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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작가 정해경 Sep 15. 2023

[몰타여행] 발레타 언더그라운드, 500년전 시간여행

몰타어학연수 제3장 #8 발레타(6) 몰타의 수도 발레타 언더그라운드투어

50대에 어학연수는 핑계고   


제3장 인터미디어트 몰타  

#8 발레타(6) 몰타기사단이 만든 발레타 언더그라운드 투어 


몰타의 수도 발레타는 오스만의 침입에 대비해 철저하게 계획도시로 세워졌는데요. 발레타의 거리와 건물 아래에는 500년 전 성요한 기사단이 만든 또 다른 지하도시가 있다는 사실은 잘 안 알려져 있습니다. 몰타의 수도 발레타에는 왜 지하도시를 만들었고 이 지하도시의 용도는 무엇이었을까요?  


+ 계획도시로 만들어진 몰타의 수도 발레타

몰타의 수도 발레타는 곶으로 툭 튀어나와있는 발레타의 지형으로 삼면이 전부 바다로 둘러싸고 있는 천혜의 요새도시다. 유럽 지역의 대다수 수도들이 오랜 기간 사람들이 거주하면서 도시가 발달한 지역이 자연스레 수도로 정해진 것과 달리 몰타의 수도 발레타는 처음부터 계획도시로 만들어졌다. 


몰타는 왜 수도를 계획도시로 만들었을까?   중세에 혜성처럼 등장한 오스만의 세력이 급속도록 팽창하며 유럽을 장악해 나가던 당시, 성요한 기사단이 1530년부터 몰타를 근거지로 삼으면서 몰타는 세계사에서 존재감을 나타나게 된다. 그리고 세계사에서 영원히 새겨진 1565년 몰타 공방전(Great Siege of Malta)에서 오스만의 군대를 막아냄으로써 오스만의 유럽진출을 바다에서 막아내게 된다. 몰타 공방전은 약 4개월의 전투에서 4만의 오스만 군대를 고작 6,000명의 성요한기사단과 몰타사람들이 막아낸 엄청난 전투다. 이 전투가 얼마나 대단한 전투였던지 세계사, 전쟁사, 해전사 등에서는 반드시 언급되는 전투 중 하나다. 이순신의 12척의 배로 133척의 배를 가진 일본을 물리친 몰타판 명량해전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오스만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지만 당시 오스만의 위력을 생각하면 오스만 군대가 다시 쳐들어올 것을 대비해야 했다. 따라서 나라를 지켜내기 위해서는 전쟁에 최적화된 지형에 철저하게 요새도시로 계획되고 만들어야 했고 선택된 곳이 바로 발레타였다. 당시만 해도 아무것도 없었던 발레타에 당시로는 최첨단의 모든 기술을 동원해 초현대식의 계획도시 발레타를 만들게 된다. 신도시를 만든 후 고대부터 수도였던 임디나에서 발레타로 수도를 이전했고 지금에 이르고 있다.  


16세기에 만들어진 발레타는 원형이 거의 변하지 않은 채로 500년이 넘는 시간동간 유지되고 있는 가치를 인정받아 1980년에 수도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에 선정됐다. 참고로 수도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에 선정된 곳은 몰타의 발레타가 유일하다. 수천 년의 시간 동안 몰타를 거쳐간 다양한 문명이 집약된 곳이 바로 발레타라고 할 수 있다. 

쓰리시티즈 성 안젤로 요새에서 바라본 발레타,
지금의 발레타와 1733년에 그린 발레타의 모습, (왼쪽 = 구글 이미지 , 오른쪽 = 몰타 현대미술관)

발레타 언더투어


+ 수도 발레타 아래에 지하도시가 있다고요? 

'발레타 언더그라운드 투어'가 있다는 것을 알고는 솔직히 반신반의했다. 몰타에서 살고 있는 곳을 제외하고 가장 많이 가본 곳이 발레타다. 발레타 아래에 지하도시가 있다는 게 상상이 잘 안 됐다. 라임스톤 지형인 땅을 파내 지하도시를 만들었다는 것도, 지하공간을 만들 공간이 있기나 한가 싶어 고개를 갸우뚱했다. 


하지만, 놓친 부분이 있었으니 발레타의 관문인 시티게이트를 지날 때 해자형식으로 성곽의 둘레를 파놓았는데 높이가 상당하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발레타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어퍼바라카 가든에 서면 발레타가 상당히 높은 지대에 지어진 것을 알게 된다. 그러니 지하도시를 만들 공간은 충분하다. 또 하나, 몰타 특유의 라임스톤은 보기에는 굉장히 단단해 보이지만 발레타의 라임스톤은 다소 무른 석회암 재질이라 땅을 파고 돌을 깎아내는 것이 어렵지도 않을뿐더러 시간도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는다고 한다. 

