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호>
바야흐로 고등학생 시절, 내 돈은 내가 벌어서 쓰겠다는 다짐과 함께 여러 알바를 했었다. 온실 속 화초까진 아녀도 온실 속 잡초 정도는 된다는 생각으로 메모장에 자기소개를 끄적인 뒤 하나 얻어걸리라는 식으로 모든 공고문에 문자를 남겼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모두 거절뿐이었다. 가진 것이라고는 성한 몸뚱이 하나와 패기뿐이던 나의 자소서는 노하우와 경력으로 버무려진 경력자들에게 항상 밀릴 수밖에 없었다. 드라마 '미생'에서 장그래가 그랬듯이 "제 노력은 새빠진 신상입니다!!"를 외쳐댔지만 결국 얼이 빠져버렸다는 슬픈 이야기. 하지만 그럼에도 이 얼빠진 신상을 뽑아준 사장님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인사를 전한다. (감사합니다 꾸벅)
첫 알바는 고깃집이었다. 주문을 받거나, 테이블을 세팅하거나, 테이블을 치우거나, 이런 기초적인 일들을 배운 후 바로 업무를 시작했다. 우리 가게는 회식 장소로 주로 쓰이던 고깃집이어서 매 테이블마다 직원이 직접 고기를 구워야 했다. 혹여나 실수라도 할까 봐 바짝 긴장한 상태로 가위질을 할 때면 손님들이 말을 걸어왔다.
"어려 보이는데 몇 살이에요?"
"앗.!!.. 아.. 그.. 삼겹살입니다!!"
"아니 그쪽 몇 살이시냐고요'
"아 저는 열일곱 살입니다!!"
“그냥 저 주세요. 제가 구울게요"
그때가 고1 3월 무렵이었는데, 여러모로 처음 겪는 것들 투성이어서 여전히 기억이 생생하다. 처음 보는 얼굴들과 처음 겪는 생활, 무엇보다 처음 받아본 대접. 학교 내 학생으로서의 한 시간과 고깃집 직원으로서의 한 시간. 그리고 그 시간의 값어치와 역할 사이의 괴리. 뭐 이런저런 것들에 꽤나 많은 생각을 했다. 하루는 같이 알바를 하는 누나와 야간에 상추를 정리하며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누나 그런데 안 억울해요?"
"응 뭐가?"
"그러니까.. 저희의 시간이 고작 6500원으로 계산된다는 게 뭔가 좀 억울하잖아요. 저희가 오늘 하루 종일 일한 시간이 한 테이블에서 쓴 돈보다 적다는 게 뭔가 좀..”
“뭔가 좀..? 허무해?”
“네”
“남의 지갑 여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야.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니까 그런 거기도 하고. 너 여기서 평생 일할 거 아니잖아. 공부 열심히 해. 어른들이 괜히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야.”
그때 그 누나가 어른스럽게 느껴져 많이 의지했던 것 같다. 스무 살이었던 누나의 말속엔 뚝심 같은 것이 있었다. 지금의 나에게 세 살 어린 누군가가 그런 질문을 한다면 난 그런 말을 해줄 용기가 없다. 그때의 스무 살이었던 누나가 해준 말이 지금 스무 살의 나에게도 꽤나 도움이 된다. 참으로 고마울 따름이다.
그렇게 첫 알바가 끝나고 버스를 기다릴 때 근처 가게에서 에일리의 ‘첫눈처럼 너에게 가겠다’가 흘러나왔다. 드라마 ‘도깨비’가 한창 유행하던 때고 자국눈이 신발 밑자락에 들러붙었을 때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6500원이라는 나의 한 시간을 되뇌며 집에 돌아가는 길엔 그 흔한 김밥 한 줄 먹을 수 없어 편의점에서 라면으로 겨우 한 끼를 때웠다. 종일 냉기와 사투했던 나의 하루 속에서 온기 같은 것을 느낄 수 있는 몇 안되는 순간이였다. 두 번 다시는 그 순간보다 따뜻하고 값비싼 라면을 먹을 수는 없을 거다.
다음은 예식장 알바였다. 주로 돌잔치를 진행했던 큰 사이즈의 홀에서 서빙과 여러 잡다한 업무를 맡았다. 인원이 4~5명으로 운영되었던 고깃집과는 달리 열댓 명의 또래들이 한 타임에 300~500명의 접시를 치웠다. 대여섯 개의 홀에서 점심, 저녁으로 행사가 진행되었는데 식전 청소, 세팅, 마무리까지 모두 포함하면 하루에 12시간 정도 근무를 했었다. 처음 일을 할 때는 빨리 쉬고 싶은 마음에 정말 열심히 했다. 하지만 일이라는 게 끝이 없고 무엇 하나를 끝내면 또 다른 일이 주어져 후반쯤 가서는 설렁설렁 시간만 때웠던 것 같다.
모두 같은 시급을 받았던 고깃집과 달리 홀엔 여러 역할과 그에 따른 시급 차이가 존재했다. 직원 관리 매니저와 레크레이션 mc, 수십 명의 주방 이모들과 인원 관리자 등등.. 그리고 그 시급 차이가 대우의 차이로 이어졌다. 하객 앞에서 소리를 지르고 춤을 추는 진행자는 뒤에서 청소를 하는 알바들에게 윽박을 지르며 소리를 쳤다. 열정 페이를 외치는 그들을 열정적으로 패 버리고 싶었으나 한낱 아르바이트생이었던 난 그럴 수 없어 결국 얼마 안가 알바를 그만두었다.
다음은 편의점 아르바이트였다. 주택가에 위치한 큰 편의점이라 사람들이 많이 오고 갔다. 사람을 대하는 일은 항상 변수가 존재했고 난 그 변수들에 정수로 대응해야만 꾸지람을 면했다. 다양한 사람을 만났고 그중 소위 '진상'이라 불리는 새끼.. 아니 사람들도 만났지만 그래도 좋은 사람들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아무튼 참 많은 일을 했다. 카드 장사를 하겠다며 몇 십만 원어치를 사 되팔기도 했고, 음악을 만들어 팔아보기도 했고, 에세이나 기획안을 써 제출해 과자값을 얻기도 하였다. 어른들이 말씀해주셨던 이야기들을 직접 경험해보고 몸으로 느끼면서 꽤나 많은 교훈을 얻었다. 그 중 가장 크게 느꼈던 것은 나의 시간과 열정은 다른 누군가로 대체될 수 있고 그러기에 그 시간은 가치는 내가 올려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사실이지만 '알다' 와 '깨닫다' 는 엄연히 달랐다. 그 외에도 존재하는 다양한 교훈들을 혼자서 끄적여보니 그 순간들은 꽤나 뜻깊은 경험이였다고 생각한다. (물론 어디까지나 돈이 따라온 교훈이기에 참고 견딜 수 있었다 )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을 고등학생들에게 한마디, 남의 지갑 여는 게 그렇게 쉬운 일만은 아니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최저'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그곳에서 평생 일할 게 아니라면 당신이 잘할 수 있는 무언가를 열심히 하길 바란다. 그리고 잘하고 있을 거라 믿는다. 스스로 일거리를 찾아 묵묵히 무언가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당신의 꿈은 절대 ‘최저’에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모두 화이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