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하늘을 보자 어렴풋이 네 생각이 났다.
어둠이 바삭한 태양빛을 물리칠 때 별들의 혈흔을 우리는 노을이라고 부르자. 태양이 몰락하고 군청색 파스텔이 하늘에서 뜀박질 하는 소리가 들려와. 달을 만나러 갈 시간이니 어서 서두르렴. 대기권과 성층권 사이 아지랑이가 걷힐 때 우리는 우주선을 타러 가자. 거리 위 가로등이 하나의 은하수를 이룰 때 우리는 우주선을 타러 가자. 우리를 이루는 모든 것들이 그리워질 때 우리는 우주선을 타러 가자.
나는 달과 별 그리고 저 우주를 사랑해. 서로를 있는 그대로 비추어 바라볼 수 있는 우리 관계를 사랑해. 달은 달이여서 달이고 별은 별이어서 별일 수 있는 서로의 이름을 사랑해. 사람 간의 감정엔 수많은 핑계가 달라붙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두 거짓말쟁이잖아. 서로 좋아 죽을 것 같다가도 어느새 철저한 남이 되어버리거나 인연이라 믿었던 이들도 어느새 교훈으로만 남아버리기 일쑤지. 그리고 내게 이 말을 해주었던 너 또한 지금은 내 곁에 없지만 여전히 달은 그 자리에 존재해. 어쩌면 난 네가 아닌 달을 사랑한 걸지도 몰라.
그날은 초봄이었어. 학교가 끝난 우리는 언덕 아래 돌계단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지. 엉뚱한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정적을 깨려 부단히 노력하던 나를 너는 알 수 없는 눈으로 쳐다보았어. 눈을 맞추지 못해 네 머리칼의 잔머리나 세던 나는 주기적으로 나의 볼을 꼬집었어. 모든 게 꿈만 같았거든. 눈을 뜨면 모든 게 사라질 것만 같은 꿈. 그런 나를 바라보며 너는 하늘에 떠있는 별이 아름답다 말했어. 어두컴컴한 하늘엔 흐릿한 부스러기들 뿐이었지만, 살면서 그토록 아름다운 별을 본 적이 없었어. 그냥 그 시간이 너무 좋았던 거야. 무중력 상태의 정적 속에 달빛이 스며들고 그 사이에서 ‘별’이라는 단어를 읊조렸던 너. 마침 우리는 우주선을 타고 각자의 집으로 향했지만
난 오늘도 그 기억의 우주선을 탄 채 한강을 바라보고 있어. 그곳엔 하늘과 땅이 정교한 데칼코마니를 이뤄 수많은 샛노오란 별이 강 아래서 빛을 내고 있어. 하늘 속 인어들이 콧노래를 흥얼이고 있어. 그리고 그 아름다운 한 폭의 풍경화의 구석진 곳엔 나의 작은 모습이 둥둥 떠있어. 그래. 우리는 우주 어딘가에 둥둥 떠있어. 우리는 스스로 빛을 내며 어딘가를 헤매고 있는 별이야. 지구와 달처럼 가까웠던 우리는 어느새 다른 은하에 존재하지만 혹시라도 저 많은 별들 중에 널 닮은 별이 떠있을까 봐, 계속 돌고 돌다가 널 한 번쯤은 만날까 봐, 오늘도 난 몹쓸 낭만을 즐기며 제자리를 돌고 있어. 그 슬픈 몸부림을 보며 누군가는 ‘아름답다’라는 표현을 쓸 것이고 떨어지는 나를 보며 두 손을 모아 사랑이 이루어달라는 소원을 빌 거야.
우리의 이야기가 영영 비극으로 남기 전에 다시 한번 우주선을 타러 가자. 저만치 하늘로 날아가 그곳에서 밝게 빛나는 별이 되어 서로를 비추어주러 가자. 언젠가 수명을 다해 작은 돌덩이로 쪼개질 때조차 서로가 빛을 냈던 순간을 기억할 수 있게, 우리 같이 별이 되러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