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가 부모님 임밍아웃, 아기집 확인
남편은 임신사실을 바로 장모님, 장인어른께 말씀드리자고 했다. 나도 이에 동의했다. 왜냐하면 때는 지난 9월, 엄마와 쿠킹스튜디오를 함께 운영하며 일하는 우리에게 9월 말쯤 꽤나 빡센 스케줄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른바 3일에 걸친 추석명절특강... 엄마에게 임신사실을 알리지 않으면, 그 빡센 일정을 평소처럼 고스란히 소화해야 하니 특히나 유산기를 조심해야 하는 임신초기에 무리가 될 수 있었다. 상대적으로 가까이 있는 우리 부모님껜 바로 말씀드리고, 강원도에 계시는 시부모님껜 남편이 전화로 말씀드리기로 했다.
바로. 당장 내일. 바로.
다음날 나는 출근길에 산부인과 먼저 들렀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임테기에 2줄이 떴다고 해도 어차피 빨간 선이 희미할 테니 바로 병원 가봤자 피검사 밖에 할 게 없다, 극초기엔 아기집도 안 생겨서 볼 게 없다, 빨간 선이 점점 진해져서 역전하면 그때 병원을 가는 거다 등등의 글들이 많더라.
하지만 나의 경우, 어제 임테기 속 2줄이 상당히 선이 진했기에 바로 병원을 가 봐도 될 것 같았다. 엄마에게 임밍아웃을 하기 전에 먼저 병원에서 확실한 무언가의 증거를 받아와 엄마에게 보여주면서 말하고 싶었다.
산부인과에 가자 데스크에서 무슨 일로 오셨냐고 물었다. "어제 임신테스트기를 했는데, 두줄이 떠서요. 임신인 것 같아서 피검사 받아보려고요"
피를 뽑고 꽤 오래 기다렸다. 십몇 분? 이십몇 분? 여튼 꽤 오래 소파에 앉아서 기다려야 했다. 곧 내 이름이 불려지고, 안에 들어가자 의사쌤은 영수증 같은 종이를 하나 내밀며 내게 설명하셨다.
"임신인 걸 알고 병원에 오시면 오늘처럼 이렇게 피를 뽑는데, 보시다시피 이렇게 수치가 1500이 넘으면 아기집을 볼 수 있어서 오늘 바로 초음파 찍어볼게요."
네? 네??? 아기집을 바로 봐요???
어제 임테기에 이어, 오늘 바로 초음파를 볼 거란 생각은 1도 안 했던 나로서는 엄청 놀랐다. "이런 경우도 있나요?" 했더니, 의사쌤은 "네~ 간혹 있어요." 상냥하게 대답해 주셨다. 그리고 덧붙이는 말은 더 놀라웠다. "보통 이럴 땐 쌍둥이일 수도 있는데, 일단 초음파 한번 볼게요."
네???? 쌍둥이요????
두근대는 마음으로 초음파실에 얌전히 누운 내가 마주한 공중에 떠 있는 초음파 모니터도 생경했다. 태어나서 다 처음 해보는 경험...
"여기 콕 박혀있는 작은 점이 아기집이에요. 자궁 안에 잘 착상이 됐네요. 자궁도 깨끗하고, 피고임도 없고 좋네요. 임신 맞으세요. 축하드립니다."
다행히(?) 쌍둥이는 아니었다. 초음파실에서 나오자 간호사는 나에게 무언가 건네주었다. 내 생애 처음으로 받아보는 첫 번째 초음파 사진이었다. 데스크에서 수납을 하면서 나는 혹시 봉투 같은 거 있음 하나만 달라고 부탁드렸다. 봉투 안에 초음파 사진과 피검사 수치가 찍힌 영수증 같은 종이도 함께 넣었다. 그리고 나는 남편에게 카톡을 남겼다. 피검사가 어쩌고, 초음파를 봤고, 아기집이 확인됐고 어쩌고 저쩌고.
그리고 꽃집에 들러 작은 꽃다발을 하나 샀다. 꽃다발 포장을 기다리는 동안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짧게 통화를 하고는 나는 그 길로 출근을 했다. 먼저 출근해 나와있던 엄마는 내가 웬 꽃을 들고 들어오자 활짝 웃으며 "어머 웬일로 꽃을 사 왔어? 좋은 일 있어?" 좋아하셨다.
"엄마! 선물이 있어! 이거 봉투 열어봐"
선물? 무슨 선물? 어리둥절한 얼굴로 엄마는 봉투를 열어보곤, 안에 초음파 사진을 마주하자마자 비명을 질렀다.
"어머!!!!"
