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사항 : 저의 이야기는 삼성직무적성검사가 SSAT로 불리던 2008~2012년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지금의 명칭 GSAT가 아닌 SSAT로 표기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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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SSAT에 5번 합격했다.
정말이다.
정말. 정말이다.
(아니 어쩐지 안 믿으실 것 같아서...여러번 말해본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면
삼성그룹의 전사적 채용 SSAT에 2번 합격했고,
삼성의 계열사들에서 본 SSAT에 3번 합격했다.
그러면 그냥 2번 합격했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뭐 어쨌든
정말로.
SSAT는 치르기만 하면 합격을 하긴 했다.
SSAT를 놓치다.
지금 돌이켜보면 대체 왜인지 알 수 없지만
나도 날 모르겠지만
4학년인 내가 대체 왜! 그랬을까 도저히 알 수 없지만
지금도 생생한 실수의 날이 떠오른다.
삼성에서는 취업준비생이라면 누구나 도전한다는 정규직 전환을 전제로 인턴을 채용했고,
그 인턴의 1차 관문이 인적성검사 바로 SSAT였다.
당시 패기 넘치게, 역시나 잘 모르고 정말 가고 싶은 마음에 지원한 첫 계열사는 '제일모직'이었다.
내가 인적성검사를 보러 가야 할 곳은 가락동에 있는 고등학교였다.
서울의 북쪽에 살던 나는 잠실 너머를 그렇게 자주 갈 일이 없었는데,
특히 가락동은 정말 처음 들어보는 곳이었다.
(여담이지만, 나는 처음 들어본 가락동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한다.)
이때가 2008년이었는데,
그때에는 카카오맵, 네이버지도 등은 아예 없었다.
그러니까 여행을 가서도 종이 지도를 들고 움직이던 시절...
그때는 3호선 가락시장역이 생기기 전이라,
우리 집에서 4호선을 타고 2호선 동대문운동장(당시 역 명, 지금은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에서 내려서
잠실까지 간 다음 거기서 8호선으로 갈아타 가락시장 역에 내려서 걸어가면 된다고 했는데,
평소 길을 잘 찾는 편인 나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었는데,
그랬는데...
나는 잠실역에서 8호선을 갈아타는 것이 그렇게 긴 줄 몰랐었다.
잠실역에 도착했을 때 난 알았다. 망했구나…
지금도 생생하다. 걸어도 뛰어도 다시 숨을 고르고 걷고 뛰어도 끝도 없이 이어지는 8호선 환승 통로.
정말 다시는 8호선을 타지 않겠다고 마음속으로 외치며 달리고 또 달렸다.
겨우 갈아타 가락시장역에 도착했으나,
학교가 지하철역 바로 앞에 있는 건 아니었으므로
나는 결국 지각을 했고 학교 문은 닫혔고,
닫힌 문 앞에서 2번의 애원 끝에 교문을 등지고 돌아 나와야 했다.
나는 평소에도 지각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인데,
대체 내가 지금. 왜. 이런 실수를 저질렀을까
너무너무 창피했고, 내 자신이 너무 싫었다. 용서할 수 없었다.
아침에 응원해주던 엄마의 목소리가 얼굴이 눈앞에 스쳤다.
처음 와보는 곳에 덩그러니 남아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른 채 빙빙 돌았다.
친한 친구 몇몇에게 문자를 보내 우는소리를 했지만(안창피했냐!!)
그래서 정말 울고 싶었지만 어찌 되었든 어쩔 수 없는 것.
그렇게 내 첫 번째 SSAT는 날아갔다.
일생에 몇 번 못 보는 SSAT인데 그때는 그런 건 줄 몰랐지.
내가 SSAT를 봤다고 해도 붙었을지 의문이고,
붙었다 해도 면접까지 갔을지 의문이며,
면접에 합격했다고 해도 인턴생활 중 때려치우지 않았을지, 혹은 잘리진 않았을지 의문이고,
인턴을 끝까지 했어도 정직원 합격이 됐을지 미지수지만
어찌 되었든 1%라도 그 가능성이 있었다는 것과
아예 그 가능성을 내 손으로 직접 차단했다는 것은 느낌이 다르다.
나는 이후에도 한참을 이때 지각하지 않고 SSAT를 본 뒤 합격해 인턴을 하고,
정직원이 되었을 수도 있을 내 미래에 대한 미련을 갖고 종종 나를 자책했다.
그래. 그래서 나는 그 뒤로 정말 한번도 지각하지 않았다.
그러니 큰 교훈이 된거였으려나.
SSAT는 특이한 애들을 합격시키나봐
본격적인 공채 시즌이 시작됐다.
인턴이 아니라 이제 정말 정규직.
그리고 SSAT는 늘 선두주자다.
