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이던 시절, 사람 만나는 것에 별 감흥이 없었다. 흔한 직장인에게 '얼굴 마주하는 사람', '연락 주고받는 사람'이란 그저 직장동료 선후배, 타 부서 동료, 거래처 관계자, 학생, 고객 등... 회사라는 큰 범주 안에 업무적으로 만나는 사람들이 대다수. 그리고 사적인 시간에는 늘 보던 친구들과 남자친구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
즉, 나의 경우 새로운 사람 만날 일이 거의 없어 늘 알고 지내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익숙함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편안하긴 하여도 신선함보다는 무미건조했다. 특히 하루의 대부분 시간을 보내는 직장에서 소수의 친한 몇몇을 제외하곤, 사람들이 서로 뿜어내는 기운은 피곤하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나에게 딱히 영감을 주는 이도, 좋은 자극을 주는 이도 없었기에.
사무실에 앉아 사람 얼굴보다는 컴퓨터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는 시간이 더 압도적이던 시기를 지나, 쿠킹스튜디오를 운영하는 지금은 완전히 달라진 일상을 보내고 있다. 거의 매일 수업을 하다 보니, 매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셈인데 피곤하지가 않다.
사진 출처: 본인 제공
'오늘은 어떤 분이 오실까' 새로운 수강생이나 고객을 만날 때면 기대가 앞선다. 신기하게도 걱정되거나 부담스러운 마음이 없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보자면, (아직 나는 내 자신이 서비스업에 걸맞는 인간이란 생각은 안 들지만) 그럼에도 적성에 나쁘진 않은 것 같다.
게다가 이런 일을 안 했으면, 평생 만날 일이 없을 생각지 못한 인연들과 만나고 가까워진다. 게다가 직업군들까지 어쩜 그리도 다채로운지. 유명 카페나 식당 사장님, 요식업계 브랜드 대기업의 직원, 큰 사업체를 운영하는 사장님, 연예인, 에디터, 국제변호사, sns 인플루언서, 엔터테인먼트사 직원, 선생님, 디자이너, 대사관 직원, 아나운서, 정치인, 등등 나열할 수 없을 만큼 광범위하다. 연령층으로 구분하면 최연소 요리천재 초등학생부터 최고령 여든여덟세 할머니까지.
지역마저 경계가 없다. 전국구는 물론이거니와 외국에서 살다 온, 외국으로 곧 출국할, 업무 혹은 학업으로 외국과 한국을 자주 오가는 수강생들이 정말 많이 계신다. 그 중엔 외국인도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영어를 전공한 내 입장에선 회사에 근무할 때보다 오히려 지금 영어를 더 자주 쓰고 있다. 물론 요즘은 전공이 무의미한 시대라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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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유명 카페나 맛집을 즐겨 찾아다니는 친한 언니가 있는데, 마음에 드는 식당을 가면 밥만 먹고 나오는 게 아니라 꼭 사장님과 친해져서 나오는 재주가 있다. 그런 인맥이 쌓이고 쌓여, 언니는 나름의 요식업계 인사이트를 갖고 있어 언젠가 한 번 물어본 적이 있다. '나중에 창업할거야? 사업할 생각 있어?' 그러자 돌아온 언니의 대답은 '아니, 난 그냥 사장님들 이야기 듣는 게 재밌어서 어쩌다 보니'
나 역시 그렇다. 개성 넘치는 수강생들이 들려주는 자신들의 일상, 직업, 가족, 음식 관련 이야기는 언제나 재미있고 흥미롭다. 내가 모르던 세계의 이야기를 전해주니 그 속엔 나에겐 뜻밖의 영감을 안겨주기도, 유용한 정보가 숨어있기도 한다. 사람이 주는 에너지가 어떻게 긍정적일 수 있는지 이전에는 좀처럼 알지 못했는데, 이 일을 하면서 진심으로 느끼고 있다. 게다가 그 인연이 지속적으로 이어질 때, 때로는 친척처럼 친구처럼, 마치 오래 알고 지내던 지인처럼 가까워질 땐 무척 소중하고 귀하다. 나를 좀 더 나은 사람으로 살게끔 한다. 흘리듯 지나간 말을 기억하고 있다가 다시 짚어주고, 필요해보이는 부분을 뒤에서 조용히 챙겨주고, 편찮다는 가족의 안부를 물어보는 등 관심과 배려를 잊지 않도록 노력하면서.
'선생님, 저희 엄마가 음식이 너무 맛있다고 다음엔 김치랑 장아찌도 다 배워보래요'
'지난 수업 때 배워간 양파스프를 회사 도시락으로 싸서 다니는데 동료들이 요리를 왜이렇게 잘하냐며 엄청 놀라워했어요'
'양념장이 너무 맛있고 활용도가 높아서 엄마가 이참에 더 많이 만들어두라며 대용량으로 거의 공장 돌렸어요'
'선생님, 몰랐는데 미국 마트에도 없는 것 없이 다 있더라구요. 외국인 친구들 초대해서 배운 요리들로 홈파티했는데 한식 인기가 최고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