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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작가 정해경 Aug 29. 2023

[몰타어학연수] 나이 50에도 영어 슬럼프가 있다.  

몰타 어학연수 #26  영어 슬럼프를 대하는 자세

50대에 어학연수는 핑계고   


제2장 프리인터미디어트 몰타  

# 26 영어 슬럼프를 대하는 자세, 남과 비교하지 말라! 


어학연수 3개월 즈음에 이르니 영어 슬럼프가 오더라고요. 말로만 듣던 영어 슬럼프는 뭐랄까, 좀 그렇더라고요. 


+ 생각지도 못했던 영어 슬럼프 


 프리인터미디어트 수업을 듣기 시작한 지도 어느덧 8주 차에 접어들었고 몰타에 온 지는 12주 차니 3개월이 되었다. 8주 차가 지나면서부터 조금씩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하던 영어가 12주 차 즈음되니 '영어 슬럼프'라는 게 확실해졌다. 영어 슬럼프는 단순히 영어 정체기만 가져온 것이 아니었다. 나의 자존감마저도 움켜쥐었다. 짜증 날 정도로.


그 발단의 시작은 가장 친했던 디아나의 브런치 초대였다. 토요일 점심에 콜롬비아식 브런치를 해주겠다며 집으로 초대를 했다. 나와 수업을 같이 시작한 디아나는 엘리멘터리에도 같은 반이었는데 처음부터 나와 취향도, 감성도 너무 비슷했다. 오죽하면 디아나 가족들이 어떻게 그렇게 비슷한 생각을 가진 아시안이 있을 수 있냐며 얼굴이 궁금하니 내 사진을 찍어 오라고 했다고 했다. 프리인터미디어트로 올라올 때도 같이 시험을 패스했고 이번 반에도 같이 배정됐다. 다만, 이 반으로 오면서 내내 파트너였던 디아나보다는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서 일부러 좀 떨어져 앉았고 파트너를 할 기회가 많지는 않았다. 그래도 쉬는 시간이 같이 커피를 마시러 가고 수업 마치고 수영과 트래킹을 함께 다니는 등 우리는 여전히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나와 스무 살이나 차이가 난다는 걸 디아나는 아직도 모른다. 


토요일 오전 이본과 나는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그녀가 만들어준 콜롬비아식 브런치를 맛있게 먹고 난 뒤  

두 어시간 정도 프리토킹을 하게 됐는데 그때, 깜짝 놀랐다. 학교수업에서는 잘 몰랐는데 일상에서 대화할 때 그녀의 영어가 엄청 늘어있었다. 가끔은 나보다 더 말을 잘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동안 영어 공부를 어떻게 했는지 물었더니 집에서 같이 사는 콜롬비아 룸메와도 영어로만 대화를 한다고 했다. 또, 아르바이트를 구했는데 '돈'이 목적이 아니라 영어를 사용하는 환경에 더 많이 노출되는 게 목적이라고 했다. 일전에 아르바이트를 해볼까 생각한다는 얘기를 듣긴 했는데 진짜로 실행에 옮길 줄은 몰랐다. 그녀가 노트 한 권을 들고 왔다. 수업시간에 배웠던 단어 중 매일 5개의 단어를 외우고 단어를 활용해 매일 꾸준히 5 문장 영작을 한 다음 선생님께 첨삭을 받은 노트였다. 


엘리멘트리에서부터 계속 같이 있었기에 그녀의 영어 실력이 어떤지 알고 있는 나로서는 그녀의 일취월장한 영어 실력에 자괴감이 들었다. 나도 나름은 내 방식으로 공부를 한다고 하고 있었지만 영어가 생각했던 것만큼은 느는 것 같지가 않아 계속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누가 봐도 실력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것이 느껴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본과 얘기를 나누었는데 이본 역시 디아나 영어가 많이 늘었다고 한다. 


