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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랑 Aug 18. 2020

산티아고 순례길 - 순간은 돌아오지 않기에

6월 12일 - 까까벨로스(Cacabelos)

날씨가 다시금 심상치 않은 모양새를 띄기 시작한다. 서늘하다 못해 추운 바람. 여름 초입인데 기온은 19℃가 채 되지 않는다. 하늘 가득 메운 먹구름, 차가운 바람. 가뜩이나 밤엔 서늘한데 날씨가 좋지 않으니 춥기까지 하다.


오늘은 16㎞ 즈음 걸었는데, 충분히 더 걸을 수 있음에도 까까벨로스에 멈춘 것은 오세이브레이로를 다음 목적지로 설정한 탓이기도 하지만 고질적인 통증 탓이 더 컸다.

길에서 만난 앵두나무.

내 발에 생긴 물집이 더 커진 데다, 동행인마저 무릎에 통증을 호소하기 시작한 것이다. 앞으로 롤랑의 바위를 시작으로 이틀 정도 산맥을 넘어야 하는 일정이기에 적절한 순간에 쉬어줘야 할 것 같았다.


깐따브리아 산맥을 넘어야 하는 고된 일정이 기다리고 있기에 비가 올까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잊지 못할 정도로 아름다웠던 롤랑의 바위의 모습을 다시금 볼 수 있기를. 그때의 감동을 공유할 수 있기를.     


깜뽀나라야 와인 공장에서 와인에 보까디요(Bocadillo)로 점심 식사에 와인을 곁들여 먹었는데, 이곳에서는 와인을 이용한 상품들을 판매하고 있었다.


우리는 가족들 선물로 와인 비누와 샴푸, 바디워시를 하나씩 샀는데 안 그래도 무거운 배낭에 선물까지 한 자리를 차지하고 나니 괜히 샀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지난해 후회했던 일이 떠올랐다.


1년 전 한 마을을 지나칠 때의 일이다. 마을의 중년 여성이 직접 만든 액세서리를 노점에 펼쳐놓고 팔고 있었는데, 그중 터키석 반지가 유독 눈에 들어왔었다. 터키석의 초록색이 정말 예뻤기에 사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막상 사려니 머뭇거려지는 것이다. 까미노 중반을 겨우 지나는 상황이었던 데가 풍족하지 않은 여행자금에 선뜻 사지 못하고 아쉬움을 달래며 지나쳤다.


‘다음에 또 이런 노점이 있으면 그때 사지 뭐.’


그때는 다음이라는 기회가 있을 줄 알았다. 다음 마을에서 또 노점을 만날 것이라고, 그땐 더 마음에 드는 것이 있을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이곳은 까미노. 앞으로 가는 것이 목적이고 후회되더라도 결코 뒤돌아 갈 수는 없는 길. 그때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터키석 반지와 비슷한 그 무엇도 만나지 못했다.



‘그때 그냥 살 걸.’하는 후회가 밀려와도 어쩔 수 없었다. 다시 돌아갈 수도 없고 돌아간다 한들 그 반지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까미노는 인생이다.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 없듯 지나친 까미노를 다시 돌아갈 수 없다. 1년 후 다시 까미노를 걷고 있지만 그 중년 여성은 다시 만나지 못했다. 당연히 그 터키석 반지도 살 수 없었다.


고작 반지 하나로 거창하게 인생을 논한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까미노가 주는 가르침은 그랬다. 순간에 충실하라. 지금 흘려보낸 시간은, 지나친 이 길은 다시 돌아올 수 없다. 그게 인생이고 까미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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