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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rayura Jul 19. 2018

어설프게 만화가를 꿈꾸는 직장인 2

꿈꾸었지만 꿈꾸었다고 말하지 못하던 시간들

나는 만화가를 꿈꾸고 있다고 얘기하지 못하는 만화가였다. 막연히 먼 미래의 나는 응당 제법 인정받는 만화가가 되어있으리라 기대하면서도 그것을 위해 전력을 다해 매진하진 않을 만큼 오만하였다. 그 시절엔-내 관점에서- 만화가는 경제적으로 어려우면서도 늘 마감에 시달리고, 생존의 무게가 창작에 대한 압박으로 작용하는 서글픈 직업이었다. 적어도 어머니의 자랑스러운 딸이 뿌듯함을 느끼게 해드릴 직업은 아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좋아서가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해서 만화를 그린다면 나는 그 순간부터 만화를 그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게 되어버릴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었다.


나의 그 오만함에도 명분은 있었다. 자기애에서 비롯된, 내 창작물에 대한 자부심도 일조하였지만 무엇보다도 만화를 그리고 그것에 대하여 생각하는 것은 내가 가장 즐겁게 여기고 몰두하여 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비록 지금은 나의 꿈이 만화가라 얘기하지 못하고, 친구들에게 쿨하게 한 두장의 그림을 투척하는 것 이상으로 만화를 그리는 것을 사랑한다고 떳떳하게 얘기하지 못하고, 집에서조차 만화책을 보는 것보다 더 철저하게 만화를 그리는 것을 감추고자 했지만, 언젠가 내가 생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삶에 여유가 생겼을 때에 다른 것들은 모두 접고 만화가가 되리라, 제대로 공부하고 성실히 노력하여 나의 아이들에게 꽃을 피워주고,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게 만들어주리라, 하는 각오가 있었다. 어둑어둑한 하굣길을 걸어가며 내가 작가이자 유일한 독자인 나의 만화 속의 주인공들이 어떤 대화를 나누며 어떤 감정을 가지는지 상상하는 것은 하루 중 가장 즐거운 일이었으며, 몰두하여 그림을 그리노라면 밥 먹을 때 화장실 갈 때만 빼곤 방에 틀어박혀있기가 예사였다. 


고등학교에 갓 입학한 신입생 무렵, 나는 만화 서클에 가입해 활동을 시작했다. 의외로 어마마마께선 만화 서클 활동을 흔쾌히 허락하셨는데, 아마 고등학교 때부터의 과외 단체 활동이 교육적으로 긍정적인 면이 있다고 판단하셨기 때문일 것이다. 부 모임 때엔 선후배들이 함께 기본적인 만화 기술에 대한 수업을 하고, 간혹 남고 만화 서클과의 교류회도 있었는데, 말 그대로 만화 교류회였다. 남학생들의 만화는 나름 독특한 열의가 있어 재미있고 부러운 마음이 들게도 했다. (그래도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 먹고 노래방 가는 정도의 교류는 있었다. 간혹 커플이 탄생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어찌 다 같이 밥 먹고 노래방을 다녀왔는데 커플이 되었는가 하는 것은 나에게 별세계에 가까운 미지의 영역이었다.) 학교 축제 때에는 엽서와 회지를 만들어 판매하고, 유명 만화의 일러스트나 개인 창작 작품을 커다랗게 그려 전시했다. 매년 그림 좀 그린다 하는 부원 몇몇에게 20~30 페이지 정도의 원고를 착출 하여 발행하는 서클 회지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의 작품이 '출판'을 거치도록 해주었다. 출판이라 해도 가장 저렴한 인쇄소를 찾아 충무로 부근을 전전하고, 어설프게 모은 원고를 맡겨 고작 200 여부 가량을 찍어내는 것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학교 축제에서 그 해의 회지는 모두 팔려나갔고, (당시 부장이던) 나는 내 몫의 회지까지 기꺼이 판매에 투척했다. 결과적으로 나에게는 당시의 회지가 남지 않아 고작 3, 4천 원에 소중한 추억거리를 팔아치워 버린 셈이었다.

98년, 당시 고2. 그 즈음 클램프를 선두로 한 일본 만화에 잔혹한 내용이나 장면이 비장미를 지닌 것처럼 묘사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나는 그런 것들에 무척 매료되었더랬다.

당시 나에게 없는 용돈에도 스크린톤이나 펜촉, 잉크 등을 사기 위해 문구센터와 화방에 드나드는 것은 큰 즐거움이었다. 특히 정기고사가 끝나는 날에는 꼭 동네에서 그나마 큰 문구점에 들러 넓은 도화지를 샀다. 방바닥에 하얀 종이를 펼쳐놓고 연필이 그 위를 거침없이 달리게 하는 것은 자전거나 스케이트를 탈 때 느껴지는 것과 비슷한, 속도에 의한 쾌감을 선사했다. 그즈음에 나는 그나마 부끄러움 없이 만화에 몰두했고, 정성 들여 그린 그림을 '작품'의 위상으로 간직하거나 친구들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그러나 고3이 가까워지며 만화 도구들은 하나 둘 서랍 속으로 숨어 들어가고, 그림 노트나 도화지도 책상의 구석구석으로 피신하였다. 물론, 한결같이, 만화 그리는 것을 그만둔 것은 아니었다.

99년. 고3임에도 몰래한 사랑을 멈추지 않은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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