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의 선물'을 읽고

저마다의 생존, 그리고 행복을 찾아서

by 해라 클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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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 역시 소설 속 주인공 진희처럼 어렸을때부터 생각이 많았다.
이는 그 시절 내가 겪어야 했던 아픔과 어려움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진희만큼 심각한 상황도 아니었고 지금 돌아보면 별거 아니기도 하지만
당시 나는 생활 속 많은 것들이 고민이고 생각거리였다.

나도 그러했지만 진희처럼 더 어려운 환경 속에 놓여져 있는 아이는
그것을 극복해 가는 과정 속에서 어쩔수 없이 조숙해지거나 냉소적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진희는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부모와 관련한)을 있는 그대로 받아드리고 냉정하게 인정한다.
그리고 자신만의 '생존'을 위해서 '바라보는 나'와 '보여지는 나'로 구분하여 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또한 그러한 삶의 방식에 익숙해졌고 그 생각의 기반을 바꿀 기회가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이를 먹어서도 여전히 삶에 온전히 녹아들지 못하고
'바라보는 나'와 '보여지는 나'를 꾸준히 구분하면서 살고 있는 듯 하다.

진희 외의 다른 인물들 역시 각자의 상황 속에서 '생존'을 위해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던 것이다.
폭력 앞에 무기력한 광진테라 아줌마도 그랬고, 계를 갖고 도망친 미스리도 그렇고
장군이 엄마, 그리고 병원 원장 딸 신화영까지.. 모두가 그렇다.

누군가의 기준에서 보면, 각자의 인물들이 답답하고, 화나고, 안타까울 수 있지만
그들 각자의 인생 속에서 보면 다 이유가 있고, 각자의 선택을 탓할 수는 없다고 본다.
나 역시 신화영처럼 부자집 아들로 태어났다면, 더 멋지게 보이고 싶어서 빛나는 한복을 입었을지 모른다.


다만, 혹시 지금 현실을 살고 있는 진짜 '진희'가 있다면,
이제는 더이상 '보여지는 나'와 '바라보는 나'의 이분법적인 사고에 얽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기쁨을 그저 기쁨으로 받아들이고, 아픔은 아픔대로, 자신도 모를 감정(예를 들면 사랑)이 생기면
그것 역시 있는 그대로 느끼면서 살아갔으면 좋겠다.

생존을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이분법적인 자아를 만들었다면
이제는 행복을 위해서, 다른 사람들처럼 더 강하게 희노애락을 느끼고 삶 속에 잘 녹아 들어갔으면 좋겠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어쩔 수 없이 바라보는 나, 보여지는 나를 구분할 필요가 있겠지만
우리는 그런 구분없이 생각나는대로, 느껴지는대로 생활할 필요가 있다.

내가 최근에 느낀 행복 또는 즐거움이란.. 생각 없이 마냥 몰두할 때 나오는 것 같다.
놀이를 할 때, 사랑을 할 때, 그리고 가끔씩 일에 집중할 때처럼 말이다.


각자의 삶은 모두 이해 받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좀 더 생각을 줄이고 더 많이 느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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