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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작가 정해경 May 31. 2024

피렌체 라이벌 두 도시, 피사와 시에나

#12 피렌체 근교여행, 피사 그리고 시에나 

50대에 어학연수는 핑계고 4    


이탈리아 피사 그리고 시에나  

#12. 피렌체 라이벌 두 도시, 피사와 시에나  피렌체에 밀린 피사와 시에나피렌체에 밀린 피사와 시에나

어떤 도시들은 여행을 다녀오고 난 뒤 더 감동을 받게 되고 여운이 오래가는 곳들이 있다. 내게는 시에나와 피사가 그런 곳이었다. 시에나와 피사가 있어 오히려 피렌체를 더 잘 이해하게 됐다고나  할까. 


피사의 경우 '피사의 사탑'이라는 역사적인 건축물이 있어 처음부터 가보리라 마음을 먹은 곳이었지만 시에나는 아니었다. 시에나는 솔직히 말하면 처음 들어본 도시였다. 그랬던 시에나를 여행하게 된 건 우연이었다. 


피렌체 여행을 계획하면서 짧게라도 토스카나는 둘러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막연히 '토스카나'였을 뿐 토스카나의 어떤 도시를 어떻게 여행할 것인가에 대한 계획은 아예 없었다. 더군다나 제대로 여행을 하려면 며칠의 시간을 더 할애해야 하는데 그럴 여력이 없었다. 이럴 때 가장 좋은 건 투어를 이용하는 것이다. 11월 막바지였지만 다행히 토스카나 1일 투어가 있었고 그 투어에 '시에나'라는 도시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름도 낯선 '시에나'는 피렌체에서 약 60km 떨어진 곳인데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이다. 지중해 한가운데 몰타의 수도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했고 여행 중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들을 많이 다니다 보니 그런 것에 감흥을 거의 상실한 시점이었기에 시에나에 대한 큰 기대는 없었다.  늘 그렇듯 기대하지 않은 곳이 제일 감동이 있기 마련이다. 이번 이탈리아 여행 중 시에나의 여운이 가장 오래 남았다.   

구도심 가장 높은 곳에  우뚝 서 있는 시에나 대성당 


14세기에 시간이 멈춘 도시, 시에나 


토스카나의 세 개 도시, 피렌체, 시에나, 피사는 중세에는 굉장한 라이벌 관계였다. 이중 가장 먼저 두각을 나타낸 것은 피사였다. 이후 피사의 뒤를 이어받은 건 시에나였다. 양모와 금융으로 엄청난 부를 축적하며 시에나 공화국이 토스카나의 주축으로 세를 과시했지만 신흥세력으로 무섭게 치고 올라오던 피렌체와 여러 번의 전쟁을 치르게 된다. 마지막으로 있었던 피렌체와 시에나의 전투에서 패배하면서 시에나는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14세기에 멈춘 도시로 남게 됐다. 


참고로 이 전투에서 승리한 피렌체는 영광의 순간을 그림으로 남겼다. 조르조 바사리가 그린 시에나 전투는 현재 피렌체 청사의 500인의 방 한쪽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다른 한쪽의 벽면은 피사와의 전투에서 승리한 1364년 카시나 전투의 그림이 걸려있다. 시에나와 피사 입장에서는 치욕스러운 역사지만 가장 늦게 출발한 도시인 피렌체의 입장에서는 라이벌이었던 시에나와 피사 전투에서 최종적으로 승리함으로 토스카나 대공국으로 우뚝 선 영광의 순간이다. 


멀리서도 보이는 시에나 대성당까지 이르는 길은 매우 독특했다. '시간이 멈춘 도시'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곳들이 많이 있지만 시에나 골목을 걸어보면 이곳이야 말로 시간이 멈춘 곳이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키 높은 건물들 사이로 걷다 위를 올려다보면 어떤 식으로든 건물들이 모두 연결되어 있는데 이런 건물들이 어쩌다 한 둘이 아니다. 구도심 대부분의 건물들이 다 이랬다. 골목으로 들어선 것 같았는데 머리에는 건물을 이고 걷는 식이다. 건축가들이 말하는 전형적인 중세 건축 방식이란다. 피렌체와의 전투에서 패배한 덕분에 시에나는 르네상스 이전 중세 건축의 원형이 고스란히 남은 곳이 됐고 그 덕분에 지금은 세계 문화유산의 도시가 됐다. 

