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학연수가 끝나고 나니 갑자기 바람 빠진 풍선처럼 모든 의욕이 일시에 사라진 느낌이 들었다. 아직 출국까지는 일주일이나 남았는데 내 생에 가장 긴 일주일처럼 정말 길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한국에 빨리 가고 싶은 마음도 아닌데 참 이상했다. 할 일이 모두 끝낸 다음 날이 이런 기분일까. 열 달 가량 나의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던 팽팽한 긴장감이 눈 녹듯 사라졌지만 그 빈자리가 너무도 낯설었다. 허탈감과는 성질이 다른 '무엇'이 있었다.
그렇게 몰타와 작별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 그래, 이런 곳이 몰타였지.
어학원을 가지 않아도 되는 월요일 아침, 완전히 퍼져서 침대 위에서 오전 내내 뒹굴거리다가 문득 '내가 몰타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이 뭐였지?'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아, 그래, 지중해 산책이었지.'
거창하게 지중해 산책이라고 멋을 부렸지만 실은 집앞 산책이다. 느지막한 오후, 몰타의 첫날 걸었던 산책 코스를 그대로 걸었다. 모든 것이 신기해 한 걸음마다 사진을 찍느라 1시간도 넘게 걸렸던 길은 이젠 너무 익숙해 굳이 사진을 찍지도 않는다. 9개월이나 지났지만 변한 건 하나도 없다. 모든 것이 그대로다.
한국이, 서울이 얼마나 변화가 빠른 곳인지 새삼 깨닫는다.
길고양이의 천국, 몰타
몇 개의 해안이 연거푸 이어지는 바닷길을 따라 걷다가 엑실스 베이(Exiles Bay)에 자연스레 발이 멈췄다. '뭐야, 설마 수영하는 것은 아니겠지'라며 먼발치에서 봤던 장면은 가까이에 다가서니 진짜 수영하는 사람들이었다.
지중해 한가운데 있는 몰타는 12월에도 낮 평균 약 15°C에서 18°C 정도로 대체로 온화한 편이다. 그렇다고해도 수영을 할 정도는 아닌데 수영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 걸 보니 다른 해보다 유난히 따뜻했던 2022년 12월의 몰타였다. 실제로 몰타의 경우 아무리 기온이 30도가 넘어도 편서풍이 부는 5월 중순이 지나야 바다 수온이 상승하고 5월 말은 돼야 바다 수영이 가능하다.
12월인데도 수영하는 사람들
수영하는 사람들을 구경하느라 잠시 멈췄던 걸음을 다시 걷는다. 몇 걸음 채 걷지 않았는데 나는 또다시 멈춰섰다.
'그래, 몰타가 이런 곳이었지.'
태양은 서쪽으로 기우는 중이고 사람들은 저 편한 대로 하릴없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여유로움을 누린다.
바쁘게 초시계처럼 돌아가는 한국에서 전혀 느껴보지 못한 몰타의 여유로움이 얼마나 생소했는지 모른다. 뭐하느라 한국에서는 하늘 한 번 볼 시간없이 살았나 싶은 생각을 했던 몰타였건만. 그동안 그걸 까맣게 잊고 쫗기듯 10개월을 보냈구나 싶어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생각해 보면 몰타에서도 런던에서도 '영어'는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다. 50대에 어학연수로 10개월을 보낼 수 있는 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는 조바심에 하루도 허투로 보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컸다. 특히 물가 비싼 런던에서 본격적인 영어 공부가 시작됐고 모든 것을 포기하다시피 온전히 '영어 공부'에만 매달렸다.
'소기의 성과를 반드시 이뤄야 한다'는 욕심으로 24시간이 긴장 상태였고 내 기대에 차지 않는 날들이 많아질수록 불안감은 커져만 갔다. 어쩌면 몰타에 오고 2주간의 어학원 생활도 어쩌면 런던 생활의 연장선상이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깟 영어가 뭐라고 그렇게나 투지를 불살랐나 싶어 헛웃음이 났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그렇게까지 치열하게 하지 않았어도 아마도 영어는 지금 실력 정도까지는 충분히 향상이 됐을 것이다.
