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타어학연수 제3장 #5 고조여행(1) 믹타동굴, 칼립소동굴
50대에 어학연수는 핑계고
#5 고조여행(1) 믹타동굴(Tal-Mixta Cave), 칼립소동굴(Calypso Cave)
몰타는 어디를 찍어도 다 멋진 풍경을 보여주는 곳이지만 그중에서도 정말 특별한 사진을 남길 수 있는 곳은 따로 있지요. 여행지를 선택할 때 사진 한 장 때문에 여기는 꼭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곳이 있는데요. 사진 한 장 찍기 위해 찾아가야만 하는 곳, 물론 몰타에도 있고요. 그곳은 바로 믹타 동굴입니다.
고조 섬의 많은 볼거리 가운데서도 무조건 여긴 가야겠다고 생각한 건 순전히 그곳에서 찍은 사진 때문이었다. 고조에 대해 검색을 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동굴 사진에 눈이 번쩍했다. '와 몰타에 이런 곳이 있어?', 사진을 보면 누구나 다 한번 가보고 싶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끌리는 곳. 그곳은 고조섬의 '믹타동굴(Tal-Mixta Cave)'이다.
믹타 동굴은 고조섬에 있다. '몰타도 섬인데 고조섬은 뭐지?'라고 궁금할 텐데 몰타는 한 개의 섬이 아니다. 몰타는 크게 몰타 본섬, 고조 섬, 코미노 섬 이렇게 3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고 어학연수생들과 관광객들이 대부분은 몰타 본섬에 머물게 된다. 통상 '몰타'라고 하면 몰타 본섬을 의미한다. 몰타 본섬과 고조 섬 두 곳은 사람들이 살고 있고 코미노 섬은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다.
고조 섬까지는 배를 타야 하는데 몰타 섬 가장 북쪽에 위치한 시르케와(Cirkewwa ) 터미널과 발레타의 터미널 두 곳을 이용할 수 있다. 시르케와 여객터미널의 경우 갑판 위로 올라갈 수도 있지만 발레타 터미널의 경우 쾌속선이라 선실 밖으로 나갈 수 없다.
고조 섬까지 느릿느릿 움직이는 페리에 올라탔다. 바람은 뜨겁지만 갑판 위로 나가니 바닷바람이 시원하다. 쾌속선으로 채 10분이 걸리지 않을 정도로 가까운 고조 섬인데 느긋한 페리선은 약 30분 정도 걸려 우리를 고조섬에 내려놓았다. 몰타 본섬 사람들이 여행이나 나들이로 고조 섬을 간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이 조그만 나라에서 고작 배를 타는 것으로도 여행하는 기분을 느낀다'는 말에 풉! 하고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몰타에서 살아보니 진짜로 배 타고 고조를 갔다 오는 것만으로도 여행하는 기분이 들었다. '사람은 환경의 동물'이라는 말이 무섭게 느껴지긴 처음이었다.
고조 여객선 터미널에서 밖을 나오니 긴 택시 행렬이 늘어서 있다. 전형적인 관광지 여객 터미널 앞의 풍경이다. 고조 섬은 같은 몰타라고 하기엔 비슷하면서도 다른 분위기라 몰타라고 하기엔 좀 낯설다. 몰타 본섬과 고조섬은 우리 눈에는 다 거기서 거기다 싶은데 몰타 본섬과 고조 섬은 서로 지역감정이 있다는 말에 빵 터졌다. 이 손바닥만 한 나라에도 지역감정이 있다니-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다 같은 모양이다.
고조섬은 몰타 본섬을 압축해 놓은 느낌이랄까 싶다가도 그런 것치고는 묘하게 뭔가 다른 느낌이다. 고조섬 만의 볼거리들이 꽤 있는 편이라 제대로 돌아보려면 적어도 이틀 정도는 시간을 내야 한다. 몰타 본섬과 마찬가지로 대중교통이 있고 시티투어 버스도 다닌다. 하지만 대중교통의 경우 배차간격도 길고 섬의 외곽까지 연결되는 것은 아니라서 혼자 여행이 아니라면 택시를 이용하는 게 더 효율적일 수도 있다. 특이한 건 미터 요금이 아니라 주요 관광지까지 택시 요금이 정액제로 운행된다는 점이다. 성수기가 되면 고조 섬 주요 코스만을 운행하는 택시투어도 있을 정도니 얼마나 관광에 특화된 섬인지 짐작하리라.
