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타 어학연수 제1장 #22 발레타(2) 수도 전체가 세계문화유산,
50대에 어학연수는 핑계고
#22 발레타(2) 수도 전체가 세계문화유산,
몰타에서 반드시 여행하게 되는 곳 중 하나인 발레타는 짧은 여행자와 길게 머무는 여행자의 느낌이 가장 많은 차이를 보이는 곳이 아닐까 싶어요. 한 나라의 수도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에 선정된 유일한 곳인 만큼 설명해야 할 얘기도 봐야 할 것도 참 많은 곳입니다. 크기는 작은데 몰타 역사의 축소판이랄 수 있는 곳이기에 소개할 곳이 너무 많습니다. 그중 써머리 개념으로 먼저 안내하겠습니다.
몰타의 수도 발레타는 수도 전체가 1980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로마나 유서 깊은 도시들이 도시 전체가 아닌 도시 일부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은 있어도 몰타처럼 수도 전체가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은 몰타가 유일하다.
몰타의 수도 발레타는 수도는 가로 1km, 세로 600m 남짓으로 아주 작은 곳이라 끝에서 끝까지 걸어도 20분이면 충분하다. 어느 정도로 작은지 느낌이 없다면 세계에서 가장 장은 수도가 바티칸이고 그 다음이 모나코이고 세번째가 바로 몰타의 수도 발레다. 이 작은 곳에 볼거리가 있나 싶지만 약 320여 개의 문화유산이 수도 발레타에 밀집되어 있는데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역사가 압축된 곳이라고 하겠다.
발레타는 1566년 건설된 후 오스만의 공격과 세계 2차 대전 당시 엄청난 폭격으로 건물들이 많이 파손되었고 여러 차례에 걸쳐 재건됐다. 그럼에도 건설될 당시인 중세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어 세계문화유산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발레타 미술관인 무자(muza)에서 발레타에 있는 광장 중 하나인 성 조지 광장(St. George’s Square)을 그린 그림을 봤는데 현재의 모습과도 큰 차이가 없어 굉장히 놀랐다.
발레타에서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건 트리톤 분수다. 발레타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트리톤 분수 앞은 기념사진을 남기는 관광객들로 늘 분주하다. 분수의 모양이 매우 독특한데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포세이돈의 아들, 트리톤을 형상화하고 있다. 트리톤의 모양이 다소 기괴한데 상체는 사람의 모습이고 하체는 물고기 혹은 인어의 모습이다. 셋 중 둘은 앉았고 하나는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인데 매우 역동적인 느낌이다. 특이한 건 세 얼굴이 모두 발레타 입구인 시티게이트를 향하고 있다. 따라서 시티 게이트에서 봐야만 트리톤의 모든 얼굴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각도가 묘하게 틀어져 있는 탓에 내 눈에는 세 명의 얼굴이 다 보이지는 않았다.
이 분수는 몰타 정부의 공모전에서 몰타 조각가인 빈센트 아팝(Vincent Apap)의 작품 '트리톤'으로 선정됐다. 작가는 로마 마테이 광장 타르타루게 분수를 모티브로 몰타와 바다의 상관관계를 표현했다고 한다. 세 사람의 트리톤은 구도가 안정적이고 조화로운데 분수가 가동될 때면 트리톤이 금방이라도 솟구쳐 오를 것만 같을 정도로 역동적이다. 표정이 너무 리얼하니 조금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스 신화에서 트리톤은 보조적인 역할이라 존재감도 미미한데 왜 하필이면 트리톤이었을까. 트리톤은 깊은 바다의 지배자로 고동 나팔을 이용해 파도를 일으키거나 재우는데 바다에서 길을 헤매고 방황하는 이들의 길잡이가 되어주는 역할이다. 따라서 트리톤의 이미지는 서양 문화에서는 주로 바다와 관련된 신비로운 존재이자 상징으로 등장한다. 그런 이유로 인해 고대나 르네상스 시기에 분수의 조각으로 많이 사용되기도 했다.
지중해 바다 한가운데 위치한 몰타는 바다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니 트리톤이 발레타 입구에 있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다만 삼면이 바다와 접하고 있는 우리나라와 지중해는 엄연히 달랐다. 태풍이 불면 엄청난 피해를 입는 것과 달리 지중해는 높은 파도가 치긴 해도 큰 피해가 없기에 얌전한 바다라는 갱각이 들었다.
트리톤 분수는 낮과 밤이 다르고 분수가 가동될 때와 그렇지 않을 때 느낌이 많이 달랐다. 분수가 있는 광장은 꽤 넓은 편이라 발레타의 다양한 행사들이 많이 열리는 곳이다. 여름 축제기간에는 거대한 클럽이 생기기도 하고 겨울에는 크리스마켓이 열리는 곳이다. 밤에는 야경이 예뻐서 사진 찍는 사람들의 단골 출사지로도 인기가 높은 곳이었다.
