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내게 너무나 큰 감동을 받았던 곳이기에 기대감에 부풀어 찾은 깐따브리아 산맥. 역시나 산은 실망을 안겨주는 법이 없다. 등산을 싫어하는 내가 맞나 싶을 정도로 이곳에서는 산을 만난다는 것이 즐거움의 한 요소가 된다.
산은 가파르고 힘들었지만 야생화와 녹음이 우거진 수풀과 숲, 그리고 여전히 그 당당한 위세를 뽐내는 산맥 등허리. 내가 좋아하는 노래 가사 중애 ‘저 능선을 나 달리고 싶어.’라는 구절이 있는데, 깐따브리아 산맥을 지나면서 항상 그 부분을 흥얼거렸다. 정말이지 달려보고 싶게 만드는 능선이었다.
아름다운 자연을 카메라 렌즈에 담는다는 것은 어렵다. 아무리 열심히 찍어도 그때의 감동은 담기지 않는 것 같아 아쉽기만 하다.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듯 바람과 구름이 심상치 않더니 오 세브레이로를 10분 앞두고 비가 쏟아졌다. 무한한 감동과 즐거움을 느끼며 수다를 떨던 우리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럴 수는 없다고, 안 된다고 소리쳐가며 알베르게를 찾아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공립 알베르게에 도착하니 순례자들이 줄을 서있다. 문이 열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중에는 우리를 앞질러서 말을 타고(지역 주민이 운영하는 관광 상품 중 하나다. 20유로를 주면 말을 타고 다음 알베르게까지 갈 수 있다.) 갔던 순례자들도 보였다.
비에 흠뻑 젖은 채 낯익은 얼굴들을 만나니 괜히 더 반가워 나도 모르게 ‘Buen Camino'라는 인사가 노랫말처럼 나왔다.
어제는 오 세브레이로에 머무른 순례자들이 많아서 숙소가 모자랐다는데 일찌감치 도착한 덕에 명당인 아래층은 아니지만 무사히 침대를 잡을 수 있었다.
뽀르뗄라(La Portela)의 산티아고 상. 산티아고 델 꼼뽀스뗄라까지 190km가 남았음을 알려주고 있다.
미사에 참석하기 전까지 시간이 남아서 모처럼 상점 구경을 갔는데, 예상치 못한 선물을 받았다. 상점 주인이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라고 묻더니 태극기와 유로기가 함께 있는 배지를 선물한 것이다. 생각지도 못했던 선물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까미노에서는 만나는 사람들과 선물을 주고받게 될 때가 종종 있다.
한 한국인 순례자는 까미노에서 다른 외국인 순례자들에게 선물할 요량으로 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작은 기념품 여러 개를 가져오기도 했고, 또 다른 순례자는 직접 제작해 가져온 노란 리본(세월호 피해자의 추모를 위해)을 만나는 순례자들에게 선물로 주기도 했다.
부활절이라 슈퍼가 문을 닫아 식재료를 구입하지 못해 쩔쩔매던 내게 황급히 빵을 사 와 건네던 스페인 아주머니, 요리를 했는데 양이 많으니 나눠먹자며 정성껏 만든 파스타를 듬뿍 나눠주던 프랑스 남매 순례자, 혼자 밥 먹던 나를 식사에 초대해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줬던 스페인 자전거 순례자들...
신혼여행으로 까미노를 걷는 우리에게 가장 의미 있었던 선물은 아마도 우리의 사진을 찍어줬던 순례자가 아닐까 싶다.
여느 때처럼 손을 잡은 채 걷고 있던 어느 날, 누군가 우리를 불러 세웠다. 손을 잡고 걷는 것이 너무 예뻐서 사진을 찍었다며, 사진을 선물하고 싶다고 했다. 블루투스를 연결해 한 장의 사진을 받았는데, 의식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우리의 모습이 담겨있었다. 비록 지금은 그 사진이 지워져 다시 볼 수는 없지만 뜻깊은 선물을 받았을 때의 감정만은 또렷하게 남아있다.
선물이란 크던 작던 모두 의미가 있고 값지다. 우연히 발견한 네 잎 클로버를 전 날 같은 알베르게에서 머물렀던 순례자에게 선물이랍시고 건넸을 때 그녀는 마치 세상 모든 것을 얻은 것처럼 웃어주었다. 선물이란 그런 것이다. 가볍지만 그 무엇보다 소중하고 사소하지만 결코 잊히지 않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