디아나를 만나고 나니 '나도 열심히 해야겠다'가 아니라 뭔가 맥이 빠지는 느낌이었다. 마치 선행학습을 하고 입학한 학생이 다 아는 내용이라고 느긋하게 있다가 몇 달 후 나 혼자만 뒤처진 느낌이랄까. 맥이 빠진 상태로 집으로 돌아왔다.  

수업시간 필기 노트, 어휘 노트, 문법 노트, 에세이 노트를 다 따로 적기 시작했다. 


'무엇이 잘 못된 것일까?' 말로만 듣던 영어 슬럼프라는 게 이런 것인가 싶으면서도 어찌해야 할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   


영어 공부를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으니 '영어 정체기'라는 것도 경험해 보지 못했고 무엇보다 영어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갑자기 너무 막막했다. 6개월 중에 반이나 지났는데도 아직도 처음 어학연수 왔을 때와 비교해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하니 자존감마저 바닥을 치기 시작했다. 이대로 있을 수만은 없었다. 적극적으로 주변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함께 어학연수 중인 한국인 30대들, 나보다 높은 반에 있는 외국인 친구 들 등 나의 상태를 솔직하게 오픈하고 그들은 어떤 방법으로 공부를 하고 있는지 슬럼프가 있었다면 어떤 식으로 극복을 했는지 적극적으로 물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유튜브를 활용했다. 영어 공부방법, 영어 어학연수, 영어 슬럼프 등 엄청 검색을 해봤다. 특히 Y는 이런 내게 용기를 주면서 자신의 공부노하우를 아낌없이 알려주니 참 고마웠다. 


네이버 나만의 단어장 

+ 우선, 공부 방법을 바꿔 보기로 했다. 

옛날 사람이라 노트 정리가 깔끔하게 돼야 공부를 하는 스타일이다. 수업시간 필기, 어휘, 문법, 영작을 노트 한 권에 다 적고 있던 것을 수업시간 필기, 어휘, 문법, 에세이로 용도를 나누어서 노트를 따로 만들었다. 


기존에는 복습에 치중했다면 예습과 복습을 같이 하면서 예습에 조금 더 비중을 두기로 했다. 어휘의 경우 네이버 단어장을 이용했다. 모르는 단어를 미리 찾아보고 단어장에 저장한 다음 걸어 다니거나 자기 전에 틈틈이 들으며 단어를 외우고 발음을 익혔다. 수업이 끝나고 나면 어휘 노트에 그날그날 배웠던 단어들을 적고 선생님의 추가 설명까지 정리를 했다. 새로 익히는 단어를 활용해 영작을 해보면 좋겠지만 그렇게까지 하기에는 공부량이 많아서 네이버 예문 중에 내가 사용할 수 있겠다 싶은 예문을 어휘와 함께 정리를 했다. 이때 사용했던 방법이 괜찮아서 이후 다른 레벨에서도 계속 사용했다. 


특히  화, 목 오전에 수업이 있는 경우 예습을 해야 했기에 가급적 저녁 약속은 잡지 않고 친구 초대도 하지 않았다. 룸메는 나보다 슬럼프가 좀 더 먼저 시작됐기에 월, 수에 각자 친구를 초대하지 않는다는 것에 격하게 공감했다. 룸메 친구도 내 친구도 서로서로 친구라 다 얼굴을 알기 때문에 누구의 친구가 집에 오든 어차피 모두가 내 친구인 셈이니 그 자리에 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서로 합의하에 친구 초대는 당분간 하지 않기로 했다. 


