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호>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도, 어버이도, 하다 못해 불교 신자도 아닌 나에겐 그저 휴일만이 범벅 졌던 한 달이다. 만약 시간을 되돌려 다시 어린이가 된다면, 시간을 앞당겨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된다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더 뜻깊은 5월을 보내었으리라. 진짜 '가정'의 달인가 보다.
10대의 5월은 파란만장하다. 땡볕 아래서 달리고 달리고 또 달려야 하는 운동회를 하기도 하고, 친구들끼리 삥 둘러앉아 < 스승듀스 101> 을 열어 작년 쓰앵님들을 찾아가 1년간 못다 한 이야기도 해야 한다. 벚꽃이 서서히 질 때쯤, 많은 커플도 지고, 중간고사 성적이 나오면 나라 잃은 표정도 지고, 새로운 친구들과 제법 얼룩도 지고, 아무튼 분주하다. 덕분에 해마다 생각나는 추억이 하나씩은 있다. 그리고 5월은 이 추억을 공유한 모든 인연들에게 감사함을 전할 수 있는 고마운 달이다.
고마움에도 명분이 필요한 시대이다. 우리는, 친구에게 보낸 " 고마워 " 한 마디를 " 뭐야 이 새끼, 취했냐? " 로 환불받는 아이러니한 삶을 살고 있다. 적어도 내 주변은 그렇다. 남자 녀석들만 득실거려서 그런지는 몰라도 '사랑'이라는 단어는 발라드 노래를 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젠장. 이런 감정고갈러들에게 5월은 꽤나 그럴싸한 낭만을 바래다준다. 무심한 듯 안부 문자를 툭 던지기도 좋은 달이고, 옛사람들을 찾아가 고마움을 전할 수도 있는 날이 잔뜩 있다. 하다못해 어버이날 편지에 '사랑합니다'라는 다섯 글자를 꾹꾹 욱여넣어도 부모님을 슬픔이 아닌 기쁨으로 울릴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회를 선물 받는다. 서로의 마음에 마구 그어왔던 빗금이 서로 나뉘기 위함이 아닌 나누기 위함이라는 진심을 전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순간이다.
나 역시 먼지 덮인 연락처를 뒤져 본다. 다들 뭐하고 사는지, 살아는 있는지, 날 잊지는 않았을지, 혹여나 나의 연락이 불편하지는 않을지, 여러 생각들이 스친다. 물론 예전 같지는 않을 것이다. " 오랜만이다 " 이 인사말이 어색하지 않은 사이가 되었겠지, 아니 어쩌면 그 인사조차 어색한 사이가 되어 있을 수도 있겠다. 10년이 채 안된 기간 동안의 어색함이 이 정도인데, 몇십 년간의 무소식은 오죽할까. 나로서는 짐작이 가질 않는다. 시간이라는 야속한 놈은 이 케케묵은 관계를 더 멀어지게 할 뿐이다. 빗금을 그으며 서로를 나누었던 이들과 나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빗금을 휘갈겨도 십 분의 일이라도 기억 속에 존재한다면 그들 역시 당신을 기억하고 있는 중일 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기억되었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짜릿하다. 더 나아가, 그 이가 누구든 나에게 감사함을 느끼고 있다면 어디 가서 절대 꿀리지 않는 인생을 살아온 거다. 독창적인 표현, 억지스러운 문구, 익살스러운 농담, 이런 걸 바라는 게 아니다. " 고마워 " , 정말 이 만한 한마디가 없다. 가장 흔하고 쉽지만 가장 어려운 한 마디로 따뜻한 5월을 보냈다. 모두들 너무나도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