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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작가 정해경 Aug 30. 2023

[몰타어학연수] 예의를 갖추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몰타 어학연수  #27 어학원 선생님과 문제가 생길 줄이야.  

50대에 어학연수는 핑계고   


제2장 프리인터미디어트 몰타  

#27 동방예의지국 마인드는 필요할 때만, 예의 차리면 나만 손해다.  


어학원에서 선생님이 잘 맞는 경우도 있고 잘 안 맞는 선생님이 있을 수도 있는데요. 어학연수에서 어떤 선생님을 만나느냐는 어학연수의 성공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중요한 사안입니다. 선생님이 자신과 잘 안 맞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간혹 다른 사람들의 어학연수에서 선생님과 트러블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다. 실제로 어학연수 중에 어떤 이들은 선생님과 너무 안 맞아서 스트레스를 받았다거나 반을 바꾸었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그게 내 얘기가 될 줄은 몰랐다. 막상 당하고 보니 멘붕이었다. 그리고 느낀 건 단 하나, 몸에 밴 동방예의지국은 옛날 사람 마인드다. 예의도 상황에 따라 갖추는 것이지 무조건 예의를 갖춘다고 능사는 아니라는 것. 때론 예의 차리다가 결국 나만 손해를 보게 된다는 걸 뼈저리게 실감했다. 




+ 처음에는 선생님이 참 좋았다.  

레벨 업이 된 후 프리인터미디어트 선생님을 만났을 때 나는 선생님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나보다 먼저 프리인터미디어트로 올라간 룸메이트의 경우 선생님과 잘 안 맞아서 반을 3번이나 바꾸었다. 그걸 옆에서 지켜 보니 시간과 감정소모가 너무 크다는 생각이 들어 좋은 선생님 반에 배정되길 바랐다. 다행히 대체로 잘 가르친다는 평가를 받는 선생님 반에 배정됐다. 그리고 선생님의 수업도 좋았다. 


첫 주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내용은 아직도 기억을 하고 있다. 예를 들면 책의 내용 중에 이런 문구가 있었다.  'all work, no pay'였다. 처음에는 일과 삶의 균형을 이야기하며 F'inding balance'로 가볍게 시작을 했다. 그러다 이야기는 자연스레 봉사(valunteer)로 넘어가는 듯하다가 노동착취(explioitation)에 이어 인신매매(human trafficking)까지 이야기가 이어졌다. 특히 해외에서 값싼 노동력으로 만든 제품들 이면에 그들의 노동착취가 존재하고 있음을 텍스트, 이미지, 단어 등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파고든다. 그러다 이야기는 다시 널을 뛰어 마피아로 이어지다가 몰타에서 큰 이슈인 여기자 테러 사건에 대한 이야기까지 1시간 30분이 쉴 틈 없이 이어졌다. 처음에는 프리토킹으로 진행되는 수업이 참 좋았다. 물론 이런 수업은 프리인터미디어트에서 진행할 수업 방식은 아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수업이 처음에는 좋았다. 

또 한 번의 인상적인 수업은 '비교급'을 배웠던 시간이었다. 

비교급은 가장 처음 외국인을 만나면 나라별 물가나 화폐를 비교하기 때문에 스몰토크에서는 반드시 한 번쯤은 사용하게 된다. '어디가 얼마만큼 비싸다'라는 쉬운 말이 은근히 입에 잘 붙지도 않고 늘 헷갈렸다. 이걸 어떻게 가르칠까 궁금했는데 '물가 비교사이트'를 활용하는 것이 아닌가. 비교할 두 도시를 입력하면 화폐가치, 장바구니물가, 월급, 주택가격, 심지어는 품목별 농수산물 가격에 커피 가격까지 한눈에 비교할 수 있어 더 쉽게 이해가 됐다. 


수업이 정말 재미있었기에 두 번째 수업 시간에는 한국 지폐를 들고 갔다. 선생님은 내가 가지고 온 화폐를 활용해 스몰토크 때 어떻게 묻고 어떻게 대답하는지 예를 들어주면서 실제로 사용하는 비교급 표현을 익힐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러다 갑자기 나에게 한국 지폐에 있는 인물이 누구인지 설명해 보라고 해서 한국말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걸 영어로 설명하자니 너무 당황하기는 했다. 

