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몰타의 다양한 트레킹 코스 탐험기
고작해야 제주도 1/6 크기 밖에 되지 않는 몰타. 누구에게는 일주일 아니 삼일만 지나면 '벌써 지겹다'는 소리가 나올 만도 할 정도로 작은 나라다. 하지만 그건 몰타를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
몰타는 수천 년 동안 여러 문명의 교차점이었기에 세계사에서 본 대부분의 문명이 거쳐간 곳으로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고 있다. 무엇보다 에메랄드 빛 지중해 한가운데 있는 몰타는 장엄한 절벽의 섬으로 그 경관이 매우 독특하다. 단순히 섬의 크기만을 놓고 보자면 몰타는 넉넉잡아도 일주일이면 충분히 여행할 수 있지만 몰타는 그런 곳이 아니다.
몰타에 있는 동안 트레킹 코스로 정리하니 총 11곳을 걸었다. 이중 같은 곳을 두 번 혹은 세 번 간 곳도 있다. 트레킹 코스로 기록을 하지 않았지만 초록색으로 표시한 곳도 걸었던 곳이다. 처음에 계획은 지도에 표시된 것처럼 몰타 섬을 한 바퀴 걸어볼 계획이었다. 몰타를 여행한 사람은 많아도 몰타섬 전체를 걸어본 사람이 없는 것이 좀 의아하긴 했다. 막상 몰타를 걸어 보니 왜 그런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위에서 표시한 트레킹 지도와는 달리 분명 트레킹 코스인데 농사를 짓고 있는 개인 사유지도 있고 더러는 갈 수 없는 길도 있어서 섬을 걸어서 한 바퀴 돌아보는 것은 무리였다.
1. 빅토리아 라인 트레킹 https://brunch.co.kr/@haekyoung/139
2. 몰타 남부 동굴 트레킹 https://brunch.co.kr/@haekyoung/253
3. 딩글리 클리프 트레킹 https://brunch.co.kr/@haekyoung/143
4. 뽀빠이 빌리지 트레킹 https://brunch.co.kr/@haekyoung/119
5. 뽀빠이빌리지에서 골든베이 트레킹 https://brunch.co.kr/@haekyoung/119
6. 골든베이에서 리베이라 베이 https://brunch.co.kr/@haekyoung/135
7. 몰타 중남부, 칼카라 트레킹 https://brunch.co.kr/@haekyoung/255
8. 몰타 세인트 줄리안 -임디나 트레킹 https://brunch.co.kr/@haekyoung/91
9. 임디나 - 딩글리 클리프 트레킹 https://brunch.co.kr/@haekyoung/96
10. 몰타의 로마 유적, 로만배스 트레킹 https://brunch.co.kr/@haekyoung/118
11. 레드타워에서 뽀빠이 빌리지 : https://brunch.co.kr/@haekyoung/260
걸어야 제맛, 지중해 몰타의 숨은 매력, 걸어야 제맛, 지중해 몰타의 숨은 매력,
몰타에서 마지막으로 소개할 트레킹 코스는 11. 레드타워(Red Tower)에서 뽀빠이 빌리지 코스다.
한국으로 돌아갈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가장 아쉬운 건 몰타를 다 걸어보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그건 친구인 이본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런던에 있는 동안 같이 걸을 사람이 없어 트레킹은 거의 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런 이본과 다시 만나 몰타 어느 곳을 걸을지 생각하다 둘 다 이구동성으로 외친 곳이 '레드 타워'였다.
