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에 어학연수는 핑계고] 첫 연재(2023년 1월 9일)를 시작할 때만 해도 그해 연말, 그러니까 2023년이면 모든 연재가 끝날 줄 알았다. 2022년 약 10여 개월의 어학연수 이야기를 1년 하고도 10개월 동안 이렇게나 긴 이야기를 쓰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몇 편의 글을 쓴 것인지 세어 보지 않았는데 총 5개의 브런치 북에 에필로그 포함 149회의 글을 쓴 것을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50대에 어학연수는 핑계고 4(https://brunch.co.kr/brunchbook/malta-london4) 총 30회
사실, 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다. 처음에 의욕적으로 출발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글을 계속 써 나가다 보니 뭔가 미궁 속으로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50대에 어학연수는 핑계고'라는 거창한 제목을 붙이긴 했는데 몰타와 런던에서 생활, 어학연수 과정, 다른 여러 나라 여행이야기 이런 모든 것들이 총망라된 상황이라 어느 것 하나만 주제를 잡고 어떤 글을 써야 할지 글을 쓰는 내내 고민을 했던 것 같다.
욕심이 앞서다 보니 글이 너무 두서가 없고 중구난방인 데다가 한 회차가 읽기에 가독성이 떨어질정도로 많은 분량이라는 것도 알았지만 도저히 줄여지지가 않았다.
2022년의 소중한 시간들을 '기록으로 남겨놔야 한다.'라는 생각이 너무 컸다. 물론 출판을 기대하고 브런치에 글을 쓴 건 맞다. 단순히 조회수를 높일 생각이었다면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사진과 간단하고 짧은 이야기로 네이버 블로그에 글을 썼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내가 쓰고 있는 이 글은 '책으로 출판이 되지 않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50대에 어학연수'라는 것이 나에게는 매우 특별하지만 브런치에 올라오는 사연을 보면 이런 이야기 정도는 이제는 평범(?)하다. 좌충우돌 따위는 없는 에피소드에 한 달 동안 다닌 여행지도 남들이 다 가본 여행지니 그마저도 차별이 없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의욕이 떨어졌고 이렇게 힘들게 공부해서 글을 써야하나 싶어 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다.
하지만 출판이 목적이 아니면 어떤가.누군가에게 '아직 늦지 않았'으니 그게 뭐가 됐던 지금이라도 '시작'해도 된다는 응원이 가 닿기만 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게 당장 지금이 아니어도 괜찮다. 이 글은 계속 브런치에 남아 있을 테니 말이다.
지치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많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2022년 어학연수의 모든 날들을 다 되돌아본 나에게 칭찬을 해주고 싶다.
10개월의 경험 그리고 1년 10개월의 기록
+ 결국,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는 없었다.
친구는 요즘도 가끔 나를 놀린다.
그림은 한 장도 못 그렸고, 유튜브 콘텐츠 업로드도 못했는데 왜 그렇게 많은 장비들을 챙겨간 것이냐고.
처음에는 공부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유튜브 콘텐츠도 올리고, 여행도 하고, 블로그도 하고, 일기도 쓰고 다 가능할 줄 알았다. 하지만 어학연수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공부만 하기에도 모자란 시간이었다.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을 수는 없으니 선택과 집중을 해야 했고 '영어 공부' 외에는 전부 포기했다. 다른 것들은 나중에라도 충분히 할 수 있지만 '공부'는 때가 있다는 걸 너무나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영어가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성장하지는 못했지만 공부에 올인했던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다양한 촬영장비는 다 무용지물
그림은 한 장도 그리지 못하고 짐 무게만 차지했던 나의 그림 도구들
이제 다시 그림을 그릴 차례
다만, 유튜브 콘텐츠는 많이 후회가 된다. 유튜브는 '실시간'이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데 몰타와 런던 그리고 다양한 나라를 여행하면서 찍어 놓은 수많은 콘텐츠는 이제 사용할 수 없는 것이 너무 많아 그게 좀 아쉽다.
편집 이런 거 신경 쓰지 말고 그대로 올렸어도 충분한데 날 것으로 그대로 보여주기엔 사람이 너무 소심했다. 2023년에 유튜브를 하기는 했으나 브런치 글을 쓰기에도 시간이 모자라다 보니 유튜브 콘텐츠는 계속 뒤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벌써 2년이나 지나버려 지금은 올리기도 애매한 상황이 됐다.
어차피 내 채널이니 지나간 시간이지만 추억 삼아 시간 날 때마다 조금씩 올려볼 생각이다. 혹 관심이 있다면 유튜브 '여기 가볼래' 채널도 좋아요, 구독, 알림 설정해주시면 정말 감사하겠다.
어학연수가 끝났고 내 삶은 아무 변화가 없다. 영어가 꼭 필요한 것도 아니었고 어학연수가 끝난 뒤에 배운 영어로 뭘 해보겠다는 계획도 애초에 없었다. 어쩌면 경제적인 것만 따지자면 냉정히 말해 '나의 어학연수는 낭비'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꼭 낭비이기만 했을까.
어학연수 기간이 절반 정도가 지나가면서부터 스스로도 '이 어학연수를 왜 하고 있는가'에 대해 원초적인 질문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그건 바로 '경제적'인 부분이었고 '그 나이에 무슨 어학연수냐'와도 결을 같이 한다.
