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타에서 반드시 여행하게 되는 곳 중 하나인 발레타는 짧은 여행자와 길게 머무는 여행자의 느낌이 가장 많은 차이를 보이는 곳이 아닐까 싶어요. 한 나라의 수도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에 선정된 유일한 곳인 만큼 설명해야 할 얘기도 봐야 할 것도 참 많은 곳입니다. 몰타에서 가장 많이 간 곳이라 소개할 곳이 너무 많아 발레타에 관한 내용이 계속 미뤄질 수밖에 없었는데요. 오늘 그중 써머리 개념으로만 먼저 보여드리겠습니다.
+ 세계에서 유일하게 수도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인 곳.
몰타의 수도 발레타는 1980년 세계문화유산을 지정됐는데 약 320여 개의 문화유산이 발레타의 아주 작은 면적(가로 1km, 세로 600m 남짓으로 55헥타르 정도다)에 모두 담겨 있어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역사가 압축된 곳이다. 로마나 유서 깊은 도시들이 도시 전체가 아닌 도시 일부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은 있어도 몰타처럼 수도 전체가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은 몰타가 유일하다. 워낙 작은 나라여서 수도 전체가 문화유산이라고 하지만 타 도시 일부분의 크기와 비슷하다고 하겠다.
1980년 몰타의 수도 발레타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됐다.
발레타는 1566년 건설된 후 오스만의 공격, 세계 2차 대전에 엄청난 폭격으로 많이 파손되어 여러 번을 통해 재건됐지만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어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실제로 발레타의 옛 그림을 보면 현재와도 크게 차이가 없어 깜짝 놀라게 된다. 발레타 미술관인 무자(muza)에서 성 조지 광장(St. George’s Square)을 그린 그림을 보게 됐는데 현재의 모습과도 큰 차이가 없어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림과는 반대편에서 본 모습이긴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거의 변합이 없다. 16세기 그림
+ 트리톤 분수(Triton Fountain)
발레타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건 트리톤 분수다. 발레타 입구에 있는 트리톤 분수는 발레타의 랜드마크로 관광객들은 어김없이 기념사진을 남기는 곳이기도 하다. 분수의 모양이 매우 독특한데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 포세이돈의 아들인 트리톤을 형상화하고 있다. 트리톤의 모양이 다소 기괴한데 상체는 사람의 모습이고 하체는 물고기 혹은 인어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둘은 앉아 있고 하나는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이 매우 역동적으로 느껴진다. 특이한 건 세 얼굴이 모두 발레타의 입구인 시티게이트를 향하고 있다. 따라서 시티게이트에서 봐야만 트리톤의 모든 얼굴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각도가 묘하게 틀어져 있어 내 눈에 세 명이 한꺼번에 보이지는 않았다.
이 분수는 몰타 정부의 공모전을 통해 몰타 조각가인 빈센트 아팝(Vincent Apap)이 제출한 작품이 '트리톤'이 당선됐고 로마의 마테이 광장에 있는 타르타루게 분수를 모티브로 몰타와 바다의 상관관계를 표현했다고 전해진다. 세 트리톤은 힘의 균형이 잘 배분되어 있어 분수의 물줄기가 뿜어져 나올 때면 트리톤이 금방이라도 솟구쳐 오를 것만 같은데 표정이 너무 리얼해 조금 무서운 생각마저 들었다. 왜 하필이면 그리스 신화에서 거의 존재감이 없는 트리톤이 모티브였을까 궁금해졌다. 트리톤은 깊은 바다의 지배자로 파도를 일으키거나 재우는데 사용하는 고동 나팔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는데 지중해 바다 한가운데 위치한 몰타이니 바다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 어쩌면 트리톤의 힘을 빌어 평화롭고 잔잔한 바다가 유지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지 않았을까 짐작해 봤다. 하지만 태풍이 불면 엄청난 피해를 입는 한반도와 달리 몰타에서 머무는 동안 강풍이 불어 바다가 뒤집어지긴 했어도 한반도 만큼은 아니어서 생각보다 얌전하다고 생각했던 지중해였다.