나름대로는 몰타와 런던 두 곳을 살면서 즐긴 시간도 있었지만 그건 어쩌면 숙제와 같은 의무적인 시간이었다. '여기 있으니 이 정도는 봐야 한다'는 일종의 의무감을 지닌 '도장깨기'였다고나 할까.
어학연수가 다 끝나고 나니 비로소 여유롭게 누리지 못했던 몰타와 런던의 생활에 뒤늦은 후회가 폭풍우처럼 밀려왔다. 몰타와 런던을 트레킹 했던 시간이 없었더라면 후회는 더 컸으리라.
결국 나를 옥죄건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었다. 사람이 그렇게 생겨먹은 걸 누구를 탓하랴.
몰타의 여유를 만끽하는 사람들
+ 여행자가 아닌 생활인
수도 없이 갔던 발레타였는데 생각해보니 다니기만 하고 사진을 안 찍은 곳이 꽤 있었다. 떠날 날이 며칠 안 남았는데 갑자기 직업 의식이 발동했다. 막상 발레타 구석구석을 걷다 보니 고작해야 홍대 정도의 크기 밖에 되지 않는 몰타의 수도 발레타인데 생각보다 안 가본 곳이 많았다는 걸 알고 깜짝 놀랐다. 늘 다니던 곳만 다녔던 것이었다.
몰타가 익숙해지고 난 뒤부터는 생활인 모드라'다음에 가지 뭐. 다음에 찍지 뭐.' 이러다가 그마저도 완전히 까먹었다. 떠날 때가 코앞에 닥쳐서야 뒤늦게 생각난 셈이다. 그러고 보니 몰타를 여행하면 무조건 시간 맞춰 꼭 봐야한다는 어퍼 바라카 가든 정오의 축포행사도 한 번도 본적이 없다.
매일 정오에 축포를 쏘는 환영식이 열린다.
몰타의 수도인 발레타는 바둑판의 계획도시로 입구에서 맨 끝까지는 고작 20분 정도만 걸으면 되는 작은 곳이다. 발레타 입구에는 어퍼 바라카 가든이, 맨 끝에는 로우 바라카 가든이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수도 끝에 있는 로우 바라카 가든은 한번도 가보지 않았다. 맙소사.
'추모의 공'이 보이는 아치가 멋진 일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인트라는 것도 알았지만 '다음에, 다음에' 하다가 결국 그곳의 일출 사진은 한 장도 찍지 못했다. 몰타가 여행지였다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겠다.
몰타 홍보 영상에 무조건 나오는 로우 바라카 가든
관광객들보다 현지인의 장소
몰타 유명 일출 포인트 중 하나
로우 바라카 가든의 지중해 뷰. 이 바다에서 직선으로 이어지는 곳이 튀르키예다.
되돌아 오는 길은 발레타의 골목길을 걸었다. 관광객들을 위한 번화한 도로에서 한 골목만 안으로 들어오면 몰타 현지인의 삶의 펼쳐진다. 몰타의 모든 것이 일상이었는데 조금씩 관광객 모드로 돌아서는 느낌이다.
발걸음을 아끼며 최대한 천천히, 천천히 걸었다.
수도 발레타 끝에 있는 로우 바라카 가든 근처
발레타에서 사는 사람들
어퍼 바라카 가든으로 돌아왔다. 몰타의 첫 날 기념사진을 찍었던 것처럼 마지막 기념사진을 남기고 싶었다. 첫 날은 쓰리시티즈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는데 이번에는 로우 바라카 가든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러고 일어서려니 빨간색 몰타 시티투어 버스가 지나간다.시차적응도 안 된 몰타의 첫 날 나 역시 빨간 시티투어 버스를 탔었다. 그때는 어디가 어딘지도 몰랐고 심지어 여기가 수도 발레타인지도 몰랐다. 유럽도 아니고 이슬람도 아닌 모든 문화가 혼재된 몰타가 그저 신기했을 뿐.
나에겐 너무 익숙해 이젠 희미해진 몰타가 아닌, 독특하고 신비로운 '첫' 몰타를 누군가에게 안기며 빨간 시티투어 버스는 신나게 달린다. 내가 손을 흔들자 버스에 탄 사람들도 이내 손을 흔들며 환호성과 함께 화답한다. 강렬했던 첫 몰타의 추억이 빨간 시티버스와 함께 멀어지고 있었다.
