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임밍아웃, 남편이 울었다

by 달집사

저녁 8시쯤 임테기 2줄을 처음으로 마주했을 때, 생각보다 덤덤했다. 역시. 임신일 줄 알았어, 임신이 맞았네, 내 촉이 역시 무섭네. 이 생각만 하고 있었다. 문득 지난달 시어머니가 전화로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시어머니께서는 '임신하면 모를 리가 없어, 바로 알게 돼'라고 말씀하셨는데 그게 이건가. 이런 촉을 염두하신 걸까. 여자의 촉은 가히 대단하다. 임테기를 계속 들여다봤다. 태어나서 처음 마주하는 임테기 속 두 줄은 신기하기만 했다. 호들갑을 떨지도, 감격스럽지도, 감동적이지도 않았다. 그냥 신기하기만 했다.


임신극초기증상이 하나도 없어도 임신이 맞구나, 인터넷 속 정보가 전부 다 나에게 맞는 건 아니구나, 사람마다 다 다를 수 있겠구나. 싶었다.


나는 그때부터 이제 남편을 놀라게 해줄 생각으로만 가득했다. 임테기로 언제 서프라이즈를 해줄까. 어떻게 임테기를 전해줄까. 서프라이즈에 미친 여자는 온통 남편을 깜짝 놀라게 할 생각으로 들떠있었다. 이것도 타이밍이 참 기가 막히다.




전날 회식을 해서 새벽 늦게 들어온 남편은, 오늘 오후에 출근하면서 나에게 전화를 해 지난밤 회식 때의 에피소드를 이것저것 알려주었다. 평소 친애하는 상사와 이야기를 많이 나눌 기회가 있었던 남편은 '사실 애기를 너무 갖고 싶은데, 지금 내가 이렇게 바쁜데 애기가 태어나면 잘 돌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와이프가 너무 힘들지 않을까, 내가 좀 더 자리를 잡고 나서 아기를 가질까 생각이 많다' 등등... 상사에게 본인의 고민을 털어놓았다고 한다.


그 상사는 자녀가 무려 넷이나 있는데, 남편에게 조언해 주시길 '자리를 잡는다는 게 정확히 언제가 될진 아무도 모른다, 그건 개인의 욕심이지, 지금 이미 성과 잘 내면서 충분히 잘하고 있는데 고민하면서 시간을 흘려보낼수록 오히려 부부에게 임신은 점점 더 어려워질 거다, 애기는 생각이 들었을 때 일단 그냥 갖는 거다, 그러면 또 키우게 된다, 다들 그렇게 산다' 그 말에 남편은 용기를 가졌다고 한다.


그러면서 나에게 '우리가 그동안 아무 계획도 없이 관계를 가져오긴 했지만, 앞으로는 그 주기에 맞춰서 한번 해보자, 정 안 되면 나중에는 같이 병원을 다녀야 할 수도 있다, 그러니 우리 한번 해보자! 무겁게 억지로 숙제라고 생각하지 말고 즐겁게 이벤트처럼 생각하자'




전화기 너머로 듣던 나는 속으로 쭉 생각했다.

음...좋아, 다 좋아. 근데 나 아무래도 이번엔 진짜 임신인 것 같은데, 오늘 집에 가서 임테기 해볼 건데...


전날 저런 대화를 나누고 집에 온 남편에게 내가 임테기 2줄을 들이밀면 얼마나 놀라워할까, 그 생각에 너무 신이 났다. 방안을 뒤져서 남편이 내게 프로포즈했었던 티파니 박스를 꺼내서 거기에 임테기를 쏙 넣고, 메모를 함께 적었다. 이따 집 와서 저녁 먹을 때 선물이라고 줘야지.



아무것도 모른 채 평소보다 조금 늦게 귀가한 남편은 내가 차린 저녁상을 마주하고 앉았다. 전날 회식도 하고 오늘 퇴근도 늦어서인지 꽤나 지친 얼굴이었다. 오늘 있었던 일을 주절주절 얘기하는 남편에게 하늘색 박스를 쓱 내밀었다. "선물이야"


"응? 이건 내가 줬던 거잖아"

"박스 말고 안에 내용물이 있어. 열어봐."


별생각 없이, 근데 전혀 의중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티파니 박스를 연 남편은 곧....


어????? 히에에에에엑!!!!! 돌고래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미 지난달 가짜임신 소동을 한 차례 겪었던지라, 남편은 딱 보자마자 "임신했어?" 바로 물어봤다. 거실에 우뚝 선 채로 내 얼굴과 임테기를 번갈아가며 쳐다보며 눈코입이 다 커진 남편. "어떻게 임신이야? 언제야 이게??"


내가 자초지종 설명을 해주었고, 남편은 앞에 저녁밥이 식어가는지도 모르고 임테기에서 두 눈을 떼지 못하였다.


"밑에 종이도 같이 뒤집어 봐 봐. 내가 뭐라고 썼는지."


남편은 나를 꼭 안아주었다가, 나와 악수를 했다가, 혼자 이마를 짚었다가, 머리를 쓸어 넘겼다가, 여전히 감동과 충격의 도가니에서 빠져나오질 못했다. 한 바탕 요란법석 기쁨을 나누고는 남편은 저녁을 먹고, 샤워하러 화장실에 들어가서는 뿌에에에엥 - 하고 감격의 눈물까지 터뜨렸다.


내가 아빠가 된대!

keyword
작가의 이전글임신극초기증상 같은 건 없었다, 임테기 2줄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