중세의 건축양식이 그대로 남아 있는 시에나  


피렌체가 만들어낸 르네상스의 분위기와 시간적으로 한 발 앞선 시에나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랐다. 구시가지에 첫 발을 들인 순간부터 유럽 어느 곳에서도 느끼지 못했던 색다른 분위기는 신비로운 느낌마저 들었다. 여러 갈래의 골목들이 사람을 유혹한다고나 할까. 그렇게 골목을 걷다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골목마다 저마다 문장이랄까 뭔가 표식이 붙어 있고 그 안에는 다양한 동물들이 있는데 돼지도 있고 닭도 있었다. 


이탈리아의 중세는 지금과 달리 나라의 개념이 아니고 공화국 체제였고 소위 말하는 가문이 자치권을 가지고 통치를 했는데 시에나의 경우 이 풍습이 전통으로 지금까지 남아 있는 도시였다.  각각 도시를 나눈 구역을 '콘트라테'라고 부르는데 콘트라테마다 그 지역 사람들이 자신들을 상징하는 문장과 상징동물로 표시를 해 놓고 있었다. 시에나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도시국가의 마인드가 남아 있고  이 전통이 지금껏 축제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 바로 시에나의 유명한 축제인 '팔리오(Palio)'다. 

시에나는 여전히 콘트라테(구역)마다 그곳을 상징하는 문양과 동물들을 만날 수 있다.


시에나의 주요 볼거리는 대부분 구시가지에 몰려있다. 가장 먼저 간 곳은 대성당인 두오모다. 대성당의 광장으로 가는 길 자체부터 특이했다. 성당의 두오모는 보이지만 성당 주변으로 건물들이 성곽처럼 두르고 있어 출입문이 보이지 않았다. 가이드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니 계단 위쪽으로 담벼락처럼 생긴 곳에 문이 있는데 출입문 치고는 상당히 특이했다. 


그리고 문안으로 들어서 왼쪽을 보니 주차된 차들 뒤로 담이있는데 굉장히 특이했다. 담이라고 하기엔 너무 화려하고 실내의 벽이라고 보기엔 주차장으로 이용되고 있으니 도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다 싶었다. 게다가 짓다가 만것인지, 아니면 원래 콘셉트가 저런 것인지 너무 애매했다. 벽과 이어지고 있는 건물은 성당 옆면이었기에 두오모 광장으로 발길을 옮겨 드디어 시에나 대성당의 정면 파사드를 마주한 순간, 놀래 자빠지는 줄 알았다. 

중세 때 짓지 못했던 성당은 지금도 미완성으로 남아 있다.
시에나 대성당 


화려한 고딕풍의 정면 파사드, 그 사이사이로 수줍은 듯 살짝 드러나는 분홍색의 대리석의 오묘한 조화는 놀라웠다. 또한 오직 흰색과 검은색 두 가지 색깔의 대리석으로만 쌓아 올린 탑은 상당히 이질적인데 화려한 정면 파사드와 또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었다. 모두가 극찬하는 피렌체 두오모와 달리 좀 더 고전미가 느껴졌다. 아무튼 시에나 대성당의 독특한 분위기는 이내 관광객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실제로 시에나 대성당이 워낙 규모도 크고 아름다웠기에 라이벌이었던 피렌체가 시에나보다 더 큰 성당을 지은 것이 지금의 피렌체 두오모다. 너무 크게 짓다 보니 당시의 기술로는 돔을 올릴 수가 없어 피렌체 대성당은 140년 동안이나 지붕이 없었던 건 유명한 일화다. 


피렌체가 시에나보다 더 큰 성당을 짓는다는 소식을 들은 시에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성당을 확장하기로 하고 공사에 들어갔다. 그 이유로 인해 주차장 뒤에 있는 담은 벽이 아니라 실내의 벽이 될 예정이고 정상적이라면 주차장으로 쓰고 있는 야외공간은 전부 실내공간이 되어야 했다. 하지만, 피렌체와의 전쟁에서도 지고, 성당 확장 공사가 진행되던 중에 터진 흑사병은 피렌체보다 시에나가 더 심각했기에 결국 성당은 지금까지 미완성인 상태로 남았다. 시에나 잔혹사 혹은 흑역사일 수도 있지만 오히려 스토리텔링이 되니 짠한 마음으로 한 번 더 눈길이 머물게 되는 시에나 성당이었다. 