트리톤 분수는 낮과 밤이 다르고 분수가 나올때와 나오지 않을 때 느낌이 많이 달랐다. 분수가 있는 광장은 꽤 넓은 편이라 발레타의 다양한 행사들이 많이 열리는 곳이다. 여름에는 거대한 클럽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겨울에는 크리스마켓이 열리는데 야경이 예뻐서 사진 찍는 사람들의 단골 출사지로도 인기가 높은 곳이었다.
관광객들의 필수 인증샷
분수는 트리톤을 형상화 했는데 세 얼굴이 모두 시티게이트 정면을 향하고 있다.
야경이 훨씬 아름다운 트리톤 분수
분수가 있는 광장은 크리스마스 시장을 비롯해 다양한 행사가 열리는 곳이다.
+난공불락의 요새이자 바둑판의 계획도시
발레타는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난공불락의 요새도시'라고 할 수 있다. 발레타 자체가 오스만 트루크와 공방을 벌인 격전지로 몰타 역사뿐만 아니라 세계사에서도굉장히 중요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1565년 몰타 대공방전(great siege of malta)이 아니었다면 유럽의 이슬람화는 불 보듯 뻔한 일이었을 것이고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유럽이 됐을 것이다. 이 역사적 사건 덕분에 몰타는 유럽 사회에서 인정을 받았고 EU 국가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 정도 유럽사에서는 매우 중요하게 다뤄지는 사건이다. 이 내용은 나중에 쓰리시티즈를 여행할 때 따로 설명하겠다.
발레타는 1565년 몰타공방전이 있기 전까지 아무것도 없는 반도였다. 고대 수도였던 임디나에서 쓰리시티즈 중 한 곳인 비르구(birgu)로 천도 후 성 안젤로 요새(Fort Saint Angelo)를 세운다. 이후 몰타 성요한 기사단은 오스만의 침입에 대비해 발레타에 성 엘모 요새를 세우는데 1565년 몰타 공방전 승리 이후 본격적으로 발레타라는 도시를 건설하게 된다. 보통의 중세도시들이 원래의 기반 위에 하나씩 덧붙이며 영역을 넓혀간 것과 달리 몰타는 아무것도 없었던 곳에 철저한 계획도시를 건설하게 된다. 그것도 바둑판으로. 그때 만들어진 발레타는 2차 대전에 폭격으로 상당히 파손이 됐지만 그 모습 그대로 대부분이 복원돼 지금도 항공사진으로 보면 옛날 모습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건물이 생기고 좀 오래된 곳은 재개발되어 완전히 사라지고 탈바꿈하는 한국에서는 몇 백 년 전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다는 건 그저 부러울 따름이었다.
지금도 발레타가 만들어질 당시 그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는 몰타의 수도 발레타
발레타의 주요 출입구는 '시티게이트'로 불리는 곳인데 원래는 성문이 있었는데 4차례나 디자인이 변경이 있었다고 한다. 현재의 시티게이트는 다섯 번째로 이탈리아 건축가 렌조 피아노의 설계로 만들어졌는데 성문이 없어서 그런지 시티게이트가 잘 와닿지는 않았다.
옛날에 있었던 시티게이트는 현재는 사라지고 없는데 사진 왼쪽은 3번째 게이트로 사용됐던 성문이다.
