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군국주의가 아시아를 짓밟던 시대, 종군위안부와 근로정신대로 끌려가 고통받은 여성들이 있었다. 그리고 고통은 전쟁과 함께 끝나지 않고 평생 끈질기게 그들을 괴롭혔다.
<허스토리>는 이런 사건, 이런 고통이 존재했음을 알려주고 기록한다. 한편으로는 외면받던 약자들과 연대한 이야기를 전하며 이 시대의 약자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보내고,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드는 모든 비겁자를 아주 조금 위협하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은 관부재판의 기록, 그 중에서도 생존자들의 법정 증언과 회상으로 전해진다. 학대의 상흔은 폭력이 행해지던 당시의 현장감을 모두 배제하여 전해진다. 관객의 감정이 격해질수록 영화는 오히려 차분해진다. 이 조심스러운 거리감은 클릭수를 늘리기 위해 자극적인 보도를 서슴지 않는 한국 언론이나, 영향력을 넓히기 위해 아픈 사건을 본인들의 입맛대로 재구성하는 일부 세력의 태도와 아주 대조된다. 이는 감독과 주연배우가 인터뷰에서 입을 모아 말하던 ‘당사자의 심정을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어려움’이 그대로 드러나는 모양새다.
동시에 <허스토리>는 여성의 이야기, 여성 중심 서사임을 숨기지 않는다. 피해자 할머니들과 대치하는 주된 세력은 일본이 아니라 남성적 집단이고, 제목도 ‘여성의 역사’ 그 자체라, 주제를 일반적인 폭력의 희생자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하는 것을 예방한다. 위안부/정신대 문제를 한/일 과거사 문제로만 배워온 기존의 프레임에서는 이러한 구도가 의아하고 불편할 수 있다. “일본이 잘못한 것이야 맞지만, 우리나라 남성은 왜?”
하지만 한반도에 정착해온 국가들이 자국 여성들을 어떤 식으로 취급했는지를 상기하면 지극히 당연한 처사이다. 조선은 제도적/문화적으로 여성을 명백한 2등(혹은 그보다 아래 등급의) 존재로 취급했고, 병자호란에 청에 포로로 잡혔다가 돌아온 여성들을 환향녀라며 배척하고 조롱한 국가였다. 과거의 대한민국은 ‘미군을 위한’ 사창가를 국가에서 운영했고,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극악한 여성혐오 범죄들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다. 이런 토양에서 불편함없이 자란 이 또한 가해자임을 어떻게 부정할 수 있을까?
이 굴레는 여성으로 태어난 사실만으로 벗어날 수 없다. <허스토리>는 남성적 질서에 순응하는 여성 또한 가해자가 될 수 있음을 초반부의 문정숙 사장과 ‘위안부 포주’였음을 고백한 할머니, 서귀순 할머니의 선생이었던 일본인 여성을 통해 보여준다. 가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이들은 남들이 사는 방식을 거부하고 피해자의 조력자가 되어야 한다.
연대의 중요성에 대해 이토록 열심히 말했지만, <허스토리>는 그 고됨을 숨기지 않는다. ‘위안부 생존자 할머니들을 돕는’ 건 말처럼 쉽지 않다. 시간적 금전적 문제는 물론이고, 피해자 사이에는 미묘한 구분짓기가 있으며, 이기기 위해 어디까지 행동할 수 있는지도 명확하지도 않다. 그리고 그 끝에는 크나큰 승리가 아닌, 상위재판에서 뒤집어질 불만족스러운 1심 승소 판결이 기다리고 있다. 사과를 받지 못한 동안 할머니들은 모두 돌아가셨다. 아, 답답해진다.
나는 이 답답함이 연대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슬프게도, 세상은 동화가 아니다. 약자와 연대하는 것을 피곤하고 어렵고 답답하며, 보상이 극적으로 주어지지도 않는다. 어쩌면 평생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유지를 이어받을 다음 세대가 없을 수도 있다. 영겁의 시간이 흘러도 패배할 수 있다.
이토록 희망이 없는데 어떻게 연대를 이어갈 수 있을까? 모르지만 어떻게든 힘을 내야 한다. 상심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낭비할 수 없으니 슬픈 마음을 잘 달래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1심 판결이 내려진 후 배정길 할머니가 복잡한 마음을 누르고 애써 노래를 불렀듯이, 힘내는 법을 찾아야 한다.
<허스토리>는 카타르시스가 넘치는 재미있는 영화는 아니다. 나에게는 다소 당연한 견해를 말한 영화이기에, 누군가에게 단 하나의 영화를 추천할 때 떠오르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는 나름의 존재의의와 힘을 가진다. 위안부 문제를 다루는 영화가 한 편 더 생겼다. 대중적으로 알려져있지 않던 관부재판이라는 싸움을 기억할 실마리가 생겼다. 역사적으로, 특히 한반도에서 자행된 여성혐오적 습관을 꼬집는 영화가 남았다. 영화의 결말처럼 아주 미미하지만, 마음 가득한 답답함을 아주 조금이나마 덜 수 있는 성취. 그 위에서 계속 움직이자. 아무런 보상도 기다리지 않을지라도 힘을 낼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