몰타에서 고조섬으로 가기 위해서는 몰타 최북단의 치케와(Cirkewwa)에서 페리를 타야 하는데 멜리에하(Mellieha) 즈음부터 레드 타워가 보인다. 언덕 꼭대기에 있는 붉은색 타워는 어떤 곳인지 늘 궁금했는데 이본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멜리에하는 여러 번 지나다니기는 했는데 랜드마크인 파리쉬 처치 오브 멜리에하(Parrocca tal-melieha)와 레드 타워는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레드 타워로 바로 가기보다 코럴라군 쪽으로 트레킹을 하고 (대략 5km 남짓) 레드 타워로 갔으면 했는데 이본은 코럴 라군은 관심이 없다고 했다. 구글 지도를 확인해 보니 레드 타워에서 뽀빠이 마을까지 약 3km 정도로 꽤 가까웠다. 이본이 어학연수를 마친 후 몰타에서 일을 하고 있었기에 주말 오후 퇴근 후 트레킹이 가능했다. 레드 타워를 보고 뽀빠이 빌리지까지 트레킹을 한 다음 일몰을 보는 일정이면 시간도 얼추 맞을 것 같았다.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도로를 따라 완만한 경사를 오르니 어느새 멜리에하가 저 발아래로 내려다 보인다. 몰타는 섬 대부분이 절벽이라 백사장이 있는 해변이 채 열 개가 안 되는데 그중에 한 곳이 멜리에하 해변이다. 멜리에하는 도심에서도 한참이나 떨어져 있는 한적한 어촌이라 조용하고 고즈넉해 은퇴 이민자들이 이곳에 많이 산다. 지금은 이렇게 조용하지만 여름이면 이곳도 파라솔과 다양한 여름 액티비티로 정신이 없는 곳이다.
레드 타워의 정식이름은 세인트 아가사 타워(St. Agatha’s Tower)인데 건물의 붉은색 때문에 레드 타워로 더 유명하다. 입장료 2.5유로를 내고 안으로 들어서니 타워 안은 작은 박물관으로 꾸며져 있었다.
마르파 능선(Marfa Ridge) 세워진 탑은 몰타 기사단이 지배하던 시절 북부 해안선과 몰타 본섬을 방어하던 감시탑이었다. 지중해 전략적 요충지였던 몰타를 방어하기 위해 몰타 본섬과 고조 섬 해안을 따라 여러 개의 망루 형 타워를 만들었는데 레드 타워도 그중 하나였다.
이 탑은 라스카리스(1837~1638년) 시기에 지어졌고 몰타에서는 이 타워만이 유일하게 붉은 벽돌로 지어졌다. (아니면 현존하는 붉은 타워가 이곳만 있을 수도 있다.) 밖에서 볼 때와 달리 안은 생각보다 컸다. 몰타 서부 기사단의 주요 거점 역할을 했던 레드 타워는 30명의 수비대가 주둔했고 40일간의 포위 공격을 견뎌낼 수 있는 탄약과 보금품을 갖추고 있었다고 한다.
몰타 해안선을 다니다 보면 이런 종류의 타워를 종종 보게 되는데 거의 방치되다시피 관리가 안 되는 곳이 많았다. 몰타 정부에서는 중요한 위치에 있는 몇몇 타워들을 복원하기도 했지만 관람료를 받고 박물관 용도로 사용하고 있는 곳은 이곳이 유일하다. 이곳도 한동안은 폐허가 된 채로 버려져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복원을 마친 상태다.
이 탑의 백미는 바로 전망대 역할을 하는 타워 정상부다. 실내에서 망루 밖으로 나서자마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멜리에하 일대와 고조(Gozo), 코미노(Comino) 섬까지 파노라마로 풍경이 펼쳐진다. 새삼 이곳이 얼마나 전략적인 요충지였을지 고개가 끄덕여졌다.
높은 곳에 올라서서 내려다보니 평지로만 다녔을 때는 전혀 보이지 않았던 풍경이 낯설게 다가온다. 무엇보다 고조와 코미노 섬이 손에 잡힐 듯 가깝고 몰타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다 블루라군도 지척이다. 늘 바라보는 지중해이건만 언덕 위에 서서 내려다보는 지중해 풍경은 또 다른 느낌을 선사했다.
느긋하게 레드 타워를 돌아보고 본격적인 트레킹이 시작됐다. 푸른 지중해와 붉은색 타워가 등 뒤로 펼쳐진다. 걸어보지 않았다면 결코 만날 수 없는 몰타의 풍경이다. 겨울인데도 지중해 특유의 바람은 산들산들 봄바람처럼 포근하다.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발걸음은 또 어찌나 신이 나던지.
잘 닦인 도로 길이 있지만 트레킹의 기분을 내기 위해 울퉁불퉁한 길로 걸었다. 그러다 문득 아래로 내려다보니 한 무리의 일생들이 바닷가 해안선을 따라 걷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이런 길을 누가 걸을까 싶지만 걷다 보면 희한하게 어디서든 트레킹을 하고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신기했다.