도시별 물가 비교사이트가 있다니-
비교급 공부할 때 유용하게 활용했던 한국 지폐 
비교급 영작 숙제. 이중 런던과 관련된 표현은 런던에서 많이 써먹었다. 



또한, 실생활에 많이 사용하는 표현도 알려주기도 하고 학생들이 날씨 이야기를 하면 날씨를 어떻게 보고 표현하는지 외에도 몰타에서 볼거리, 놀거리 등도 친절하게 안내해 주기도 했다.  몰타에 온 지 한 달 정도 지나던 시점이었기에 처음에는 다른 선생님과 조금은 다르게 진행되는 이런 식의 수업 방식이 신선하고 참 좋았다. 하지만 최고의 선생님이라는 생각은 불행히도 오래가지 않았다.  




나는 처음부터 레벨에 욕심이 크게 없었다. 우리 반 애들도 그렇고 다른 레벨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내가 프리인터미디어트 반에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내 수준보다 낮은 레벨에 있지 말고 빨리 시험을 보고 높은 레벨로 올라가라고 귀가 따갑도록 듣는 소리였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 나 자신의 실력은 아직 그만큼 되지 않는다 생각했기에 시간이 얼마가 되던 내가 준비가 되면 그때 시험을 보겠다는 생각이 확고했다. 간혹 저 사람이 저 레벨이 맞나 싶은 경우도 있었기에 레벨보다는 실력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지나고 보니 시험을 안 보고 괜히 프리인터미디어트에 너무 오래 있어서 엄청 후회를 했다.) 8주 차가 될 때까지도 시험 볼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러다 10주 차가 되었을 때 생각지도 못했던 친구 한 명이 레벨테스트를 통과했다. 갑자기 나도 시험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엘리멘터리 시험 볼 때 따로 공부 하지 않고 한 번에 패스를 했기에 이번에도 그냥 평소대로 시험을 봤다. 시험은 그냥 그랬다. 결과는 67점. 스피킹 점수가 13점이라는 것보다 시제 문제를 하나도 못 맞혔다는 게 먼저 눈에 들어왔다. 게다가 작문의 경우 내가 'must'를 썼는데 선생님은 'have to'를 써야 한다며 점수를 깎았고 시제 관련으로도 몇 점을 더 깎았다. 전체적으로 3점이 모자라는 게 너무 아쉬웠지만 내가 실력이 부족해서 그런 걸 어쩌겠는가 생각을 했다. 반 애들이 첫 시험은 대체로 50점 대가 나오는데 너는 3점이 모자라니 그나마 점수가 꽤 높게 나온 편이라고 위로를 했다. 

프리 인터미디어트 첫 레벨테스트에서 시제 문제 정답률 0%  




+ 최고의 선생님이라는 생각은 나의 착각


최고라 생각했던 선생님은 한 달 정도가 지나니 최악이 되었다. 

매주 월요일이면 어김없이 날씨 이야기에, 날씨 사이트를 봐야 했고 생활영어도 매주 같은 내용이 반복됐다. 신선하고 좋다고 생각했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수업' 방식은 의도하고 계획된 교수법이 아니라 수업 준비를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에 교과서 대신 그때그때 자기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즉흥적인 수업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무엇보다 한 섹션 전체 1시간 30분을 선생님 혼자 일방적으로 이야기하는 시간이었다.  

이런 상황이니 월요일 첫 세션은 입 한번 떼지 못하고 지나가기 일쑤였다. 


금요일이면 두 번째 섹션 수업은 거의 진행이 되지 않았다. 

그 주에 레벨 시험 본 사람의 경우 레벨 통과 여부를 선생님이 금요일에 알려준다. 우리 선생님의 경우 두 번째 섹션 수업 때 시험 결과 리뷰를 하는데 한 사람 당 대략 10~20분 정도가 걸렸다. 그 주에 5명이 시험을 봤다면 리뷰하느라 수업시간을 다 흘려보냈다. 당연히 다른 학생들은 자율학습이었다. 