마지막 기념사진, 몰타에 도착한 첫 날 탑승했던 몰타 시티투어 버스
+ 12월, 미리보는 몰타 크리스마스
12월로 접어드니 몰타는 이미 크리스마스다. 거리 곳곳은 밤바다 휘황찬란한 조명이 켜지고 수도인 발레타는 회전목마를 비롯해 크리스마스 콘셉트로 치장을 했다. 일반 가정에서도 크리스마스는 특별한 행사라 집집마다 저마다의 개성을 한껏 드러낸 장식들을 보는 재미도 솔솔했다. 몰타의 진짜 크리스마스를 보지는 못하겠지만 미리 보는 몰타 크리스마스로도 충분했다.
거리 곳곳의 크리스마스 거리 조명 몰타
수도 발레타 입구 분수대 주변으로 화려한 크리스 마스장식을 담는 몰타 사진동회 회원들
집집마다 크리스마장식
아직 크리스마스까지는 2주나 남았는데 성요한 대성당에서 미리 성탄 공연이 열렸다. 몰타에서 꼭 하나만 봐야한다면 무조건 '성요한 대성당'이라고 할 정도로 성요한 대성당은 몰타 역사 그 자체로 몰타에서 가장 상징적인 곳이다.
여러 행사도 있었고 미사도 봤지만 가톨릭에서 가장 큰 행사인 크리스마스를 못 보고 몰타를 떠나는 것이 아쉽다 싶던 찰라였는데 생각지도 않았던 크리스마스 공연이라니! 어린아이가 크리스마스 선물을 미리 받는 것 같았다.
특별한 음향장치가 없는 성당에 악기는 단촐하게 오르간과 합창단이 전부다. 과연 이 공간이 어떤 소리로 어떻게 채워질지 정말 궁금했다. 맑은 음색의 합창단과 오르간의 소리만이 때론 맑게, 때론 묵직하게 성당을 가득 메운다. 별다른 치장없이도 꽉 찬 느낌. 그래 이거지. 종교가 카톨릭이 아니면 어떤가. 한 해의 마지막에 울려퍼지는 캐롤이 마음을 충만하게 채운다.
여러 팀의 합창 공연으로 크리스마스 캐롤과 성탄 미사곡을 듣고 있으니 큰 시건 사고 없이 무탈하게 어학연수를 마칠수 있어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 절로 들었다. 비로소 스스로에게 너무 야박하게 대했던 마음을 내려놓고 힘들어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그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했던 나 자신에게 아낌없는 칭찬을 보냈다. 이제 진짜 내 인생에서 가장 좋았던 한때가 서서히 지나가고 있다는 실감이 들었다.
성요한 대성당의 크리스마스 캐럴 행사
+ 이번 생에 미니멀리스트는 개뿔
몰타 출국을 3일을 앞두고 짐을 싸기 시작했다. 다시 짐과의 전쟁이 시작됐다.
가지고 온 짐의 1/3은 거의 사용하지 않았고(각종 그림도구들, 사진 도구들 등등) 어학연수 기간 늘어난 책과 각종 기념품이 더해지니 '대략 난감'도 이런 대락 난감이 없었다. 결국 한국으로 20kg 달하는 한 박스를 미리 보냈다. 꼭 필요한 것 외에 여분의 책, 옷, 각종 자료, 생활용품 등 버린 것만도 100리터 쓰레기 봉투 2개나 됐다.
나의 포스팅 중에 2만 여건의 조회수가 될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글이었던 어학연수 짐 싸기, 이번 생은 미니멀리스트는 실패다. (https://brunch.co.kr/@haekyoung/77)에서 이미 소개했던 바, 어학연수 마지막 날 짐싸기를 통해 이번 생에 미니멀리스트는 나와는 완전 상관이 없다는 걸 이번 어학연수를 통해 확실하게 깨달았다.
과연 다음에 긴 여행을 가게 되면 그때는 미니멀 리스트가 가능할까? 미지수다.
