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이었다.
아무리 마감이 코앞인 프리랜서라 해도 토요일은 즐기고 싶었다. 늘 가던 동네의 스타벅스 말고 새로운 카페 탐방을 하고자 했다. 근처에는 가보고 싶은 곳이 없었고 멀리 가기엔 부담스러웠다. 인스타그램으로 검색을 해서 가까운 보문동에서 절충안을 찾았다. 저번에 성북천을 걷다가 공사 중이던 것을 보았던 곳이다. 인테리어가 예사롭지 않아 잘 봐 두었는데 인스타에 사진이 올라온 걸 보니 오픈한 모양이었다. 보문이라면 멀지 않았다.
노트북과 독서모임 준비하며 읽고 있는 유재영의 <하바롭스크의 밤>, 참고 대본 그리고 다이어리까지, 카페에서 할 일 들을 챙겨 나갔다. 그래도 옆동네까지 나간다고 살짝 화장도 하고 옷도 신경 썼다. 언제 어디서 좋은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동네를 벗어날 때는 그래도 신경 쓰는 편이다. 그게 스스로 자신감도 생기고 기분도 좋다. 그렇게 신나게 도착한 카페인데,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실패라고 생각했다. 혼자 와서 노닥거릴만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손님을 위한 카페가 아니라 사진과 분위기를 위한 카페였다. 작지 않은 규모의 카페인데도 테이블이 네 개밖에 없었고, 그중 하나는 창문 앞에 놓인 1인용 테이블로, 사진을 위한 보여주기 식 자리였다. 전면이 창가였고 창문 앞에는 바삭바삭 마른 식물이 꽂힌 유리병과 예쁜 소품들이 놓여있었다. 하지만 햇빛이 너무 뜨거워서 그 자리에 앉았다간 내가 빨갛게 익어버릴 것 같았다. 블라인드 조차 없었다. 분명 예쁜 자리이긴 했지만 사람을 위한 자리는 아니었다.
뜨거운 가을 햇빛에 쫓겨나듯이 다른 자리에 앉았다. 엔틱한 나무로 만든 예쁜 테이블과 의자였지만 역시 편안하게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가구는 아니었다. 카페라는 곳이 잠깐 앉았다 가는 곳임을 감안하더라도 테이블이 세 개뿐이었기 때문에 마음이 불편했다. 다른 손님이 왔다가 자리가 없는 걸 확인하고 두리번거리고 있으면 꼭 나보고 나가라고 눈치 주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럴 때는 혼자 온 사람은 죄인이다. 혼자서 자리만 차지하고 앉아 있다고 면박할까 봐 마음이 조급해졌다. 왠지 커피만 시키면 안 될 것 같아서 디저트도 함께 시켰다. 커피와 디저트의 맛은 만족스러웠다. 그 맛을 느긋하게 즐길 수 있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주말이라 그런지 손님들이 계속 찾아왔다. 나처럼 인스타그램에서 검색해서 왔는지 모두 똑같은 시그니처 메뉴를 시키고 가게의 이곳저곳을 사진으로 남기기 바빴다. 나는 그 분위기에서 일을 할 마음은 진작 접었고 읽던 책이나 마저 읽을까 했지만 책에 집중하기도 어려웠다. 내가 자꾸만 소품처럼 느껴졌다. 이 잘 정돈되고, 깔끔하고 깨끗한 인테리어 속에서 나는 계산되지 않은, 아름답지 않은 손님처럼 느껴졌다. 나는 카페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될까 봐 사람들의 카메라가 내 쪽을 향할 때마나 신경이 쓰였다. 정말 이런 카페에 진짜로 커피를 마시러 온 내가 잘못한 걸까.
디자인에 져버렸다. 한 시간 만에 카페에서 쫓겨나듯이 나오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나는 디자인에 졌고 사진에 졌고 인스타그램에 졌다. 사장님은 이제 오픈한 가게를 홍보하려면 가게를 아름답게 꾸며야 했을 것이다. 그 마음도 잘 이해가 간다. 하지만 맛있는 커피를 앞에 두고 마음 편하게 마시지 못한다면 그 카페를 다시 가게 될지 의문이다. 나는 커피가 맛있었기 때문에 그 카페를 다시 가게 될 것 같다. 하지만 자주 가게 될 것 같지는 않고 근처에 사는 지인과 카페에 갈 일이 있을 때 찾게 될 것 같다. 나는 혼자 카페 가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그곳에서는 그럴 수 없다는 게 아쉽다. 하지만 예쁜 것들에 밀려 나 자신이 예쁘지 않은 소품 취급당하는 것은 유쾌한 일은 아니다.
결국 카페에서 거의 아무것도 못 하고 다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토요일이 허무하게 기울어져 있었다. 집에 돌아와서, 어쩐지 에드워드 호퍼가 생각나는 카페였다고 생각했다. 어딘가 비인간적이지만 아름다운 공간과 거기에서 부유하는 인간들. 어떤 일시적인 공간에서 울적해하는 사람들. 차라리 조금 울적할 때, 내가 사물로 느껴지기를 원할 때 간다면 매우 적당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