우리의 목적지는 믹타 동굴인데 그 동굴은 주요 볼거리에서도 혼자 뚝 떨어져 있는 곳이어서 택시 앱을 이용해 목적지까지 이동을 했다. 구글에 표시된 대로 택시는 움직이고 있기는 한데 자꾸만 외진 곳으로 향하니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이 맞는 것인가 싶었다. 그러다 양옆으로 밭이 있는 길 한가운데다 우리를 내려놓았다.
"이런 곳에 동굴이 있기나 한 거야?"
이런 외진 곳에 혼자가 아닌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자 이젠 씩씩하게 걸어갈 수 있는 길로 걸어가 본다. 다행히 구글지도는 맞는 것 같았다. 그렇게 얼마 걷고 나니 길 옆으로 이상한 구멍이 뚫린 곳을 발견했다.
"설마 여기는 아니겠지?"
입구는 한 사람이 들어갈 정도의 좁은 통로인데 밑으로 내려가도록 되어 있었다. 반신반의하면서도 길이 이곳 하나밖에 없으니 속는 셈 치고 혼자 들어가 봤다.
설마 하고 들어선 그곳은 내가 찾고 있던 '믹타 동굴'이 맞았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친구들에게 절로 돌고래 소리가 튀어나왔다.. 길 한가운데에 이런 동굴이 있을 거라곤 전혀 상상조차 안 되는 곳에 동굴이 있을 줄이야.
'와- 여기 진짜 끝내주는구나!'
믹타동굴은 화강암이 용암으로 분출 후 냉각되면서 독특한 형태의 천연동굴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몰타의 자연은 비정형적이고 예측이 불가하니 매번 사람을 놀라게 한다. 항상 느끼는 생각이지만 상상 그 이상의 놀라움을 가진 곳이 몰타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몰타의 동굴에서 바라보는 해변은 람라베이(Ramla Bay)인데 몰타에서 귀한 모래사장 해변이다. '람라'라는 말은 몰타어로 '빨간 모래'라는 의미인데 이름 그대로 빨간 모래 해변이라 람라베이로 불린다.
정오를 조금 넘어서 도착한 탓에 사진을 찍기에는 타이밍을 놓쳤다. 지중해 특유의 푸른 바다와 하늘을 담고 싶었는데 하늘이 너무 허옇다. 사진이 목적이라면 좀 더 이른 오전시간이나 해가질 때 찾는다면 더 멋진 사진을 담을 수 있겠다.
람라베이 쪽으로 열린 동굴의 모양은 볼수록 특이했다. 큰 구멍이 난 건 하나인데 옆으로도 작은 구멍이 또 있다. 위쪽으로 몸은 완전히 구부려야 드나들 수 있는 작은 구멍으로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동굴 밖이 갑자기 환해지면서 바로 아래는 완전히 깎아지른 절벽이다. 고소공포증이 없는데도 다리가 후들거린다. 이곳에서 람라베이 해변으로 한번 내려가 볼까 했던 생각은 접었다.
지금의 큰 구멍도 처음에는 이렇게 작은 동굴이었겠지. 얼마의 세월이 지나 저렇게 큰 구멍이 만들어진 것일까 상상조차 되지 않은 억 급의 시간이다. 고작 백 년도 못 사는 인생 앞에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큰 스승으로 버티고 있으니 위대한 자연 앞에 저절로 머리를 숙일 수밖에.
이런 곳을 동굴이라 부르기엔 전형적인 동굴인가 싶고 그렇다고 동굴이 아니면 마땅히 부를 단어도 없는 애매한 지형이다. 게다가 믹타동굴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크고 넓었다. 이 동굴이 처음에 어떻게 알려진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람라베이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때문이란 건 확실하다. 나도 그렇지만 대부분 이곳을 찾는 사람들도 인증사진을 찍기 위해 찾아오고 있었다. 어떻게들 알고 오는 것인지 동굴은 조용할 틈이 없다. 우르르 한 무리의 사람들이 왔다가 사진 찍느라 잠시의 소란스러움이 펼쳐지고 그들이 빠져나가면 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똑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동굴은 사람들의 발걸음이 쉼 없이 이어진다.
오호- 넌 누구냐
이런 곳에도 길고양이가 있어서 깜짝 놀랐다. 몰타의 길고양이들은 어디에서도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이 이 녀석의 관찰대상이라고나 할까. 우리 앞에 새초롬한 표정과 아련한 눈빛을 탑재하고선 바라보니 고양이 집사모드가 되는 건 순식간이다. 두어 번 포토제닉 한 포즈 지어주니 어떻게든 고양이에게 한 번이라도 예쁨을 받아볼까 싶어 어러고 달래고 구애작전에 들어가는 순간... 고양이는 이내 심드렁.....