발레타 입구 시티게이트에서 본 성곽의 높이가 상당하다. 
발레타는 해변에서 약 59m 높이까지 도시가 층층이 건설됐다. 


발레타 언더그라운드 투어는 국립고고학박물관에서 진행하는 헤리티지 프로그램이다. 발레타는 바둑판으로 설계된 도시로 입구인 시티게이트에서 끝인 엘모어 성까지 직선으로 이어지고 있는데 메인 도로는 퍼블릭 스트리트(Public street)라고 부른다. 특이한 건 이 메인도로에 발레타의 모든 중요한 건물들이 다 있기 때문에 발레타는 이 메인 거리 하나만 걸으면 발레타의 주요 건물들을 대부분 다 볼 수 있다. 숱하게 지나다녔던 퍼블릭 스트리트인데 이 도로 밑으로 거대한 지하도시가 있을 것이라곤 상상조차 못 했다. 


영국군이 주둔하던 당시에는 그랜드하버와 접하고 있는 곳에 해군의 잠수함을 숨기기 위해 발레타 지하를 파내려고 하다가 비용의 문제로 무산되기도 했다는데 도대체 발레타의 지하도시는 어느 정도일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발레타 메인 거리인 Public street. 이 아래로 전부 지하도시가 있다.


몰타 고고학 박물관에 들어서고는 깜짝 놀랐다. 영국 스톤헨지 BC 2000, 이집트 피라미드 BC 2530, 몰타 주간티아 거석신전 BC 3600년... 


뭐, 뭐라고... 몰타 거석신전이 이집트 피라미드보다 천 년이나 앞서 있었다고?????? 

이런 거 나만 몰랐나????? 몰타 거석문화는 다음 기회에 설명하겠다. 

언더그라운드 투어가 이뤄지는 몰타 국립고고학박물관


발레타 언더그라운드 투어는 문화재 보존을 위해 매시간 정해진 인원만이 탐방이 가능하기 때문에 미리 홈페이지를 통해서 예약을 해야 했다. 지정된 시간에 예약을 한 사람들이 고고학 박물관에 모였다. 박물관 안쪽에 별도로 마련된 공간으로 들어가니 안전모, 플래시 등 탐방에 필요한 개인물품을 나누어 준다. 안전과 관련하여 간단한 설명을 들은 뒤  그곳에서 탐방을 시작하는 줄 알았는데 밖으로 나갔다. 가이드를 따라 어디론가 걸어갔는데 도착하고 보니 성요한 대성당 앞이었다. 


여러 번 갔었던 성요한대성당이었는데 지나다니면서도 막아놓은 곳은 무엇을 하는 곳인지 한 번도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언더그라운드 투어를 위한 공간이었다는 게 새삼스러웠다. 꽁꽁 닫아둔 문이 열렸고 드디어 발레타의 지하도시로 한 발씩 들여놓는다.  발레타의 지하도시는 어떤 풍경일지 너무 궁금해 가슴이 두근거렸다.  

탐방에 필요한 안전모와 후레쉬 등을 받았다.
드디어 발레타 지하도시로 들어갑니다. 


+ 왜 이런 지하도시를 만든 것일까? 

지하로 내려오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크고 정교한 터널에 다소 놀랐다. 성요한 기사단 시절 발레타를 만들 때 지하터널까지 함께 만들어졌기에 지금으로부터 약 500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원래부터 있었던 지하터널이었지만 오랜 시간 이 지하도시는 잊힌 채로 있었다. 2009년에 발레타 전체를 다시 정비할 필요가 생겼고 당시에 대통령 궁 앞의 성조지 광장 지하에 주차장을 건설하기 위해 고고학 조사를 시작하면서 이 지하도시가 발견됐다. 성요한 기사단 시절에 만든 거대한 지하도시가 발견됐으니 우리라로 치자면 서울 한복판에 조선시대의 지하도시가 발견된 것이나 마찬가지겠다. 


몰타는 외부에서 보면 특이한 지형으로 인해 전쟁에 최적화된 '난공불락의 요새'라는 걸 누구라도 알 수 있다. 그런 발레타에 왜 굳이 이런 지하도시를 만들게 된 것인지 너무 궁금했다. 그 이유는 오스만의 침공에 대비한 것이었다. 몰타가 3개월의 악전고투 끝에 가까스로 오스만을 물리친 후 다시 오스만이 공격해 올 것을 대비해 신도시를 건설하면서 지하도시도 함께 만들었다고 한다. 지하도시는 전쟁 시에 전투를 위해 이동의 목적 외에도 물과 곡식을 저장하는 용도로 만들어졌다. 몰타공성전 때 3개월을 버텨내야 했던 당시의 절박함이 도시 계획에 고스란히 반영된 셈이다. 기록에 따르면 지하도시에는 12개의 물을 담을 수 있는 저수지가 있고 이는 4개월 동안 4만 명이 먹을 수 있는 물의 양이었다고 하니 실로 놀랍다. 