발레타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난공불락의 요새도시'다. 발레타는 오스만과 공방을 벌인 격전지로 몰타 역사뿐만 아니라 세계사에서도 지정학상으로 굉장히 중요한 곳이다. 1565년 오스만과의 전투였던 몰타 대공방전(great siege of malta)은 유럽사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뤄지는 전쟁이다. 몰타 대공방전에서 승리하지 못했다면 유럽의 이슬람화는 불 보듯 뻔한 일이었을 것이고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유럽이 됐을 것이다.
이 전쟁의 승리로 인해 몰타는 유럽 사회에서 인정을 받았고 이후에 EU에 편입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 정도였다. 몰타 공방전과 관련된 내용은 쓰리시티즈에서 다루기로 하겠다.
발레타는 1565년 몰타 대공방전이 있기 전까지 아무것도 없는 땅이었다. 고대 몰타의 수도였던 임디나에서 쓰리시티즈인 비르구(birgu)로 수도를 옮겼고 성 안젤로 요새(Fort Saint Angelo)를 세웠다. 이후 오스만의 침입에 대비해 아무 것도 없었던 발레타 끝에 성 엘모 요새를 만들었다. 1565년 몰타 공방전에서 이긴 후 발레타의 지정학적 위치의 중요성을 실감하고 본격적으로 발레타라를 개발하게 된다.
보통 중세도시들이 원래의 기반 위에 하나씩 덧붙이며 영역을 넓혀간 것과 달리 몰타는 아무것도 없었던 곳에 바둑판의 계획도시를 건설했다. 그때 만들어진 발레타는 2차 대전에 폭격으로 상당히 파손이 됐지만 건설 당시 모습 그대로 대부분이 복원됐다. 항공사진으로 비교해보면 옛날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건물이 생기고 좀 오래된 곳은 재개발되어 완전히 사라지고 탈바꿈하는 한국에서 몇 백 년 전의 모습이 변치 않고 그대로 남아있다는 건 그저 부러울 따름이었다.
발레타의 메인 출입구는 '시티게이트'로 불린다. 건설 당시에는 성문이 있었는데 4차례나 디자인이 변경이 있었다고 한다. 현재 시티게이트는 다섯 번째 디자인으로 이탈리아 건축가 렌조 피아노의 설계로 만들어졌다. 보시다시피 '문'하면 자동으로 연상되는 장치가 없어서 그런지 시티게이트라는 이름이 잘 와닿지는 않았다.
시티게이트는 수도인 발레타와 다리로 이어지는데 원래는 이 다리도 목조다리였다고 한다. 시티게이트가 성문이 아니다 보니 이곳이 '요새'가 맞나 싶지만 이내 그런 의심은 사라진다. 발레타 입구는 깊이 18m의 해자를 판 다음 성을 쌓아 올렸는데 나무 다리를 들어 올리면 그 누구도 침입할 수 없는 '난공불락의 요새'라는 말이 실감났다.
게다가 어찌나 성벽이 견고하고 단단한지 건축에 문외한이라고 하더라도 돌 하나를 그대로 깎았다는 것이 한눈에 보아도 느껴진다. 이 조그만 나라에 수도 전체를 요새로 만들어야 할 정도로 오스만 투르크는 무서운 상대였던 것일까.
참고로 몰타를 대표하는 색깔은 '라임 스톤'이다. '라임스톤'은 몰타 땅을 파면 나오는 돌로 미색에 가까운 돌이다. 몰타 대부분의 건물이 이 라임스톤으로 지어졌기에 하늘에서 내려다 보면 독특한 미색의 색감이야말로 몰타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처음에는 미색인 라임스톤도 시간이 지나면서 물을 머금은 곳은 시커멓게 변한다고 한다. 그래서 어느 부분은 다소 얼룩덜룩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햇빛을 받으면 밝은 미색이 되살아나는 것이 라임스톤의 매력이라고 하겠다.
허허벌판이었던 발레타는 1565년 오스만을 물리친 이듬해 본격적인 개발이 시작된다. 몰타 공방전을 승리로 이끈 당시 성요한 기사단의 수장이었던 장 파리소 드 발레트( Jean Parisot de Valette)는 다시 또 오스만이 쳐들어 올 것을 대비해 발레타에 신도시를 건설하게 된다. 철저하게 전쟁을 대비해 만들어진 계획도시로 반듯반듯한 바둑판 모양으로 만들었고 지금도 당시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다.
난공불락의 요새 도시는 그의 이름을 따 '발레타'로 명명됐다. 영웅의 서사가 늘 그러하듯 발레타의 초석을 놓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발레타가 완성되는 걸 보지는 못하고 눈을 감았다. 몰타 현대미술관인 무자(MUZA) 앞에 한 손에 칼을, 또 다른 한 손에 발레타의 설계도를 가지고 있는 발레타의 동상으로 나마 위로를 건네고 있다.
