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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집사 Aug 18. 2022

안녕하세요, 열혈 달팽이맘

달팽이 키우기 관찰일기

수업 메뉴에 배추겉절이가 있었던 어느 봄날. 유기농 알배추를 사왔는데, 가운데 꽤 커다랗고 동그란 구멍이 나 있었다. 뭐야? 하고 들춰보니 세상에 꽤 큰 사이즈의 동그란 달팽이가 숨어있었다. 살아있었다. 심지어 꼬물꼬물 잘도 움직이는데, 귀엽기까지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우렁이나 조금 큰 소라 사이즈 정도에 불과한데, 태어나 달팽이를 실물로 가까이 보는 게 처음인 나로서는 그것도 크다고 느껴졌다.


기특하게도 여기까지 굴러들어왔는데 한번 키워볼까 하는 생각에 작은 유리병을 집이랍시고 꾸며줬다. '엄마, 어떻게 해줘야 돼?', '상추 이파리 하나 넣어줘봐'.



사진 출처: 본인 제공


처음에는 감히 달팽이를 만져볼 엄두도 못 내고 멀뚱멀뚱 보기만 했다. 엄마는 그런 나에게 '그만 좀 쳐다봐라. 누가 너 밥 먹는데 그렇게 코 앞에서 쳐다보고 있으면 좋겠니'. 신기하잖아. 체력이 어찌나 좋은지 이 귀여운 달팽이는 하루종일 열심히도 돌아다닌다. 매일 지켜보는 나는 잘 못 느끼는데, 엄마 말로는 달팽이가 짧은 시간내 상당히 많이 컸다고 놀라워했다. 몸을 쭉 뻗었을 때 자로 재 보니 지금 몸 길이는 약 5cm 정도. 그러네, 진짜 많이 컸네.


수중재배로 사용하려던 유리화병을 새 집으로 꾸며줬다. 평수를 넓혀서 더 좋은 집으로 이사한 달팽이는 새 집이 꽤 맘에 들은 모양이다. 집 안에는 돌하르방도 있고, 구멍 숭숭 난 돌맹이도 있고, 전복 껍데기도 있다. 뚜껑은 양파망이다. 달팽이는 안을 구석구석 돌아다니다가, 뚜껑을 열어두면 화병 입구를 원웨이로 돌며 산책도 하고, 손잡이 밧줄을 타고 오르락내리락 스릴즐길 줄 안다. 그리고 때 되면 알아서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가는데 그 귀소본능은 볼 때마다 신기하고 기특하다.



사진 출처: 본인 제공


사진 출처: 본인 제공



어영부영 키우기 시작한 달팽이가 한 달쯤 됐을 무렵. 나는 뒤늦게 인터넷을 서치하며 본격적으로 달팽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달팽이가 폭풍성장할 줄 몰랐고, 나 또한 이렇게 달팽이에 애정을 붙일 줄은 생각 못했기에 공부가 다소 늦었다. 이 녀석은 수명이 1년 남짓에 불과한 토종 명주달팽이로, 보통 배추나 상추에서 많이 발견되며 저 사이즈에서 더 크게 자라지 않는다. 비 온 뒤 아파트 단지 화단에서도 종종 나타난다고 한다. 얼마나 살다가 여기까지 굴러들어왔는지 알 순 없지만, 달팽이가 이고 다니는 자기 집, 그러니까 패각 상태를 보면 대충 알 수 있다. 패각이 반질반질 윤기가 나고 색이 어두우면 나이가 어린 편이고, 패각에 윤기가 없고 거칠고 색이 흐릿하면 나이가 많은 편이라 한다. 어쩜 나이드는 과정은 사람도, 강아지도, 달팽이도 이렇게 다 똑같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 달팽이는 '어린이'일 때 내 손에 들어온 셈이다. 달팽이가 성장하면 패각도 조금씩 같이 커진다.