오스만과의 전쟁을 대비해 만들어진 이 지하도시는 다행인지는 모르겠으나 사용이 되지 않았다. 몰타공방전에서 패한 오스만은 이후 레판토 해전에서 유럽 연합군에서 패함으로써 다시는 지중해를 넘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육지에서는 오스트리아 빈 2차전을 패하면서 이후부터 오스만의 점점 힘을 잃고 유럽에서 완전히 밀려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500년이나 된 지하도시는 생각했던 것보다는 훨씬 양호했다. 물론 처음에는 쓰레기에 모양도 제대로 알아볼 수 없었을 수도 있겠지만 탐방이 이루어지는 구간은 잘 정비가 되어 있었다. 천장에는 습기가 맺혀있고 종유석이 자라는 모습도 볼 수 있지만 지하 특유의 곰팡이 냄새라던가 그런 것은 개인적으로는 느끼지 못했다.  설명이 필요한 부분에는 간단하게 안내판을 붙여놓기도 했는데  대부분은 가이드의 영어 설명으로 진행이 됐다. 물론 영어로 진행된 설명이라서 또 한 번의 영어 리스닝 시험 같은 투어이기도 했다. 몰타의 역사에 관련된 내용들이 많은 곳이라 미리 몰타의 역사에 대해서 공부를 좀 하고 간다면 훨씬 더 이해가 될 수 있긴 하겠다. 

해설사의 설명과 함께 지하도시 탐방이 이루어진다. 


+ 17,000톤의 폭탄에도 살아남은 건 발레타 지하도시 덕분. 

이 지하도시가 빛을 발한 건, 그로부터 약 400년 뒤 세계 제2차 세계대전 때다. 몰타는 옛날부터 지중해의 전략적 요충지로 페니키아, 그리스, 카르타고, 로마, 비자틴, 아랍, 성요한 기사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세력으로부터 지배를 받은 나라다. 지중해 한가운데 있는 몰타의 지리적 중요성은 근대에도 마찬가지였고 당시 영국의 지배하에 있던 몰타를 서로 차지하기 위해 세계 제2차 대전 당시 독일과 이탈리아의 공군은 어마무시한 폭격이 이어졌다. 2년 동안 추축국 군대는 17,000톤의 폭탄을 몰타에 쏟아부었고 이때 발레타의 지하도시는 대피소로 그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발레타의 주민들은 공습이 있을 때면 지하도시로 숨어들었고 공습을 대비해 보급품을 숨겨두기도 했다고 한다. 


지하도시에는 이동 통로와 연결되어 안쪽으로 파낸 크고 작은 공간들이 있는데 대략은 4인 가족이 지낼 수 있는 규모였다.  지하도시에서 곳곳에는 2차 대전 때 이곳에서 살았던 흔적이 곳곳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전쟁이 얼마나 끔찍했을지 곳곳에 새겨놓은 십자가와 다양한 종교 조형물이 말해 주고 있었다. 소박하지만 다양하게 인테리어를 했던 흔적도 보이고 바닥에는 타일도 깔았다. 그때 사용했던 전기시설들도 여전히 남아 있었다. 폭격이 시작되면 며칠 씩 혹은 몇 달씩 바깥을 나갈 수 없는 상황에서도 그곳도 사람 사는 곳이라 나름대로 멋을 부린 삶을 엿본다. 그들이 견뎌내야 했을 시간에 새겨놓은 한줄기 희망은 아이러니하게도 전쟁의 공포로 더 크게 다가왔다.

2차 대전에 대미소로 사용됐던 지하도시


나중에 몰타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발레타 언더투어'를 했고 방공호를 봤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이가 좀 있는 몰타인의 경우 자신의 부모님이 어린 시절에 발레타 지하도시에 살았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놀라운 점은 몰타 기사단이 있던 시절 파 놓은 지하도시만 활용한 것이 아니라 세계 2차 대전 당시에도 집집마다 방공호 개념으로 집 밑에 지하 동굴을 팠다고 했다. 발레타 아래에 지하도시가 어느 정도로 어떻게 남아 있을지 정말 궁금해졌다. 

곳곳에 다양한 종교적 조형물이 여전히 남아 있따.


한참 안으로 이동하니 이전 달리 높이가 대략 10m 남짓의 엄청난 규모의 지하공간이 나타난다. 지하도시를 만든 목적은 전쟁 시에 군사들의 이동 외에도 물이나 곡식을 저장할 수 있는 용도로 만들어졌는데 이곳은 물을 저장하고 정화하던 시스템으로 사용했던 곳이라고 했다. 멀리서 사진을 찍고 영상을 찍느라 중간 부분에 설명을 놓쳐서 정확하게 어떤 방식으로 물을 저장하고 저장한 물을 정화했는지는 듣지는 못했다. 


