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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작가 정해경 Aug 28. 2023

[볼로냐여행]아무 정보 없이 떠나는 볼로냐는 어땠을까?

몰타 어학연수 제2장 #25 볼로냐,  발 닿는 대로 가보는 거지. 

50대에 어학연수는 핑계고   


제2장 프리인터미디어트 몰타  

#25 아무 준비 없이 이탈리아 볼로냐 여행


볼로냐에서 열리는 수채화 페스티벌 참가가 목적이었기에 볼로냐에서 무얼 보고 무엇을 하고 무엇을 먹을 것인지는 여행 정보가 하나도 없는 채로 다녀온 볼로냐입니다. 아무 준비가 없어도 여행이 괜찮을 수 있구나 싶었던 볼로냐에서 제가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 아무 정보 없이 볼로냐로 

여행작가라는 직업의 특성상, 일로 다니는 여행은 여행 떠나기 전에 이미 책 한 권을 써도 될 정도로 빼곡한 여행 정보를 가지고 여행을 시작한다. 말이 좋아 여행이지 가끔은 체크리스트 목록을 체크하는 기분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런 여행이 너무 지겨웠지만 습관이란 게 어찌나 힘이 센지 충전을 위해 떠난 여행에서도 혹시나 봐야 할 것을 몰라서 놓칠까 봐 전전긍긍했다. 


갑자기 볼로냐로 오라는 전화 한 통에 아무 계획도 없이 가게 된 볼로냐는 평소 같았으면 밤을 새워서라도 무엇을 봐야 하고, 무엇을 먹어야 할지 리스트를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수채화 페스티벌이 목적인 데다가 어학연수가 3개월로 접어들면서 공부할 양도 많아지고 있었기에 볼로냐가 어떤 곳인지 알아볼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다. 볼로냐는 '국제 도서전이 열리는 도시'라는 것 외에는 내 생에 처음으로 여행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볼로냐로 떠났다.  떠나기 전날 급하게 검색을 해보니 대학, 회랑, 두 탑 등등 볼로냐는 생각보다 꽤 많은 볼거리가 있는 곳이었다. 


▶ 볼로냐 수채화 페스티벌 https://brunch.co.kr/@haekyoung/150


+ 이탈리아 여행에서 잘 모를 때는 무조건 도시의 메인 광장으로 

수채화 페스티벌은 3일 동안 열렸고 마지막 날 일정이 파브리아노 공장 견학이었다. 교수님과 일행들은 공장견학은 안 가기로 했기에 갑자기 하루의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호텔에서 아침을 먹으면서 다들 내 입만 쳐다본다. 나도 볼로냐는 처음인 데다가 정보가 하나도 없는 상황이니 답답하긴 마찬가지였다. 이럴 때 방법은 하나다. 도시의 메인광장으로 가는 것. 다른 나라는 잘 모르겠지만 특히 이탈리아의 경우 대부분의 볼거리들은 도시의 메인 광장 주변에 거의 몰려있다고 보면 된다. 호텔에서 택시를 타고 마죠레 광장(Piazza Maggiore)으로 갔다. 

마조레 광장 

 

마조레 광장 / 지도출처 : 구글어스 

볼로냐의 메인광장인 마조레 광장은 공간이 한눈에 다 보이는 여느 광장과는 좀 달랐다. 광장 중간에 건물이 하나 있고 넵튠분수, 산페트로니오 성당, 볼로냐 시청으로 사용되고 있는 아꾸르시오 궁전, 살라보르사 도서관 등이 동서남북으로 둘러싸고 있는 구조였다. 'ㄱ'자로 꺾인 느낌이라 광장이 하나가 아니라 두 개처럼 느껴졌다.  


대학의 도시라서 그런지 관광객이라고 생각했던 젊은이들 대부분이 볼로냐로 유학온 학생들이었다. 덕분에 중세의 도시는 젊은 느낌이었다. 



