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학연수에서 궁금한 것들이 많지만 가장 많이 궁금해하는 사항은 '어학연수 후에 영어가 얼마나 늘었는지?'일 것이다. '50대에 어학연수는 핑계고' 연재도 이제 거의 마무리 단계이니 어학연수를 하면서 느꼈던 '영어 공부'에 대해 아주 개인적인 소회를 적어본다. 먼저, 이 글도 꽤 긴 글인 점을 감안해 주길 부탁드린다.
+ 총 34주의 어학연수, 시작은 엘리멘터리
어학연수는 초급인 엘리멘터리 레벨부터 시작했다. 어학연수 시작 전 온라인으로 반배정 레벨테스트를 했는데 엘리멘터리로 배정받았다. 프리 인터미디어트 정도는 받을 줄 알았는데 엘리멘터리라 좀 의아하긴 했다. 50대 이상의 경우 프리인터미디어트로 배정받았다 하더라도 영어에 노출된 적이 거의 없었던 경우에는 프리 인터미디어트 수업이 어렵게 느껴진다고 엘리멘터리로 내려와서 수업을 받는 경우도 꽤 있었다.
어학연수를 시작할 당시에는 영어 레벨의 기준이 뭔지도 몰랐다.
통상 초급은 비기너(Beginner), 엘리멘터리(Elemetary, A1), 프리 인터미디어트(Pre-Intermediate, A2)고 중급은 인터미디어트(Intermediate, B1), 어퍼 인터미디어트(Upper-Intermediate,B2)이다. 고급인 프리 어드번스(Pre-Advanced, C1)와 어드번스(Advanced, C2)는 거의 원어민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이미지 출처 https://www.bellenglish.com/what-is-your-english-language-level/
여러 레벨을 경험해 보니 공부다운 공부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 건 어퍼 인터미디어트 레벨부터였다.
어퍼 첫날, '화를 자초하다(it just asking for trouble.)', ' 넋을 잃고 멍하니 바라보다(transfixed watching)', '그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the name of which escapes me.)' 등의 표현이 등장했다.
그때 비로소 알았다. 내가 말하고 싶은 영어 혹은 알고 싶다고 생각하는 원어민의 영어는 모두 어퍼 수업부터라는 것을. 또한, 어퍼 수업부터는 선생님들이 발음, 속도, 어휘 등 이런 건 신경 쓰지 않고 아예 원어민이라 생각하고 수업을 진행했다. 나중에 선생님들과 친해지고 난 뒤에 수업에 관해서 물어보니 다른 수업은 학생들 수준에 맞춰야 하기 때문에 말도 천천히 하고 어휘도 신경 써야 하는데 어퍼 수업부터는 원어민 수업처럼 진행하니 가르치는 입장에서도 정말 편하다고 했다.
따라서 어학연수의 비용대비 최대 효과를 얻으려면 처음 어학연수를 시작할 때부터 최대한 높은 반에서 시작을 하거나, 그렇지 않다면 빠르게 레벨업을 하는 것이 돈과 시간을 아끼는 지름길이지 않을까 싶다.
몰타에 있을 때 영어를 잘하는 한국인 혹은 외국인 친구들 모두 무조건 레벨업을 빨리 해야 한다고 수없이 조언을 했었다. 그때는 그 말의 진정한 의미를 몰랐다. 그때는 천천히 가더라도 기초부터 차근차근 다지고 가겠다는 생각이 컸었다.
만약, 누군가가 '어퍼 수업 정도는 돼야 네가 배우고 싶은 영어가 있을 거더'라고 직접적인 조언만 해 줬어도 초, 중급에 그리 오래 머물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때는 사람들이 그렇게 조언을 했는데도 하나도 들리지가 않았으니, 시행착오의 대가로시간, 돈을 지출하고 난 다음이었다. 뒤늦게 너무 후회를 했지만 누구를 탓하랴.
나의 손때 묻은 교재들, 엘리멘터리 교재는 굳이 필요가 없어 한국으로 돌아올 때 굳이 가지고 오지 않았다.
+ 최종 레벨은 어퍼 인터미디어트에서 끝났다.
