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해인 Aug 23. 2022

To.

친애하는; 친밀히 사랑하는

은교 씨. 저는 함의를 마음껏 상상할 수 있는 어휘들이 좋습니다.

실재하지 않는 것들이 언어를 만나 비로소 존재를 증명하는 문장들이 좋습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성질을 지녔기에

오직 언어의 형태로 마음의 테두리를 짐작해야 할 테죠.

어떤 문장은 너무 정다워 반드시 품어야 하는 반면

어떤 문장은 모서리가 너무 뾰족하여 다른 문장으로 넋을 지혈해야 합니다.


은교 씨. 저는 진심이 담긴 문장이 좋습니다.

오래도록 머금은 오렌지맛 사탕처럼

누군가의 입속에 한참 머무른 낱말에는

대수로운 온기가 있습니다.

고작 한 문장에

그 이가 축약한 감정을 탐닉하다 보면

그 자체로 저의 모서리가 둥글어지는 것입니다.

진심은 어떤 논리보다 호소력이 짙습니다.

반듯하지 않아도

능숙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우리는 삶이 지속될수록

차츰 붕괴를 반복하며

칼을 거꾸로 쥐는 법을 깨닫게 되고

오용하였던 단어의 의미를 주워 담을 줄 압니다.

그리고 무심했던 기억에 사로잡혀

온 힘을 다해 울어버리겠죠.


은교 씨.

저는 은교 씨가 좋습니다.

그것도 아주 많이요.


당신의 이름은 가장 애틋한 추상명사,

보이지 않는 감정들의 혼합체.

굴러다니는 계란 껍질.

비 오는 날의 여름 버스.

어금니에서 자라나는 복숭아꽃.

케찹이 묻은 감자튀김.

빙그르르 청 푸른색 지구본

종이쪽지 위로 길게 다녀간

무수히 많은 언어들의 모서리는

몽땅 당신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곧잘 그 문장의 매듭을 엮어 조각 글을 끼적이지만

여전히 글을 쓰는 것은 어렵고

작가라는 명칭에는 진절머리가 납니다.

먼 훗날

매듭이 순조로워질 무렵에

볼펜을 내려놓고도 글을 쓸 수 있을 때 즈음에

모든 이들을 사랑할 수 있을 때에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추신, 서슴없이 보고 싶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