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여행으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선택한 우리는 어디에서부터 걸을 것인가로 오랜 시간 의논을 했다.
1년 전(2014년)에 나는 프랑스 생장에서부터 걸었는데, 샤를 드골 공항에 내려 출발지인 생장까지 가는 것부터 꽤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었다. 해외여행 초보자였기에 프랑스에서 1박을 할 생각을 못하고 빠듯하게 일정을 잡은 것이다.
저녁 10시에 공항에 도착했는데 공항 안에서 길을 잃었을 뿐 아니라, 지하철 막차를 놓쳤다. 첫 차가 운행하기 전까지 공항에서 밤을 지새울 요량이었지만 경찰(도베르만을 데리고 다니면서 순찰을 돌고 있었다.)이 위험하다며 나가라고 한 탓에 쫓기듯이 공항에서 나와야했다.
까미노의 출발지인 생장에 가는 것만으로도 고난의 길이었다
이제 겨우 도착했을 뿐인데 헤매고 헤매다 길에서 노숙을 할 위기에 처한 나는, 말 그대로 주저앉아 울었다. 그냥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만 했었다.
다행히 주차장 야간 직원인 abedllatif씨의 도움을 받아 주차장 관리실에서 지하철 첫 차를 기다릴 수 있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TGA를 타고 DAX로 가서 환승해서 Vayonne으로. 거기서 또 환승을 해 생장 피에 드 포르(saintjean pied de port)까지 가서야 출발선상에 설 수 있었다.
시작도 전에 주저앉을 뻔했던 일련의경험은 꽤 힘들었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나는 그때의 기억을 토대로 장거리 이동의 단점을 피력했다.
생장에서부터 걷고 싶어 하는 남편을 설득하고 설득해서(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를 모두 관광하는 코스를 추천하면서) 우리의 출발지는 빰쁠로나(pamplona)로 결정되었다.
빰쁠로나의 골목
생장이 아닌 빰쁠로나에서 시작한다는 것은 피레네 산맥을 넘어 프랑스와 스페인의 국경을 넘는 경험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었고, 론세스바예스(Roncesvalles)와 수비리(Zubiri)를 뛰어넘는다는 것이었기에 남편에게 두고두고 아쉬운 소리를 들어야 했지만.(이건 2020년인 지금도 유효하다. 다음엔 생장에서부터 걷기로 약속하면서 넘기고 있다.)
빰쁠로나를 시작점으로 정한 우리는 마드리드에서 관광차 3일을 머물고 버스를 타고 빰쁠로나로 향했다. 1년 전에는 걸어서 지나쳤던 곳이었지만 버스를 타고 온 터라 노란색 화살표(순례자들이 길을 잃지 않을 수 있도록 곳곳에 노란색 화살표로 표시를 해둔다.)를 찾기가 힘들었다.
길을 잃고 헤매는 경험을 또다시 하고 싶지 않아 선택한 길이었지만 결국 또 길을 잃은 것이다.
“알베르게가 어디에 있나요?(¿dónde está Alvege?) ”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공립 알베르게. 이곳을 찾기 위해 꼬박 2시간을 길에서 헤매야 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서투른 스페인어로 길을 물어보았지만, 순례와 상관없는 평범한 현지인들이 알베르게에 대해 알리 만무했다. 우리는 지도를 이리저리 돌려보고 물어 물어가며 길을 찾아야만 했다.
1년 전이나 지금이나 방황하며 시작하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불안과 근심, 걱정, 긴장. 이 모든 것들이 한데 뭉쳐지고 나니 ‘잘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에 복잡 미묘해진다. 낯선 곳에 도착해 길을 잃고 헤매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제 겨우 시작이고 출발일 뿐이다. 출발선상에 섰기에 두근거림과 기대가 또 한 가득이다.
1년 전과 다른 점이라면 나 혼자가 아니고 처음이 아니라는 것.
긴장도 되고 걱정도 뒤따르지만 그만큼 안심도 되고 위안도 된다. 의지할 동행이 있다는데서 오는 든든함이 아닐까?
흔히 까미노를 인생에 비유하고는 한다. 900㎞의 대장정이 인생을 닮았기 때문이다. 시작은 마냥 설레기만 하지만 걷다 보면 많은 장애물들을 마주하게 되고 포기하고 싶거나 후회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그러다 산티아고까지 100㎞가 남은 시리아에서부터는 지나 온 길을 아쉬워하고 남은 시간과 거리가 아까워지는 것이다.
다음 날 빰쁠로나에서 출발하는 모습. 이 날부터 나는 매일 한 컷씩 동행인의 뒷모습을 찍어 기록으로 삼았다.
까미노를 혼자 걷는 것과 동행인과 함께 걷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같지도 않다. 우리네 인생도 마찬가지다. 혼자였을 때는 어떻게든 혼자 이겨내기 위해 노력했다면, 둘이 되었으니 때론 의지하기도 하고 때론 힘을 도와가면서 걸어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