"엄마 나 임신했대"
그리고 나에게 바로 달려와 나를 와락 안아주시고는 펑펑 우셨다. 엄마가 우니 나도 눈물이 났다. 어제도 안 나온 눈물이 이제야 나오다니. 엄마가 이렇게나 좋아하실지는 몰랐다.
평상시에 임신이나 아기 얘기를 일절 하지 않았던 나였기에, 엄마도 똑같이 나에게 그런 주제의 이야기를 하지 않으셨다. 그런데 내가 마침 결혼한 지 일 년이 됐고, 30대 중반이 넘어가는 나이가 됐으니 슬금슬금 쟤네도 아기를 가져야 할 텐데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도 혹여나 부모 입장에서 먼저 말을 꺼내면 나나 남편이 부담스러워할까 봐, 혹시나 애기 생각이 없으면 어쩌나 싶어서, 아무 말도 못 하고 먼저 얘기해 주길 내내 기다리고만 있었다고 한다.
엄마는 여전히 두 눈이 그렁그렁해서 바쁘게 핸드폰으로 전화를 눌렀다. 하필 아빠도 전화를 안 받고, 남동생도 전화를 안 받네. 남편에게도 전화를 걸었는데 웃기게도 남편도 전화를 안 받았다. "아니 우리 집 남자들은 왜 이렇게 내 전화를 다 안받아아아아" 하던 차에 아빠에게 다시 콜백이 왔다.
"왜 전화했어?"
"축하해, 당신 할아버지 됐네!"
...뭔 소리야? 전화기 너머로 아빠의 뚱한 소리가 들려왔다. 전혀 기미를 못 잡은 아빠에게, 엄마는 한번 더 크게 말했다. "해나 임신했대! 이제 당신 할아버지 되는 거야!" 그러자 아빠는 크게 웃으며, 어쩐지 요즘 밖에 지나다니는 애기들이 그렇게 이쁘더라니, 드디어 나도 손주가 생기는구나! 하며 아주 좋아하셨다.
엄마는 나를 자리에 가만 앉혀놓고 "이제 앞으로 조심해야 해. 무거운 거 들지 말고, 뛰어다니지도 말고, 집에 가면 푹 쉬고 그래" 그리고 신나 하며 위에 이마트 좀 다녀오겠다고 자리를 비웠다. 엄마는 마트에서 남편과 다시 전화가 연결됐고 한참을 통화했다고 한다. 남편은 자기도 어제 울었다며, 시댁에는 전화로 방금 말씀드렸다고 하면서. 마침 추석 명절을 앞두고 있는데, 그냥 이번 추석엔 양가 모두 방문하지 말고 우리 부부는 가만히 집에 있으라고 하셨단다. 엄마는 마트에서 과일, 고기, 채소 등을 잔뜩 사 왔다. 다 내 꺼란다.
"임산부는 좋은 거만 먹고, 예쁜 것만 먹어야 돼."
조금 있으니, 시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남편에게 임신얘기를 들으시고 바로 나에게도 이어 전화를 주신 거다. 시어머니는 엄마와 똑같은 말씀을 하셨다.
내심 손주를 기다렸는데, 요즘 불임에 난임에 시험관에... 애기를 갖고 싶어도 안 생기는 젊은 부부들이 많다면서, 우리 부부는 애기 얘기를 통 하질 않으니 애기 생각이 아예 없는 줄 아셨다고 한다. 그래도 아들이랑 며느리에게 부담 주지 말자면서 손주나 임신 얘기는 전혀 하지 말자고, 시아버지와도 다짐 아닌 다짐을 많이 하셨다고 하는데, 그런 찰나에 이런 깜짝 소식을 전해주어 너무 고맙다고 하셨다. 시어머니도 남편과 통화하며 우셨다고 한다.
부모님들이 너무 좋아하시니 행복했다. 난 그냥 임신만 했을 뿐인데, 아무것도 안 했는데 엄청난 효도를 안겨드린 기분이었다.
오후에는 아빠도 들르셔서 한바탕 난리 소동을 또 피웠고, 업무가 바빴던 남동생은 저녁 무렵에 엄마랑 연락이 닿았다고 한다.
"해환이 이제 삼촌 된다, 누나가 임신했대!"
"아 그럴 줄 알았어요"
"어떻게 알아?"
"엄마가 날 그렇게 애타게 찾을 일이 뭐가 있겠어요 ㅋㅋㅋ"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
임신초기는 워낙 유산도 많고, 불안정한 시기이기 때문에 임밍아웃을 다들 안 한다고... 부모님께도 태아 심장소리를 들은 후에, 혹은 안정기에 접어든 12주 넘어서야 임밍아웃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하더라. 그저 성격 급한 우리 부부는 그런 줄도 모르고, 임테기 하자마자 온 동네 식구들에게 다 알려버렸네...
좋은 소식은 널리 알리고 일찍이 축하받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