룸메와 나는 같은 어학원에 레벨도 같았다. 공부하다가 서로 모르는 것이 있거나 막히는 것이 있으면 물어볼 수 있으니 좋았다. 어떤 문제들은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경우가 있었는데 '너희 선생님은 이거 어떻게 설명했나?'라고 물어볼 수 있어 일거양득이었다. 다만, 집에서 영어를 사용을 해보려고 시도했으나 하루 만에 끝났다. 영어만 사용하자고 한 날에 갑자기 전기가 나가고 싱크대에 흙탕물이 나오는 등 돌발 상황들이 발생했는데 영어로 설명이 안 돼서 가슴만 치며 답답해하다가 그냥 하던 대로 하자고 포기했다. 그냥 꾹 참고 일주일만 지났으면 괜찮았을 것이고 생활영어가 확 늘었을 텐데 지금 생각해 보면 아쉬운 부분이다. 물론 그랬다면 한국어로 대화할 때만큼의 감정은 전달되기 힘들었겠지.  

집에서는 둘 다 밤늦도록 공부 모드 



+ 개인과외를 시작하다. 

몰타의 경우 정규수업시간이 3시간이지만 원하면 1.5시간의 인텐시브 수업이 가능하다. 24주 어학연수일 경우 인텐시브 수업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프로모션이 있기도 하니 6개월 이상 어학연수를 생각하고 있다면 프로모션이 있을 때 어학원 등록을 하는 게 이득이다. 프로모션 기간에 등록을 한 학생들은 첫 주부터 인텐시브 수업을 듣게 되니 매일 4시간 30분의 수업이다. 나의 경우 2020년 어학연수 때는 프로모션 기간에 등록을 했었지만 코로나로 어학연수를 취소했고 이번에는 프로모션이 없이 정규수업만 신청했다. 하지만 24주간 매일 1시간 30분 영어에 더 노출되는 것은 결코 가볍게 볼 게 아니라는 걸 뒤늦게 실감했다.  


처음 어학연수를 상담받을 때 시니어 연수(50대 초반인데 '시니어'라는 말은 적응이 안 된다.)는 대부분 정규수업 3시간으로 등록한다고 했다. 대학생들이면 모를까 아무래도 공부보다 휴양이 더 목적이기도 하고 안 하던 공부니 매일 4시간 30분의 공부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물론 드물게 추가수업까지 듣는 사람도 있으니 선택은 자유라고 했다. 나는 추가적인 돈을 내고 수업을 하기보다 그 시간에 혼자 공부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는 판단을 했기에 정규수업만 등록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인풋이 좀 더 늘려야 할 시점이 온 것이다.  


어학원에서 추가수업 신청과 개인과외 두 개의 선택지가 있었다. 배운 걸 내 것으로 만드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람이기에 매일 1시간 30분의 수업보다는 일주일에 두 번, 한 번에 2시간의 개인과외를 선택했다. P 선생님은 '문법 일타 강사'라는 소문이 자자했다. 첫 수업시간에 프리인터미디어트 치고는 스피킹은 괜찮다고 해서 문법을 먼저 배우기로 했고 중간중간에 에세이 첨삭을 받기로 했다. 과외비용은 다른 선생님에 비해 조금 비싼 편이었으나 수업을 받아 보니 '역시'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굉장히 쉽게, 핵심만 딱딱 정리를 해주니 정말 좋았다. 무엇보다 노트 정리하는 방식이 딱 내 스타일이었다. 

특별히 교수님께 부탁드려 문법 일타 강사인 P 선생님께 그림 선물. 


프리인터미디어트에서 레벨테스트 시험을 3번이나 보게 되면서 그녀와 문법 공부를 본의 아니게 좀 오래 하게 됐다. 이때 지겹도록 공부해 둔 시제와 조동사, 수동태, 가정법 등 기초를 탄탄하게 쌓아둔 덕분에 나중에 런던에서는 공부할 때 큰 도움이 됐다. 공부가 너무 느리고 힘들어서 엄청 조바심을 냈는데 몰타에서 공부는 런던에 비하면 세발이 피였다는 건 함정이다. 영어가 산 넘어 산일줄은 이때만 해도 몰랐다. 어쨌거나 문법 일타 강타였던 그녀 덕분에 문법을 확실하게 다질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몰타에서 어학연수는 충분히 만족한다. 