볼로냐의 중심 마조레 광장


+ 미완성으로 남은 산페트로니오(San Petronio) 성당 

이 광장에서 가장 중요한 곳은 산페트로니오 성당이다. '짓다 말았나?' 보자마자 드는 생각이었다. 아랫부분은 흰색과 분홍색의 대리석이고 위쪽은 쌓아 올린 벽돌만 남아 있는 성당의 정면을 마주하니 뭔가 부조화스럽다. 이런 곳이 볼로냐를 대표하는 성당이라는 게 맞나 싶을 정도였다. 중세에 지어진 성당들이 극강의 화려함으로 신의 권위가 어떤 것인지 보여주고 있는 것과 너무 다른 문법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외관이 너무 볼품없다는 생각이 드니 안에 뭐 별거가 있겠냐 싶어 그냥 지나치려다가 문이 열려 있어 심드렁해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성당 안은 엄청 넓었고 높은 천장으로 뻗어 있는 분홍분홍분홍 공주색깔의 대리석이 오묘했다. 따스하면서도 압도된다. 이런 반전이 있나 싶었다. 심플한데 힘을 줘야 하는 부분에는 화려한 바로크양식으로 확실하게 힘을 줬다. 돈 많은 부자가 티를 내지 않고 있는데도 돈 많은 티가 난다고나 할까. 묘했다. 

산 페트로니오 성당의 외관 
산페트로니오 성당의 내부 


산페트르니오 성당의 외관이 미완성으로 남은 건 다 이유가 있었다. 볼로냐에서 산페트로니오 성당을 지을 때 바티칸의 성베드로 성당보다 더 크게 짓고 싶었지만 로마 교황청에서는 허락할 리 만무했다. 대신 학문을 연구하는 대학 설립을 허가했던 것. 중세에는 로마 교황청의 허가가 있어야 대학으로 인정받았다. 이런 연유로 성당 대신 지어진 볼로냐의 대학은 유럽 최초의  대학이라는 타이틀을 달게 됐고 볼로냐는 대학의 도시가 될 수 있었다. 이런 이유로 산페트르니오 대성당은 반은 대리석이고 반은 벽돌인 미완의 상태로 남게 됐으니 성당과 대학을 맞바꾼 셈이다. 


'산페트로니오'라는 성당 이름이 붙은 것으로 보아 볼로냐의 수호성인이지 않을까 싶었다. 짐작대로 그는 불로냐의 수호성인이었다. 또한 볼로냐 8번째 대주교로 지금도 볼로냐 시내 곳곳에서 그의 동상을 볼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성당 안에 주교의 젊은 시절인지는 모르겠으나 실물 크기 그대로 복원해 놓고 전시를 하고 있었다. 솔직히 예수를 복원한 줄 알았다. 이 사실만으로도 '산페트르니오'가 볼로냐에서 어느 정도의 존재감인지 알 수 있었다.  


뒤늦게 안 사실은 이 성당의 천장 쪽에 둥근 창이 많은데 이 중 하나의 창이 해시계이자 자오선의 역할을 한단다. 정오인 12시가 되면 이 창으로 비치는 해를 따라 자오선이 그어진다고 하는데 알았다면 확인을 해봤을 것이다.  

성당에는 산페트르니오 동상과 복원해 놓은 산페트로니오가 있다.
멘 왼쪽의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이 자오선 역할을 한단다. 



+ 마세라티 심벌, 넵튠분수(Fontana del Nettuno)

마조레광장에서 산페트로니오 성당보다 더 먼저 본 것은 넵튠분수다. 사실, 이때만 해도 넵튠분수는 크게 내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넵튠분수 앞에서 만나자'는 말이 볼로냐에서는 흔해 마조레광장을 넵튠광장이라고도 부른다는 것 외에 이 분수와 분수를 만든 조각가가 그렇게 유명한 것인지도 몰랐다. 볼로냐에 대한 정보가 워낙 없었던 상태였기에 넵튠이 들고 있는 삼지창이 슈퍼카인 마세라티의 심벌인 줄도 몰랐다. 하긴, 볼로냐가 또 하나의 슈퍼카 람보르기니의 도시라는 것도 뒤늦게 알았으니 말이다. 