런던에서 프리어드번스 레벨 테스트를 한번 보기는 했는데 너무 어려워서 완전 좌절모드였다. 몰타에서 다시 공부를 시작하니 자신감이 조금씩 생겼다. 사설 학원에서 발급해 주는 증명서 종이 한 장이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왕이면 긴 시간 정말 스트레스받으며 공부를 했던 만큼 프리어드밴스로 마무리하고 싶었던 작은 바람이 있었다. 그래도 이 나이에 엘리멘터리에서 시작해 어퍼 인터미디어트로 끝났으니 그것만으로도 스스로를 칭찬한다.
어학연수 직후의 영어 수준은 외국인하고 의사소통은가벼운 스몰 토킹부터 크게 어려운 주제가 아니라면 어느 정도까지 토론이 가능한 정도였다.
어학연수가 끝난 지금은 외국인하고 의사소통은 어렵지는 않지만 영어를 쓸 일이 없으니 영어가 상당히 줄긴 했다. 그래서 지금도 영어 공부는 계속하고 있다.
어학연수를 마치면 발급해주는 레벨증명서, 본의 아니게 몰타 2장, 런던 1장,
+ 50대에 다시 시작하는 영어공부는 생각보다 쉽지는 않았다.
우리 세대의 영어는 말하기 위주의 수업으로 독해와 문법 위주의 수업이었다. 따라서 이미 알고 있는 문장이어도 외국인 앞에만 서면 한없이 작아지고 꿀 먹은 벙어리가 되기 마련이다.
다행히도 나는 상황이 그런 편은 아니었다. 여행작가라는 특성상 아주 기초적인(길바닥에서 생존을 위한) 스몰토킹 정도는 여행을 다니며 많이 해본 상태였기에 소위 말하는 입은 트여 있는 상태였다. 물론 영어가 유창하지는 않지만 성격상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도 없고 호기심도 많은 성격이라 제2언어를 배우는 데는 큰 장점이었다.
어학연수 초기에는 대다수가 영어에 생전 처음으로 노출되기 때문에 적응하느라 다소 어려움을 느끼지만 내 경우는 그런 어려움은 없었지만
영어의 각 레벨마다 매번 다른 미션이 주어졌다.
프리 인터미디어트에서는 문법 때문에 굉장히 고전했다.한국에서 공부했던 한국식 사고로 영어 시제와 조동사의 뉘앙스 차이를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결국 몰타에서 원어민 선생님께 문법 과외를 따로 받았다. 이때부터 영어를 영어로 공부하는 게 훨씬 편해졌다.
지금도 문법적으로나 이론적으로 공부가 필요한 부분은 영어 설명이 훨씬 더 이해가 잘 된다. 프리 인터미디어트 때 문법 공부에 상당한 시간을 들인 덕분에 이후 문법은 별도로 공부를 하지 않아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
어느 정도 문법이 해결하고 나니 인터미디어트 때부터는어휘와의 전쟁이었다. 프리 인터미디어트까지는 대부분 아는 단어였고 모르는 단어가 나오더라도 대체로 유추가 가능했다. 따라서 어휘 공부를 하긴 해도 눈으로 익히는 정도였다.
하지만, 인터미티어트 때는 모르는 단어가 수두룩했고 따로 단어장을 만들지 않으면 기억조차 힘들었다. 어휘 노트를 따로 만들어서 정리를 했고 네이버 단어장, 구글 등에 단어를 저장해 두고 어학원을 오갈 때, 산책을 할 때도 무조건 영어단어를 외웠다.
프리 인터미디어트에서 나를 미치도록 괴롭혔던 시제.
어떨 땐 여전히 헷갈리는 조동사
어휘 정리 노트
어학연수 동안 정리한 문법, 어휘, 에세이 노트들
줄곧 책상에 앉아 공부만 하는 나에게 같이 어학연수를 하던 20~30대의 친구들은 이렇게 말했다.
"언니, 한국에서처럼 공부할 것 같으면 비싼 돈 내고 어학연수를 왜 와요? 책상에서 공부할 게 아니라 나가서 외국애들 하고 놀아야 영어가 늘어요."라고.
일정 부분 맞는 말이다.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 계속 영어로 말을 해야 하니 머릿속에 저장된 어휘를 계속 입으로 말을 하게 되고 자연스레 영어가 늘게 된다. 그러니 머릿속에 저장된 어휘를 계속 꺼내서 사용하기 위해서도 책상에서 공부보다 친구들과 계속 어울리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실제로 어학연수 후기들을 보면 어학원 수업보다 친구들과 놀면서 입이 트이고 영어가 늘었다는 사례가 많다.
