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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작가 정해경 Aug 25. 2023

[몰타어학연수] 몰타에서 학생비자받는 게 제비 뽑기?

몰타 어학연수 제2장 #24 도대체 이해 안 되는 몰타 비자 시스템 

0대에 어학연수는 핑계고   


제2장 프리인터미디어트 몰타  

#24 도대체 이해 안 되는 몰타 비자 시스템  


외국에서 사는 사는 사람들의 가장 불만은 행정적인 절차가 한국에 비해 너무 느리고 불친절하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게 되는데요. 몰타도 예외는 아니더라고요. 

몰타 비자센터 


몰타에서 3개월 이상 어학연수를 할 경우 쉥겐조약에 따라 반드시 비자를 받아야 한다. 비자를 받을 때 여권을 제출해야 하기 때문에 비자를 신청 후 비자가 나올 때까지는 사실상 여행을 못 다닌다고 보면 된다. 몰타에서는 유럽으로 여행이 거리상, 비용상 우리나라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조건이니 비자를 신청하기 전까지 부지런히 여행을 다니는 경우가 많았다. 어찌 보면 몰타를 어학연수지를 선택할 때는 '영어'도 있지만 '여행'도 굉장히 중요하게 차지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나는 여행 욕구가 거의 방전이 된 상태에서 몰타로 왔기 때문에 딱히 다른 나라로 여행은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그래서 몰타에 도착하자마자 비자 신청을 미리 하고 싶다고 에이전시에게 얘기를 했었다. 비자를 신청할 때는 여러 가지 서류가 필요한데 내가 한국에서 미리 준비해야 하는 서류는 은행 잔고 증명서, 보험 등이고 어학원에서는 어학원 등록, 출석률 80% 이상, 숙소 등의 서류를 준비해 준다. 나의 경우는 에이전시를 통해 숙소를 구했기에 숙소계약서가 필요했고 오자마자 비자신청을 위한 서류 준비를 부탁했던 것이다.  


에이전시는 통상은 한 달 정도 뒤에 비자신청을 하는 것이 좋다고 했고 너무 빨리 신청할 경우 비자신청이 거부될 수도 있다고 했다. 학생 비자의 경우 출석률 80% 미만일 경우 무조건 거부되고 그렇지 않을 경우 예외적으로 비자가 거부되기도 한다는데 왜 거부되는지는 이유를 알려주지 않는다고 했다. 뭔가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지만 몰타에서는 행정적인 것이 우리의 일반상식과 달라서 속 터지는 경우가 다반사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상황인지라 그때는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내가 어학연수를 했을 때 2월 말 혹은 3월 초에 6개월 기한으로 어학연수를 온 사람들이 꽤 많았다. 그래서 비자를 신청해야 하는 기간도 거의 비슷했는데 4월 말, 그러니까 8주차  정도가 지나면서 비자를 신청하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렸다. 비자 신청의 경우 이메일로 비자 신청을 요청하고 난 후 비자 담당자에게 내가 준비해야 하는 서류를 제출하면 어학원에서 준비해야 하는 서류를 추가해 다시 돌려주면 내가 직접 비자센터를 방문해 비자를 신청해야 하는 시스템이다. (지금은 직접 비자센터를 가지 않고 인터넷으로 접수하는 시스템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어학원에서도 서류 준비를 해주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는데 문제는 하루에 비자 서류를 준비해 주는 인원을 제한하고 있었다. 일처리가 너무 늦어지니 어학원에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무슨 일인지 갑자기 하루에 모든 학생들의 비자 서류를 다 나눠주는 통에 학원 로비는 북새통이 됐다. 어학원에 서류 제출을 4월 중순 정도에 했는데 5월 27일이 되어서야 비자서류를 받았다. 고작 몇 장 되지도 않는 서류고 그마저도 시스템 확인 후 출력만 하면 되는데 아무리 학생이 많아도 그렇지 거의 한 달이나 걸린다는 것이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기다렸던 시간이 길었던 만큼 일단 비자 서류를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좋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비자 서류를 요청하고 한 달이나 지나서 받은 어학원 확인 서류


친구들은 나보다 서류를 며칠 늦게 접수했는데도 같은 날 비자서류를 받았고 다음 날 다 같이 모여 몰타 비자센터로 비자신청을 하러 갔다. 이미 비자센터를 다녀온 사람들이 말하길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1시간 이상 기다리는 건 다반사라고 했다. 아침 7시 30분에 세인트 줄리안에서 친구들과 만나서 택시를 타고 비자센터에 도착했는데 벌써 엄청난 긴 줄이 늘어서 있어서 도대체 얼마나 기다려야 하나 눈앞이 캄캄했다. 다행히 그 줄은 취업비자를 받기 위한 줄이었고 학생비자를 받는 곳은 그 옆 사무실이었다. 