삼지창을 들고 서 있는 넵튠분수가 가동되니 뜨악했다. 다소 민망한 자세의 인어공주는 손이 가슴을 움켜쥐고 있는데 그곳에서 물이 뿜어져 나오는 것이 아닌가. 작품은 작품으로 봐야 하고 더군다나 공공분수시설인데 나만 당황했다. 아, 촌스러워. 실은 이 인어공주 때문에 이 넵튠분수가 더 유명해진 것도 있다고 한다. 


뒤늦게 이 분수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이 분수를 만든 잠볼로냐(Giambologna)가 얼마나 대단한 조각가인지 알게 된 건 피렌체 여행 때문이었다. 피렌체 시뇨리아 광장에도 같은 이름의 넵튠분수가 있지만 듣기론 피렌체 사람들에게 넵튠분수는 큰 인기가 없다고 했다.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가장 중요한 이유는 넵튠의 얼굴이 메디치 가문의 코지모 1세와 너무 똑같이 닮아서 대놓고 찬양한 작품이라서 그렇다고 했다. 하지만 역사적 배경을 모르는 내 입장에선 피렌체 분수보다 볼로냐의 분수가 훨씬 아름다웠다. 시뇨리아 광장의 분수를 만들 때 잠볼로냐도 응모를 했지만 떨어졌고 이후에 교황 비오 4세( Pius PP. IV)의 의뢰를 받아 볼로냐에 그때 만들려고 했던 분수를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잠볼로냐는 메디치 궁전의 가장 중요한 조각가 중 한 명으로 피렌체에서 가장 많은 활동을 했고 두각을 나타냈다. 피렌체 시뇨리아 광장의 '코지모 1세의 청동기마상'과 광장의 한쪽에 위치한 로지아 데이 란치(Loggia dei Lanzi)의 '사비나 여인의 강탈'이 그의 작품이다. 사비나 여인의 강탈이라는 작품은 대리석 하나를 통째로 깎아서 만든 조각품으로 각 인물들이 서로 엉켜 휘몰아치듯 하늘로 향하고 있다. 심미안이 없는 사람이어도 그 조각만은 시선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조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볼로냐에서 넵튠분수를 보지 않았더라면 피렌체에서 잠볼로냐에 그 정도로 감동받지 못했을 것이다.  


게다가 그때는 보이지도 않았던 분수 중앙에 메디치 가문의 문장이 있어 깜짝 놀랐다. 메디치 가문에서 배출한 교황 중에 비우 교황은 없는데 너무 이상해서 찾아보니 비우 4세의 이름이 조반니 안젤로 데 메디치(Giovanni Angelo de Medici)였다. 이름만 메디치일 뿐 메디치가와는 상관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교황이 되고 난 다음 당시 피렌체를 주름잡고 있었던 메디치 가문의 문장을 사용했고 당시 메디치 가문의 공작이었던 코지모 1세도 교황과 알아두면 나쁠 것 없다 싶어 아무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 

볼로냐의 넵튠분수 잠볼로냐 작, 
피렌체 넵튠분수, 바르톨로미오 아마난티 작
피렌체 잠볼로냐 작품 왼쪽이 사바나 여인의 강탈이고 오른쪽이 코지모 1세의 동상이다.  


볼로냐에 온 것은 여행보다는 수채화 페스티벌 참석이 목적이었기에 우리처럼 견학을 가지 않은 사람들이 오후가 되니 광장으로 속속 몰려들었다. 교수님도 오후가 되자 광장에 앉아 그림을 그렸다. 수채화 페스티벌에서 만났던 작가도 우리 옆에서 그림을 그렸다. 단체로 온 일행들은 넵튠분수에 앉아서 그림을 그렸다. 잠깐 얼굴을 봤을 뿐인데도 너무나 반가웠다. 언젠가 나도 카메라를 놓고 펜과 물감만 가지고 떠나는 여행을 꿈꾼다. 