발레타 가장 초입이 시티게이트라면 가장 끝에는 엘모 요새가 있다. 엘모는 요새는 시티게이트에서 직선으로 약 1km 남짓인데 현재 몰타 국립전쟁박물관(National War Museum)으로 운영되고 있는 곳이다. 이곳은 기원전 2,500년경 청동기 시대부터 연대순으로 현재까지 몰타의 전쟁과 관련된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데 성 엘모 요새는 따로 포스팅할 예정이다.
평소에는 박물관으로 운영되지만 결혼식, 파티 등 프라이빗한 공간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여름에는 페스티벌이 열리기도 한다. 내가 있을 당시에는 여름 축제인 오페라 페스티벌이 이곳에서 열렸는데 정말 특별한 느낌이었다. 엘모 요새 소개할 때 소개하겠다.
발레타 끝에는 엘모어 요새 외에도 꼭 한 번은 보고 갔으면 하는 곳이 있으니 '몰타 추모의 종'이다. 몰타는 세계 제2차 대전 당시 영국의 지배하에 있었는데 연합국 소속이었던 몰타는 두 차례의 공격을 받았다. 이탈리아 공군의 엄청난 폭격이 퍼부었고 당시 희생된 사람이 무려 8천여 명이라고 한다. 나라의 규모가 작고 인구가 적은 몰타 상황을 생각하면 엄청난 사람이 죽었다. 몰타 전역이 엄청난 피해를 입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곳이 수도인 발레타다.
세계 2차 대전 당시 이탈리아는 몰타를 전진기지로 삼으려고 했다. 페니키아, 로마의 고대부터 중세의 십자군을 지나 현대사까지 몰타가 얼마나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곳이었는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어쨌거나 몰타는 잘 버텨냈고 영국 국왕인 조지 6세로부터 세인트 조지 십자 훈장을 받았는데 개인이나 단체가 아닌 나라에 수여한 건 전무후무한 사례라고 한다. 현재 몰타의 국기에는 그때 받았던 세인트 조지 십자 훈장이 새겨져 있다. 몰타 추모의 종은 세인트 조지 훈장 수여 50주년을 기념해 만들어졌다.
몰타 추모의 종은 사실 처음에는 어떤 의미인지 잘 몰랐다. 처음에 이곳을 찾았을 때는 외관이 너무 수수해 별 임팩트가 없었다. 다만 로우 바카라 가든의 아치 너머 종탑을 배경으로 일출을 찍은 사진이 너무 예뻐서 그것만 인상에 남았었다. 이후 이곳의 역사를 알게 된 후 시간을 내어 다시 찾았다.
계단을 올라서면 청동으로 만든 거대한 종을 머리 위로 마주하게 되는데 화염에 휩싸인 마돈나의 이미지로 장식된 것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이곳에서 직선으로 선을 그으면 그 끝에 튀르키예가 위치한다. 오스만 제국의 입장에서는 동지중해를 지나 처음 만나는 나라인 몰타를 점령하면 서지중해를 넘어 유럽까지 곧장 이어진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로 손꼽히는 몰타가 지정학적으로 얼마나 중요한 곳이었는지 몰타의 역사를 알기 전에는 전혀 알지 못했다. 피비린내로 요동쳤을 바다는 너무나도 잔잔하다.
추모의 종에서 반대편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내려가면 바다를 향해 누워있는 엄청난 크기의 청동상이 눈에 띈다. 너무나 크고 육중해 절로 경건함을 자아낸다. 얼마나 중요한 인물이기에 엄청난 규모의 청동상으로 제작했을까 궁금했다. 그러나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at the going down of the sun and in the moring we will remember them. (해가 질 때, 해가 뜰 때 우리는 그들을 기억할 것이다.)
동판에는 이런 글 귀가 새겨져 있는데 이 거대한 청동상은 그 누구도 아닌 세계 2차 대전 대 사망한 이름 모를 무명용사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우리로 치차면 현충원의 무명용사인 셈인데 상징성이야 말로 어마어마하지 않은가.
엘모의 성과 추모의 종은 발레타의 가장 끝에 있어 일부러 보러 오지 않으면 이런 것이 있는지도 모르고 가는 관광객이 많을 수밖에 없다. 나는 한 번도 들어보지는 못했지만 매일 정오에는 종이 올린다고 하니 혹 발레타를 방문할 계획이라면 일부러라도 시간을 맞춰보는 것도 좋겠다.
덧. 볼 곳 많은 발레타를 도저히 한 포스팅에 담기에는 무리라 1편은 발레타의 역사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담았다. 발레타 두 번째 포스팅에서는 만나볼 이야기는 더욱 흥미로울 예정이니 기대해도 좋겠다.
+ 다음 이야기 : BTS도 다녀간 발레타 구석구석 돌아보기
#몰타어학연수 #몰타라이프 #몰타라이프 #몰타여행 #malta #maltalife #몰타 #런던어학연수
+ 구독하기, 라이킷, 댓글 부탁드려요~ 글 쓰는데 큰 힘이 됩니다. ^^
+ 알림 설정을 해두시면 가장 먼저 글을 받아보실 수 있어요. ^^
글. 사진 정해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