흰색, 분홍색, 회색 대리석으로 지어진 시에나 대성당. 흰색과 검정색은 시에나의 상징 색깔이다.  
이탈리아 건축 잡지에 소개된 시에나 대성당 


시에나 대성당이 짠한기만 한 곳은 아니다. 두오모 내부는 시간이 촉박해 들어가 보지는 못하고 사진으로만 봐야 했는데 사진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피렌체가 왜 기를 쓰고 시에나보다 더 큰 성당을 지으려고 했는지 말이다. 검정과 흰색의 대리석으로 모두 장식된 내부는 단순하지만 화려했고 그 어떤 것보다 강렬했다. 성서이야기를 기하학적 무늬의 57개의 대리석 상감으로 장식했다는 바닥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성당 위쪽에는 전망대도 있고 덜 짓다만 건물의 벽면을 한 바퀴 걸어보면서 시에나에서 내려다보는 토스카나의 풍경도 궁금했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성당 안에 두치오(Duccio)가 그린 제단화와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설교단은 미술사적으로도 매우 유명한 작품이었다. 


사실 다른 투어를 포기하고 혼자만 시에나에 남아서 좀 더 천천히 둘러보고 싶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시에나 대성당은 나에겐 강렬한 곳이었다. 투어의 성격상 성당 내부를 관람할 경우 시간이 너무 지체되어 다른 일정을 진행할 수 없어 아쉬운 마음 한가득이었다. 다음을 기약하고 구시가 중심으로 향해 걸었다. 

시에나 대성당 내부 (이미지 출처 : 구글)  


구도심의 가장 중심에는 캄포광장(Piazza del Campo)이 있다. 성당을 나서 다시 집들과 집들 사이로 이어진 길을 걷다가 건물 사이로 들어서니 엄청나게 큰 공간이 열리며 갑자기 시야가 환해졌다. 캄포광장이었다. 캄포광장은 또 다른 의미로 특이했다. 이탈리아 도시의 광장 대부분이 평지인 것과 달리 경사가 있는 것도 희한한데 광장은 9개로 나뉘어 있었는데 조개껍데기 모양이었다. 


경사진 곳의 맨 아랫부분에 높이 102m의 만자탑이 우뚝 서 있는 팔라초 푸불리코(Palazzo Pubblico)는 시에나 또 하나의 랜드마크다. 팔라초 푸불리코 역시 중세의 전형적인 시청사의 모습이라고 하는데 많은 도시들이 이 건물을 본떠 시청사를 지었고 코펜하겐 시청도 그중 하나라고 한다. 피렌체에 밀리기 전까지만 해도 시에나가 유럽 도시에서 얼마나 큰 영향력을 행사한 도시였는지 충분히 상상이 됐다.  

캄포광장의 중앙에 102m 높이의 만자탑이 있는 팔라초 푸불리코. 3층까지는 시립미술관이, 맨 위쪽에는 전망대가 있다.. 
캄포광장과 팔리오 푸블리코, 관광객들은 그저 광장에 편하게 앉거나 눕는 것으로 시에나 여행을 완성한다.


감포광장이 너무 커서 9개로 나뉘어 있다는 것을 한눈에 확인하기는 어려웠다. 빨간 벽돌 사이에 색깔이 다른 돌이 부채꼴의 공간을 나누고 있구나 짐작할 뿐이다. 팔리오 푸블리코에서 광장 끝을 보면 어떤 느낌일까 궁금해서 시청사쪽으로 걸었다. 중간까지 한참을 걸어내려 갔는데도 반도 못 간 상태라 다시 올라올 걸 생각하니 아찔하기도 하고 시간도 촉박해서 결국 되돌아왔다. 광장의 모습이 너무 궁금해 구글을 검색하니 그제야 9조각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와- 여기 엄청난 곳이구나! 

