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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해인 Aug 27. 2022

수몰여름

모든 계절이 여름이었다

 봐요, 우리에겐 내일이 없어요. 고독과 우울의 입맞춤에 질렀던 비명은 폴폴 담배연기가 되어 허공을 장식할 테죠. 하늘 너머에는 그리스도가 아닌 떠돌이별이 있고 우리의 영혼은 그곳이 아닌 뭍 아래에 잠들어요. 촘촘한 야경은 어느 경관보다 아름답지만 어떤 이들은 생계의 굴레에서, 어떤 이들은 동심의 굴레에서 한 줄기의 달빛을 갈망하며 온종일 고달픔에 허덕이겠죠.

 이 옘병할 놈의 세상. 커트 코베인은 우울증을 참지 못해 마약에 손을 댔고 고흐는 비참함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대요. 그러니까 우리도 차라리 종말을 앞당기는 건 어때요? 서서히 자살하는 우리의 무의식에 희망이라는 올가미를 걸어보는 건 어때요? 그러면 당신은 제 머리를 쓰다듬고는 웃어넘기겠죠. 언젠가 다 괜찮아질 거야 라며. 당신은 어째서 그 미소를 놓지 못하는 거예요. 저는 참 마음이 아팠어요. 당신이 견딜 수 없는 슬픔에 마지못해 웃어버리는 게 아닐까 하고. 타인을 위로할 줄 밖에 몰라 늘 그렇게 다정을 베풀고 혼자 춥게 잠이 들고는 했으니. 조금만 이기적으로, 그 말을 스스로에게 할 줄 알았다면 지금의 우리는 어땠을까요.


 굳이 대답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거짓말이 능해져 미운 마음을 꽁꽁 숨기는 버릇이 생겨도 좋습니다. 짧게 물어뜯은 앙상한 매니큐어 손톱이 엉엉 눈물을 흘려도 괜찮습니다. 당신은 편지가 수북이 쌓인 우체통의 비밀번호를 모르고. 엽서가 이쁘지 않다며 편지의 발송지를 지우고. 곁에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다며 버젓이 한탄하고는 했으니까.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상상을 개입해야 한대요. 타인의 일부를 발췌하여 그가 지닌 성질에 심취하고 괜한 기대심에 밤을 지새워요. 현실은 상상보다 한 발짝 앞서있어 온 힘을 다해 뒤따라가다 자빠져 무릎이 까지기도 하겠죠. 바다로 뒤덮인 지구는 푸른빛을 띠지만 정작 바닷물을 움켜쥐면 무색 빛깔의 물기가 손에 조르르 다녀가듯. 알코올에 희석된 진심은 싸구려 감미료 맛이 나지만 그 쓴잔이 우리 사이의 당도를 더해주듯. 설명하기 어려운 현상은 개인의 상상으로 대체되는 거래요.

 아주 어릴 적에 우리는 그 상상을 차곡차곡 모아두었어요. 앞으로 즐비할 우울에 대적하기 위해, 풍부하고도 찬란한 미래를 소망하며 정말 많은 것들을 쌓았어요. 하지만 어느 시점부터 우리는 순수함을 잃어버렸고. 소리 내어 우는 법을 잊어버렸고. 새로운 만남을 지겨워하고. 보다 많은 것들을 토닥여야 했고. 슬픔을 슬픔으로 둬야 했고. 한때는 미워했던 이들을 점차 이해하기 시작했어요. 나이테가 하나씩 늘어갈수록 상상과 현실이 접목되어 유년의 계절은 종말을 맞이해요.


 그러니까 가끔은 낭만을 빌미로 상식을 역행해도 돼요. 바보같이 우스꽝스러운 짓거리를 일삼아도 돼요. 사랑 앞에서 지성을 마비시켜도 좋아요. 이기적인 마음씨를 품어도 그냥 깔깔 웃어버리고 말아요. 갓난아이처럼 어리광을 부려도 돼요. 요컨대 감성은 그곳에서 피어나요. 우리는 예민하고도 섬세한 탓에 자주 앓기도 하였지만 좋았던 순간 역시 세밀하게 기억하고 있잖아요. 때로는 한 번의 실수에 모든 시간을 부정할지라도. 캄캄한 시야 탓에 주위 사람은 물론이고 자신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을지라도. 저는 아무 말 없이 당신과 마주 앉아 오직 저의 상상만으로 당신의 분란한 이야기를 짐작할게요. 그리고 그게 어느 무엇이 됐든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할 준비가 됐어요. 단둘이 두 눈을 맞춘 채 함께 정적을 음미하다가 어느 때에 반드시 침묵이 깨진다면 뼈가 으스러지도록 꽉 안아줄게요. 그러고는 품에 안긴 당신에게 말하겠죠. 언젠가 다 괜찮아질 거야 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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