8시부터 근무를 시작이라고 되어 있었으나 8시 30분이 돼서야 직원이 왔다. 내 순서는 4번째. 준비해 간 서류만 내면 되는데 혹시 서류가 잘못됐거나 빠트린 부분이 있을까 봐 은근히 긴장이 됐다. 다행히 일처리는 빨라서 한 사람당 대략 5분이 채 안 걸렸다.  어학원에서 준 서류봉투 그대로 내미니 서류 보는 시늉만 하고 봉투 그대로 박스로 집어넣는다. 인터뷰 이런 건 일절 없고 비자 요금 결제하니 접수증을 내주는데 비자 찾으러 오는 날짜가 6월 30일로 기재되어 있었다. 

몰타 비자센터


비자 날짜가 6월 30일... 맙소사... 망했다. 4월 초에 친구 따라 포르투 여행을 다녀오자마자 비자신청을 위해 집 서류 제출을 계속 요구했었는데 집서류 작성이 잘 못돼서 다시 서류 작성하느라 시간이 허비됐고, 어학원에서 한 달이나 서류제출이 지체됐고, 비자 센터에서 다시 한 달을 기다리게 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렇게 될 줄 모르고 포르투에서 베를린 유학생을 만나게 됐고 우리가 몰타에서 지내는 동안 베를린-몰타를 왔다 갔다 하자며 베를린 여행을 약속했다. 아무리 늦어도 6월 말 정도에는 비자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해 룸메와 함께 그리스 여행을 계획했고 비행기와 숙소 예약까지 다 마쳤다. 비자 나오는 날짜가 6월 30일이니 이미 발권해 놓은 비행기 티켓과 숙소 요금을 고스란히 다 날리는 지경이 됐다. 


하지만, 이 일은 서막에 불과했다. 

연수기간이 비슷한 친구들과 함께 비자신청


아직 내 비자는 날짜가 안 됐는데 뭔가 조짐이 심상찮았다. 룸메이트는 나보다 2주나 앞서 비자를 신청했는데 6월 15일 비자를 찾는 날짜에 비자센터를 방문하니 2주 뒤에 다시 오라는 이야기를 듣고 망연자실해 있었다. 어학원에서 몇 장 되지도 않는 서류 준비하는데도 한 달이나 걸렸는데 비자센터의 경우 몰타 전체 어학원 학생들이 다 몰리는 상황이니 일처리가 제때 가능할지 의심이 들긴 했다. 나보다 2주 전이면 그나마 사람이 덜 붐빌 때였는데도 2주씩이나 늦춰지는 걸 보니 엄청난 인원이 한꺼번에 비자를 신청한 내 경우는 여차하면 3주 혹은 4주도 밀릴 수도 있겠다 싶었다. 


룸메이트도 상황이 안 좋기는 마찬가지였다. 50 평생을 쉬어 본 적 없이 일을 했던 그녀는 어렵게 6개월의 어학연수를 결정했고 이 기간 동안 가급적 많은 곳을 여행 다니기를 원했다. 게다가 방학을 맞이한 딸이 6월 중순에 몰타로 올 예정이었고 비자 나오는 기간에 맞춰 딸과 함께 로마와 피렌체를 여행할 계획까지 세웠던 터였다. 그녀는 나보다 앞서 비자신청을 했기에 한 달하고도 보름이나 뒤로 시간을 넉넉하게 그리스, 로마, 피렌체 여행 계획을 세웠고 비행기 티켓과 모든 숙소 예약을 다 마친 상태였다. 나온다는 날짜에 비자가 안 나오고 있지만 이때만 해도 그리스 여행은 못 가도 7월 중순에 딸과 함께 로마, 피렌체는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는 첫 비자가 거절되고 난 뒤 며칠 뒤 다시 갔으나 또 안 나왔다고 했다. 그렇게 몇 번이나 비자 센터를 들락날락하는 사이에 내 비자가 나온다는 6월 30일이 됐다. 


그녀와 나는 함께 비자센터를 찾았다. 나는 이미 마음을 비우고 있었다. 비자 접수증을 제출하니 이름을 확인하고 접수증을 들고 어디론가 다녀오더니 다음에 다시 오라고 한다. 6월 중순에 이미 나왔어야 할 비자를 못 받고 있는 룸메이트였기에 내 비자가 제 날짜에 나올 리가 없었다. 못 가게 된 베를린과 그리스 여행은 둘째치고 7월 중순에 연계연수로 런던으로 떠나야 하는데 6월 30일에 비자가 안 나올 경우 이미 수속까지 마친 런던을 못 가게 되는 불상사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학생들 사이에서도 난리가 났다. 제때에 비자가 안 나오니 다른 나라로 여행을 계획했던 사람들이 비행기 티켓을 날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다들 모이기만 하면 몰타 비자센터에 대한 불만성토대회가 열렸다. 비자 발급으로 속이 바짝바짝 타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다. 