당시 삼성의 채용 특성상 서류는 누구나 지원 가능했고, 지원 방식도 다른 회사들보다 간단했다.
서류를 지원한 모든 사람은 SSAT를 볼 수 있고, SSAT를 통해 면접 대상자를 선발했다.
여기서 특이점이 면접 대상자에 뽑히면
어마어마하던 경쟁률이 2.5~3:1로 확 줄어든다는 것.
그래서 SSAT에 합격하면 적어도 합격의 문턱까지 30%는 다다른 거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고민끝에 전공과 관련이 있는 '삼성생명'에 지원했다.
취업준비와 인적성검사에 대해 무지했던 나도
4학년 여름방학,
3화 에피소드(03화 #2. 첫 면접의 날카로운 추억_)에 등장한
첫 인턴 면접을 야무지게 실패한 후
무언가를 시작해야만 한다는 위기감에
친한 친구와 함께 다른 과 후배들이 만든 SSAT 스터디에 참석했다.
이름만 스터디였지, 일주일에 한번 씩 만나 밥도 먹고, 영화도 보고(SSAT에 나올 수도 있다는 이유로 월-E를 강의실에서 본 기억이 난다.), 구색맞추기였는지 외부 강연도 들으러 다녔다.
SSAT 스터디가 맞...나...?
어쨌든,
나는 파란색과 하얀색이 섞인 SSAT책을 들고 다니며 나름 공부라는 것을 시작했다.
그거라도 했지만, 솔직히 정말 이런 문제가 인적성 검사에 나온다고? 하는 질문들이 많아 처음엔 황당했었다.
내가 제일 못하는 공간 능력을 테스트하는 도형문제부터
내가 즐거워하는 통계분석이나 지문이 긴 문항, 상식 문항 들까지.
뭐 이런 시험으로 면접자를 뽑나 했지만 내가 달리 할 말이 있었으랴.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그냥 그 문제집 한권을 풀고 공부하는 것뿐.
SSAT시험 전날이 생각난다.
토요일 오후 그 당시에만 아주 잠깐 친했던 학교 선배를 불러내
이해되지 않는 수학 문제들을 함께 풀었다.
돈까스를 먹었고 내가 좋아하는 카페에 갔다.
(적고보니 공부는 핑계고 또 놀았네...)
드디어 일요일, 정해진 시험장으로 가는 길, 그런 광경은 처음이었다.
손에 SSAT책을 한권 씩 들고 정말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많은사람들이
책에 코를 박은 채 지하철 에스컬레이터를 올라가고 있었다.
나는 이미 기가 죽었다.
나는 안 되겠구나.
그래서 1교시는 정말 막 풀었다.
그냥 내가 아는 것은 다 풀어보자는 마음으로 문제 순서에 상관없이 내가 아는 것부터 먼저 풀었다.
2교시 인성검사는 의외로 오래 걸렸다.
왜냐하면, 평소에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것에 대해 생각해야 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나는 종종 불을 지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라던가
‘나는 종종 물건을 훔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같은 질문들은 태어나서 처음 고민해본 문장이었다.
(이건 처음이라 그랬던 거고 나중에는 정말 기계처럼 답을 체크한 뒤 엎드려서 잠을 잤답니다…)
제일 황당했던 질문을 뽑자면… ‘나는 우리나라에서 삼성이 최고 기업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질문이었는데 정말 피식 웃을뻔했다. 뭐 이런 질문이 다있나...(혹시 지금도 이런지 궁금하네)
그리고 제일 약올랐던 질문은 ‘나는 가끔 신문을 본다’ 였다.
질문 자체가 이상한 건 아니었으나,
몇 문항 뒤에 ‘나는 신문을 자주 보지는 않는 편이다.’ 와 같이
문장을 교묘히 바꿔 놓은 게 아닌가.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말장난인데!!!!!!!!!!
이건 비단 SSAT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는데 이런 문항의 문제점은,
안 그래도 마음이 조급하고 초조한 지원자들을 순간 헷갈리게 만들어서 실수를 유발한다는 것이다.
(그게 의도였겠지만)
이 문제 하나 잘못 체크했다고 당락에 큰 변화가 있는 건 아닐 수도 있겠지만,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선 그렇지 않다.
실수한 순간 컴퓨터 수성 사인펜으로 이미 체크해둔 부분을 얼른 지워야 하고
그건 다급함과 조급함으로 이어져 멘탈을 흔든다.
다 끝나고 그 실수를 꺠닫게 됐을 경우에는
발표전은 당연하고, 발표 후, 불합격일 경우 오랜 시간 얼마나 곱씹고 후회하게 되는지 모른다.
생각할수록 얄밉…
인성검사 자체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는다.
조금 시간 여유가 있어 세번 정도 답안지와 문제지의 마킹을 체크하고 교실을 한 바퀴 둘러본다.