볼로냐 광장을 그림에 담고 있는 사람들 


+ 이탈리아는 무조건 돈 내고 화장실, 

내가 잠시 깜빡하고 있었다. 이탈리아는 무조건 돈 내고 화장실을 가야 한다는 것을. 광장에서 교수님과 일행들이 한참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 화장실이 너무 가고 싶었다. 어디를 둘러봐도 공공화장실은 보이지 않았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광장 주변으로 시청도 있고 도서관도 있으니 공공건물 화장실은 무료다. 마침 도서관 앞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기에 도서관 구경도 할 겸 화장실도 쓸 겸 안으로 들어갔다. 이탈리아는 도서관 건물도 남다르구나 감탄한 것도 잠시 급한 볼 일부터 해결해야겠기에 화장실로 갔더니. 아... 글쎄 지하철처럼 자판기에서 티켓을 끊어야 화장실 이용이 가능했다. 금액은 0.5유로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동전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동전교환자판기까지 있었다. 공공도서관 화장실조차 돈을 내고 가야 하는 건 정말 적응 안 되는 이탈리아 문화였다. 


화장실에 살짝 기분이 상해 천정만 보고 그냥 나왔는데 실은 사진에서 보듯 바닥이 통유리로 된 부분이 매우 중요한 곳이었다. 아스투리아 유적과 로마유적이 이 건물 아래에 있다고 한다. 도서관 한쪽의 계단을 통해 내려가 볼 수 있다고 하는데 몰라서 못 보고 온 것이 아까웠다. 

공공도서관 화장실도 돈 내고 사용해야 한다.


+ 최초의 해부학 실습, 볼로냐 대학  

두 개의 탑이 유명하다고 하니 탑을 보기 위해 걸었다. 워낙 높은 탑이라 굳이 구글지도를 볼 필요가 없었다.  회랑을 따라 한참 걷는데 회랑 안쪽으로 독특한 건물이 있었다. 중정을 두고 1층, 2층 모두 아치형의 구조로 지어진 건물이 내 호기심을 자극했다. 일행들은 잠깐 안쪽으로 들어왔다가 휙- 보고는 그냥 나갔다. 어차피 탑으로 가는 길목이었기에 나는 건물을 좀 보고 탑으로 가겠다고 했다. 


이 건물이 아르키진나지오 도서관(BIBLIOTECA DELL'ARCHIGINNASIO)이라는 걸 나중에 알았다. 1층 회랑을 따라 한 바퀴 돌아보는데 뭔지 모르겠지만 굉장히 중요한 곳인 것 같았다. 벽면마다 어찌나 많은 문양들이 붙어 있는지 징그러울 정도였다. 내용을 모르니 도대체 이곳이 뭐 하는 곳이길래 이렇게 많은 문양들이 덕지덕지 붙어있고 저 문양은 무엇인지 궁금증만 키웠다. 2층으로 올라가니 한눈에 봐도 희귀본이다 싶은 오래된 책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혼자만의 여행이었다면 기필코 이곳 구석구석을 둘러봤을 테지만 일행들과 함께 하고 있는 데다가 일행들은 전혀 관심이 없어 어쩔 수 없이 급하게 중요하다 싶은 곳만 사진과 영상을 찍은 뒤 탑으로 향했다.  


이곳이 어떤 곳인가 하니, 바로 산페트로니오 성당과 맞바꾼 대학이었다. 1088년에 지어진 유럽 최초의 대학, 볼로냐 대학이 바로 이곳이었다. 벽면에 수없이 빽빽하게 붙어 있던 것은 이 대학에서 공부했던 학생들의 가문의 문장이었다. 유럽 각지의 내로라하는 가문의 자제들은 모두 이 볼로냐 대학교로 유학을 왔다고 하니 혹자는 이곳을 '유럽판 스카이 캐슬'이라고도 별명을 붙이기도 했다. 세계사에서 이름을 한 번이라도 들어본 가문들의 문장은 모두 여기에 있다고 보면 된다. 대략 6천 여개 가문의 문장이 있고 졸업생의 명단이 현판으로 남아 있다. 


1층과 2층은 일부는 무료관람이었는데 돈을 내고 입장하는 곳에 엄청 중요한 방이 있다. 세계 최초로 시신을 가지고 해부학을 진행했던 방이다. 볼로냐는 '법'으로 유명한 곳이지만 실제 인체를 해부할 수 있어 해부학도 그에 못지않게 유명했단다. 현재는 도서관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보관하고 있는 장서만 85만 권에 달하고 16세기 판본, 여러 가지 리플릿, 서신 등 다양한 자료를 보관하고 있어 사료적으로도 굉장히 가치가 있는 곳이라고 한다. 우연히 얻어걸린 상황이라 뭔지도 모르고 들어간 곳이었지만 이곳을 지나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싶다. 