문턱이 닳도록 찾아갔던 몰타 비자센터


통상 운전명허증이나 여권발급의 경우 찾으러 오라고 하는 날짜에 접수증을 보여주면 간단한 절차 후 바로 교부가 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비자 발급을 어떻게 처리하는지는 모르겠으나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몰타의 경우 접수증을 보여주면 그 접수증을 들고 어디론가 갔다가 되돌아와서 '오늘 비자가 나온다.' 혹은 '다음에 다시 오라'고 통보를 한다. 비자가 나온다고 얘기를 하고 나면 그때부터 비자 발급 절차를 밟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다음에 오라고 하면서도 그다음이 언제인지 구체적인 날짜를 정해주지 않고 그 날짜에 온다고 해도 비자를 받는다는 보장이 없으니 미칠 노릇이었다. 게다가 하루에 비자를 발급해 주는 사람은 10명으로 인원제한까지 있었다. 


몰타 비자가 제때에 나오지 않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지만 제일 이해가 안 되는 건 비자 발급 순서가 제멋대로라는 점이다. 접수증에 번호가 있으면 그 번호 순서대로 비자가 나와야 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비자를 받는 사람들을 보면 신청한 날짜가 다 제각각이었고 심지어는 나보다 일주 일어나 늦게 비자 신청한 사람이 먼저 받는 경우도 있었다. 늦게 신청한 사람이 비자를 먼저 받는 경우도 허다했다. 이러니 비자를 받는 건 순전히 운이었고 담당 직원의 손끝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EU 가입국이라는 몰타의 비자 시스템은 그냥 제비 뽑기였다. 


이쯤 되니 비자센터에서는 비자를 못 받은 사람들이 항의를 하면서 직원들과 싸우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보안요원들은 그런 사람들을 밖으로 매몰차게 끌어내버렸다. 어학연수생이 몰타에 와서 뿌리는 돈이 얼마며 몰타의 경제의 상당 부분을 책임지고 있건만 비자센터의 고압적이고 강압적인 태도는 안하무인이 따로 없었다. 비자센터에서 소란을 피울 경우 괘씸죄가 적용이 되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런 사람들의 비자는 다른 이들보다 훨씬 더 늦어지는 느낌이었다. 21세기에 이런 말도 안 되는 시스템이 있나 싶지만 몰타는 그랬다. 


영국의 경우 브렉시트로 EU에서 탈퇴가 되면서 비자 없이 6개월 체류가 가능하기에 만약의 경우 비자가 안 나와도 영국 입국은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비자를 기다리는 동안 3개월이 넘어 불법 체류인 상태였기 때문에 자칫하다간 유럽으로 입국이 앞으로 힘들어질 수 있는 상황이라 애가 탔다. 


다행히 7월 7일 영국 가기 전에 비자가 나왔다. 하지만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아직 룸메이트의 비자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보다 먼저 비자를 신청했음에도 여전히 비자가 나오지 않은 룸메이트는 주위 사람들이 모두 비자를 받았는데 나까지 비자기 나오니 그녀는 숨이 넘어갈 지경이었다. 어학원도 포기하고 매일 비자센터를 들락거리며 비자센터 직원과 싸우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통사정도 하고 별 짓을 다했지만 그녀의 비자만은 웬일인지 계속 나오지 않았다. 비자 때문에 아직 두 달이나 더 남은 그녀의 어학연수는 엉망진창이 되어 가고 있었다. 학원도 포기하고 매일 눈물 바람이었고 장밋빛으로 부풀었던 몰타는 어느 순간 그녀에겐 지옥이 됐다. 


어학연수에 비자가 복병이 될 거라고는 한번도 들어보지도 못했다. 진짜 이해할 수 없는 몰타의 비자 시스템에 분통이 터질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비자는 나보다 일주일이나 더 늦은 7월 14일에 나왔다. 문제는 그녀의 비자는 그녀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 엄청난 일이 또 기다리고 있었으니... 


작년은 코로나가 막바지 기간이라 비자를 신청하는 기간에 비자센터가 코로나 걸려 한동안 비자 업무를 못했다는 얘기가 있긴 했다. 부디 그때의 상황이 비정상적이었기를... 


+ 다음 이야기 : 아무 정보 없이 볼로냐 여행 



'50대에 어학연수는 핑계고' 1장은 매거진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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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정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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