원래 금요일 수업이 다 이런 가 싶어 다른 반 친구들에게 물어봤다. 수업이 끝난 후 혹은 쉬는 시간에 리뷰를 듣는다고 했다. 혹 수업시간까지 이어지면 가급적 짧게 끝내고 다 안 끝난 경우에는 수업을 마치고 난 다음에 이어서 한다고 했다. 이러니 월요일 첫 섹션, 금요일 두 번째 섹션은 거의 수업이 진행되지 않았다. 이 선생님 수업이 돈이 아깝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됐다. 



수업의 진행방식도 문제였지만 가장 큰 문제는 즉흥적인 수업 진행이라 교과서 진도를 충실하게 나가지 않는 점이었다. 물론 때때로 교재 내용을 공부하기는 했다. 위의 비교급 수업처럼. 하지만 대체로는 교과서보다는 선생님 혼자 이야기하는 시간이 너무 많았다. 레벨테스트는 교과서에 배우는 내용과 비슷한 수준의 문제가 출제되는데 문법 등을 배우지 않으니 3개월이 다 되도록 레벨테스를 통과하는 친구들이 1~2명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두 달이 될 동안 레벨테스트를 통과하는 학생이 너무 적다는 사실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레벨테스트를 보고 나니 모든 것이 한꺼번에 이해가 됐다. 선생님의 프리토킹 식의 교수법과 학생보다 선생님이 훨씬 더 말을 많이 하는 수업에서는 절대 레벨테스트를 통과할 수 없다는 사실을. 


그러니 최고의 선생님이란 나의 생각은 완전히 착각이었다. 

매주 반복되던 날씨 사이트와 너무 시간 할애를 많이했던 몰타에 관한 정보들






+ 선생님과 트러블이 생겼다. 

처음에는 너무 교묘했다. 나도조차 눈치채지 못할 만큼.  

8주 차가 지나가면서 슬럼프가 오기 시작했다. 영어가 생각보다 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시험까지 떨어지고 나니 기분이 너무 쳐졌다. 같은 내용이 반복되는 수업도 슬슬 지겨워지고 있었지만 가장 큰 문제는 다른 곳에서 터졌다. 10주 차 넘어가면서 나를 대하는 선생님 태도가 갑자기 이상해졌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선생님이 기꺼이 대답해 주고 어떤 경우에는 내가 질문한 내용으로 수업이 진행되기도 했다. 그렇다고 수업이 나에게만 집중되는 것은 아니었다. 적극적으로 수업에 임할 때도 있었지만 나만 독점하는 수업이 되어서는 안 되기에 적절히 조절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뭔지는 모르겠지만 선생님이 문제풀이 시간에 나만 시키지 않는다거나 나의 질문에 답을 잘 안 해주는 일이 반복됐다. 그런데, 그게 너무 교묘해서 처음에는 기분 탓이겠거니 했다.  그걸 확실히 느끼게 된 건 발표수업 시간이었다. 


성격에 관한 형용사를 배울 때였는데 가족의 성격을 설명하는 영작 숙제가 있었다. 성격을 표현하는 형용사는 일상생활에서도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미리 공부하자는 마음으로 시간을 들여 영작을 했다. 프리인터미디어트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어려운 단어여도 일부러 활용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숙제 발표 당일, 내가 첫 문장을 읽자마자 선생님의 지적이 시작됐다. 


'너의 말이 너무 빨라 다른 학생들이 하나도 못 알아듣는다. 천천히 말해라.'  

너무 당황했다. 10주 차 내내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지적을 모든 학생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받으니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지만 참았다. 꿋꿋하게 영작해 온 모든 문장을 원래 나의 말 속도보다 더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다 읽고 나니 선생님의 코멘트는 '다른 학생들이 모르는 너무 어려운 단어를 쓰지 마라'였다. 너무 황당했다. 