괜히 수능시험을 보던 열아홉 추운 겨울날이 떠오른다.
날씨보다 더 차가웠던 마음의 두려움,
그리고 그때가 마지막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이었음을,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수많은 경쟁자들과 한 곳에 모여 매번 정답이 없는 선택을 해야 할 지 몰랐던,
그 날이.
여기 모인 우리는 또 언제 어디서 서로의 탈락을 바라며 다시 만나게 될까 생각하니 서글펐다.
그때 마감종이 울린다.
앉아 있던 의자를 힘껏 밀고 일어나 우르르 휴대폰을 받아 돌아가는 지원자들을 보며 현실로 돌아온 나는
이미 시험에 대해서는 아무 기대도 없었다.
그런데 얼마 후 나는 SSAT에 합격했다.
나는 지하철 안에서 합격자 발표가 났다는 문자를 받고
정말 기대는 안했지만 그래도,
부랴부랴 다음역세어 내려 지하철 역사 안에 설치된 컴퓨터로
삼성 채용사이트에 접속해 손을 덜덜 떨며 확인했다.
합격.
합격???????
우리 과에서 합격한 사람은 선배1명과 나뿐이었다.
다들 내가 합격했다는 사실에 놀라며 비슷한 말을 했다.
‘SSAT 약간 특이한 애들 뽑는 거야? ‘
그렇다. 나는 아무도 SSAT에 합격할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던,
공부를 열심히 하기로 소문 난 적은 한 번도 없던 사람이었으니까...
그런 사람인 나는 역시 실망시키지 않고
경쟁률이 2.5:1이었던 면접에 탈락했고,(면접 후기는 추후에 상세히 작성하겠다.)
그다음 학기에 다시 SSAT를 본다.
두번째 SSAT의 기억은 좀 더 선명하다. 나는 당연히! 지원회사를 바꿔 '삼성화재'에 지원했다.
이전과 다르게 나름 만반의 준비를 하고 시험을 봤다.
나는 또 합격했다.
‘오 하느님 저는 역시 SSAT형 인간인건가요?’
‘역시 저는 삼성이 찾는(어떤 유형인지는 잘 모르겠으나)인재상인건가요?’
‘이건 역시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신다는 뜻이겠죠? 저는 면접에 붙겠죠?’
이런 망상에 빠져 결국 다시 면접을 보게 됐지만…
.
.
.
그 후 여러 계열사의 SSAT들을 보며
나는 계속 합격했지만, 면접에서는 한 곳을 빼곤 떨어졌다.
그러니까 나는 삼성의 인재상은 전혀 아니었거나,
SSAT를 볼 때의 나만 삼성형 인재였거나,
사실 가장 큰 확률은 아무것도 아니었던 거겠지.
어쨌든, 혹시 이런 나라도 괜찮다면...
아주 조심스럽게 인적성검사에 대한 아주아주 조금은 쓸모 있을 수도 있는 조언을 몇 가지 해보는걸로
이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무조건 자신 있는 영역부터, 아는 문제부터, 그리고 품이 많이 드는 문제부터 푼다.
공간, 추리, 지각 영역 등은 문제 유형이나 해결 방법을 눈에 많이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
*인성검사가 있는 시험의 경우,
만약 정말 합격에만 집중하고 싶다면, 그것만이 목표라면
‘진짜 나’를 조금 버려야 한다.
인성검사를 몇 번 보다 보면 주로 나오는 질문들이 있다.
그 질문들을 바탕으로 가상의 나를 만든다.
책임감이 강하고, 종종 신문을 읽으며,
꼼꼼하게 여행 계획을 세우고, 규칙을 지키는 것을 중요시하는,
화를 내거나 거짓말을 하지 않는편인 인성검사용 나를 만든다.
그리고 인성검사 전 최면을 건다. 반복해서 계속 내 자신에게 주입한다.
그래야 일관성을 중요시하는 인성검사에서, 문장을 조금씩 바꿔서 같은 질문을 여러 번
반복하는 문항과 만났을 때, 당황하지 않고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런 가짜의 나로 인성검사를 합격하는 게 의미가 있냐고 묻는다면...
어쩄든 진짜 나를 보여줄 수 있는 면접의 기회가 인성검사를 통과해야만 주어지는 거라고 변명해봅니다.
면접에서 유독 자신의 능력을 잘 보여주는 분들이라면
(자신이 그런 사람인지 아닌지 면접에 가봐야만 알 수 있기도 하죠)
우선 인적성검사를 통과해서 면접을 볼 기회가 정말 중요할거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정말 본인의 선택입니다!
아 물론… S그룹은
인성검사용 나’와 ‘진짜 나’가 거의 정반대인 저를 면접에서 바로 꿰뚫어 보았던거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