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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작가 정해경 Jun 30. 2023

[몰타트레킹] 로만배스, 로마 목욕탕을 찾아서

몰타 어학연수 제2장 #2 몰타트레킹(3) 로마 목욕탕 

50대에 어학연수는 핑계고   


제2장 프리인터미디어트 몰타  

#2 몰타트레킹(3),  몰타에 남은 카르타고와 로마의 흔적  


몰타에 오자마자 콜롬비아 친구들과 함께 임디나와 딩글리클리프로 트레킹을 다녀왔는데요. 이제 본격적으로 몰타 트레킹이 시작됩니다. 몰타에 남아 있는 2천 년 전의 흔적들로 안내하겠습니다. 



+ 몰타에 로마 목욕탕이 있다고? 


"언니, 트레킹 갈래요?" 

ESE를 다니는 J가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몰타에서 특별한 장소를 알려줬는데 그곳은 바로 '로만배스(Roman Baths)', 즉, 몰타에 로마 목욕탕이 있다고 했다. 로마의 유적이 왜 몰타에 있나 의아할 텐데 몰타에서 지내다 보니 의외로 로마 유적이 크게 남아 있지 않은 게 더 신기했다. 


여기서 잠깐! 몰타의 역사를 한번 살펴보자. 


 몰타는 우리가 역사시간에 배운 포에니 전쟁 때 카르타고의 침입을 받은 곳으로 카르타고의 지배를 받았다. 이후 지중해 패권이 카르타고에서 로마로 넘어가면서 몰타는 로마의 속국이 됐다. 대략 4세기 정도까지이니 우리로 치면 신라시대라고 할 수 있다.  BC 218년에 시작된 로마 지배는 395년 로마가 동서로 분열되면서 몰타는 동로마에 속하게 된다. 몰타의 역사가 곧 지중해의 역사인 셈이다. 누가 지중해의 패권을 차지했는지는 몰타의 입장에서 보면 누구에게 지배를 받았는지로 귀결된다. 


유럽 곳곳에 남아 있는 로마의 유적이 몰타라고 없겠는가!  싶지만 눈에 띄게 로마 유적지라고 하는 건 임디나의 로마의 집(Roman Villa) 정도인데 그마저도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었다. 몰타에서 버스를 타고 다니다 보면 허술하지만 수도교가 남아 있는 것을 볼 수도 있는데 몰타에서는 유적지도 뭣도 아니었다. 그런 상황이니 '로마 목욕탕으로 트래킹'이라는 말에 눈이 번쩍 띄었다.   


로만배스(Roman baths)는 세인트폴스 해변 근처에 위치하고 있다. 고조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시르케로 가는 버스(222번)를 타면 세인트 폴스를 지나간다. 버스정류장 로티(Roti)에서 출발해 이것저것 구경도 하고 사진을 찍고 다녀도 1시간이면 충분히 다녀올 수 있는 곳이었다.  


구글 지도에 'Roman baths'로 검색하면 위치가 표시되기에 버스 정류장에서는 구글 지도를 따라갔다. 계속 주택가로만 걷고 있으니 이런 곳에 로마목욕탕이 있기나 할까 의심이 드는 찰나에 'The Roman Road'라고 적힌 표지판이 나왔다. 약간 경사가 있는 오르막 길이 계속 이어졌다. 


길은 관리가 거의 안 되고 있는 느낌인데 'Heritage Trail'이라고 안내를 하고 있는 걸 보니 이곳에 로만배스 외에도 문화유적이 있나 보다 싶었다. 


그렇게 얼마 걷지 않아 해안선이 보이는 동네에서 가장 높은 곳에 도착했다. 날씨가 좀 흐린 날이 아니었다면 진짜 아름다운 지중해 바다색을 볼 수 있었겠다. 여름이면 세인트폴스 해변도 관광객에게 엄청 인기가 많은 곳이다. AD 60년에 사도 바울이 로마로 압송되던 중 풍랑을 만나 몰타에 상륙하게 됐는데 바로 이 해변이다. 그래서인지 유독 이곳은 세일링이나 윈더스핑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 Cave Dwelling  

언덕을 올라서자 만나는 이곳이 로만배스인 줄 알았다. 벽에 구멍이 숭숭숭 요상하게 생긴 건 뭐지? 한참을 신기해하고 있는데 한쪽에 낡은 안내판이 붙어 있다.  맙소사! 포에니 - 로마 시절에 사용했던 양봉장이란다. 


'세상에 2천 년 전, 카르타고인과 로마인은 양봉을 이렇게 했단 말인가' 

 우리와 다른 양봉문화에 입이 떡 벌어졌다.  