유럽 최초의 대학이었던 볼로냐 대학교에 벽면에는 유럽 가문의 문장이 약 6천 여개가 있다.  
현재는 도서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 볼로냐 회랑은 세계문화유산

유럽 도시들의 회랑이 보편적이어서 처음에는 볼로냐도 그런가 보다 생각을 했는데 어느 순간 '회랑'이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랑의 길이만 다 합하면 총 40km에 달한다고 한다. 이러니 볼로냐 회랑이 세계 문화유산에 지정된 것도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이 회랑이 생긴 건 바로 볼로냐 대학 때문이다.  세계 각국에서 내로라하는 가문에서 유학을 왔으니 귀한 자제들이 걸어 다닐 때 비를 맞지 않도록 회랑을 만들었다고 했다. 또 세계 각지에서 볼로냐에서 공부하기 위해 학생들이 몰리다 보니 숙소가 부족했고 학생들의 숙소를 회랑을 만든 위에 만들었단다. 심지어는 교실도 부족해 이 회랑에서 수업을 하기도 했다고 하니 대학이 도시 전체에 미치는 경제적인 효과도 어마어마했겠다. 

약 40km에 달하는 볼로냐의 회랑


흥미로운 사실은 우리나라에서 한참 도시재생에 주목할 때 그 사례로 든 것이 이 볼로냐의 회랑이었다. 당시의 기사를 보니 "회랑처럼 볼로냐의 도심 전체를 구석구석 연결해 주는 이 독특한 아치형의 처마 역시 시민들의 합의로 지켜냈습니다. 건물 사유지인 1층의 일부에 이런 '벽 없는 복도'를 만들도록 의무화하는 도시계획을 시민들이 합의해 결정한 것입니다. 지난 1985년부터 만 6천여 개에 달하는 예술형 공방을 슬럼화된 도심 뒷골목에 이전시킨 재개발 사업이 원동력이 됐습니다."라고 적고 있다.  


실제로 뒷골목에도 회랑이 있었는데 그저 내 눈에는 특이한 건축방식이다 싶어 끌리는 대로 사진에 담았다. 그리고 이 부근에는 패션, 인쇄, 주얼리, 가방 등 작은 공방들이 밀집되어 있었다. 액자가 잔뜩 걸려 있는 곳을 들어가 보니 인쇄기에서 작가가 원하는 색감으로 현장에서 직접 프린터를 한 작품을 판매하고 있어 매우 흥미로웠다. 이런 곳들이 도시재생의 결과물로 만들어진 곳이었다니 뒤늦게 놀라움으로 입틀막이었다. 골목 두어 개만 걸었는데도 독특한 곳이 많아서 뭔가 특별하다 느낄 뿐이었는데 도시재생에 관심이 많은 나로서는 이곳을 집중적으로 보지 못한 걸 두고두고 아쉬워했다. 

회랑의 기둥을 세우고 위에 방을 만든 모습
볼로냐 뒷골목에서 만난 공방


+ 피사의 사탑이 볼로냐에 있나? 

자, 이제 볼로냐의 랜드마크이지 꼭 봐야 하는 두 개의 탑에 도착했다멀리서 볼 때는 기울어진 탑인지도 몰랐다. 점점 가까이 갈수록 왼쪽 탑이 확연히 기울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쪽저쪽 다양한 곳에서 탑을 바라보니 어디에서 보느냐에 따라 기울기가 차이가 났다. 기울어짐이 가장 크게 느껴지는 건 탑 바로 밑이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아 약간 아찔한 기분마저 들었다. 탑 바로 아래서 위를 올려다보니 멀리서 볼 때보다 훨씬 더 거대한 느낌이 들었다. 보아하니 전망대로 사용되는 모양이었는데 지금은 공사 중이라 올라가 볼 수는 없었다. 실지로 올라가 본 사람들 말로는 아찔할 정도로 기울기가 느껴진다고 했다. 