이미지 출처: 구글


그런데 아직 놀라기엔 이르다. 이곳에서 해마다 여름이면 (7월 2일, 8월 16일) 팔리오 축제가 열린다. 팔리오 축제는 말하자면 전통 경마축제다. 시에나 9개 지역을 대표하는 기수들이 중세복장을 한 채로 안장 없이 말을 타고 광장을 질주하는 독특한 축제다. 이때 사용하는 깃발, 기수들의 화려한 옷 색깔 등은 중세 때부터 이어지고 있는 9개 콘트라테를 상징하는 문장과 색으로 화려하게 꾸민다고 한다. 이 축제가 얼마나 유명한지 이탈리아 공영방송에서 TV로 생중계가 될 정도고 단 2번의 축제를 위해 인근 호텔은 빠르면 1년 전부터 예약을 받고 3~4개월 전에 모두 매진된다니 놀랍기만 하다. 혹 영화 007 시리즈 애청자라면 22편 '퀀텀 오브 솔러스' 도입 부분에도 등장했다고 하니 어쩌면 본 적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좀 쉽게 생각하자면 시에나 동대항 경마대회 정도로 생각했는데 나의 착각이었다. 9개로 나뉜 구역 안에 각각 콘트라테의 사람들이 빽빽하게 모여 자기의 문장이 새겨진 깃발을 높이 쳐들도 목이 터져라 응원을 하는 모습이 찍힌 사진만으로도 엄청난 에너지가 느껴졌다. 지역을 나누고 대항전의 성격을 띠는 이런 축제야 말로 모르긴 몰라도 중세에 전쟁을 대신한 나름의 방식이지 않았을까 싶다. 1283년부터 시작된 축제인데 아직도 변형되지 않고 중세의 전통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니 솔직히 많이 부러웠다.  

팔리오 축제 (이미지출처 : 구글)
캄포광장과 팔리오축제의 모습을 담은 기념엽서


골목을 걷다가 아래로 내려가면 캄포광장인데 광장에서 나와서 다른 골목을 한참 걷다가 건물사이로 들어가니 또 캄포광장이었다.  캄포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건물들은 전부 광장과 연결되어 있었다. 적어도 시에나에서 만큼은 구시가의 모든 길은 캄포광장으로 통한다고 해도 될 정도였다. 구불구불한 골목이 엉켜있어서인지 미로 같은 길들이 끝없이 이어지지만 시에나 구도심 자체는 그리 크지 않아서 끝에서 끝까지 걸어도 1시간 정도면 충분할 것 같았다. 


이곳저곳 골목을 걷다가 1472년이라고 써진 간판을 발견했다. 1472년에 설립한 은행인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인 Monte dei Paschi di Siena다. 원래 시에나는 피렌체보다 먼저 금융이 발달했고  피렌체보다 훨씬 더 번성했던 도시였다. 그때 만들어진 은행들 중 파산하지 않고 현재도 영업하고 있는 곳은 이곳이 유일하다고. 

캄포광장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건물
중세 때 말을 매었던 장치가 그대로 남아 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이 시에나에 있다. 


토스카나 지방의 음식은 다들 비슷해서 이곳도 티본스테이크나 스파게티도 유명하다. 하지만 시에나에서 꼭 한번 먹어봐야 하는 것은 따로 있으니 아몬드가 들어 있는 비스킷 종류인 칸투치(Cantucci)다. 특히 토스카나 지방의 와인종류인 빈 산토(Vin Santo)에 적셔 먹는 게 별미라고. 시에나를 대표하는 음식이다 보니 가게마다 빈 산토와 칸투치를 진열해 놓고 있었다. 


시에나는 피렌체와 가까웠고 토스카나 첫 도시였기 때문에 이른 아침에 도착한 관계로 이곳에서 점심을 먹지는 않았다. 비록 끼안띠 와인도 빈 산토에 적셔먹는다는 칸투치도 모두 맛보지 못했지만 눈 호강 실컷 했으니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끼안띠 와인과 칸투이, 빈산토는 토스카나 다음 마을에서 먹을 수 있었다.)


시에나는 비록 피렌체와의 전쟁에서 패했다고 하나 시간이 멈춘 덕분에 중세의 전통이 그대로 남은 아주 특별한 곳이었다. 그리 크지 않는 도시 시에나에서 여행객들은 절로 느려진다. 느긋하게 중세의 시간을 만끽하고, 이리저리 걷다 보면 저절로 닿게 되는 캄포광장에 앉거나 드러누우면 시에나 여행은 완성된다. 시에나는 그런 곳이었다. 

가게마다 진열되어 있던 칸투치와 빈산토
와인병을 짚으로 둘러싼 끼안띠 와인은 토스카나 지방의 특산품으로 병에는 트레이드 마크인 검은 수탉 스티커가 있다.  