나의 경우는 스피킹이 문제가 아니라 스피킹에 활용할 어휘량이 다른 사람보다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에 공부 방법이 달라야 했다. 친구들과 어울려도 내가 아는 단어 수준에서만 얘기가 반복되니 시간이 갈수록 그냥 그 수준에서 정체 상태라는 걸 스스로 느낄 정도였다.
우연한 기회에 런던에서 영어를 오랫동안 가르친 분을 만났는데 그분의 조언도 외국인들과 어울리고 말을 많이 한다고 해서 무조건 영어가 느는 건 아니라고 했다. 스피킹이 전혀 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아는 수준 안에서 같은 말만 반복하게 된다고 했다. 그 수준을 뛰어넘기 위해서는 어휘량이 있어야 하는데 내 상황에서는 단어 위주의 공부가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6주 동안 미친 듯이 단어를 외우고 나니 벅차다고 느꼈던 수업도 그제야 귀도 트이고 입도 트여 수업이 훨씬 편해졌다. 통상 아시아권 학생들이 12주 정도는 돼야 인터미디어트 레벨을 통과한다는 데 운이 좋게도 7주 만에 인터미디어트 레벨을 통과했다. 10주 이상을 프리 인터미디어트에 있었던 걸 생각하면 엄청난 발전이었다.
걸어다니면서도, 공원에서도 실상은 영어 단어를 외우고 외우고 외우고
어퍼 때는 다시 어학연수 처음처럼 스피킹과 리스닝과의 전쟁이었다. 어퍼 인터미디어트로 레벨이 올라갔다고 기뻐했던 것도 잠시 본격적인 공부와의 전쟁이 시작됐다. 그렇다고 어휘와의 전쟁이 끝난 것도 아니었다. 분명히 아는 단어이고 쉬운 단어인데 원어민들이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구동사, 이디엄에서 활용될 때 의미가 완전히 달라지니 외워야 할 어휘는 곱절로 많아졌다.
게다가 인터미디어트에서 어휘는 모르는 단어라도 크게 어렵지 않아서 그때그때 외워고 바로바로 활용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퍼 인터미디어트의 어휘들은 단어 자체가 어려워 잘 외워지지도 않았다.
더 황당한 것은 머리로는 다 알고 있는 내용도 막상 입으로 나오지 않았다. 수업 전날에 충분히 예습을 하고, 모르는 단어도 다 외웠는데도 불구하고 막상 수업 시간에는 입으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정말 희한한 경험이었다.그동안 단어를 외우는 것에 모든 것에 집중하느라 스피킹은 어학원 수업 시간이 전부였기에 스피킹에 소홀했던 것이 어퍼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그때 알았다. 단기간에 머리로 외웠다고 해도 그게 입으로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영어를 거의 사용할 기회가 없었던 사람들이 처음 어학연수를 왔을 때 다 아는 쉬운 단어로도 말을 잘 못하는 이유도 바로 그런 이유였다. 자신이 알고 있는 단어라고 해도 끊임없이, 무한반복적으로 뱉는 연습을 해야 실제 상황에서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결론적으로 어학연수는 새로 영어를 배우는 것도 맞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이미 알고 있는 영어를 사용할 수 있는 훈련의 시간이었던 셈이다. 문법도, 어휘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영어에 노출이다. 한국에서는 영어를 지속적으로 말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니 어학연수를 통해 아는 내용을 활용하는 것이 또다른 의미의 어학연수라는 걸 어학연수가 끝날 시점이 돼서야 깨달았다.
남들은 어학연수를 하지 않고도 안다는 걸 꼭 경험해 봐야 알게 되는 나의 성격도 한 몫했다.
어학원 수업 후에는 학원에 남아서 학원이 문 닫을 때까지 공부
주말이나 휴일에는 런던 도서관이나 집근처 도서관에서 공부
+ 영어를 잘하려면 얼마의 시간이 걸릴까?
어학연수가 끝날 즈음에는 원어민과의 대화가 술술술 나오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다하게 될 줄 알았다. 열심히만 하면.
어학연수 기간 내내 공부를 정말 열심해했다. 특히 런던에서는 매일 8시간 이상을 영어 공부에 매진했다. 나이 50이 넘어서 이보다 더 열심일 수없겠다 싶을 정도로 공부를 열심히 했지만 영어는 내 생각만큼 늘지 않았다. 특히 어퍼에 오니 속도가 더욱 느려지는 느낌이었다. 성장 속도도 속도지만 속성으로 공부한 것들이 어느 시점이 되니 머릿속에서 정리가 안 되고 완전히 뒤엉커 뒤죽박죽이 된 기분이 들었다.