볼로냐 골목 이곳저곳을 걷는데 어느 골목에서 볼로냐의 옛날 사진을 전시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됐다. '탑이 2개가 아니었어? 이 주변에만 탑이 6개였어? 게다가 1880년에도 한쪽 탑은 이미 기울어져 있었단 말이야?' 도대체 이런 탑을 왜 세웠고 한쪽 탑은 왜 기울어진 것인지 너무 궁금했지만 공부를 안 하고 갔으니 감상은 '피사의 사탑이 볼로냐에도 있었네'였다. 

볼로냐의 랜드마크인 2개의 탑 중 하나는 기울어져 있다.


볼로냐를 검색했을 때 두 개의 탑이 가장 먼저 나올 만큼 볼로냐의 상징이다. 둘 중 높은 탑은 아시넬리 탑으로  97m고 기울어진 가리센다 탑은 48m다. 가리센다는 원래는 60m 높이였는데 탑이 너무 많이 기울어져서 14세기에 일부를 잘라냈고 지금에 이르고 있다. 그러니 1880년의 사진에도 탑은 여전히 기울어져 있었던 것. 이 탑은 이탈리아의 정치상황이 매우 혼란기였던 12~13세기에 집중적으로 지어졌다. 당시 교황당과 황제당, 각 지역 군주 간의 싸움이 끊이지 않았는데 각 귀족들은 자신의 권세와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마천루 같은 탑을 지었다고 한다. 또한 유럽 각지의 내로라하는 가문의 자제들이 볼로냐에서 공부를 하고 있으니 너나없이 자신의 세를 이 탑을 통해 과시했었다고 하니 지금에 와서 말이지만 그저 집안끼리 자존심 싸움이었다고 밖에. 탑이 많을 때는 200여 개가 있었다고 하니 이보다 더 허세작렬하는 일이 있을까 싶다. 이런 탑들이 오래갈 리는 만무하다. 무조건 높이에만 신경을 쓰다 보니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적으로 혹은 지진 등으로 무너지는 탑이 생기기 시작했고 세계 2차 대전 때 가장 많은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현재는 볼로냐에 약 20개 정도의 탑이 남아 있다.  


이 두 개의 탑은 옛날부터도 유명했고 이 기울어진 탑을 본 단테도 지옥편에 언급하고 있다고 해서 찾아봤다. 지옥 8곡에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기울어진 면 아래에서 가리센다를 볼 때 구름이 지나갈 때  마치 추락할 것처럼 늘어진 것처럼, 그가 내 위로 몸을 구부리는 것을 내가 볼 때 안타이오스도 그렇게 보였습니다. 다른 길.' 여기에서 언급된 '기울어진 가리센다'가 바로 볼로냐의 가리센다였다!!!!!!


'신곡'은 단테가 황제당파와 교황당파의 권력 다툼에서 희생당해 영원히 피렌체에 돌아갈 수 없었기에 탄생한 명작이다.  단테의 지옥 8곡은 '중상모략자의 최후'에 관한 내용으로 권력에 대한 인간의 욕망이 지옥에서 어떤 벌을 받게 되는지를 설명하는데 현실에 있는 기울어진 '가리센다'를 바벨탑에 비유해 놓았다. 가리센다 밑에서 고개를 쳐들고 바라보면서 느낀 아찔함이 바벨탑의 공포였음을 단테의 신곡에서 뒤늦게 발견했다. 

