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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랑 Aug 20. 2020

산티아고 순례길 - 내려놓는다는 것

6월 13일 - 뜨라바델로(Trabadelo)

이 산은 누구의 산인가.
꽃이 만발하고
숲이 우거진
바람이 노래하는
이 산은 누구의 것인가.
경이로운 아름다움에 욕심이 동하여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 진다.
허나 어찌하리.
이 산은 누구의 것도 될 수 없거늘.
나 홀로 가지고 싶다한들
내 것이 될 수 없거늘.
그저 산의 품에 안겼다 갈 뿐이다.

센다(Senda)를 걷는 것으로 시작했지만 무료하고 지치는 센다는 길지 않다. 곧 오르막길이 시작되고 아름다운 산이 우리를 맞이했다. 본격적인 산악 지역으로 들어서니 흐리고 서늘하다. 먹구름이 하늘을 가득 메운 것이 내일이면 비가 내리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나는 등산을 싫어한다. 어차피 내려올 것을 왜 오르나, 힘들고 위험하기만 한데 뭐가 좋다고 가는 것일까 하는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내 생각은 까미노에서 몇 차례 산맥(피레네와 깐따브리아)을 넘으면서 바뀌었다.


처음 까미노를 걸을 때는 산맥을 넘어야 한다는 말에 지레 겁을 먹었다. 특히 깐따브리아(Cantábrica) 산맥은 동서 길이가 450㎞에 다다르는 만큼 근심이 한가득이었다. 그런데 막상 피레네(Pyrénées)를 넘고 메세타(Meseta) 지역을 지나 깐따브리아 산맥까지 마냥 신나고 즐거워서 힘들다는 생각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그 푸르르고 광활한 풍경, 굽이굽이 춤을 추는 능선, 뺨을 간질이는 바람. 분명 힘들고 고된 여정이지만 높은 곳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볼 때면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고 그저 탄성만 내뱉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두 번째 까미노에서는 오히려 산이 기다려졌다.


앞으로 보이는 파도치듯 펼쳐진 산맥 앞으로 보이는 건 산허리를 따라 뻗은 길. 오르고 오르다 뒤 돌아보니 산 능선을 따라 내가 지나온 길이 보인다. 멀고 험하기만 했던 길이지만 돌아보니 새롭고 놀랍다. 산이 내게로 달려들 것만 같다. 저 산의 품에 안겨 노래하며 낮잠을 자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놀랍고도 아름다운 산의 소리에 귀 기울이기 위해 숨도 멈추고 눈을 감은 채 산에 몸을 맡겨본다. 술을 마시지도 않았는데 취한 것 같은 기분이다.

살아 숨 쉬는 산이 신비롭고 경이로울 따름이다.

요 며칠 20㎞가 안 되는 거리를 걷고 있지만 발목과 무릎의 통증은 가라앉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틈틈이 파스를 바르고는 있지만 도시를 연달아 지나면서 박물관이며 도시 구경을 하다 보니 쉬어야 할 때 쉬지 못한 여파가 나타나는 것 같다.


워낙 볼거리가 많고 아름다운 풍경이 이어지니 더 욕심을 부리게 된다. 하나라도 더 보고 싶고 조금이라도 오래 보고 싶은 욕심. 까미노는 내려놓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곳인데, 오히려 욕심만 늘어나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 순간은 다시 올 수 없고, 다시 온다고 해도 절대 같을 수 없는 순간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더 잘 알기에 자꾸만 욕심을 부리게 된다. 너무나 소중한 순간이고, 깨어나고 싶지 않은 꿈이기에 더욱 간절하게, 무리해서 더 보고 느끼고 싶다.


내려놓는다는 것. 그건 너무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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