몰타의 특산품 중 하나는 '꿀'이다. 사도행전 28장 1절에도 ' 우리가 구원을 얻은 후에 안즉 그 섬은 멜리데라 하더라. '라고 몰타의 라틴어 이름이 공식적으로 쓰였다. 어떤 사람들은 몰타의 라틴어 이름인 'MELITA'가 라틴어로 꿀(Mel)에서 만들어졌다고 말하기도 한다. 일전 글에도 소개했지만 수도인 발레타 입구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국회의사당 건물의 외관이 바로 벌집 모양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이런 것으로 추정하건대 몰타는 옛날부터 양봉을 하고 있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이곳에는 총 4개의 양봉장이 있었다고 한다. 세월이 지나면서 훼손이 많이 됐고 그중 원형이 잘 남아 있는 것 중 하나를 복원한 것 같았다. 어쨌거나 2천 년 전에 사용했던 양봉장을 그대로 볼 수 있는 게 너무 신기했다.

2000년 전 포에니 시절의 양봉장


순례의 십자가, 아마도 사도 바울을 기리는 듯 


양봉장 위쪽으로 올라서니 바다가 더 잘 보인다. 이제부터는 평평한 길을 걷게 된다. 딱히 어디랄 것 없이 사방팔방이 다 뚫려 있는 들판인데 길이 나있어서 그 길을 따라 죽 걸었다. 이곳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사람도 볼 수가 있었다.  


+ Farmer's Hut

얼마 걷지 않아  돌로 쌓은 허름한 건물이 또 나타났다. 저곳이 로만배스인가 하면서 다가가니 포에니시절에 사용했던 곳으로 추정되는 오두막을 복원해 놓은 곳이었다. 특이한 점은 원래 사용했던 것과 동일한 돌을 사용해서 복원했다고 적혀 있는데 믿기지가 않았다. '포에니 시절에 사용하는 돌이 아직도 있다고, 그게 말이 돼?'라는 질문이 절로 나왔다. 느낌으로는 경주가 땅만 파면 유적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는데 몰타도 왠지 그런 기분이 들었다. 

포에니 시절 유적


위쪽으로도 올라갈 수가 있어 올라가 보니 오두막의 구조가 어떤지 한눈에 들어온다. 몇 개로 나뉜 공간이 보이는데 설명에 따르면 하나는 부모용, 하나는 어린이용, 하나는 동물용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돌을 쌓아 만든 집의 특성상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불을 피우면 따뜻하니 들판에서 농사를 짓던 사람들이 살기에는 안성맞춤인 집이었겠다. 실제로 이곳은 적어도 1930년 대까지는 사람이 살았던 곳이라고 한다. 아궁이처럼 보이는 건 사람들이 밥을 해 먹기 위해 이용하던  '케누르'로 돌로 만든 밥솥이라고 설명해 적혀 있어서 빵 터졌다. 


제주의 돌담이 특별한 장치 없이 돌로만 쌓는 것처럼 이 집 역시 정교하게 돌로만 쌓아 올린 것이 특징이었다. 지붕으로 떨어지는 빗물을 이용해 습도를 조절하도록 만들었다고도 한다. 고대 유적지를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은 각 대륙마다 문명이 발달하는 시기는 모두 다르고 교류가 없었는데도 문명은 비슷한 순서로 발전을 해왔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건 다 비슷하다는 걸 눈으로 확인할 때마다 깜짝 놀라게 된다. 


허허벌판에 집을 짓고 맹수를 피하고 비와 더위 그리고 추위를 피하고 집안에는 사랑하는 가족들과 동물들이 있는 고대인의 삶이 눈앞에 파노라마처럼 상상의 나래를 편다. 로만배스를 보러 나왔다가 뜻하지 않게 포에니시절 카르타고인들이  살았던 흔적을 만날 줄은 생각도 못했다.

1930년 대 까지는 사람이 살았다고 하니 족히 2천 년은 사용했던 집인 셈. 


오두막 한쪽에 돌로 만든 화살표  'Heritage Trail'이라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들판을 한참을 걸어가다가 로만배스가 있는 방향인 오른쪽으로 걷기 시작하니 다시 집들이 나왔다. 길이 왜 이래? 하고 투덜거리려던 찰나 다행히 간판이 보여 그 길을 따라 내려가니 들판길이 이어진다. 


얼마 걷지 않아 발견한 'Roman Baths'! 표지판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면 로마목욕탕이 있다고 표시되어 있었는데... 설마 싶었다. 무슨 목욕탕이 이렇게 절벽에 있는 거냐고.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위치에 있는 로마 목욕탕은 아니었다. 


+ Roman Baths 

그렇게 계단을 따라 내려오니 와- 이런 절벽에 목욕탕을 지었나 싶어 믿기지 않았다. 일부 복원된 곳인데 옆쪽은 반이나 허물어져 있는 채로 그대로 있었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이런 어마어마한(?) 유적을 이렇게 방치를 한다는 게 말도 안 된다 싶은데 몰타는 그랬다. 


사실 몰타에서는 이렇게 쓰러지지 직전에 관리도 안 된 곳을 상당히 많이 보게 된다. 특히 섬의 외곽으로 나가면 숱하게 널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양봉장'에서 봤다시피 몰타는 역사가 수천 년이나 된 곳인데 나라가 작고 경제력이 안 돼서 그런지, 아니면 고대 유적이 너무 많아서인지, 매장유물을 발굴하고 관리한다는 느낌은 크게 들지 않았다. 