너무 황당하고 이상했던 경험이었기에 어학연수가 끝난 뒤에 제2외국어에 관한 이론들을 찾아봤다. 밑에 표에서 제시된 것처럼 한국인의 경우 평균적으로 인터미디어트는 350~400시간이, 어퍼 인터미디어트는 700~800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 이미 이론적으로 입증됐다. 그러니 순전히 내 기분 탓은 아니었던 것이다.
또한, 나는 어퍼 인터미디어트에서 완전히 죽을 쑤고 있는데 가장 친한 친구였던 멕시코 출신(스페인어 사용) 세실리아의 경우 인터미디어트에서는 8주, 어퍼 인터미디어트에서는 3주 만에 프리 어드번스로 가는 것을 보고 완전히 충격을 받았다. 스페인어 친구들의 영어가 놀라운 속도로 향상되는 걸 지켜보고 있자니 비교하지 말자 싶으면서도 자꾸 쪼그라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이미 예견된 상황이었다. 영어과 가장 거리가 먼 언어인 한국인이 영어를 배우기 위해서는 적어도 2,200시간을 할애해야 하지만 스페인어의 경우 600시간 정도면 된다는 것도 이미 이론적으로 증명이 됐다. 이런 내용을 알고 있었더라면 내 영어가 그들에 비해 지나치게 늦게 성장한다고 해도 좀 더 여유 있는 마음으로 느긋해졌을지도 모르겠다.
https://en.amazingtalker.com/blog/en/english/64653/ 한국인에게 영어는 정말 힘든 언어구나.
+ 극심한 영어 슬럼프는 어학연수가 끝날 때까지도 계속 됐다.
어학연수가 끝나는 시점은 얼마 남지 않았는데 영어를 너무 잘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영어가 생각만큼 늘지 않으니 초초한 마음과 매일 전쟁이었다.
무엇보다 어학원에서 하는 수준만큼 현지인들과 대화가 안 된다는 점도 나를 더욱 답답하게 했다.
극심한 영어 슬럼프였다.
런던 EC의 학업 담당 다니엘 선생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는 내 얘기를 끊지 않고 진지한 자세로 경청하며 다 듣고 난 뒤 그래프를 하나 보여줬다. 통상 영어의 계단식 그래프를 봤었기에 업 앤 다운이 반복되는 영어 슬럼프 그래프는 좀 의외였다.
다니엘은 현재 나의 위치가 두 번째 계곡이라고 설명했다. 영어 학습자는 누구나 예외 없이 슬럼프를 겪게 되는데 첫 번째 슬럼프와 달리 두 번째 슬럼프는 처음 영어를 배웠을 때보다 실력이 더 떨어진 것처럼 느낀다고 했다.
그러니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은 지극히 정상이라고 했다. 다만, 나의 경우는 단기간에 실력이 급상승한 경우라 다른 이들에 비해 두 번째 슬럼프가 좀 더 빨리, 더 깊게 온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해경, 난 네가 EC 런던에 처음 왔을 때를 기억하고 있어. 첫날 수업이 어렵다고 몇 번이나 반을 바꿨잖아. 그때 너는 정말 간단한 수준의 영어만 이야기할 수 있었어. 너도 기억날 거야. 그런데 지금은 어때? 네가 처한 상황을 아무 어려움 없이 나에게 얘기를 하고 있잖아. 그만큼 너의 실력이 향상됐다는 증거야. 너는 지금 누구보다도 굉장히 잘 해내고 있는 거야."
다니엘은 두 번째 슬럼프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길고 오래갈 것이라고 했다. 이럴 때일수록 지치지 말고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 한다며 계속 공부하다 보면 어느 순간 실력 향상이 되어 있는 자신을 만나게 될 거라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단순히 내 기분 탓이 아니란 걸 알게 된 건 다행이었지만 어학연수가 끝날 시점까지도 슬럼프는 끝내 해결하지 못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순간이 찾아오는 두 번째 슬럼프
+ 영어는 장기프로젝트다.
이 나이에, 이 많은 돈을 쓰고, 두 번 다시 올 수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최대한 영어를 늘려야 한다는조급한 마음이 어학연수기간 내내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 초조하고 조급함이 만들어내는 스트레스가 영어 공부의 최대의 적이라는 걸 그때는 몰랐다.