이곳까지는 차로 이동이 가능하고 지대가 높은 곳이다 보니 해 질 녘 풍경이 좋아서 현지인들은 이곳으로도 일몰을 보러 많이 오는 곳이었다.
그렇게 얼마 걷다 보니 마을도 아닌데 난데없이 건물이 하나 나타났다. 주변으로는 큰 덤프트럭이 계속 지나다니고 있어서 무엇을 하는 곳인가 궁금했는데 폐수처리장(Ċumnija Sewage Treatment Plant)이었다. 몰타는 섬이라 식수나 폐수를 어떻게 처리하는지 늘 궁금했는데 몰타 북쪽 외진 곳에 폐수처리장이 있을 줄은 몰랐다. 몰타 북부 지역으로 늘어나는 인구와 관광객 수로 인해 폐수처리장이 포화상태라 증축을 하는 공사가 한창이어서 공사차량이 계속 출입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페수처리장 바로 앞은 바다와 연결되는데 보시다시피 이런 절벽이다. 몰타 해안선 대부분은 모래 해변이 아니라 이런 절벽이 대부분이다. 그나마 이곳의 절벽은 그렇게 높지는 않은데 딩글리 클리프 등의 경우에는 거의 백여 미터가 넘는 절벽이고 그런 곳이 수두룩 하다. 절벽마다 따로 안전장치가 없기 때문에 항상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뽀빠이 빌리지까지는 해안 절벽을 계속 따라 걸으면 되는데 길 중간에 화살표시가 있어서 화살표를 따라 걸었다. 길은 썩 좋은 편이 아니었다. 울퉁불퉁한 길을 따라 언덕을 넘어 얼마 걷지 않으니 바로 뽀빠이 빌리지가 나타났다.
차나 버스를 이용할 경우 뽀빠이 빌리지를 정면으로 보게 되는데 레드 타워에서 걸어오니 뽀빠이 빌리지 바로 위쪽이라 같은 곳 다른 장소 느낌이 났다. 지난봄에 뽀빠이 빌리지에서 저 멀리 언덕을 넘어 골든베이까지 트레킹을 했었기에 이곳에 서고 보니 몰타의 이곳저곳이 퍼즐처럼 맞춰지는 느낌이 들었다.
뽀빠이 빌리지가 뽀빠이 빌리지 트레킹 https://brunch.co.kr/@haekyoung/119
뽀빠이빌리지에서 골든베이 트레킹 https://brunch.co.kr/@haekyoung/119
뽀빠이 빌리지가 잘 보이는 반대편까지 걸어가 초봄에 봤을 때와 어떻게 느낌이 다른지 확인해 보고 싶었지만 이미 일몰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더 가지 않고 빌리지 위쪽에서 일몰을 보기로 했다. 일몰은 언제나 좋지만 트레킹 후 천천히 땀을 식히면서 마주하는 일몰의 감동은 확실히 특별한 무엇이 있다.
어린 왕자도 울고 갈 멋진 몰타의 일몰이 시작됐다. 이젠 이런 일몰을 볼 날도 며칠 남지 않았다 생각하니 마음이 괜히 울적해졌다.
+ 몰타 마지막 트레킹, 리베이라베이에서 딩글리클리프 트레킹
이제 진짜 몰타에서 마지막 휴일, 한 하루가 남았다. 이번에는 이본이 나보고 가보고 싶은 곳을 선택하라고 했다. 아직 걸어보지 못한 코스가 많이 있지만 리베이라 베이에서 딩글리 클리프까지는 몰타를 떠나기 전에 꼭 걸어보고 싶었다. 레드 타워 - 뽀빠이 빌리지 - 골든 베이 - 리베이라베이까지는 걸어봤기에 딩글리 클리프까지 걷는 다면 서쪽 트레킹 코스의 마침표를 찍는 셈이었다.