에구구구 고양이 집사는 아무나 하는 거 아니네.
오후 2시가 넘어가니 끊이지 않던 발걸음도 뚝 끊겼다. 동굴에는 나른한 시간이 찾아든다. 잰걸음으로 우리 앞으로 도도하게 걸어 다니던 고양이도 우리에게 아주 잠깐 보였던 관심을 거두고 본체만 체다. 따뜻한,, 이라고 하기엔 너무 뜨거운 햇살이건만 몰타의 고양이는 역시 뭔가 달라도 다르다. 뜨거운 태양을 미풍 삼아 어느새 잠이 들었다. 동굴의 마스코트가 된 고양이의 단잠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조용히 우리도 자리를 떴다.
돌아가는 길은 꼼짝없이 버스가 다니는 곳까지 걸어야 했다. 눈앞으로 펼쳐지는 고조섬의 목가적인 풍경이 한 폭의 그림 같다. 모든 것이 메말라가는 몰타의 여름 풍경 속에 곧 서서히 사라져 갈 초록의 풍경이 아련하다. 꽤 긴 거리를 걸어야 했지만 기꺼이 수고스러움을 감수할 만한 믹타동굴이었다.
믹타 동굴이 고조섬의 첫 여행이었기에 그곳 외에 별 다른 정보가 없었다. 그 뒤에 갑자기 고조섬이 너무 궁금해졌다. 몰타에서 지내는 동안 고조섬 여행을 위해 몇 번 더 찾았었고 그중 한 번은 투어로 고조섬을 한 바퀴 돌았었다. 그때 가보게 된 동굴이 있었으니 '칼립소 동굴'이다.
'칼립소'라는 말이 왠지 낯설지가 않다 싶었는데 그건 바로!!! 바로!!!! 호메로스 서사시 '오디세이아'에 나오는 그 동굴이었다.!!! 엄청난 폭풍으로 배가 난파된 후 요정 칼립소가 오디세우스를 7년간 포로로 가두었던 동굴이 나오는데 그 동굴이 바로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동굴이다. 몰타에서는 이 동굴을 '칼립소의 동굴'로 부르고 있다. 오디세우스에 등장하는 동굴이 실지로 존재한다는 것도 신기한데 그곳이 몰타에, 내 발아래에 있다는 것이 너무 신기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붕괴위험으로 들어가 보지는 못하고 밖에서 안내판으로만 볼 수 있었다.
동굴 안을 보니 이 작은 동굴에서 7년이나 살았나 싶은데 시선을 돌리면 람라베이의 멋진 풍경이 펼쳐진다. 혹자는 오디세이아가 7년이나 잡혀서도 아들 둘이나 낳고 살았다는 것으로 보아 몰타섬은 젖과 꿀이 흐르던 에덴동산이었을 것이라고 자신의 생각을 곁들이기도 했다.
오디세이아만 봤을 때는 와- 7년씩이나 동굴에 갇혀 살았던 것은 큰 시련이었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오늘 실제 그 동굴에 서보니 좀 다른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오디세이아가 떠날 수 있었음에도 떠나지 않고 7년이나 머물렀던 것은 몰타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한몫한 건 아닐까' 싶은 생각 말이다. 이토록 아름다운 지중해의 풍경이 그때도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겠지.
어랏, 그런데 저기가,, 가만있어 보자.. 오....... 저기가 믹타 동굴이잖아.!!!!!
집으로 돌아와 다시 꺼내본 믹타동굴 사진,,,, 저곳이 칼립소 동굴이었어!!!!
람라베이를 두고 사이좋게 오른쪽, 왼쪽으로 각각 동굴 하나.
참 알면 알수록 매력 돋는 몰타잖아.!!!!
역시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감동이다.
+ 다음 이야기 : 몰타에서 이렇게 많은 공연을 볼 줄이야.
+ 구독하기, 라이킷, 댓글 부탁드려요~ 글 쓰는데 큰 힘이 됩니다. ^^
'50대에 어학연수는 핑계고' 1장과 2장은 브런치북에서 볼 수 있습니다.
50대에 어학연수는 핑계고, 런던
https://brunch.co.kr/brunchbook/life-of-london
#몰타어학연수 #몰타라이프 #몰타라이프 #몰타여행 #malta #maltalife #몰타 #런던어학연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