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이 내 삶에 미친 영향
제주로 왜 이주하셨어요?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
제주로 이사한 뒤, 어디를 가도 빠지지 않고 받는 질문이 있다.
“왜 제주로 이사하셨어요?”
이 질문은 벌써 여섯 달째 내 일상에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어쩌면 1년, 2년이 지나도 계속될 것만 같다.
대한민국 어디를 가도, 이렇게 오래도록 ‘이유’를 묻는 경우가 있을까. 제주만큼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도시도 드물 것이다.
제주에 대한 로망은 한동안 ‘제주 한 달 살기’ 열풍으로 이어졌다. 불과 두해 전까지만 해도 제주 인구 유입은 폭발적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제주를 떠나는 사람이 훨씬 더 많아졌다.
그런 시점에 거꾸로 나는 제주로 이사를 했다.
사람들은 묻는다. 왜 제주로 왔냐고.
솔직히 말하면, 예전에도 제주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끔 하긴 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한 달 살기’ 정도의 마음이었다. 거주지를 완전히 옮기겠다는 생각은, 솔직히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랬던 내가 제주 이주를 결심하게 된 것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사건 때문이었다.
내란의 밤
2024년 겨울, 깊어가는 밤. 느긋하게 TV 드라마를 보고 있던 순간, 뉴스가 나를 붙잡았다.
“비상계엄 선포.”
정확히는 12월 3일 화요일 밤 10시 30분. 믿기 어려운 순간이었다. 두 시간 만에 계엄 해제 결의안이 통과되긴 했지만, 그날 밤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그날 이후 대통령이 탄핵될 때까지, 약 100일간 국민 대부분은 불면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뉴스는 쉬지 않고 쏟아졌고, 뉴스를 확인하지 않으면 불안은 커졌다. 나는 눈을 뜨자마자 뉴스부터 확인했고, 하루 종일 유튜브 시사 방송을 끼고 살았다.
드라마나 영화로만 보던 계엄을 실제로 경험하고 대통령 탄핵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건을 내 생에 두 번씩이나 경험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외국인 친구들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그것도 선진국인 대한민국에서 탄핵이라니…’라며 위로 문자를 보내왔다. 하지만 부끄러움은 온전히 내 몫이었다.
추운 겨울 8년 전처럼 집회가 시작됐다. 달라진 게 있다면 촛불 대신 응원봉이 광장을 가득 메웠다. 매주는 아니어도 거리에서 탄핵을 외쳤다. 그렇게 나는, 아니 우리는 24시간 모든 감각들이 신경이 곤두선 채로 내란의 시간을 건너고 있는지 그때는 몰랐다.
일주일 제주 겨울여행
"제주로 눈 구경 와라"
제주로 이사 간 지인이 한라산에 눈이 쌓였다면서 제주로 눈구경을 오라고 했다. 정치 상황은 숨 가쁘게 돌아가고 있었고 일상에 집중이 안 될 정도였다. 이 시국에 여행이 다 무언가 싶었지만 어쩌면 내심 답답한 상황을 벗어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대충 짐을 꾸렸고 제주로 날아갔다.
첫날,
제주에서도 나는 서울과 다를 바 없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뉴스부터 확인했다. 제주에서 느긋한 일상이었지만 걸어 다니면서도 하루 종일 유튜브를 끼고 살았다.
다음 날,
한라산은 폭설로 도로가 통제되었다. 하지만 점심 즈음, 1100 고지로 향하는 길이 열렸다. 겨울철 한라산 관광 순환버스, 눈꽃버스를 타고 중산간을 지나자, 세상은 온통 하얀 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다시 버스 타고 남쪽으로 내려가니 붉은 동백이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서 습관처럼 뉴스를 틀었다.
다음 날은 애월 소길리의 이끼숲 카페를 찾았다. 눈이 쌓인 카페에는 작은 눈썰매장도 있었다. 기대 이상으로 아름다웠다. 그다음 날은 귤을 따러 갔다. 내 손으로 직접 귤을 따보고 그렇게 딴 귤은 집으로 택배도 보냈다.
또 다른 날은 아이젠 없이 오르기 힘들 정도로 눈이 쌓인 어승생악을 올랐고 눈이 펑펑 내리는 사려니 숲길도 산책했다. 제주로 올라오기 전 날에는 완전 봄날 같았던 한라수목원을 산책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는 동안 나는 차츰 뉴스와 인터넷 세상 속으로부터 조금씩 멀어지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내가 더 이상 서울처럼 열심히 뉴스를 보고 있지 않다는 것을. 계엄 이후로 마음속에 무거운 돌덩이 하나를 지고 사는 느낌이었는데 몸도 마음도 너무나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서울에서는 계엄 이후 늘 편두통과 미열에 시달렸는데, 제주에서 지내는 동안 어느 순간 몸속 모든 무거움이 일시에 사라진 기분이었다.
그래, 결심했어.
지인의 집에 머물면서 대단한 것 없는 제주에서 일주일이었는데 제주의 자연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가벼워질 수 있나 싶어 믿기지 않았다. 제주의 일상이 무슨 마법을 부린 것만 같았다.
처음에는 비상시국이라 내가 현실에 과몰입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평소에도 내가 얼마나 스마트폰과 인터넷, 미디어 등에 빠져있는지 제주에 와서야 새삼 알게 됐다.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
나는 어느새 나 자신에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제주로 이사를 가보자."
계엄이 아니었다면 아마 제주로 이사는 꿈조차 꾸지 않았을 것이다.
이쯤 되면 계엄 상황을 고맙다고 해야 하나?
제주를 돌아다니면서 찍은 사진들을 보니 그때는 몰랐는데 확실히 서울의 일상과는 많이 다르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누릴 수 있는 축복받은 제주의 환경이다.
그러나,
제주로 이사를 해야겠다고 결정했지만 막상 제주 이사는 그리 쉬운 것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