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보든 다각도로 보세요. 건축가처럼 말이죠.
어떤 영화든, 책이든 다 보기 전까지는 섣부른 판단을 하면 안 된다.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제목에서 오는 느낌은 도시에 대한 자신만의 평가, 분석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이거 인문학 서적인데?'라는 것이다.
사람에 대한 얘기, 그리고 관계를 넘어 사회에 대한 얘기가 많다.
그리고 과학과 종교에 대한 이야기도 많았다.
건축가가 쓴 새로운 버전의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같았다.
속으로 이런 생각도 했다
"이런 인문학적 시각 말고 건물이나 건축에 대한 얘기를 좀 더 해주세요"
"아니 지역, 부동산에 대한 얘기를 해주셔도 좋고요."
"제가 인문학 책을 읽으려는 게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다시 한번 살펴보면 저자가 이야기하는 모든 이야기들이 다 건축
그리고 도시 또는 지역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마치 회 한 접시를 주문했더니 회는 물론이고 수십 가지 스끼다시와 함께
매운탕까지 대접받은 기분이다.
그리고 어떤 주제든 건축, 도시와 연관되지 않은 것이 없다.
애초에 건축 또는 도시가 인간으로부터 시작되고 다시 또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최재천 교수의 '사람은 도시를 만들고, 도시는 사람을 만든다'라는 말처럼.
책을 다 읽고 나서야 뒤늦게 표지를 보았다
책의 서브 타이틀 '도시를 보는 열다섯 가지 인문적 시선'
아! 맞구나. 도시를 바라보는 정말 다양한 시각을 무려 15가지나 알려 준 것이구나.
이 책을 보고 난 후의 나는 앞으로...
건물을 보거나 길을 보더라도
또는 친구의 사무실에 놀러 가거나
그 어딜 놀러 가더라도 다양한 질문을 하게 될 것이고
또한 새로운 이해를 하게 될 것이다
저자처럼 다양한 각도로 그곳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덕분에 그곳에 대한,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 역시 깊어질 거라고 생각했다.
가벼우면서도 깊고, 다양하면서도 하나로 모아지는 느낌의 묵직한 책이었다.
[기억에 남는 문구들이 많은데, 그중 몇 개를 꼽자면 이러하다]
- 높은 이벤트 밀도의 거리는 보행자에게 권력을 이양한다
- 우리의 대형 아파트 단지는 우리에게서 우리 머리 위의 하늘을 빼앗아 갔다.
- 아이들이 뛰노는 학교 운동장을 바라보면서 우아하게 차를 마실 수 있는 도시
- 같은 빌딩이지만 창문의 크기에 따라서 모텔이 되기도 하고 호텔이 되기도 한다.
- 북한은 한국 건축계의 '강남'이고 '중동'이다. 장기적으로 우리 경제에 축복이 될 남북 경협의 방아쇠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 베트남 기념관처럼 주변의 콘텍스트를 이보다 잘 이용한 기념관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 예배당을 지을 때 돌을 쪼아야 하는 작업 공간이 필요한데 광장이 그 역할을 했다. 그리고 주변으로 가게들이 생겨났다.
- 앞집 사람하고 담소를 나누는 골목길은 공동의 거실이었다.
- 공간은 실질적인 물리량이라기보다는 결국 기억이다.
- 농업사회에서는 사람이 흩어져서 살아야 하지만, 공업 사회에서는 사람이 가깝게 모여 살수록 이익이 많이 창출된다.
- 농사를 지을 때에는 농한기인 겨울에는 놀 수 있었는데 산업사회에서는 난방이 되는 실내에서 일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다.
- 형광등이 건축에 도입되면서부터 건축물은 더 이상 햇볕이 들어오는 디자인에 신경 쓸 필요가 없게 되었다.
- 전망 좋은 한강변 아파트를 구입하기는 어렵지만, 강변 전망의 방을 소유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자동차이다.
- 카페는 우리의 파트타임 거실인 것이다.
- 애플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애완동물처럼 쓰다듬을 수 있는 기계를 선보인 것이다.
- 토끼굴의 위치를 몇십 미터 옮기는 계획은 신의 한 수였다.
- 나이가 들 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 이는 나이가 들수록 기억할 일들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 어른이 될수록 기억할만한 사건들이 더 많아져야겠다.
- 제약은 언제나 더 큰 감동을 위한 준비 작업이다.
- 바둑은 마치 화전민이 경작지를 넓혀 나가듯이 빈 땅을 넓히는 땅따먹기 게임이다.
- 개미는 동양처럼 관계 중심의 건축, 벌은 서양처럼 기하학 중심의 건축이다.
- 우리는 신을 벗었을 때 심리적으로 더 가까워진다. 혹은 심리적으로 가까울 때 신을 벗는다
- 이 책은 건축가가 건축 비전공자에게 보내는 일종의 편지이다.
- 여러분 모두가 이 나라의 건축을 더욱 발전시킬 훌륭한 건축주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