짐과의 전쟁
20kg 이내, 176유로 지불하고 한국으로 보낸 짐
+ 나의 좋았던 날들과 안녕,
세인트 줄리안에서 살 때는 집 테라스에서 일출을 볼 수 있어 굳이 일출을 보러 나갈 필요가 없었다. 몰타로 다시 오고 난 뒤 슬리에마로 이사를 했고 그 집에선 바다가 희미하게 보이기는 했지만 일출을 볼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몰타 떠나기 전 마지막 의식이랄까. 몰타를 떠나는 날 아침 일출을 보러 갔다. 그래봤자 집에서 걸어서 10분이면 바로 바다다. 실은 전날에도 일출을 보러 갔는데 내가 원했던 날씨가 아니었다. 출국 당일 저녁 비행기였기에 전날 아쉬운 마음을 조금이라도 달랠겸 다시 일출을 보러 나섰다. 다행히 몰타의 마지막 날 일출은 딱 내가 원했던 그 일출이었다.
내일부터는 볼 수 없는 몰타의 풍경을 오래도록 마음에 담았다.
해뜨기 직전이 가장 어둡다고 했던가.
서서히 붉어지는 하늘, 그곳엔 일출을 기다리는 또 누군가가 있었다.
찬란하게 떠오른 몰타의 태양
언제 어디서든 자신의 내면과 고요하게 만나는 시간을 허락했던 몰타
언제나 그리울 몰타
가장 좋은 날과 이별하던 순간.
이젠 진짜 떠나야 할 시간이 됐다.
평소에도 감정이 오버되는 대문자 'F' 감정형인지라 집을 나서면서 '몰타를 떠날 때는 웃으면서 떠나겠다' 굳은 다짐을 하며 공항에 도착했다.
짐을 붙이고 나니 이본과 에리카가 배웅을 위해 공항에 도착했다. 내가 다시 몰타로 돌아왔을 때 같이 공부했던 친구들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에 느낀 텅빈 기분은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쓸쓸함이었다. 그나마 가장 친한 이본이 몰타에 남아 있어서 쓸쓸함을 덜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비행시간이 남아 이런저런 일상의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이제 진짜 헤어짐의 시간이 다가왔다. 어학원이 끝나고도 이본과는 일주일 내내 만났기에 마음이 좀 덜 슬플 줄 알았는데 막상 헤어지려니 흐르는 눈물은 어쩌지 못했다. 내가 쓸쓸히 혼자 몰타 공항을 떠나지 않고 누군가의 배웅을 받으며 떠난다는 사실이 큰 위로가 되던 순간이었다.
언제나 헤어짐은 익숙해지려야 익숙해질 수가 없지만 만나면 반드시 이별이 있는 법. 몰타와 런던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자연스레 떠올릴 나의 어학연수 친구들. 아름다운 친구들이 있어 우리들의 어학연수가 더욱 찬란했다.
런던 어학연수에서 만났던 가장 친한 친구, 세실리아는 나의 런던 마지막 날 이렇게 말했다.
'나는 안녕이라고 말하지 않을거야. 영원한 이별이 아니고 우리는 언젠가 다시 만날거야.'라고
그녀의 말처럼 언젠가 우리 또다시 만날 수 있겠지.
나의 마지막 몰타를 함께 한 이본과 에리카. 나는 울고 친구들은 웃고.
12월 18일 저녁 7시55분에 몰타를 출발해 이스탄불을 거쳐 인천 도착, 서울역에서 기차 타고 12월 19일 새벽 12시 30분에야 울산에 도착했다. 무려 29시간의 긴 여행이었다. 시차가 8시간인 걸 감안해도 거의 20시간이나 걸린 셈이다. 밤에서 밤으로 이동하니 하루치가 사라졌는데 별 느낌이 없다.
몰타에 도착한 첫 날 새벽 5시에 눈 뜬 것 처럼 울산에 도착한 첫 날도 새벽 5시에 눈이 떠졌다. 시차 적응에 실패한 것이다. 가족들이 모두 잠들어 있는 새벽,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조심조심 걷는다.
문득, 어제 내가 몰타에 있었던 게 맞나 싶을 정도로 10개월의 시간을 도려낸 느낌이 드니 몰타와 런던에서 보낸 시간이 하룻밤 사이에 꾼 꿈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