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해인 May 11. 2022

이타적 이기주의

지갑 두둑한 가난뱅이

 이만 퇴근해보겠습니다. 속으로 수 십 번은 삼킨 한 마디를 겨우 내뱉었을 때, 시간은 이미 자정을 훌쩍 넘겨있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여전히 거리는 분주했고, 그 열기는 뜨거웠지만 동시에 편의 했다. 밀려오는 두통 속에도 두 다리는 잘도 버스 정류장을 찾을 줄 알았고, 어색했던 퇴근길 역시 이제는 익숙해진 지 오래였다.

 그렇다. 익숙해진 거다. 내 나이 스물인가 할 때,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퇴근을 할 때에는 항상 전화기를 붙잡고 이런저런 얘기를 늘어놓기 바빴다. 내 시간과 급여를 한탄하며 다른 이의 시간을 빼앗고는, 그것을 친구 내지 우정이라는 급여로 어영부영 메우고는 했다. 물론 그 대가로 후에 나 역시 그들의 한탄을 받아줘야 한다거나, 커피값을 계산해야 한다는 덤터기가 따라붙었다. 다소 성가신 거래의 연속이었지만, 그들과의 거래에 적자는 단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었다.


 전화가 끊기면 배달 어플을 이리저리 뒤적였다. ‘그래 고생했으니 나에 대한 보상으로 이 정도쯤이야.’ 깡다구 넘치는 손끝으로 배달 메뉴를 휘리릭 넘기다가도, 금액을 시간으로 환산하려는 버릇 탓에 항상 마지막에는 컵라면 용기에 물을 부어야 했다. 아마 버릇이 아니고 습관이었을 것이다. 나는 별다른 노력 없이 금액을 시간으로 계산할 줄 알았다. 당장 눈앞의 행복은 가격이 명확했지만, 마음은 수치로 매길 수 없다는 것이 그 까닭이었다. 마음이 조금 빈곤하더라도 지갑을 두둑하게 불리는 것이 훗날 더 큰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는 투자라고 생각했다. 나는 국물 라면의 조미료와 볼록해진 아랫배에 어느덧 익숙해졌다.


 익숙해진 것은 그뿐이 아녔다. 난 남들의 눈치를 보는 데에도 제법 요령이 생겼다. 어린 시절, 곳곳에서 일의 흔적을 알아차릴 수 있는 이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난 그 ‘무리’들이 싫었다. 그들에게 배인 기름 냄새는 알게 모를 토기를 일으켰고, 시멘트가 묻은 작업복은 성장기의 끄트머리 소년들로 하여금 지저분하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였다. 속된 말로 ‘못 배운’ 냄새였다.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으면, 저런 냄새를 풍길지도 모른다며 친구들과 철없는 농담을 이어가고는 했다.

 그탓에 처음엔 나에게도 그런 냄새가 난다는 사실이 창피했다. 퇴근길 기름 쩐내가 집까지 나를 배웅하면,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그 뒤를 곧바로 뒤쫓고는 했다. 난 항상 버스의 맨 뒷좌석에 앉아 죄인이라도 된 양 고개를 푹 숙였다. 누군가의 시선이 부끄러웠다기 보다도, 나에 대해 떳떳하지 못하다는 사실이 창피했다. 하지만 그것도 일상이 되어 이제는 익숙해졌다. 어디서 기름 냄새 안 나? 하고 누군가 고개를 두리번거리면 뭐요. 그래서 뭐요. 하는 눈빛으로 그들에게 대들 줄 알았다.

 

 오늘도 버스에 몸을 실어 집으로 향한다.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한 칸씩 자리를 띄워놓고 앉아 버스의 꼭짓점으로 향해야 했다. 맨 뒷좌석에 도착하여 몸을 뉘우자, 견고한 줄로만 알았던 눈꺼풀이 힘없이 감겨온다. 잠에 들면 깰 수 없다는 생각에 정신을 겨우 붙들고 차창에 머리를 기대어 창밖의 풍경을 관람한다. 서행을 요구하는 후미등의 점멸 신호... 흐릿한 네온사인과 간판 투성이... 껌뻑이는 불빛들을 보자 잇새로 한숨이 삐져나온다.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모든 것에 지쳐있던 것이다.

 꿈을 찾겠다며 집안 박차고 나올 때는 정말 두려운 것이 하나도 없었다. 노력한테 수없이 뒤통수를 맞고도 노력은 결코 나를 배신하지 않으리라 굳건히 믿고는 했다. 유일한 장점이 젊음이라고 소리를 친지도 어엿 6년, 그것을 무기 삼기엔 시간이 너무 빠르게 흘러버렸다. 스물 두살이 넘은 이후부터는, 그토록 싫어하던 겁대가리라는 것이 생겼다. 세배를 하지 않고도 세뱃돈을 쥐어주셨던 삼촌의 마음을 시급으로 계산할 줄도 알았고, 난 그 금액을 아무 대가 없이 조카에게 줄 수 있는지 속물적인 생각도 이어가 보았다. 그 무렵부터는 통장 잔고 따위가 아닌 타인의 마음을 계산할 줄도 알았다. 그래야만 내 지갑이 덜 얇아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피곤하게 살아?"

 그런 질문을 들은 적이 있다. 여전히 저 질문에 어떤 답을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지금의 내가 더 고생하더라도 내 꿈과 내 사람들이 그만큼 윤택했으면 좋겠다는 게 이유라면 이유일까. 어저께는 아낀 돈으로 어버이날 선물을 사드렸다. 부모님은 그 선물을 받기 미안해했다. "돈이 어디서 났다고 이런 걸 사와." 난 아주 작게 웃었다. 그리고 그 웃음 속에 내 진심을 삼켰다. 이 돈은 내 시간에서 나온 거고, 아마 당신들이 없었다면 그 시간조차 없었을지도 모른다고. 그동안 받아온 빚을 차근차근, 천천히 갚을 뿐이라고 말이다. 다소 성가신 거래였지만 그 안에서 작은 예쁨을 마주한다. 그 마음은 익숙함과는 거리가 멀어 항상 힘들더라도 그만큼 아름다울 수 있었다.


 버스가 멈추자 사람들이 우르르 탑승한다. 모두가 피곤한 눈으로 빈자리를 채우고, 언제나 그랬듯 버스는 승객들을 실어 날랐다. 잠시 쓰던 글을 멈추고 그들을 차례대로 바라본다. 흰머리 피어난 뒤통수를 주욱 보고 있자니 얕은 동질감 같은 것이 느껴지고는 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