친구들은 3월 초에 엘리멘터리에서 시작해 9월 말에 어퍼인터미디어트까지 올라온 나를 놀라워했다. 어떻게 그렇게 단기간에 레벨이 오를 수가 있냐는 것이었다. 몰타 선생님이었던 크리스는 영어가 '번역'이라는 과정 없이 바로 입으로 나오는 데까지는하루 8시간씩 집중적으로 12주~16주 이상을 했을 때 가능하다고 했다.
런던에서 총 4개월을 보내는 동안 매일 8시간 이상을 공부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런던에서 나의 영어 공부가 크리스가 말한 공부시간이었다. 그제야 내 영어가 내가 생걱한 것보다는 정말 많이 늘었다는 것을. 다만 내가 설정해 놓은 영어에 대한 수준이 너무 높았고 그에 미치지 못한다는 생각이 스스로 영어가 늘지 않았다고 느끼게 한 가가장 큰 부분인지도 모르겠다.
영어를 혼자서 공부하는 다양한 방법
힘들지만 몰타에서 한 달 혹은 두 달 정도만 공부를 더 한다면 다니엘 말처럼 슬럼프도 벗어나고 내가 원하는 수준까지 영어가 성장하겠다는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동안 너무 많은 양의 공부를 갑자기 해내느라 지칠 대로 지쳐버린 두뇌는 공부를 거부하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억지로 공부를 이어가는 건 의미가 없다는 판단에 원래 일정 대로 어학연수를 마무리했다.
어퍼 인터미디어트에서 배운 내용이 장기기억으로 가지 못한 상태에서 어학연수를 마무리하게 된 것 지금 생각해도 참 아쉽다. 하지만 때를 알고 한 걸음 물러설 수 있는 것이야 말로 가장 필요한 용기다.
처음 생각했던 것과 달리 10개월의 어학연수동안 드라마틱하게 영어가 늘 것이라 생각했던 건 나의 착각이었다. 5년 이상을 런던에서 산 사람도 영어는 여전히 어렵다고 했다. 영어가 그리 쉽게 실력이 향상되는 것이었다면 유치원부터 은퇴 후까지 이렇게나 영어에 목 매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약 10개월의 시간이 길다면 긴 시간이겠지만 전체 과정에서 보면이제 겨우 영어로 한 스텝 정도 나간 것일 뿐이었다.그 한 스텝이 결코 쉬운 것이 아니며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지 경험해보지 않았으면 결코 몰랐을 것이다.
모든 어학연수가 끝났고 나는 다시 영어와 전혀 무관한 일상으로 돌아왔다. 영어를 사용하지 않는 환경이니 실상은 힘들게 돈 들여 배운 영어를 잊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고 있다고 말하는 게 정확한 답일 듯하다.
어학연수를 마치던 날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마지막 소감으로 이렇게 말했다.
"아주 특별한 친구를 만났어요. 그 친구가 생각보다 좀 많이 까다롭지만 죽을 때까지 잘 지내기 위해 노력할 겁니다."
나는 여전히 까다로운 친구 때문에 고전을 하고 있다. 친구를 매일 만나기도 하고 때때로 며칠씩 건너뛰는 것도 부지기수다. 다행이라면 평생을 함께할 친구이니 조급했던 마음을 버리고 느긋한 마음으로 편하게 생각하고 있다.
AI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세상이 바로 코앞에 와 있으니 혹자는 더이상 제 2외국어는 안 배워도 된다고 우스개로 말하기도 한다. 나도 안도. 그렇지만 나는 내 친구와 직접적으로 내 의사와 감정이 전달되기를 원한다.
그러니나는 오늘도 영어를 공부를 하고 있다. 이 긴 여정은 죽을 때까지도 계속될 것 같다.
덧. 나는 애초에 생활영어보다 아카데믹한 영어를 배우고 싶었다. 애초에 생각과 달리 시간이 갈수로 아카데믹한 영어보다 생활영어가 더 절실하게 느껴졌다. 또한 여행도 하고 공부도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영어에 올인하다시피 했었고 몸무게가 4kg나 빠질 정도로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았다. 늦은 나이에 공부는 많은 대가를 혹독하게 치러야 했지만 내가 이 나이에 언제 또 이렇게 무언가에 올인을 해 보겠는가. 최선을 다 해본 시간이 가져다주는 충만함이 나를 또 새로운 길로 이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