시티게이트는 발레타라는 요새와 광장을 다리로 있고 있는데 첫 번째와 두 번째는 목조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다만 지금은 문 형태의 시티게이트가 아니어서 이곳이 언뜻 보면 요새라는 느낌이 잘 들지 않지만 시티게이트 다리 위에 서서 양쪽으로 바라보면 난공불락의 요새라는 말이 바로 와닿는다.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깊이 18m의 해자를 판 다음 성을 쌓아 올렸는데 나무로 만들어진 게이트는 다리를 들어 올리면 그 누구도 침입할 수 없는 곳이니 말이다. 또한 어찌나 성벽이 견고하고 단단한지 건축에 문외한이라고 하더라도 돌 하나를 그대로 깎았다는 것이 한눈에 보아도 느껴진다. 그야말로 발레타 전체가 요새라는 말에 수긍이 될 수밖에 없는데 그래서일까 유럽사회가 가졌을 오스만 트루크에 대한 두려움이 어느 정도였을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참고로 몰타의 대표적인 건축자재인 '라임스톤'은 몰타 땅을 파면 나오는 돌인데 처음에는 미색이었던 라임스톤은 시간이 지나면서 물을 머금은 곳은 시커멓게 변한다고 한다. 그래서 다소 얼룩덜룩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햇빛을 받으면 밝은 미색에 가까울 정도로 환하게 보이는 것이 라임스톤의 매력인 것 가다.
+ 발레타를 만든 사람은 발레타!!!
발레타의 도시건설은 1565년 오스만을 물리친 이듬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몰타 공방전을 승리로 이끈 당시 성요한 기사단의 수장이었던 장 파리소 드 발레트( Jean Parisot de Valette)는 다시 또 오스만이 쳐들어 올 것을 대비해 발레타라는 신도시를 건설하게 된다. 철저하게 전쟁을 대비해 만들어진 계획도시로 도시는 반듯반듯한 바둑판 모양으로 만들었고 현재도 그 모습은 그대로 남아있다. 그리고 난공불락의 요새로 만들어진 이곳은 그의 이름을 따 '발레타'로 명명됐다.
발레타의 초석을 놓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결국 발레타가 완성되는 걸 보지는 못하고 눈을 감았다. 무자(MUZA) 앞에는 발레타의 동상이 있는데 한 손에는 칼을, 또 다른 한 손에는 발레타의 설계도를 가지고 있는 모습이다.
발레타 건설의 초석을 놓은 성요한 기사단의 수장 발레타 이름을 본따 수도는 발레타가 됐다.
+ 성 엘모 요새( Fort St Elmo)
발레타의 입구가 시티게이트라면 입구에서 직선으로 약 1km를 걸어가면 맨 끝부분에 닿는 곳에 엘모어 요새가 위치하고 있다. 현재는 몰타 국립전쟁박물관(National War Museum)으로 운영되고 있는 곳이다. 기원전 2,500년경 청동기 시대부터 연대순으로 현재까지 몰타의 전쟁과 관련된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곳인데 성 엘모어 요새는 따로 포스팅할 예정이다.
몰타 전쟁기념관으로 운영되고 있는 엘모어 요새는 발레타 맨 끝부분에 위치하고 있다.
평소에는 박물관으로 운영되지만 프라이빗한 공간으로 빌려주기도 하고 여름에는 특별한 페스티벌이 열리기도 하는 곳이었다. 여름에는 이곳에서 오페라 페스티벌이 여름 축제로 진행됐는데 정말 특별한 느낌을 자아내는 곳이었다. (나중에 엘모어 요새 소개할 때 같이 소개할 예정이다.)
여름에는 다양한 페스티벌이 엘모어 요새에서 열린다.
+ 몰타 추모의 종(Siege Bell Memorial)
발레타 반도의 끝부분에는 엘모어 요새 외에도 꼭 한 번은 보고 갔으면 하는 곳이 있다. 그곳은 바로 '몰타 추모의 종'이다. 몰타는 세계 제2차 대전 당시 영국의 지배하에 있었는데 연합국이었던 몰타를 상대로 이탈리아 공군의 엄청난 폭격이 있었고 당시 희생된 사람이 무려 8천여 명이라고 한다. 나라의 규모가 작고 인구가 적은 몰타 상황을 생각하면 엄청난 사람이 죽었다고 볼 수 있다. 세계 제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0~1942년 사이에 몰타는 두 차례의 공격을 받았는데 몰타 전역이 엄청난 피해를 입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피해를 많이 입은 곳은 곳은 수도인 발레타이다.