이곳은 2000년 경에 이 일대를 공사하다가 우연히 발견됐는데 확인 결과 로마 목욕탕으로 판명이 났다. 설명을 보니 기원전 500년 포에니 시절 카르타고인은 이곳에 매장을 위해 만들었는데 로마 시절에는 목욕탕으로 사용을 했고 이후에는 농가 또는 거주지로 사용이 됐다고 적혀 있었다. 실제로 안으로 들어가 보니 두 개의 방이 있는데 로마 시절에는 뜨거운 탕(caldarium )과 미지근한 탕(tepidarium)의 흔적이라고 했지만 가장 최근에 거주지로 사용한 탓에 목욕탕보다 생활공간의 느낌이 더 강했다. 


목욕탕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물이 필요할 텐데 계곡으로 흘러내려가는 물을 담아 놓은 거대한 저수조가 위에 있었다고 한다. 벽면을 깎아 놓은 곳에는 헤라클레스 동상이 있었을 가능성도 있고..           



처음에는 이곳에서 도로변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는 줄 알았는데  미스트라 밸리(Mistra Vally)가 내려다보이는 가파른 절벽이라 아래로는 내려갈 수도 없었다. 도대체 목욕을 얼마나 좋아했으면 이런 절벽에 바위를 파고 깎아내서 목욕탕을 만들었을까 싶어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뒤를 돌아보는 순간!  아치형의 문을 통해 보이는 셀문 궁전(Selmun Palace)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절벽 안에 들어앉아서 목욕을 하면서 이런 경치를 누리는 로마인의 멋스러움. 역시 로마인이구나 싶었다.


 원래 계획은 로만배스에서 걸어서 다음 장소로 이동할 계획이었다. '로만배스'라는 이름 하나만 보고 길을 나섰기에 여기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었다. 구글지도를 어디에도 계곡, 혹은 절벽이 있다는 표시가 없었는데 절벽에 로반배스가 있는 것에 적잖이 당황했다. 결국 다음 목적지까지는 큰 도로변으로 나가서 버스를 타고 이동하기로 했다. 일단 큰 도로를 따라 내려오고 보니 우리가 걸었던 것은 고작 버스 한 정거장! 하긴 트래킹 하는데도 1시간 남짓이었니. 이후 몰타에서 살면서 이 길을 여러 번 지나다녔는데 확실히 한번 걸었던 길이라 그런지 기억에 오랫동안 남았다. 



+ 멜리에하 맛집, 비치컬럽 (Mellieha, Blu Beach Club) 

금강산도 식후경. 버스를 타고 비치 근처의 한 레스토랑으로 이동했다. 분위기도 좋고 가격도 합리적이고 무엇보다 다양한 음식이 있었는데 해산물 플라터(seafood Platters)를 시켰다. 몰타에 와서 레스토랑에서 처음 먹는 해산물이었다. 


플라터(Platters)는 말하자면 큰 쟁반에 이것저것 다양한 음식이 한꺼번에 나온다는 의미인데 우리로 치자면 '모둠' 정도로 생각하면 되겠다. 다양한 해산물을 조금조금씩 맛볼 수 있었는데 멸치튀김이 은근히 맛있었다. 

바닷가 근처 레스토랑에서 먹는 해산물


점심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서빙하는 젊은 사람이 (20대로 추정) 갑자기 한국사람이냐고 묻는다. 한국사람인 걸 어떻게 알았냐고 하니 요즘 K-drama에 푹 빠져 있다고 하며 최근에 정말 재미있게 본 드라마를 보여주는데 '사내맞선'과 '파친고'였다. 맙소사 나는 보지 못했던 '사내맞선'을 봤단 말인가..


코로나 기간에 남미 쪽도 K-컬처가 대박이 났다고 뉴스에서 보기는 했지만 몰타에서는 거의 실감을 못했다. 내가 다니고 있는 30+는 아무래도 나이대가 있다 보니(친구들이 대체로 40대) 그들은 BTS나 블랙핑크도 모르고 한국 드라마는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랬는데 역시.. 몰타의 젊은이들에게도 k-드라마는 인기 만점이었다. 


2천 년 전에 살았던 카르타고인과 로마인의 흔적을 볼 수 있다는 게 몰타가 얼마나 역사가 긴 나라인지 새삼 실감했다. 날씨는 흐리고 바람은 다소 거칠지만 그런 바닷가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좋은 하루였다.  


덧. 구글지도 하나만 보고도 트래킹이 가능하다는 걸 이날 몸으로 느꼈고 이후, 나의 거침없는 몰타의 트래킹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 다음 이야기 : 시금치 먹던 영화 '뽀빠이' 촬영지가 몰타에 있었네. 



'50대에 어학연수는 핑계고' 1장은 매거진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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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정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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