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K-pop으로 한국어를 배웠다는 사람을 보긴 했는데 어학연수를 하면서 진짜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될 줄 몰랐어요. 콜롬비아에서 온 친구들이랍니다.
프리인터미디어트에서 우여곡절이 좀 많아서 다른 반으로 이동해 간 첫날, 그 수업도 유일한 한국인은 나 혼자였다. 쉬는 시간에 갑자기 비슷하게 생긴 두 명의 여자가 한국어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한다. 깜짝 놀라서 어떻게 한국어를 아냐고 했더니 K-pop 팬이라고 하면서 특히 BTS를 좋아한다고 하는 게 아닌가.
브리티시 침공이라고 빗대어 얘기를 듣고 있는 BTS 아미 해외팬을 몰타에서 직접 만날 줄은 생각도 못했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느끼는 한국 문화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참 하다가 보여줄 게 있다며 스마트폰을 꺼냈다.
'오 마이갓!!!! 무궁화와 태극기잖아!!!'
"너 이거 알아?"
"응, 무궁화와 태극기"
무궁화가 너무 예뻐서 스마트폰 배경으로 깔았단다. 맙소사 외국인에게 살다가 무궁화꽃이 예쁘다는 이야기를 듣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여러 가지 디자인이 많았을 텐데 정말 귀엽고 깜찍한 것을 골랐구나 싶었다.
"디자인 이쁜 걸로 참 잘 골랐다."라고 말했더니 엄청 좋아라 한다.
칭찬에 힘입었는지 주섬주섬 뭘 꺼내는데 보니까 한국어 공부노트였다. 공책에 K-pop이라고 적혀 있는 게 궁금해서 물었더니 몰타에서 산 건 아니고 콜롬비아에서 샀다고 했다.
"문구점에서 파는 것이 아니라 K-pop 좋아하는 사람이 팬들을 위해서 만들어서 팔아."
자발적으로 k-pop 굿즈를 만들어서 파는데 그게 불티나게 팔린다고 했다.
사실, 이런 현상이 있다는 걸 뉴스나 유튜브로 보기는 했지만 실제로 이런 사람을 내가 몰타에서 만날 줄 상상도 못 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독학으로 틈틈이 익힌 한글을 보여주는데 너무나도 신기했다.
K-pop으로 한글을 배운다는 건 진짜였다!!!!!!!!
그녀의 노트를 보면서 영어도 이렇게 공부하면 되는구나 싶었다.
그녀의 이름은 안드레아. 자매 사이로 그동안 익힌 한국어로 인사를 해달라고 요청했더니 기꺼이~!!!
이전 포스팅에서 언급했다시피(https://brunch.co.kr/@haekyoung/102 ) 선생님 주도로 한국에 대해 소개한 후 친구들이 한국에 대한 관심이 폭발했다. 갑자기 한국이 궁금하다며 나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는데 그중 하나는 볼만한 한국드라마 추천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드라마를 즐겨보는 편이 아니었기에 외국 친구들에게 어떤 드라마를 소개해줘야 하나 고민이었다. 그랬는데 친구가 한국 드라마 50개를 추천하는 사이트가 있다며 보여주는 게 아닌가.
어떤 드라마를 소개하고 있는지 훑어 보니 1등은 당연히 '오징어 게임'이고 '사랑의 불시착', '스카이 캐슬', '빈센조', '나빌레라', '100일의 낭군님', '슬기로운 의사생활' '꽃보다 남자' 등 한국에서 인기 있었던 웬만한 드라마는 최신작부터 좀 오래된 것까지 알차게 소개하고 있었다. 이중 볼만한 것 몇 개를 추천해 주니 꼭 보겠다고 했다.
한국 드라마를 소개하는 콘텐츠가 있다는 것이 나로서는 굉장히 신기했다. 20대 내가 처음으로 싱가포르로 여행을 갔을 때 외국인이 나에게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그때 나는 south Korea가 아닌 korea로 말했는데 "North Korea? South Korea?"로 되묻는 게 아닌가.