이탈리아도 몰타를 점령해 전진기지로 삼으려고 했는데 페니키아, 로마의 고대로부터 중세의 십자군을 지나 현대사까지 몰타가 얼마나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곳이었는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어쨌거나 몰타는 잘 버텨냈고 영국 국왕인 조지 6세로부터 세인트 조지 십자 훈장을 받았는데 개인이나 단체가 아닌 나라에 수여한 건 전무후무한 사례라고 한다. 현재 몰타의 국기에는 그때 받았던 세인트조지 훈장이 새겨져 있다. 몰타 추모의 종은 세인트조지 훈장을 수여 50주년을 기념해 만들어졌다.
몰타 국기에는 세계 2차 대전에서 잘 버텨준 걸 기념해 영국국왕이 수여한 세인트조지 훈장이 새겨져 있다.
몰타 추모의 종은 사실 처음에는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르고 봤던 것 같다. 로우바카라 가든에서 아치 안에 종탑이 있고 일출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 예뻐서 그곳이 어디인지 무척이나 궁금해했었는데 그게 바로 몰타 추모의 종이 었다. 외관도 그렇고 모습이 너무 수수해 처음에 갔을 때는 별거 아닌가 보다 싶어 그냥 지나쳤던 곳이었다가 나중에 이곳의 역사를 알게 되어 일부러 다시 찾아갔었다.
계단을 올라서면 거대한 청동의 종을 머리 위로 마주하게 되는데 화염에 휩싸인 마돈나의 이미지로 장식되어 있어 그 의미가 남다르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곳에서 바라보는 잔잔한 바다를 마주한다. 이곳에서 지리상으로 직선으로 이어지는 끝에 지리상 터키가 위치한다. 오스만 제국에서 동지중해를 지나 몰타를 점령하면 서지중해를 넘어 유럽까지 바로 이어지게 된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로 손꼽히는 몰타가 지정학적으로 얼마나 중요한 곳이었는지 몰타의 역사를 알기 전에는 전혀 알지 못했다.
십자군 전쟁 당시, 세계 제2차 대전 당시 피비린내 나는 격전지였던 몰타의 지중해
세계 2차 대전을 기리는 추모의 종
추모의 종에서 반대편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내려가면 바다를 향해 누워있는 엄청난 크기의 청동상을 보게 된다. 너무나 크고 육중하고 경건함 마저 자아내는 청동상이라 몰타에서 정말 중요한 인물이 잠들어 있을 거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at the going down of the sun and in the moring we will remember them. (해가 질 때, 해가 뜰 때 우리는 그들을 기억할 것이다.)
동판에는 이런 글 귀가 새겨져 있는데 이 거대한 청동상은 그 누구도 아닌 세계 2차 대전 대 사망한 이름 모를 무명용사를 기리기 위한 청동으로 만든 병사였다. 우리로 치차면 현충원의 무명용사인 셈인데 지중해와 마주 보는 그 바다를 향하고 있다는 상징성이야 말로 어마어마하지 않은가.
엘모의 성과 추모의 종은 발레타의 가장 끝부분에 있어 일부러 보러 오지 않으면 이런 것이 있는지도 모르고 가는 관광객이 많을 수밖에 없다. 나는 한 번도 들어보지는 못했지만 매일 정오에는 종이 올린다고 하니 혹 발레타를 방문할 계획이라면 일부러라도 시간을 맞춰보는 것도 좋겠다.
청동으로 만든 무명 용사
덧. 볼 곳 많은 발레타를 도저히 한 포스팅에 담기에는 무리라 1편은 발레타의 역사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담았다. 발레타 두 번째 포스팅에서는 만나볼 이야기는 더욱 흥미로울 예정이니 기대해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