내가 말이 빠르다면 천천히 정확하게 말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또한 각자 어휘 실력과 수준이 다르기 때문에 내가 아는 단어는 다른 학생들이 모를 수도 있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어려운 단어를 쓰지 마라가 아니라 통상의 선생님이라면 모르는 어휘를 같이 공부해야 하거늘 선생님의 이런 지적이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어학연수 기간을 통틀어서 선생님의 이런 태도는 본 적이 없다. 


확실히, 선생님의 태도가 달라졌다. 처음에는 영어 슬럼프 탓에 내가 좀 예민해서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갑자기 선생님의 태도가 급변한 것인지 도통 알 수 없었다. 

이때 정리해 둔 성격형용사는 인터미디어트 수업에서 배우는 단어였다. 미리 공부해 둔 덕분에 인터미디어트 수업이 수월했다. 


선생님의 태도는 시간이 지나자 대놓고 노골적이었다. 신문기사를 요약해서 발표하는 수업의 경우 주말 내내 적당한 신문기사를 발췌해 요약을 하고 영작을 했지만 나에게는 아예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또한 나의 질문은 아예 무시하기 시작했다. 지금 배우고 있는 시제에 관해 뉘앙스가 궁금해서 질문을 했는데 "너의 질문은 반 친구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니 패스한다"라고 했다. 그러다가 급기야는 내가 말만 하면 "내 말이 너무 빨라서 못 알아듣겠다"라고 했다. 계속된 선생님의 지적질은 평소 웬만한 걸로 주눅이 들지 않는 성격인데도 의기소침해질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의 태도로 인해 누구에게 말도 못 하고 끙끙대고 있던 상황이었건만 이쯤 되니 반 친구들도 이제는 모두가 다 눈치를 챘다. 선생님이 왜 유독 너에게만 그러냐고 내 걱정을 할 정도였다. 그렇게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했던 내가 말만 꺼내면 지적당하기 일쑤니 아예 수업시간에 말을  안 하게 됐다. 수업시간에 입을 꾹 닫고 있으니 친구들은 어디가 아프냐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안 그래도 슬럼프로 환장할 지경이었는데 선생님의 태도 때문에 슬럼프는 더 심해졌다.  

아시아인 최초로 프리미어 최고 선수를 뽑혔다는 기사 요약. 
서울시에서 행동에 문제가 있는 개의 행동장애 치료를 무상으로 제공한다는 기사. 





+ 동방예의지국 마인드는 개나 줘버려. 


나는 나 대로 친구들은 친구들 대로 스트레스를 받는 건 마찬가지였다. 

어학연수 기간이 1~2개월 정도밖에 남지 않은 친구들은 레벨테스트 통과가 안 돼 프리인터미디어트에서 4~5개월씩 머물고 있으려니 답답한 건 마찬가지였다. 룸메 수업의 경우 8 주차 넘어가니 매주 2~3명씩은 레벨을 통과하고 있었다. 게다가 두 달 넘게 머물고 있는 학생의 경우 점수가 1~2점 부족해도 선생님 재량으로 레벨을 올려주기도 했다는 얘기까지 들렸다. 모르면 몰랐을까 실력이 비슷한 다른 반 친구들이 하나둘씩 전부 레벨업이 되는데 우리 반만 레벨 통과하는 사람이 없으니 친구들 사이에서도 점점 불만이 쌓여갔다. 


한 번은 친구들이 이런 비정상적인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자는 것에 의견이 모아졌고 금요일 수업을 마치고 다 같이 모였다. 위에서 언급한 선생님의 문제는 나만 느끼는 것이 아니었다. 친구들 모두 같은 불만을 토로하고 있었다. 시험을 본 학생들 사이에서는 우리 선생님의 채점이 너무 깐깐하다는 불만도 나왔다. 하긴, 프리인터미디어트에서는 must와 have to의 뉘앙스까지 따지지 않고 대략 의미만 전달되면 그냥 점수를 주는 편인데 내 영작에 깐깐한 잣대를 들이대며 점수를 깎지 않았던가. 사실 그것만 아니어도 나는 첫 번째 시험에 바로 레벨을 통과할 수 있었다. 