구글 지도상으로도 리베이라베이에서 해안선을 따라 죽 걸어가기만 하면 딩글리 클리프에 도착하는데 문제는 대략 11km가 넘는 긴 거리였다. 이본의 퇴근 시간을 고려하면 딩글리까지는 도착을 못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다행이라면 이 코스는 전체가 몰타 서쪽 해안선이라 적당한 곳 어디에서나 일몰을 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이본의 퇴근 시간에 맞춰 몰타 시내에서 골든베이까지 버스를 탔다. 대략 버스로는 1시간 정도 걸리는데 세인트 줄리앙에서 환승 없이 한 번에 운행하는 버스가 있으니 좋았다. 택시를 이용할 경우 30분이 채 걸리지 않기에 인원수를 맞출 수 있다면 택시가 편리하다. 골든 베이 전에 있는 정류장에서 하차하면 리베이라 베이까지 약 600m 정도로 가깝다.
몰타에서 마지막 트레킹은 리베이라 베이에서 시작했다.
이 해안선은 몰타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몰타 관광지 소개에서도 빠지지 않는다. 골든 베이에는 호텔과 리조트 다양한 휴게시설이 있지만 리베이라 베이는 시설물이라고는 카페이자 서핑대여를 하는 곳(Singita Miracle Beach)이 유일하다. 다만 겨울이라 문을 닫고 운영을 하지 않고 있으니 마실 물도, 간단한 간식도 모두 챙겨가야 한다.
성수기에는 카페에 앉을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이 많고 특히 저녁 일몰 시간 이후로도 카페는 늦게까지 요란한 음악을 틀어 놓고 운영을 하고 있었는데 겨울이 되니 아예 장기 휴업모드였다. 생리현상을 어떻게 해결했는지는 음- 상상에 맡기겠다.
몰타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은 가인 투피하(Għajn Tuffieħa)다. 가인 투피라르 기준으로 오른쪽은 리베이라 베이고 왼쪽은 프라이빗한 카라바 베이(Qarraba bay )가 있다. 지형도 매우 특이하지만 풍경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여태껏 봐왔던 몰타의 어떤 곳보다 이곳이 가장 좋았다. 보면 볼수록 신비한 느낌을 자아내는 곳이다.
봄에는 여기까지 걸은 다음, 저 바위 끝에서 일몰을 봤었다. 이곳까지만 걸었기에 이번에는 해안선을 따라 딩글리 클리프까지 걷기로 했다. 절벽 아래 협곡이 펼쳐지고 있어서인지 지형이 굉장히 독특한데 탐험하는 맛이 있었다. 탐험이라고 하기엔 구간이 너무 짧긴 했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풍경도 멋지지만 해변가로 내려가서 위를 보면 또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다. 보기에는 저래도 한참을 내려가야 하고 다시 또 절벽을 기어서 올라와야 했기에 아예 엄두조차 내지 않았다. 딩글리 클리프까지 이곳에서 갈 수 없다는 걸 알았더라면 아마도 이 해변을 탐색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딩글리 클리프까지 당연히 걸어갈 수 있을 줄 알았다.
이곳에서도 해안선을 방어하기 위해 쌓은 타워가 있지만 그저 구조물에 불과할 뿐. 레드 타워가 얼마나 관리가 잘 되고 있는 곳인지 새삼스러웠다. 이 코스가 평평한 구간이어서 그런지 MTV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뽀빠이 빌리지와 리베이라 베이까지 비교적 트레킹 코스가 잘 되어 있는 편이라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양방향 어느 쪽에서 출발해도 멋진 코스라 나름은 mtv 동호회 사람들에게는 꽤 인기 있는 코스였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40분 남짓 해안선을 따라 걸었다. 계속 해안선으로 걸어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길이 동네 안으로 이어진다. 구글 지도를 확인하니 완만한 해안선을 따라 트레킹 코스가 표시되어 있지만 실제 지형은 구불구불한 해안선인데 이쪽 해안선으로 이어지는 해안선은 아예 길이 없었다. 동네 안으로 한참을 걸어 들어간 다음 다시 해안 쪽으로 나오도록 길이 연결되어 있었다. 구글 지도와는 지형이 완전히 달랐다.
동네를 빙 둘러 걸어가기엔 시간이 다소 촉박해 동네를 걷다가 일몰을 보게 될 수도 있을 듯했다. 결국 이본과 상의 끝에 다시 되돌아가기로 했다. 그동안 구글지도만 믿고 나섰다가 몇 번 낭패한 적이 있었는데 오늘도 예외는 아니었지만 섬의 특성인 걸 어쩌랴.