왕래발착동사라고 어렵게 배웠던  the presen simple for the future
will과 be going to는 완전히 달라요 

 

영어에서 시제는 이게 전부다. 



+ 슬럼프 극복에 정답은 없다. 

학창 시절에 영어 성적은 나쁘지 않았지만 제대로 된 실력이라기보다는 대충 눈치껏 운 좋게 받은 성적이었다. 토익 점수가 필요한 세대도 아니었고 영어가 필요한 직업도 아니니 평생을 영어 공부를 제대로 해 본 적이 없다. 그나마 스피킹이 좀 되는 건 여행작가라는 직업상 다른 사람보다는 외국을 나갈 일이 많아서 생존영어 정도의 영어를 무한반복하니 입에 붙어 있는 건 당연지사. 영어를 한 번도 뱉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어학연수를 온 것과 달리 처음부터 입이 트여 있으니 잘하는 것처럼 보일 뿐. 실제 내가 생각하는 영어는 아주 바닥이었다. 그러니 사람들이 '너만큼이라도 했으면 좋겠다'거나 '진짜 엘리멘터리 맞아요?'라는 이야기를 초반에 수도 없이 들을 때 내 속은 속이 아니었다. 나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했다면 굳이 비싼 돈을 들이며 어학연수를 선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 역시 몰타로 어학연수지를 선택할 때는 영어와 휴양의 목적이 같이 있긴 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과 생각하는 강도가 달랐던 것 같다. '설렁설렁 여행이나 다니면서 부수적으로 영어나 공부할까'의 마음이었다면 나는 어학연수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공부만 한 것도 아니다. 나 역시 다른 나라도 여행을 다녀오고 몰타구석구석을 돌아다니고 있었으니 말이다. 다만, 여행과 영어공부 두 가지 중 여행보다는 공부에 더 비중을 두고 결정한 어학연수였다. 어찌 보면 50대에 통상적인 어학연수생들과 출발선이 달랐고 기대치와 목표가 달랐다. 그러니 나보다 못한다고 생각했던 친구들이 하나 둘 나와 비슷하거나 나보다 더 잘한다고 느끼기 시작하니 슬럼프 아닌 슬럼프가 시작이 됐다. 한번 슬럼프가 시작되니 계속 남과 나를 비교한 것이 멈춰지지 않았고 자존감도 바닥을 치기 시작했다. 


장밋빛 환상을 품은 것은 아니었지만 멘털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럴 때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다. 사람마다 목표치가 다르고 성장하는 속도가 다르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이런 시간이 있어야 또 발전이 있는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누구와 비교할 필요도 없고 비교해서도 안 되고 조바심 낼 필요도 없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그저 시간에 맡기고 묵묵히 내 페이스 대로 열심히 한 발 한 발 가다 보면 슬럼프라는 계단을 올라서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모스타 대성당을 갔다가 마음을 울리는 글귀를 발견하고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았다. 


There is nothing permanent except change. 
We fear the future because we are wasting today. 
Do not be afraid. Do not be satisfied with mediocrity. 

변화 외에는 영원한 것은 없다. 
우리는 오늘을 낭비 하고 있기 때문에 미래를 두려워한다.
두려워하지 마세요. 평범함에 만족하지 마세요.


슬럼프는 엉뚱한 일로 극복이 되기는 했지만 또 다른 일이 생기면서 나는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 결국 예정보다 한 달 반이나 일찍 몰타를 떠나게 됐다. 



+ 다음 이야기 :  동방예의지국 마인드는 필요할 때만. 예의 차리다간 나만 손해다. 



'50대에 어학연수는 핑계고' 1장은 매거진에서 볼 수 있습니다. 



#몰타어학연수 #몰타라이프 #몰타라이프 #몰타여행 #malta #maltalife #몰타 #런던어학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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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정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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