직접 보지 않고 말하지 말라, 피사의 사탑  


세계사 책 한쪽에 비록 작은 사진이었지만 기울어지고 있는 탑은 어린아이의 눈으로 볼 때 세상 무엇보다 신기한 것이었다. 어린 시절,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라는 피사의 사탑은 해마다 몇 도씩 기울어진다는 사건은 잊을만하면 해외토픽으로 소개가 됐다. 그랬기에 언젠가 꼭 한 번은 기울고 있는 '피사의 사탑'을 내 눈으로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보고야 말았다. 

피사의 사탑 입구 


기대하던  '피사의 사탑' 입구에 드디어 도착했다. 저 안쪽 끝에 비스듬하게 보이는 피사의 사탑이 보이니 흥분은 극에 달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기다려온 피사의 사탑을 내 눈으로 직접 본다는 사실만으로도 감개무량했다. 마음이 서두니 발길이 저절로 바빠졌다.   


기울어진 피사의 사탑이 너무 유명해서 이 일대는 '피사의 사탑' 하나만 있는 줄 알았다. 피사의 사탑은 도심에서 약 2km 남짓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피사의 사탑 주위로 성당과 몇 개의 부속건물이 있고 주위로는 거대한 성벽이 둘러싸고 있었다.피사가 이런 곳이었구나. 뒤늦게 현타가 왔다. 


토스카나의 세 도시 중 가장 먼저 두각을 나타낸 건 다름 아닌 피사다. 피렌체를 흐르고 있는 아르노강이 흘러 이곳 피사를 지나 바다와 만나게 된다. 피사는 바다와 가까운 지정학적인 장점으로 인해 로마 때는 해군기지 역할을 했고 중세 때는 베네치아, 제노바, 아말피와 함께 이탈리아에서 번성했던 4대 해양 도시 국 중 하나로 성장했다. 피사의 국력이 절정에 달했던 12세기에는 이탈리아 남부의 시칠리아를 식민지로 삼고 아랍의 함대를 격파하고 지중해 연안 무역의 항로를 장악했을 정도였다니 지금으로선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끝없이 승승장구할 것만 같았던 도시 피사도 연이은 해전의 패배가 누적되고 결정적으로 피렌체 전투에서 패배한 후 피렌체에 합병되면서 서서히 몰락하게 된다. 피렌체에 합병된 피사는 이후 메디치 가문에서 주요 건축물을 리모델링하고 피사를 과학과 학문의 도시로 중점적으로 육성하게 되는데  그중에는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갈릴레이'가 있다.  


한때 잘 나갔던 도시였던 피사이기에 시에나처럼 역사적인 건물이 많을 것 같은데 '피사의 사탑' 일대 외에는 특별한 볼거리가 없는 것은 의외였다. 불행히도 세계 2차 대전 당시에 피사는 큰 피해를 봤고 유적들이 대부분 파괴되어 거의 남아 있는 것이 없단다. 그나마 피사의 사탑이 온전히 남아 있어줘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피사를 찾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오직 하나 '피사의 사탑'을 보기 위해서고 세계 각국에서 피사를 찾는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피사의 사탑이 없었다면 심심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조용한 피사를 찾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싶었다. 

피사 대성당의 종탑인 '피사의 사탑' 


피사의 사탑은 두오모를 중심으로 모두 6개의 건물이 있는데 세례당, 공동묘지인 캄포산토, 시노피에 박물관, 오페라 델 두오모 박물관, 그리종탑인 '피사의 사탑'이 있다. 피사가 가장 힘이 강했던 당시 지어진 건물들이라고 하니 피사 역시 얼마나 힘이 있는 도시국가였는지 짐작이 된다. 