거의 40분을 넘게 걸어갔다가 다시 40분을 걸어 원래 있던 곳으로 되돌아왔다. 이곳에서 일몰을 본 경험이 있었기에 일몰이 잘 보이겠다 싶은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안주 삼아 느긋하게 맥주를 마시며 일몰을 기다렸다. 몰타에서 마지막으로 보게 될 일몰은 어떤 기분일지 내심 궁금했다.
그런데 맙소사,
일몰 위치가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 너무 달랐다. 5월 이곳에서 봤던 일몰은 우리가 앉은자리에서 직선으로 이어지는 곳이었다. 그래서 당연히 일몰이 제일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았는데 이럴 수가.
겨울이 되니 태양이 훨씬 아래쪽으로 이동했다는 걸 생각지도 못했다. 게다가 구름마저 잔뜩 가려져 있어 우리가 원했던 일몰은 아니었다. 이본과 나는 서로를 쳐다보며 허탈해했다. 마치 우리의 마지막 일몰이 이래서는 안 된다는 어떤 간절함이 서로에게 있었던 것 같았다.
"야, 우리 너무 바보 같지 않아?"
태양이 이동한다는 걸 생각조차 못했다는 게 새삼스러웠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웃음이 터졌다.
이래서 사람의 고정 과념이란 무서운 거다.
'마지막'이란 단어에 너무 깊이 몰입되어 있었던 우리의 일몰은 그렇게 싱겁게 끝났다.
그런데 우리가 발견한 건 달라진 태양의 위치만이 아니었다. 5월에는 이곳이 너무 메말라 있어서 사막 같은 풍경이었다. 그랬는데 저 바위 위에도 초록색의 풀이 자라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몰타의 겨울을 살아 보지 않았더라면 몰타는 늘 메마른 곳으로만 기억될 그런 곳이었다.
그리곤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겠지.
'몰타는 초록이 하나도 없는 메마른 곳이야.'
1년을 살아보지 않고서야 과연 그 도시를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책을 한 권만 읽은 사람이 제일 무섭다고 하더니 내가 그럴 뻔했다.
이본도 나도,
우리가 기대했던 일몰은 아니었지만 봄과 여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초록 가득한 몰타의 겨울 풍경을 만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오늘 트레킹은 충분했다.
'마지막'이 심각하지 않아서, 반전이 있어서 더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던 리베이라 베이다.
몰타를 다시 가게 된다면 그때 리베이라 베이는 또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진다.
그때는 몰랐다.
한국으로 돌아오고 난 뒤 몰타에 관한 글을 쓰면서 빅토리아 트레일에서 찍었던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
빅토리아 뷰 포인트에서 리베이라 베이가 보이는 곳이었다니 -
뒤늦게 조각난 퍼즐을 맞추며 혼자만의 몰타에 빠져 들었다.
몰타 섬을 한 바퀴 다 걸어보겠다는 당찬 계획은 결국 실패했다. 걷기엔 몰타의 여름은 너무 뜨거웠고 런던에서 한 달이나 더 체류하면서 몰타의 시간은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 본격적인 트레킹의 계절이 됐지만 몰타의 겨울이 시작되고서야 나는 몰타로 돌아왔다. 주중에는 어학원을 다녀야 했기에 트레킹을 할 수 있는 시간은 너무 짧았다. 제일 아쉬운 것은 고조 섬도 멋진 트레킹 코스가 많은데 (현지인들도 고조섬은 주로 겨울에 트레킹을 한다.) 고조 섬은 관광은 했어도 트레킹을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래도, 걷기 좋아하는 친구들이 있었고 용기 있게 현지인 트레킹 모임도 가입했기에 그들과 함께 열심히 몰타를 걸을 수 있어 참 좋았다. 그렇게 내 두 발로 걸으면서 만났던 몰타는 너무나도 신비로웠고 황홀했고 아름다웠고 걸으면 걸을수록 더 걷고 싶게 만드는 곳이었다.
적어도 내게 몰타는 5개월이나 있었지만 아직도 가보지 못한 곳이 수두룩하다. 아직도 미완성인 몰타 트레킹 지도, 빠진 부분을 채우기 위해 언젠가 나는 몰타를 또 걷고 있겠지.
그때는 누구와 함께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