설명으로는 일부 고고학자들의 경우 당시에 유럽의 많은 도시들이 하수시스템을 만들었지만 몰타의 경우 다른 도시보다 더 발전된 하수시스템을 가지 있었는데 그 증거로 지하도시의 하수시스템을 예로 든다고 했다. 실제로 지하터널 양 옆으로 홈을 파놓았고 그곳으로 물을 흘려보내면 바다로 흘러가도록 만들어졌다고 한다. 같이 탐방한 사람 중에 엔지니어들이 몇몇 있었는데 지하도시에 12개가 있었다는 수조에 관심이 폭발했다. 어떤 시스템으로 활용됐는지 집요하게 질문이 이어졌다. 안 그래도 영어로 된 설명을 듣느라 초집중을 하고 있었는데 전문용어가 막 튀어나오니 더 이상 이해는 어려웠다. 


고개를 꺾어 위를 쳐다보니 높이는 대략 5m는 되어 보였다. 우리가 볼 수는 없지만 안쪽으로 더 이동하면 12m 높이의 수조가 또 있다고 했다. 두 사람이 나누는 이야기가 공명이 되어 울러 펴진다. 이곳에는 아주 특별한 클래식 공연이 열렸다. 음악 축제에 이벤트로 열린 아주 특별한 공연이 된 셈인데 이런 곳에서 듣는 클래식 음악은 왠지 더욱 특별할 것 같았다. 뒤늦게 공연 정보를 접했기에 혹시나 다른 공연이 있을까 싶어 몰타에 있는 내내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이후로는 한 번도 공연이 열리지 않았다. 

약 5m 높이의 공간. 


지하도시를 걸으며 설명을 듣는 사이에 어느새 모든 탐방이 끝났다. 계단을 따라 올라오니 다시 지상세계다. 성요한 대성당 입구 근처에서 지하도시로 들어갔는데 출구도 성요한 대성당 근처다. 약 40여분 가량이나 지하세계를 돌아다녔는데 입구와 출구의 거리는 고작 50m 남짓이라는 게 놀라웠다. 발레타 지하도시는 실지로는 발레타의 주요 건물들이 모두 이 지하도시로 연결된다고 한다. 성요한대성당, 그랜드마스터가 거주했던 왕궁, 발레타 맨 끝에 있는 성엘모요새까지 지상에서 직선으로 이어진 거리만 가늠해도 약 1km다. 도대체 발레타 도시 밑으로 안쪽에 얼마나 거대한 지하공간이 어떻게 촘촘하게 연결하고 있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이번 탐방으로 보게 된 지하도시는 원래 규모의 1/10도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중에서 보존상태가 좋고 볼거리가 있는 곳을 정해 탐방로로 활용하고 있었다. 앞으로 더 복원이 된다면 아마도 탐방로가 좀 더 길어지고 다른 볼거리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가 됐다. 



그렇게 지나다녔는데도 이 밑에 거대한 지하도시가 있는 줄을 상상도 못 했다. 


현재 발레타 언더그라운드는 매우 중요한 문화재라서 탐방 인원도 제한적이지만 이곳을 안내하는 해설사의 경우도 아무나 해설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최고의 해설사만이 이 탐방을 진행할 수 있다고 한다. 몰타에서 이 지하도시에 얼마나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인지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나 역시 발레타 언더투어를 해보지 않았다면 그저 예쁜 도시에 지나지 않았을 발레타다. 지하도시에서 만난 발레타는 몰타 질곡의 역사이자 세계사의 한 페이지를 만난 느낌이었다.


짧은 500년의 시간 여행이 끝났다. 찬란한 아픔을 품고 있는 발레타가 더욱 아름답게 빛난다. 

거대한 지하도시를 품고 있는 발레타



✅ 발레타가 궁금하다면 

발레타(1) 몰타 선거문화 https://brunch.co.kr/@haekyoung/97

발레타(2) 수도 전체가 세계문화유산 https://brunch.co.kr/@haekyoung/105

발레타(3) BTS도 다녀간 발레타 구석구석 https://brunch.co.kr/@haekyoung/104 

발레타(4) 발레타의 심장, 성요한 대성당 https://brunch.co.kr/@haekyoung/145 

발레타(5) 몰타의 수도, 발레타에 반하다. https://brunch.co.kr/@haekyoung/151



+ 다음 이야기 :  왕좌의 게임 촬영지, 중세도시 임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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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에 어학연수는 핑계고' 1장과 2장은 브런치북에서 볼 수 있습니다. 



50대에 어학연수는 핑계고, 런던 

https://brunch.co.kr/brunchbook/life-of-lo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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