초반에는 실수도 잦았다. 달팽이는 햇빛을 안 보고 습하고 어두운 곳을 좋아하는데, 일광욕 시킨다고 실컷 햇빛 쪼이다가 말려 죽일 뻔 했다. 달팽이는 더듬이가 4개가 있는데, 그 중 길쭉한 더듬이 2개가 눈이란다. 아래 짧은 더듬이가 눈인 줄 알고 귀엽다고 좋아했는데. 몇 분째 가만히 안 움직이길래 쿡쿡 건드려봤더니, 똥 싸는 중이었다.



사진 출처: 본인 제공



식성은 대놓고 고급이다. 신선한 채소와 과일을 좋아하고, 이틀 이상 지난 먹이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못 먹는 건 거의 없이 식성이 좋은데 깻잎처럼 향이 있거나 신맛이 강한 과일은 먹지 않는다. 과일이라면 다 좋아하는 줄 알고, 예전에 한번 키위를 살짝 맛보게 했더니 그 작은 몸을 있는힘껏 배배 꼬더니 쪼그라들듯 몸부림치며 진저리를 친 적이 있다. '아우 셔-' 이런 느낌. 목이 마를 땐 물도 꿀떡꿀떡 마시고, 작지만 오물오물 움직이는 입은 생각보다 잘 보인다. 무더운 여름날엔 찬물에 샤워를 즐기고 좋아한다. 사람 손가락에도 겁 없이 올라타 핸들링에 능숙하며, 기린처럼 몸을 곧게 세우고 이리저리 흔들며 호기심 가득한 적극적인 자세를 보인다. 마치 강아지들이 만져달라고 애교부리는 것과 제법 비슷한 느낌.


자색고구마가루, 단호박가루, 달걀껍질가루에 환장한다. 소화기능이 없어 먹는 족족 똥으로 배출되는데 먹이 색깔 그대로 똥이 나온다. 당근을 먹으면 주황색 똥이, 단호박가루를 먹으면 노랑색 똥이, 채소를 먹으면 초록색 똥이 나오는 게 재밌다. 아 참, 똥은 몸에 나 있는 유일한 구멍인 숨구멍에서 배출되는데, 온도와 습도가 지 맘에 들면 동그란 숨구멍이 꽤 커진다. 마치 공기 좋은 날, 우리가 야외에서 코로 숨을 크게 들이키는 것과 비슷다.



사진 출처: 본인 제공



달팽이 커뮤니티를 살펴보면, 생각보다 달팽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정말 많더라. 그리고 그들은 대부분 코코넛 향이 나는 흙 '코코피트'를 필수용품으로 사용하는데, 음. 나는 코코피트 없이도 잘 키우고 있다. 어차피 야생에서 달팽이들의 입장에서 볼 때, 야생에는 코코피트 같은 게 없지 않은가. 대신 쿠킹스튜디오에서 키우는 만큼, 매일 신선하고 다양한 채소와 과일을 대령한다. 이 정도면 아주 부르주아다.

  

어느덧 달팽이집사 4개월째. 강아지나 고양이 수준으로 상호교감은 어렵겠지만, 달팽이 키우기는 '그래도 살아 움직이는 하나 있다고 되게 신경 쓰이네' 엄마의 감상평 한 줄로 요약할 수 있다. 요 녀석이 앞으로 얼마나 더 우리와 함께할진 모르겠으나, 집사의 보살핌 아래 호강하며 사이좋게 잘 지내보자며 나는 오늘도 틈날 때마다 분무기로 물을 찍찍 뿌려준다. 달팽이는 촉촉하고 습한 환경을 좋아한단다. 이 정도면 열혈집사 맞지.


아, 왜 계속 강아지 얘기를 하는가 하면 나는 강아지를 17년 키우고 무지개별로 보낸 적이 있다. 그 이후엔 아무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겠노라 다짐을 했건만, 아람이를 보내고 3년이 지난 지금은, 달팽이를 데리고 있을 줄 상상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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