1880년의 볼로냐 풍경
볼로냐 상상도 / 토니 페코라로(Toni Pecoraro), 사진출처 : 위키디피아 



+ 축구보다 농구가 인기 많은 도시 

도시를 한 바퀴 돌고 광장으로 다시 돌아오니 사람들이 바글바글하고 곧이어 경찰차가 왔다. 좀전까지 차가 다니던 도로는 교통이 통제됐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농구팀이 우승 세리머니를 할 예정이란다. 이런 좋은 구경거리를 놓치면 안 되지 싶어 광장 근처 레스토랑에서 음식 주문해 놓고 달려가니 운 좋게도 바로 그 골목에 선수들이 탄 차가 지나가는 것이 아닌가. 열성적인 팬들이 차량에 앞서 행진을 하며 응원가를 부르며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광장에 도착하자 승리 세리모니는 절정에 달했다. 팬들은 이미 흥분이 최고조에 달했고 2층 버스를 개조한 오픈카에 타고 있는 선수들도 상태는 매한가지였다. 적극적인 팬들은 차에 탄 선수들에게 말을 걸고 선수들은 그런 팬들과 거리낌 없이 얘기를 주고받으며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는 모습은 우리나라에서 볼 수 없는 풍경이라 인상적이었다. 축포도 쏘고 박수를 치며 노래를 부르면서 시끌벅적한 자축 세리모니는 1시간 가까이 진행이 됐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볼로냐 시민들이 다 뛰쳐나왔나 싶을 정도로 난리법석이었다. 

 세리모니 구경하러 뛰어가는 내 모습이 웃기다며 사진 찍는 일행들 


이날 우승한 팀은 비르투스 팔라카네스트로 볼로냐(Virtus Pallacanestro Bologna)다. 1927년에 창단한 엄청난 역사를 가진 팀으로 이탈리아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오래된 클럽 중 하나란다. 역사도 오래됐지만 우승 경력도 상당한 팀이라고. 이날 볼로냐가 뒤집어졌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떠들썩했던 이유는 리그 우승도 우승이지만 14년 만에 유로컵에 진출하고 유로리그 진출 자격을 얻었기 때문이어서 그랬단다. 


현지인에게 물어봐도 우승했다는 기쁨에 들떠 제대로 말을 못 할 정도였다. 이탈리아에서 축구보다 농구에 더 열광하는 도시가 있다는 것도 신기했고 농구의 인기가 어느 정도이길래  이렇게까지 온 사람들이 다 뛰쳐나오나 싶었다. 너무 궁금했는데 이런 걸 본 사람이 아무도 없고 이런 내용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답답했는데 구글이 알려주네. 땡큐!!

볼로냐에선 농구가 최고!!


저녁을 먹고 어둠이 내린 광장으로 다시 돌아왔다. 조명이 켜지니 아침에 보았던 풍경과 사뭇 다른 느낌이다. 한 도시에 머물면서 아침, 점심, 저녁의 모습을 모두 봐야 하는 이유다. 볼로냐에서 무엇을 보고 어떤 것을 해야 하는지 애초에 목적이 없었기에 그저 발 닿는 대로 다니면서 만나는 볼로냐는 알아야 할 정보에 갇히는 대신 자유롭게 쏘다녔다. 별도의 사전 정보가 없었지만 나름은 볼로냐에서 중요하게 봐야 할 것은 놓치지 않고 볼 수 있었던 건 다행이었다.  


하지만, 너무 정보가 없이 간 탓에 '이건 뭔가'하는 궁금증이 해결되지 않아 좀 답답했다. 나중에 볼로냐에 대해 좀 더 알아보니 수로가 있었다. 무엇보다 볼로네제의 본고장의 도시에서 정작 볼로네제는 못 먹고 온 것은 두고두고 아쉬웠다. 물론 여행이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 정도 본 것으로도 충분히 만족한다. 


여행이 사전에 정보조사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건 여행지 성격에 따라 따르고 더 큰 차이는 사람의 성향차이다. 볼로냐는 여행지에 대해 사전 공부를 해 간다면 훨씬 풍부한 여행을 할 수 있는 곳이었다. 물론 볼로냐 뿐 아니라 이탈리아 대부분의 도시들이 역사적으로 많은 이야기가 있는 곳이기에 미리 공부를 좀 하고 가면 저건 성당이고 저건 탑이고보다 훨씬 의미 있는 여행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예정에도 없었던 볼로냐도 보고,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일 국제 수채화 페스티벌에 참석할 수 있었던 건 지금 생각해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여행이었다. 

전체 망원경까지 등장할 줄은. 


+ 다음 이야기 : 어학연수에서 선생님이란? 



'50대에 어학연수는 핑계고' 1장은 매거진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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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정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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