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도의 불안감은 나를 잠식시키고
최근 입이 찢어졌다. 범인은 막걸리의 단맛을 극대화 시켜주는 알밤. 입으로 밤을 쪼개 먹어온 세월동안 한번도 찢어본 적이 없었기에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처음엔 아얏, 정도. 두번째 손가락 지문의 작은 형태만 알 수 있을 정도의 피가 묻어나오고 그만이었다. 일생을 통틀어 알밤의 공격을 결코 받아본 적 없던 그녀는 나의 상처가 과로에 의한 거라 했다. 알밤의 기습공격이었다고 아무리 설명해줘도 과로에 대한 의심은 여전하다.
금방 아물 줄 알았는데, 피부 재생이 더딘 나이라는 걸 깜박했다. 그리고 밥을 먹거나 양치를 하고 나면 상처가 다시 벌어질 수 밖에 없었다. 자신보다 나를 더 생각하는 그녀는 꼬매야 하는 상처라하고 나는 그 정도의 상처는 아니라고 방어하지만. 사실 내게는 그 기준이 없다. 어느 정도 찢어져야 병원에 가야하는건지. 다만 내 몸이 보내는 신호에 집중했다.
상황이 장기전으로 돌입하자 불안하기 시작한다. 정말 병원에 가야할 정도였던걸까. 온 신경이 상처부위로 집중됐다. 입을 크게 벌리지 않기 위해 죽이나 요플레로 밥을 대신하고, 양치질은 복화술 하듯 입술을 벌리지 않고 해결하게 되었다.
입을 크게 벌리고 이야기 하거나 웃을 수도 없고, 핫도그나 햄버거처럼 입을 크게 벌려야만 하는 음식은 먹을 수가 없다. 그렇게 무언가를 먹을 때 입에 계속 묻게 되고 속 시원하게 웃질 못하니 우울해지는 것 같다. 행복과 우울사이의 거리가 이렇게 가까울줄은 몰랐다.
알밤의 습격 덕분에 핫도그 먹을 때와 통쾌하게 웃을 때 행복감을 새롭게 느끼게 될 것 같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새로운 행복을 찾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