시간을 보내고자 당신을 따라 책을 붙잡게 되었고 그 해 우리는 우리만의 낱말로 감정을 기록하였습니다.


 참 우습고도 잔인한 일이었습니다. 서사에 서사를 부여한다는 일은. 모든 기억이 실타래처럼 뒤엉켜 한참이 지난 지금도 그 방에 두고 온 담화들이 잊히지 않습니다. 취향을 공유하고자 읽었던 책은 어느덧 나의 취향이 되어있었고 저는 이제 당신 없이도 혼자서 책을 꺼내 드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그 기억을 장작 삼아 글을 끼적이는 지금, 저도 무슨 감정을 기록하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당신이라면 능하게 설명할 줄 알았겠지요. 문학적 기질이 다분했으니까.

 책의 마지막 한 장을 넘기자 떼어지지 않은 이름표 자국이 눈에 밟혔습니다. 당신이 이전에 제게 빌려주었던 책, 금방 돌려주겠다는 말을 잊은 채로 당신을 잃고야 말았습니다. 당신은 책을 건네면서 우리가 만약 벌레로 변하면 언제든지 서로를 떠나자고 말하였습니다. 곧바로 나방 한 마리가 근처를 날아다니자 당신은 그 나방이 곤충으로 변하여 실연을 당한 비운의 주인공이라고, 저것이 모든 인연의 결말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저의 아리송한 표정에 당신은 실소를 지어 보였고 저는 당신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같이 따라 웃었습니다. 그 결말이 이토록 슬픈 것인지 알았으면 그렇게 웃지 않았어야 하는 건데. 아니, 오히려 훨씬 더 크게 웃었어야 하는 건데.

 저는 속이 답답하여 폐가 찢어질 때까지 숨을 쉬고는 창밖을 바라보았습니다. 물감에 번진 듯 희끄무레하여 꼭 들라크루아의 그림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사람들은 모조리 비를 피해 우산으로 숨었고 그중 몇 명은 서로 꼬옥 붙어 아장아장 걸어가기도 하였습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항상 이야기하는 전례 없는 무더위, 올해 들어 가장 추운 날씨... 아마 이번 여름도 그런 날들의 연속임이 분명할 것이라고. 매번 최고를 갱신하는 날씨와 달리 감정의 임계점에 도달하면 새로울 수 없는 것이 사람이니 모든 순간마다 바들바들 떨어야 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말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또 한 번의 계절을 흘려보내고, 또 한 번의 아픔을 마주하면서 빗방울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빗줄기는 어떤 우산으로도 가려지지 않습니다. 그 속에서 한참을 허우적대고, 책의 페이지가 닳을 때까지 한참을 꺼내어보아야만 합니다. 언젠간 그칠 거라며 시간에 기대 보기도 해야 합니다. 저 역시 비가 오는 날이면 여전히 그리움이라는 단어를 가슴 깊게 들이마십니다. 때로는 우산을 접은 채 비를 맞아보기도 합니다. 살결에 맞닿는 빗방울이 너무 따가워 어찌나 아픈지 모릅니다.


 여전히 비가 내리는 밤입니다. 그러니 당신도 아주 가끔은, 우산을 챙기지 않는 편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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