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환자들이 들으면 짱돌을 들고
당장 나에게 돌팔매질을 할 것 같은 제목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건
위험함을 알면서도 저 문장이 아니라면 내 마음을 달리 표현할 길이 없어서였다.
정신과의 문턱을 밟아 본, 더 정확히는 한 번쯤은 우울을 앓았던 사람들이라면
적어도 내 말을 들어보려고는 하지 않을까 싶었다.
SNS 상에서 퍼지기 시작한 단어
패션 우울증
우울증에 걸린 어두운 내 모습 제법 괜찮은데?
라며 하나의 트렌드처럼 소비하는 행동을 가리킨다고 한다.
그래, 요즘 세상에 우울하지 않은 사람을 찾기가 힘들 정도로 우울감이 만연한 시대이니
그 말에 굳이 반기를 들 생각은 없지만
깊은 우울에 잠식되어,
그 어려운 정신과의 문턱을 넘고,
약물 치료까지 한 경험이 있는 이들에겐 조금 배부른 소리처럼 들리는 게 사실이다.
잠식
잠식
꼬르륵
잠식
어떻게 하면 나의 상태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을까.
나는 우울의 늪에 빠졌을 때도,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에도,
끝까지 남에게 이해받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사실이 끔찍했다.
왜 내 병을 이해시켜야 하지?
나 암 이래.
라고 하면 몇 기래? 무슨 암?이라고 묻지
너한테만 생기는 일 아냐. 다들 그래.
라고 이야기할 수 있나?
나 다리 다쳤어.
라고 하면 기브스 해야 된대? 부러진 거야?라고 묻지
의지가 부족해서 그래
네가 좀 게을러서 그래
라고 이야기할 수 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시키고자 했던 나의 병에 꾸역꾸역 이름을 붙여본다면, 조용하고 느린 죽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우울이 깊어져가던 때, 나는 조용하고 느리지만 명확하게 죽음으로 가고 있었다.
방향만은 확실했다.
그때의 나는 서울 한가운데,
무려 월세 100에 관리비 20의 신축 오피스텔에 살고 있었다.
브랜드 없는 선경아파트, 개나리아파트 따위에 살던
내게, 방 한 칸만 한 크기지만 브랜드라는 이유만으로
안정감과 설명할 수 없는
뿌듯함까지도 느꼈던 것 같다.
그게 얼마나 갔을까? 이사 온 날? 첫 월세와 관리비를 내기 전까지?
결국 반짝이는 도심의 한가운데
로켓 프레시와 컬리 박스가 줄줄이 문 앞에 세워진 깨끗한 신축 오피스텔 안에서,
나는 매달 100만 원씩 내가며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수백, 수천 개의 호수 중
문 하나를 열고 들어가면 쓰레기 집이 펼쳐진다.
현실적인 것을 넘어 염세적인 인간에 가까운 내게 '그것이 알고 싶다'는 딱 맞는 프로그램이었다.
한 편도 빠짐없이 그알을 보고 또 보는 내게, 쓰레기 집 회차는 큰 위로로 다가왔다.
쓰레기 집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위로라고?
글을 잘못 읽었나 싶어, 다시 스크롤을 올리는 이들이 있을 거라고 본다.
허나 나에겐 그 회차가, 그렇게 많은 이들이 쓰레기 집에 산다는 그 사실이 위로 그 자체였다.
너만 그런 거 아냐. 세상엔 이렇게 아픈 사람이 많아.라고 해주는 것 같아서.
쓰레기 집 회차에 달린 댓글들을 읽어보았다.
90% 이상이 욕뿐이었다.
집주인은 아무것도 모를 텐데 끔찍하다
집주인이 너무 불쌍하다
정신병원에 들어가라
주변에 피해 끼치지 말아라.
틀린 말은 없었다.
그런데 너무 아팠다.
구구절절 옳은 말이라고 해서, 누구에게나 맞는 말은 아니니까.
집주인에게, 주변 이웃에게, 가족에게
피해인 것을, 짐 그 자체인 것을 모르지 않을 거다.
그래 적어도 나는 그랬다.
타인의 눈치를 보는 것이 디폴트인 내가 가장 두려웠던건, 이 모습을 누군가에게 들키는 것이었다.
웃기지.
나의 정신과 존재 자체가 썩어 들어가면서도, 곪아가면서도 누군가 이 모습을 알게 될까 봐 전전긍긍하는 그 모순이.
청소 아주머니만 수십 명인 이 신축 오피스텔에
적어도 냄새는 나지 않게, 바퀴벌레는 생기지 않게
울다가도 일어나, 냉장고와 냉동고를 쓰레기로 꽉꽉 채워가며 숨기는 이 모습이.
끝이 날까?
수면제로 스위치를 끈다.
오늘도 어제와 같은 꿈을 꾼다.
인형 대신 쓰레기들이 뒤엉킨 인형 뽑기 기계 한가운데에 아무 표정 없는 내가 누워있다.
누군가가 지폐 한 장을 넣고,
나를 집게로 집어 꺼내준다.
경쾌한 노래와 함께
내가 인형 뽑기 기계 밖으로 나간다.
꺼내줘 꺼내줘.
자 이제 집게에 힘을 풀어! 지금!
그렇게 꿈에서 깼고
여전히 나는 월세 100 관리비 20의 쓰레기 집 안이었다.
그래, 미안하지만
차라리 암이었으면 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