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결벽증도 아니고 무던한 성격이긴 하나, 위생 면에서는 좀처럼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물론 내 눈에만 보이는 사소한 것일 수 있지만, 뭔가 하나 거슬리면 끝까지 거슬리는 것들이 있다. 이를 테면..
스텐 식기류와 유리잔에 선명히 남아있는 물기 자국, 하얀 주방 벽에 튀어있는 작은 소스 파편들, 싱크대 벽에 묻어있는 거뭇한 자국들, 삶아 빨지 않은 행주에서 은근히 풍기는 기름 쩐내, 수세미에 박혀있는 자잘한 음식찌꺼기, 줍지 않은 머리카락.. 등
스튜디오에서 수업이 있든, 미팅을 하든 매일 외부 사람들을 대하는 입장에서 어찌 보면 깔끔 떠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누군가 방문하기로 한 시간이 가까워지면, 나는 물티슈를 들고 다니며 먼지나 자국 등을 빡빡 닦아내기 바쁘다. 내가 너무 깔끔 떠는가 싶더라도 분명 나 같은 사람도 있을 수 있기에. 청결함을 지키는 나만의 기준이지만, 우리 공간을 방문한 외부 사람들에겐 늘 깔끔하고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은 건 당연하지 않을까.
사진 출처: 본인 제공
나는 항상 반대로, 오너가 아닌 손님의 입장으로 바꿔서 생각하려 노력한다. 지금도 선명히 기억나는 2가지가 있는데 둘 다 식당에 갔을 때 일이다.
지하철역 안에 있는 한 분식당에서 우리 일행이 아직 한창 식사를 하고 있는데, 바로 옆에서 아르바이트생이 주방에서 까맣고 큰 쓰레기봉투를 질질 끌고 나와 별안간 쓰레기통을 비우기 시작했다. 브레이크 타임도 아니었고 그냥 노말한 시간대에 우리를 비롯해 홀에는 식사 중인 팀들이 몇몇 더 있었다. 온갖 휴지와 비닐들이 홀 바닥에 너저분하게 떨어지는데도 아르바이트생에게 식사 중인 손님들은 안중에도 없었다. 왜 하필 쓰레기통을 그때 비워야만 했을까.
다른 한 번은 양재천에 있는 한 와인바에 갔을 때다. 엄마랑 바람 쐬러 나왔다가 마침 점심시간이고 해서, 자리가 있는 아무 레스토랑에 사전 정보 없이 그냥 들어갔다. 그 식당은 공간이 작았고 손님들이 별로 없어 한적했으며, 거기도 우리처럼 모녀가 운영하는 듯했다. 주방에는 엄마가, 홀에는 딸이 오가며 서빙과 계산을 했다. 그럭저럭 무난한 식사를 하고 계산하려 카운터에 갔는데, 카운터 옆에는 점심시간대에 손님들이 먹고 남긴 그릇들이 그대로 층층이 쌓여 있었다. 나는 카드를 내밀고 계산을 기다리면서 계속 시선이 그 접시들로 향했다. 손님들이 먹고 남긴 파스타, 샐러드, 음식물 소스가 묻은 수저와 포크 등이 그대로 접시들과 함께 산처럼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그 뒤에는 주방으로 통하는 공간도 있었는데, 바로바로 그릇들을 치우면 더 깔끔하고 좋을 것을.
정신없이 바쁜 것도 아닌데 왜 손님들이 오가며 다 보이는 곳에 설거지거리들을 방치하고 있을까. 나쁘지 않은 식사였음에도, 다음에 굳이 이곳을 또 찾진 않겠다 싶었다.
사진 출처: 본인 제공
이런 사소한 잔상들은 나도 모르는 사이 기억에 남는다. 거기엔 내가 무언가에 호감을 느끼는 점, 불호를 느끼는 점 모두 포함될 수 있는데 사업을 하다 보니 이 기억들을 되도록 잊지 않으려 한다. 입장을 바꿔서 내가 손님이라면, 내가 수강생이라면, 내가 방문객이라면 낯선 공간에 들어왔을 때 어디서 만족해하고 불편해하지 않을지 살피려 한다.
한 번 이상 오신 수강생의 차 번호를 기억하고 주차 할인 등록을 먼저 해놓는 것, 커플이나 친구 혹은 가족끼리 수업을 들으러 오셨을 땐 먼저 요청하지 않았어도 알아서 기념사진을 몇 장 촬영해 수업 후 보내주는 것, 실내용 슬리퍼로 갈아 신으면서 벗어놓은 신발들을 다시 신기 편한 방향으로 돌려놓는 것, 앞치마는 옷걸이에 걸어놓은 게 아닌 매번 각 잡아 반듯이 접어놓은 상태로 세팅하는 것, 수강생들에게 수업 하루 전날 안내문자를 한번 더 발송하면서, 신규 수강생들에게는 '찾아오시는 길' 안내를 특히 상세히 전하는 것, 그러면서도 수업 당일에는 오시는 데 불편함은 없었는지 한번 더 여쭤보며 상대방이 어색해하지 않도록 스몰토크를 이어가는 것, 등등.
사진 출처: 본인 제공
내가 만약 카페를 운영하는 사람이라면 실내에서 메말라 시든 꽃과 화초는 거두었을 것이고, 더 이상 다루지 않는 음식은 메뉴판에서 지우거나 수정했을 것이다. 손님의 시선이 닿기 전에, 손님이 먼저 묻기 전에.
무거워보이는 짐을 대신 들어주는 것, 운전석에 앉은 사람이 조수석 앉은 사람의 가림막을 내려주며 뜨거운 햇볕을 막아주는 것, 스치듯 지나가는 말로 들은 이야기를 기억했다가 필요할 때 은근히 챙겨주는 것. 우리는 이를 센스있다, 고 말하곤 한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이 크면, 없던 센스도 자연히 나오게 된다. 그 아르바이트생이 식사하는 손님들을 배려했다면 굳이 그 타이밍에 본인 몸집만 한 쓰레기통을 비우지 않았을 것이다. 그 와인바 주인 여자도 본인 공간을 조금만 돌아볼 줄 알았다면 설거지할 그릇들은 쌓아두지 않고 바로바로 치웠을 것이다.
혹시 당신이 주위 사람들로부터 종종 '센스 있다'는 칭찬을 듣는 편이라면, 이는 당신이 그만큼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 주면서 신뢰를 얻고 있음을 뜻하는 바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