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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라 클래스 Jan 03. 2020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읽고

25살의 생각 가득가득한 남자의 사랑 이야기


알랭드 보통이 25살에 쓴 소설 같은 에세이 또는 에세이 같은 소설

하지만, 그냥 일기장 같기도 했다. 


책이 아주 예전에 쓰였고(그만큼 진부할 수 있고) 

나 또한 사랑 경험이 적은 어린아이가 아니고

예측할 수 없는 소재가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보니 

굉장히 무난하게 읽게 되었다.


하지만, “아, 생각 좀 그만해!”라고 말하고 싶었다. 매주 자주! ㅋㅋ


“생각이 많이 드는 건 알겠는데, 그냥 단순하게 살면 안 될까?”

“철학자의 이야기들이나, 역사적, 사회적 이유들 정말 지루하단 말이다.”


답답함이 많이 느껴지는 나였지만, 

돌이켜 보면 나 역시도 과거에 똑같은 행동들을 많이 했다. 

상대방에 대한 생각이 가득했고, 바보 같은 행동도 많이 했으며

한심하고 찌질 했으며, 늘 어쩔 줄 몰라했던 것 같다. 


사랑 경험 부족한 어린 남자의 찌질하고도 정신 못 차리는 사랑 이야기 잘 봤다. 

이렇게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그 정도의 가볍기만 한 책은 아니었다. 

중간중간 사랑에 대한 인사이트 있는 문장들이 많았다. 

그러면서 사랑에 대한 깊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


우리는 사건들에 원래 존재하지 않았던 서사적 논리를 부여했다.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 것이라는 두려움을 기초로 해서만 생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성숙한 사랑의 이야기에서는 절대 첫눈에 반하는 일이 없다.

맑은 눈으로 물의 깊이와 성질을 완전히 조사할 때까지는 도약을 유보한다.


나 자신만큼 나를 잘 아는 사람, 때로는 나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이 필요하다.


누가 나를 본다는 것은 내가 존재한다고 인정받는 것이다. 

나를 보는 사람이 나를 살아하는 신이나 짝이라면 더욱 좋다. 


부조리한 사람은 나에게서 나의 부조리한 측면을 끌어낼 것이다.

그러나 진지한 사람은 나의 진지한 측면을 끌어낼 것이다.


일단 한쪽이 관심을 잃기 시작하면, 다른 한쪽에서 그 과정을 막기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삐친 사람은 복잡한 존재로서, 아주 깊은 양면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

도움과 관심을 달라고 울지만, 막상 그것을 주면 거부해버린다. 말없이 이해받기를 원한다. 


예수가 그렇게 매력적인 인물이 된 것은 예수가 착하고 완전히 의로운 존재이면서

동시에 배반당한 인물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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