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세 Dec 15. 2020

헬스장 꼴찌의 기록


헬스장에 다닌 지 만 4년이 넘어간다.

일주일에 세 번, 한 시간 반씩 운동을 했지만 투자한 기간에 비해 몸의 변화는 크지 않다.

애초에 다이어트를 위한 것도, 근육질의 몸을 만들자는 것도 아니었고

의자에 오래 앉아 일할 수 있는 체력을 길러보자는 소박한 바람으로 시작한 거라

초반엔 헬스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반면에 같이 헬스를 하는 메이트들은 어릴 때부터 운동을 했던 사람,

타고난 근육이 탄탄하고 신체 조건이 좋은 사람,

신체의 결점을 뛰어넘는 강인한 의지를 가진 사람으로

이제 처음 헬스에 입문한 나와는 상당한 실력 차이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 헬스 모임에 참여한 순간부터 공식적인 꼴찌가 되었다. 

신체조건이 좋지 못하고 정신력도 강하지 못해서 

남들이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무거운 무게를 들 때도 

항상 그보다 가벼운 무게를 들고 코치의 보호를 받으며 장난 같은 운동을 했다.

남들이 가뿐하게 드는 무게를 나는 들지 못하고

남들보다 쉽게 지치고 빠르게 포기해도 나는 공식적인 꼴찌이기 때문에 수치스럽지 않았다.

내가 못하는 것은 당연했고, 다른 사람들은 그런 나를 이해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한 해 두 해 경력이 쌓이고, 나도 꾸준히 운동을 해 온 스스로가 대견하고 자신감이 붙을 무렵

남들과 똑같은 무게를 들지 못한다는 것에 자존심이 상하기 시작했다. 

모임의 다른 사람들은 가볍게 드는 바벨이 왜 내 앞에만 오면 천근처럼 무거워지는 건지 기가 막히고

내가 핏대를 세우며 안간힘을 써도 꿈쩍도 하지 않는 바벨이 얄미웠다.

그래서 무게를 드는 날은 혼자서 스트레스를 받고 의기소침해져선

아직도 꼴찌 처지를 면하지 못한 나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왜 나는 아무리 해도 늘지를 않지?

애초에 몸이 타고나질 않았는데 어쩌란 말이지?

운동 갈 때마다 실망하고 좌절하고, 남들이 들던 무게에서 5킬로, 10킬로씩 무게를 덜어낼 때마다

다 때려치우고 싶었다.

어차피 해도 안 되는데 무거운 무게를 들어서 뭐하나 싶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자존심 상해할 시간에 한 시간씩이라도 헬스장에 나와 

자세 연습을 했으면 조금이라도 나아졌을 텐데 나는 노력은 하지 않고 불평만 했다.

매번 단체로 운동을 하던 버릇이 들어서 혼자 헬스장에서 운동하는 일이 어색하고 어려웠다.

안 그래도 힘든 운동을 혼자서 해내야 한다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따로 헬스장에 가서 자세 연습을 하는 노력은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취미 생활에서까지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 그래도 내가 하는 일은 '어두운 터널을 혼자서 걸어가는 일'로 묘사되곤 하는데

취미생활에서까지 나를 극복해야 한다니 억울한 마음이 들어서다. 

내 한계를 넘어서는 욕심을 내지 말고 취미는 취미일 뿐, 마음을 다스렸다. 


중요한 것은 내가 몸을 움직이는 것을 점차 좋아하게 되었다는 것이고

운동을 가지 않는 날에도 동네 개천을 산책한다거나

주말에 약속을 잡고 등산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는 등

야외 활동을 좋아하는 사람이란 걸 깨닫게 되었다는 점이다. 

나는 실내 업무에만 맞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몸을 움직이고 

스스로를 한계로 밀어붙이는 일에 희열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한 번은 필라테스 일일 체험을 등록하고 수업을 들었는데

고강도 헬스에 길들여진 나는 그 수업이 쉽고 지루하게 느껴지면서

내가 한계를 넘나드는 강렬한 스트레스를 원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어느 봄에는 자전거를 타고 아주 먼 거리까지 라이딩을 했는데

'포기'와 '조금 더' 사이를 넘나드는, 자기와의 싸움을 하는 괴로운 시간을 견뎌내고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해 시원한 음료를 들이켰을 때 

나는 내가 살아있다는 생생한 쾌감을 느꼈다.


도저히 해내지 못할 것 같았던 걸 해냈을 때의 강렬한 희열.


나는 그 기쁨을 알게 되었고 그 후로는 헬스장에 가는 것을 즐기게 되었다. 

지금도 어떤 날은 무게를 잘 들지 못하지만 컨디션이 좋은 날은 예전에 어려워했던 

무게를 들어낸다.

다리에도 팔에도, 남들은 알아보지 못할 만큼의 작은 근육이 생겼고

처음엔 단벌이었던 운동복도 옷장 한 칸을 차지할 만큼 늘어났다. 


나는 여전히 나의 운동 모임에서 꼴찌 역할을 하고 있지만

더 이상 자존심 상하거나 스트레스받지 않는다.

각자의 신체조건에 맞는 적정 무게가 있다는 걸 이제는 알고 있다.

운동은 누가 일등이고 꼴찌인가를 가리는 것이 아니고 

자기 몸을 더 멋지게 만들기 위한 것이란 것도 안다. 


돌이켜 보면 운동을 하면서 꽤 여러 번 다쳤다.

다리 속근육이 파열돼서 일주일을 제대로 걷지 못했고

팔이 도라에몽처럼 퉁퉁 부어서 힘든 적도 있었고

굳은살이 박인 손바닥에서 피가 날 때도 있었다. 

겁이 많은 내가 운동하면서 이런 일들이 일어날 걸 미리 알았다면

겁을 먹고 헬스를 시작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를 헬스장에 등록하게 하고, 나를 헬스 모임에 끼워주고

부족한 나를 계속 격려해준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에게 아프다고 투정 부리고 위로를 받으면서 지금까지 헬스를 이어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코로나로 헬스를 못 하게 된 지 오래되어 답답한 마음에 글을 쓰게 됐지만

사실은 같이 운동하는 모임 사람들이 더 보고 싶다. 


내가 운동을 지속하는 동기에는

한계를 극복하는 희열과 함께, 같은 취미를 즐기는 공동체에 대한 애정도 큰 몫을 차지하는 것 같다. 



서른 중반을 향해 가는 지금까지도 나는 내 인생의 커다란 목표를 명확히 잡지 못했지만

내 몸이 가야 할 방향만은 정확히 알고 있다.

강인하고 건강하고 뜨거운 몸이 되고 싶다. 

자신감 있는 자세를 가지며,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움직일 수 있는 힘과 민첩함을 갖고 싶다. 

나이가 들어서도 운동을 즐길 수 있는 몸을 유지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건강한 활동을 할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였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북한산 백운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