나름은 거창하게 새로운 경험을 쌓기 위해 아무 준비 없이 부딪쳐 보겠다며 호기롭게 떠나 몰타와 런던에서 살았고 그리고 이탈리아와 튀르키예, 스페인의 몇 도시를 여행했다. 내가 스스로 선택한 어학였고 여행이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왜 이곳에 있고 이런 말도 안 되는 여행을 하고 있나'에 대한 물음표는 점점 커졌다. 하지만 해답을 알 수 없으니 참 답답한 노릇이었다.
모든 여정이 끝날 때까지도 이 여행의 의미는 찾지 못한 채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런 내게 누군가는 '네가 그곳에서 보낸 시간은 무채색'이라고 했다. 시간이 지나고 숙성이 되면 비로소 그 시간에 대해 알 수 있게 될 것이라고도 했다.
글로 옮기기 위한 두 번째 여행이 시작됐다.
몰타도 런던도 심지어는 한 달 동안 여행했던 이탈리아와 튀르키예, 마지막 스페인(바르셀로나, 산티아고)까지 아무런 준비 없이 떠났다. 본 것도 많았고 느끼는 것도 많았지만 모르는 건 더 많았다.
여행지들을 글로 옮기기 위해 내가 다녔던 도시들에 대한 공부가 시작했다. 몸은 한국에 있지만 내 지난 여행을 그대로 따라가는 두 번째 여행이었던 셈이다. 도시에 대해 알아 갈수록 여행할 때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과 새로운 느낌들이 덧 입혀졌다. 그곳에 느끼고 경험했던 모든 기억들이 너무도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내 여행이 무채색이었던 이유를 비로소 알았다.여행작가로 활동하는 동안 관광객들이 좋아할 만한 것들 위주로 숙제하듯 다닌 여행과 그곳에서 사는 것은 정말 달랐다. 도시에 대해 공부를 하고 글을 쓰는 동안 그곳에 있을 때 보다 더 세계관이 확장되고 뒤늦게 의미부여를 하게 된 순간들이 많았다. 브런치 글을 쓰는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기도 하다.
도시를 알게 되고 도시와 내 취향과 관심사의 접점을 찾아낼수록 '살아본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몰라서 흘려보낸 순간들이 계속 아쉬웠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크게 얻은 수확이다.
10개월 동안 50대의 나이에 그것도 남의 나라 '말'을 익힌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잘하고 싶고 잘 해내야 한다'는 부담으로 너무 높은 목표치를 설정한 탓에 즐겁게 할 수 있었던 공부를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
그래도 그 덕분에 지금은 내가 어떻게 영어와 친해지고 친구가 되어야 하는지 알게 됐다. 고작 그걸 알자고 어학연수를 한 것이냐고 하기엔 시간과 돈을 너무 많이 써 비효율적이다 싶지만 모든 건 다 치러야 할 댓가가 잊기 마련이다.
고요한 일몰의 순간을 함께 누리며 참 많은 의지를 했던 친구들
생각해 보면 참 외롭고 힘든 시간이었는데 그것조차 모르고 지날 수 있었던 것은 건 결국, 사람이었다. 눈을 감으면 몰타와 런던에서 보냈던 순간순간의 기억과 함께 친구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떠오른다. 친구들을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절로 미소가 빙그레 지어진다.
나이도, 국적도, 성별도 다르고 모두가 처한 환경이 달랐지만 우리는 어떤 의미에선 그 시절을 함께 보낸 '동지'였다. 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나이가 들면서 더욱 뚜렷해지는 주관과 취향은 유연함과 다양성이 줄어들게 만든다는 걸 배운 소중한 시간이었다.
오직 나의 눈으로 바라보던 시각에서 벗어나 다양한 친구들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경험이자 자산이 되었다. 그들이 50대의 내 영혼을 한 단계 성장시킨 일등공신이다.
언젠가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를 콘셉트로 어학연수에서 만났던 친구들(주로 남미)을 찾아가 보는 꿈을 꾸고 있는데 그 시간이 머지않아 올 것 같다.
몰타에서 만난 친구들
런던에서 만난 친구들
이제 모든 여정은 끝이 났고 현실적으로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 어학연수를 결심했던 순간부터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괜찮다'는 굳은 결심을 했지만 어학연수가 끝나고 나니 주어진 현실은 혹독했다. 50대의 프리랜서 여행작가를 기다려주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생각지도 않게 '경력단절'이 되어 어학연수를 떠나기 전보다 조금은 더 힘든 상황이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꼭 어학연수를 갔어야 했을까'라는 후회 아닌 후회가 드는 날도 있지만 결론은 '그래도 경험해 보길 잘했다.'는 마음은 변함이 없다.
20대가 지나고 나면 저절로 주어지는 '성숙'이나 '성장'의 기회는 드물다. 나를 확장시키고 나를 한 단계 도약시킬 수 있는 경험을 일상에서 하기란 쉽지 않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그런 기회를 얻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지도 모른다.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가능성 앞에 결코 주저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내가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고 변할 수 있다면 나이가 몇 살이던 그건 중요하지 않다. 내 몸 어딘가가 아로새겨진 어학연수의 경험은 어떤 식으로든 나를 성장시켰음을 믿는다.
내 인생에 다시 올 수 없는 치열했던 시간들이 만들어준 행복한 기억으로 나의 긴 여행의 마침표를 찍는 것과 동시에 새로운 페이지를 펼친다.
그 페이지에는 어떤 이야기가 써질까.
어떤 이야기 일지는 모르겠지만 설레는 마음인 것만은 확실하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덧. '나이 50에 어학연수는 핑계고'를 구독해주시고 긴 글 인내심을 같고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들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