세 도시 중에 가장 먼저 번성했던 피사였기에 피사의  두오모가 시대적으로 가장 먼저 지어졌기에 당시 유행했던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졌다. 토스카나 지방 세 도시를 차례로 여행하다 보니 건축에 전문적인 식견이 있는 건 아니지만 번성했던 시기가 달라 두오모만 비교해 보더라도 확연한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피사의 두오모가 특이한 건 성당의 건물을 신을 향한 믿음을 상징하도록 설계했고 하늘에서 보면 십자가 모양이 선명이 드러나도록 건축을 했다고 하는데 구글 이미지를 검색해 보니 진짜 그랬다. 두오모는 시칠리아의 팔레르모 해전에서 이슬람의 사라센을 무찌르고 승리한 것을 기념해서 건축했다. 이슬람의 전리품이 있을 텐데 시칠리아 섬에서 가져온 모스크 기둥 등이 성당 안에 있어서 당시의 흔적들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뭐니 뭐니 해도 이곳의 주인공은 '피사의 사탑'이다. 이곳의 부지가 꽤 커서 피사의 사탑까지 걷는데 한참이 걸렸다. 막상 피사의 사탑과 마주하니 뭔가 가슴속에서 울컥하며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오른다. 피사의 사탑은 '단순히 기울어지고 있는 신기한 탑'이 아니었다. 그 오랜 시간 동안 무너지지 않고 아슬아슬한 시간을 견뎌내고 있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동안 유명하다는 숱한 건축물들을 많이 보고 다녔건만 '피사의 사탑'에 감정이입이 될 줄은 생각도 못했기에 감동을 받는 한편, 적잖이 당황했다. 


애초에 지반이 약한 곳에 지어진 피사의 사탑은 매년 1mm씩 기울어져 최대로 기울어졌을 때는 4.5mm까지 기울어졌다고 하는데 그러고도 탑이 안 무너진 건 정말 불가사의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탈리아 정부에서 약 11년간의 대대적인 공사를 통해 기울어지는 반대쪽 지반에 구멍을 내고 흙을 파내 균형을 맞추고 맨 아래층에 강철 케이블로 잡아당겨 더 이상 기울어지지 않도록 조치를 한 상태다.  어디에서 보느냐에 따라 기울기는 조금씩 다르지만 다행히 곧 쓰러질 것 같은 불안감은 들지 않았다. 


여전히 기울어 있는 탑이기에 전망대에 한정된 인원만 올려 보내고 있었다. 11월이라 여행 성수기가 아니었는데도 탑을 오르려는 사람들이 꽤 많아서 탑을 오르기 위해서는 긴 시간을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고소공포증도 없고 곧 무너질 것 같은 불안감은 들지 않았음에도 기울기를 생각하면 나에겐 피사의 사탑에 오르는 건 다소 용기가 필요했다.  밀린 숙제는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약 11년간의 보강공사를 통해 현재는 더이상 기울어지지 않도록 만들었다.


피사의 사탑을 보러 온 사람들은 기울어진 탑을 보는 것 외에 할 일이 하나 더 남았다. 멋진 포즈로 인증 사진을 남겨야 한다. '피사의 사탑' 기울기를 이용해 탑을 밀기도 하고 끌어 안기도 하고 심지어 아이스크림 콘에 담는 사진까지 연출되는데 이젠 이런 종류의 사진은 너무 평범하다. 어떤 이는 반쯤 열린 백팩에 피사의 사탑을 담는 등 자신만의 개성넘치는 아이디어로 인증숏을 담아낸다. 여기에서 찍은 포즈가 어떤 것이 있을까 검색을 해보니 전 세계에서 기발한 포즈로 인증숏을 남긴 사람들이 엄청 많았다. 몇몇 사진들은 방문 전에 미리 보고 나도 저렇게 한번 찍어 봤으면 좋았겠다 욕심이 날 정도로 기발했다. 

열심히 사진을 남기는 여행객들. 물론 나도 포함해서


피렌체를 여행하다 만났던 몇몇은 피사를 갔다 오긴 했는데 굳이 안 가도 될 뻔했다는 감상 소감을 전했다. 왜 그런 생각을 했냐고 하니 '기울어진 탑'외에는 볼 게 아무것도 없었고 심하게 말하면 인증사진 찍으러 간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누군가에게는 피사는 그럴 있다. 하지만, 피사를 갔다 왔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이다. 후회하더라도 가보고 후회하자는 입장의 나로서는 '피사의 사탑이 기울어졌다'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가볼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었다. 


내가 이 세상에 없더라도 피사의 사탑은 기울어진 채 긴 세월을 견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나처럼 직접 가서 내 눈으로 보고 말겠다는 의지를 어디에선가 불태우고 있을 것이다. 피사의 사탑이 기울어진 채로 오랜 시간을 꿋꿋이 견뎌주고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피사의 사탑 생각보다 별로 안 기울었네. 


+ 다음이야기 : 좋아할 수밖에 없는 토스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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