그때서야 나는 실감했다. 한국이 분단국가라는 걸. 게다가 South보다 North가 앞에 나오고 남한보다 북한이 그들에게 더 인지도가 높다는 사실을. 그날 내가 받은 충격은 어마어마했다. 여행자유화가 풀린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고 해외여행을 하기 위해서 외교부에서 반공교육을 받아야만 했던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경험이 꽤 지배적인 나로서는 외국사람들이 한국드라마, 한국 음악에 열광한다는 것이 피부로 잘 와닿지 않았다. 특히 코로나 시절이라 더욱 그랬는지도 모른다.
그랬는데 k-pop으로 한국어를 배우고 볼만한 한국 드라마를 소개하는 사이트가 있다는 게 무척이나 뿌듯하면서 다소 격세지감으로 느껴지긴 했다. 이런 걸 보면 아무리 젊은 감각으로 산다 싶어도 나이가 많이 들었다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볼만한 한국 드라마를 소개하고 있는 사이트가 있을 줄은
몰타에서는 한국 문화를 아는 사람이나 한국 전반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사람을 만나기는 안드레아가 처음이었다. 다들 한국을 알기는 해도 나이가 30대 이상이고 주로 우리와 거리가 먼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이 많아서 아직은 아시아 문화나 한국에 대해서 잘 아는 편은 아닌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가끔 유럽에서 온 40대 혹은 50대 이상 남자의 경우 내 고향이 '울산'이라고 하니 현대자동차나 현대중공업을 출장으로 가봤다는 사람도 있었고 산업전반에 대해서는 알고 있는 사람들이 더러 있기는 했다.
몰타와 런던은 분위기가 좀 많이 달랐다. 몰타에서 만난 친구들은 한국을 좀 생소하게 생각하는 분위기였다면 런던은 완전히 상황이 달랐다.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첫 반응이 '원더풀'로 시작했다. 그리고는 어김없이 '나 지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보고 있다'면서 한국 드라마, 영화에 대해서 줄줄줄줄.. 나는 그런 상황이 너무도 신기했다. 마치 외국인이 많이 없던 시절 미국인을 만나면 마이클 잭슨도 알고 누구도 알고 등 자신이 아는 미국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느낌이랄까. 어쨌든 내가 느낀 런던에서 분위기는 그랬다.
그리고 가장 다른 점은 영화와 엔터테인먼트 어휘수업시간이었는데 '오징어 게임'을 교재로 사용한다고요!!!! 게다가 스퀴드 게임 본 사람 이랬더니 1~2명을 제외하고 (그중에 나도 포함 ㅠㅠ) 다 본 것이 아닌가... 와~ 한국이 이렇구나를 실감하던 순간이었다.
EC 런던에서는 수업교재로 오징어 게임이 타이틀로
그중 몰타와 런던을 통 틀어서 받았던 질문 중에 가장 난감한, 가장 독창적인 질문은!!!!!
"김정일은 왜 맨날 저런 색깔과 디자인의 옷만 입는 거냐?"였다.
"@.@"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한번도 궁금하다 생각해본 적이 없는 질문에 적잖이 당황을 했다.
와- 외국 사람들 시선에서는 저런 게 궁금하구나 정말 새삼스러운 순간이었다.
어학연수는 영어만 배우는 게 아니라 친구들을 통해 다른 나라의 문화에 대해서도 이해하고 알아가는 시간이기도 하다. 내가 한국문화 전도사이듯 나도 그들을 통해서, 그들 나라에 대해서, 그들 나라의 문화에 대해서도 관심과 흥미를 가지게 됐다. 콜롬비아, 멕시코, 브라질, 칠레 등에 살고 있는 친구들을 보기 위해 한 번도 가보겠다 생각도 안 해본 라틴아메리카로 여행을 꿈꾸고 있다.
덧. 어학연수가 아니었다면 도저히 해볼 수 없는 경험이다. 외국에서 한 달 살기도 좋지만 어학연수를 추천하는 이유기도 하다.
+ 다음 이야기 : 수도 전체가 세계문화유산, 발레타
(발레타는 할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그동안 몇 번 쓰려다가 계속 미뤘는데 이번에는 꼭 보여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