또 내가 왜 선생님에게 갈굼 아닌 갈굼을 당하는지도 알게 됐다. 누군가가 자신이 영어를 못하는 게 말을 너무 잘하는 몇몇이 있어 자신이 수업을 못 따라가겠다는 불만을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 타깃이 '나'였다. 그 누군가는 한국인이었다. 아마도 내가 외국인이었다면 절대로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인의 적이 한국인이었을 줄이야. 하지만 그녀가 제대로 된 선생이었다면 아무리 그 학생이 그렇게 말을 했다고 해도 나를 그렇게 무시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그동안 이유도 모른체 수업시간에 무시당하면서도 몸에 밴 동방예의지국의 습관 때문에 선생님에게 직접적으로 불만을 어필한다는 게 정말 쉽지 않았다. 이젠 참는 것도 한계에 다다른 데다가 이유를 알게 됐으니 도저히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다음 주 월요일에 선생님하고 한판 붙겠다고 씩씩댔더니 애들이 다 뜯어말렸다.


"너 다음 주에 시험 다시 본다며, 그러다가 선생님이 너 스피킹 점수 형편없이 주면 너만 손해 볼 수 있어."  막상 그 말을 듣고 나니 기분 나쁘게 그 말에 바로 수긍이 됐다. 이런 상황이 너무 짜증이 났다. 상황이 이 지경인데도 반을 바꿀 수 없는 데는 나름의 고충이 있었다. 일단 새로운 반으로 가자마자 시험을 보게 될 경우 고작 며칠 수업한 선생님이 스피킹 점수를 제대로 주지 않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 가장 컸다. 


또 하나는 옮겨갈 마땅한 반이 없다는 것이었다. 5월 중순이 되면서 몰타의 특성상 어학연수생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기 시작했다. 하지만 갑자기 선생님을 구하기가 어렵다 보니 완전 초짜 선생이거나 은퇴한 사람이 가르치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 선생님이 결석하는 경우 그런 선생님과 수업을 해봤는데 거지 같아도 차라리 지금 있는 반이 낫다는 게 견딜 수 없이 싫었다. 잘 가르친다고 소문난 선생님 반은 TO가 잘 나지 않았고 그렇지 않으면 한국인이 이미 3명 이상이라 내가 들어갈 자리는 없었다. 반 친구들도 이구동성으로 다른 반으로 가고 싶지만 옮길 반이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이제 방법은 하나, 사무실에 가서 불만을 어필하는 것 외에는 없다. 앞서 이미 사무실에 다녀온 친구들이 있었는데 선생님이 어떤 문제가 있는 경우를 적어서 리포트를 제출한다고 했다. 실제로 나도 사무실을 가봤는데 이런 문제들은 개인적인 감정이 실리다 보니 누구의 불만인지 바로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고 내가 노출되는 상황이니 괜히 망설여졌다. 선생님의 문제점을 깨알 같이 적은 리포트 제출하고 난 뒤 선생님 얼굴을 아무렇지도 않게 볼 자신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장까지 꼬일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는데도 한마디도 말 못 하고 참은 건 정말 바보 같은 일이었다. 그건 예의를 갖추는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처음 그런 일이 있었을 때 바로 얘기했더라면 선생님이 나를 그렇게까지 무시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비싼 내 돈 내고 내가 왜 이런 취급을 당한단 말인가. 오랜 시간 몸에 밴 동방예의지국 마인드가 그렇게 싫을 수가 없었다. 

  


어학연수를 하다 보면 다양한 불만사항들이 생길 수밖에 없다.  한국인의 성향상 서로 얼굴 붉히고 감정소모가 싫어 좋은 게 좋다고 넘어가는 게 결코 좋은 일만은 아니다.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할 줄 아는 것이야 말로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이다. 겸손하고 예의 바른 태도가 전부 미덕은 아니라는 걸 나이 50에 어학연수 하면서 뼈저리게 실감할 줄이야.  



+ 다음 이야기 :  드디어 시험 통과. 



'50대에 어학연수는 핑계고' 1장은 매거진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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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정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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